195화
거기에 그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여기 저기서 병사들의 불만에 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제기랄,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우린 안양에서 막기만 하면 되는거 아니었어? 다른 부대놈들은 대체 뭐하길래 우리가 왜 갑자기 청와대로 가야하는 거야?)”
“(난들 알아? 혹시 밀리고 있는거 아니야?)”
병사들은 자세한 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찬우는 부대의 사기 저하를 우려한 나머지 간부들에게 단단히 입단속을 시켜두었다. 간부들은 부대 전체 전달 사항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언급을 할 수가 없었다. 병사들과 잡담을 나누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이봐! 쓸데없는 소리 작작하고 정신 똑바로 차려라! 대원수 마츠다이라님께서 직접 청와대로 진격하신 이상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해괴한 괴담을 퍼뜨리는 자가 있으면 당장 이 자리에서 목을 벨것이니라!)”
장교 하나가 목청을 높이며 눈에 불을 켰다.
그는 노기 띤 목소리로 병사들 주변으로 걸어가 채찍을 후려치듯 계속 다그쳤다.
“(멀뚱히 서서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서둘러 청와대로 진격할 준비를 서두르란 말이다!)”
주위에 있던 병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우, 우린 안양에 주둔하며 밑에서 올라오는 놈들을 막기만 하면될텐데, 왜 갑자기 청와대로 가야하는겁니까? 혹시 마지막 발악 이런거 아니겠지요?)”
“(마지막 발악? 니놈이 진정 죽고 싶어 환장해서 그딴 소릴 지껄이는거냐! 하라면 하라는대로 할 것이지 뭔 불만이 그리 많은가!)”
“(사, 삼일간 밥도 제대로 못먹고 힘들어 죽겠습니다. 저 거머리 새끼들만 배불리 처먹이느라 우리 병사들은 맨날 굶다시피 했다구요.)”
병사는 네모난 철창속에 갇힌 거머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머리들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털어온 음식들을 산더미처럼 수북히 쌓아놓고 게걸스럽게 입안으로 쑤셔넣고 있었다.
장교는 거머리들을 힐끔 보고는 다시 병사를 향해 호통을 쳤다.
“(그럼 니놈도 저것들처럼 일당백으로 싸우던가!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잔말이 많다!)”
“(누, 누가 많은걸 바랍니까? 하루 한 끼라도 좋으니 철판에 고기라도 구워 먹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맨날 자극적인 MSG 반찬에 통조림은 이제 질렸다구요. 상황이 이런데 마트나 정육점에서 구해온 돼지고기나 닭고기, 소고기는 죄다 저것들한테 던져주면서 우리 병사들한텐 냉동식품과 풀만 먹고 힘내라는건 조금 잘못된 생각이신것 같습니다.)”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건가? 빠가야로가! 취사 인원이 없어 병력에서 쪼개 쓰고 있는 마당에 뭐든 만들어주는대로 닥치고 처먹으면 그만이지 이 전쟁통에 맛을 바라서 뭘 어쩌겠다는건가! 답답하면 니놈이 만들던지!)”
“(이, 이렇게 화만 내시면 안됩니다. 리더는 자고로 묵직해야합니다. 그리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병사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불평과 짜증의 원인을 찾고 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화만 내시면... 컥!)”
돌연 찬우가 나타나서 병사의 이마에 권총을 들이댔다.
눈빛이 상당히 차가웠다.
“(한심한 놈.)”
“(차, 찬우 대좌님 사, 살려주십시오...!)”
찬우는 지극히 무거운 음성으로 겁에 질린 병사에게 말했다.
“(여긴 전쟁터지 인권을 보호해주는데가 아니다.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 한가하게 반찬투정을 할거라면 차라리 없는게 낫다.)”
탕!
찬우는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기며 병사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이어 허공에 대고 총알을 한발 더 쐈다.
지레 겁을 먹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전쟁 3일째! 우리도, 적들도, 본격적으로 심신이 지치고 마음이 산란해질때가 되었다! 이럴때일수록 마음을 더욱 굳건하게 먹어야 한다! 어느쪽이 승리하냐는 정신력에 달려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졸음과 싸워 나가며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위해 모두 힘을 내라! 강인한 정신력이야말로 비로소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다 줄것이다! 알겠나!)”
“......”
