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199화 (199/285)

199화

***

하나는 방공호에서 빠져나와 지상으로 나왔다.

주둔지 곳곳에는 화염과 검은 연기가 치솟았고, 수십명의 병사가 우왕좌왕 달리고 있었다.

잠시 뒤 가까이서 몇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쾅하는 소리와 함께 어딘가를 겨누고 있던 병사들의 사지가 처참하게 찢겨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먼곳에서는 불타오르는 트럭이 주둔지 외곽에 있는 산비탈에 곤두박질치며 우측으로 전복되었다.

상황은 보기에도 혼란스러웠다. 일제 강점기 시대 군복을 입은 완구특공대는 마치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 어디를 둘러봐도 그들과 다른 복장을 착용한 자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체 저들은 누구와 싸우는거지?’

아니다 됐다.

철수 명령을 받은 이상 자신이 자세히 알필요는 없다고 느껴졌다.

하나는 주변의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몸을 숨기며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현 상황이 어찌되었든 곧 기연합의 후속부대가 당도한다고 하였으니 남은 것은 그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일단 이곳에서 탈출하는게 상책이었다.

가는 중간에 멀쩡하게 죽은 군인의 시신에서 군복을 벗겨냈다. 흙만 묻은 말끔한 상의와 하의를 그대로 슈트 위에 껴입었다.

“저쪽으로 갔다! 유류고 뒤쪽에 숨어 있어!”

“총은 쏘지마라! 유류탱크가 폭발해 버릴거야!”

지나가던 병사들이 하나의 오른쪽에서 소리를 쳤다. 그녀는 무심코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병사 중에 하나는 열영상장비가 탑재된 고글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 다음 병사들이 주시하는 장소로 시선을 옮겼다