찬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병사를 사살해가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사기를 다 잡으려 했던 그의 설득은 효과가 미미했다.
기대와 달리 병사들의 힘찬 함성은 없었다. 병사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기죽은 소리로 작게 대답만 할뿐이었다.
누군가 낮은 소리로 옆 사람에게 볼멘소리를 냈다.
“이건 뭐 축구경기도 아니고 정신력 타령이라니. 우리가 무슨 축구 국가 대표팀인가.”
“솔직히 말해서 3일 지났으면 다 끝났지. 1950년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봐. 김일성이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마당에 우린 이게 뭔가. 그때보다 숫자도 적은 판에 오늘도 못할것 같고 이러다 내일까지 넘어가게 생겼어.”
병사들 대부분이 일본인이던 와중에 두 사람은 한국인이었다.
“내 생각이 그거야. 그리고 6. 25만 놓고 볼게 아니라 김옥균의 갑신정변도 있지. 삼일천하. 마츠다이라님이 딱 그 꼴나게 생겼어. 젠장할. 줄을 잘못선건 아닌가 몰라.”
병사들이 수군대는 소리는 점점 많아지고, 찬우는 인상을 쓰며 다시 한번 언성을 높였다.
“(내가 한 말을 알겠냐고 물었다! 알겠나!)”
탕!
허공에 총알을 한발 더 쐈다.
그제서야 병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한다.
“(하! 알겠습니다!)”
“(좋다! 서둘러 장비와 짐을 챙기도록 하라! 한 시간을 주겠다! 우리의 목표는 청와대다!)”
“(하!)”
멈춰 있던 병사들이 다시금 뛰어다니며 진격을 위한 준비를 계속 하기 시작했다.
찬우는 관악산 아래에 마련된 방공호로 들어가 홀로 지휘관실에 들어섰다.
문을 닫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통솔력은 부족했고, 병사들의 표정이 썩 좋지 못하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지휘관의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제 스물한 살이다.
경험도 부족하고, 직장에서 팀장 역할도 한번 못해본 그가 100여명의 부하를 통솔하는 대좌(대령)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저 전쟁 영화나 TV에서 봐왔던 것을 보고 느낀대로 흉내만 열심히 내고 있을 뿐이었다.
부대 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융통성있고, 유연하게, 원만히 해결할 방법을 모르다보니 돌발 행동을 하거나 방해가 되는 병사들은 가차없이 처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더는 골치 아플일이 없고 끝이었다. 이른바 공포 정치를 닮은 그의 통솔 방식은 병사들 개개인의 독자적 행동이 위축 되도록 만들었다. 속으로 불만을 품어도 함부로 나서기가 꺼려졌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꽤 괜찮은 효과를 보이는 방법이었지만,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병사들이 계속 순한 양처럼 말을 잘듣고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가 주는 두려움과 비례해서 불만과 증오는 계속 쌓여만 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칼날이 되어 언젠가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 뻔했다.
그 점을 찬우도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 탓에 그는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언제 반기를 들지 몰라... 언제... 하지만 얕보이지 않으려면 강하게 나가야 될것 같고... 빌어먹을... 나보고 어쩌라구...”
그는 괴로워 하는 얼굴로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짰다.
“애당초 신우주를 죽이려들지만 않았어도!”
그게 자신의 인생이 나락으로 빠지게 된 원인이자 시발점이었다. 이제와 후회한다고 해봤자 한심한 노릇이겠지만, 신우주의 등을 찌르던 순간이 지금까지 수백번이고 떠올랐다. 작전을 세울때도, 전투중에도, 식사중에도, 심지어 꿈속에서까지 제멋대로 떠올랐다.
생각하기 싫어도 자꾸 머릿속에서 멤돌았다.
그리고 우주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는 한순간 다리가 풀려 쓰러질뻔했다.
가슴속에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물밀듯이 흘러 들어왔다.
“녀, 녀석은 분명 날 찾아올거야. 내게 복수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내 목을 치러오겠지. 확실해. 분명히 올거야. 제기랄!”
찬우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냉장고에서 술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우주의 활약상을 항상 곁에서 지켜보던 그는 누구보다도 우주의 실력을 잘 알았고, 그 탓에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당장 맹수라도 착용해야 되나? 밥먹을때나 잘때도 계속 입고 있고. 큭큭...”
마신 술이 도수가 높은 까닭에 순식간에 취기가 돌면서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신우주가 언제 습격해올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될것 같았다.
“마츠다이라님이 먼저인가, 내가 먼저인가. 마츠다이라님이 먼저 인가, 내가 먼저인가...... 역시 내가 먼저겠지?”
그는 지휘관실 한가운데에 놓인 소파에 등을 편히 기대면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다시는 헤어나오지 못할 깊은 심연의 바다... 다시는 헤어나오지 못할 깊은 심연의 바다...... 다시는 헤어나오지 못할 깊은...”
깊은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
평범한 인생을 살던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되었을까?
옛날이 그립고 아쉬웠지만, 그럴수록 찬우는 절실히 바랐다.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끔 만들었던 여성.
그녀만 지금 곁에 있어주면 충분했다.
불안과 두려움 따위 한방에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똑똑.
갑자기 노크소리가 났다.
찬우가 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곧바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좌님. 민 스즈끼 대위입니다. 분부하신대로 유하나를 잡아왔습니다.”
“기다려.”
찬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서둘러 술병을 치우고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머리를 정돈했다.
이윽고 정갈하게 뒷짐을 지고 문쪽을 바라봤다.
“들어와라.”
문이 열렸다.
민 스즈끼가 먼저 들어오고 나서 그 뒤에 양손에 수갑을 차고 따라들어오는 여성.
하나였다.
그런데 찬우는 순간 눈을 껌벅이며,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붉은색 슈트를 입고 있는 하나의 외모가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작고 귀여운 맛이 있었다면, 지금은 뭐랄까 성숙한 여인의 야릇한 섹시함이 감돌았다.
풀어헤친 머리는 허리까지 닿았고, 가슴은 전보다 무척 커져 있었으며, 골반 라인이 매끈하게 살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키가 상당했다.
‘내가 알기로 키가 150후반대였던것 같은데 아니었나? 지금은 왠지 170은 넘어보이는데?’
찬우는 얼른 민 스즈끼부터 밖으로 내보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갑은 풀어주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위험합니다 대좌. 이 계집을 잡느라고 맹수 어드벤스 한 기가 파괴당했습니다. 수갑을 풀어줬다간 분명 큰일이 날것입니다. 힘이 장난이 아닙니다.”
“맹수 어드벤스가 파괴 당해?”
“하.”
찬우는 하나를 납치하기 위해서 맹수 어드벤스를 착용한 병사 다섯을 선발해 그녀의 집으로 보냈었다. 그에게는 안양에 주둔하면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것 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맹수 어드벤스를 어떻게 부쉈다는 거지? 이 여자는 비무장이 아니었나?”
“포획 당시에 비무장이었습니다. 저희가 방심한 측면도 있지만, 평범한 가정집에 맹수 어드벤스의 장갑을 부술만한 무기나 도구가 구비되어 있다고는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렇긴 하지. 그럼 어떻게 부쉈다는 말이냐. 그 전에 맹수 어드벤스의 착용자는 살아 있나?”
“저희가 이 계집을 생포했을땐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찬우는 믿겨지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자신을 무표정으로 쳐다보고 서 있는 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한동안 묵묵히 바라보더니 민 스즈끼에게 다시 말했다.
“이 여자는 전부터 맹수의 정비사였다. 당연히 맹수의 허점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 판단된다. 그 외에는 대단할 것이 없으니 수갑을 풀어주도록.”
“대, 대좌님.”
“시끄럽다. 귀관은 상관의 명령을 거역할 셈인가?”
찬우는 민 스즈끼를 무섭게 돌아봤다.
“아니면 혹시. 귀관은 날 우습게 여긴 나머지 한낱 계집에게 당할놈으로 보고 있는가?”
“저, 절대 아닙니다!”
“그럼 지금 굼뱅이처럼 뭘 하는 중이지?”
“하! 즉시 수갑을 풀겠습니다!”
민스즈끼는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인 뒤, 하나의 수갑을 풀어주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찬우는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나 역시 말없이 그와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낯선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각자의 인생에서 풋풋했던 시절은 이제 없었다.
처절하게 살아나가야할 쓸쓸한 인생만이 남아 있었다.
찬우는 난생처음 본 그녀의 도도한 모습과 날카로운 눈매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무엇이 널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어? 설마, 신우주 때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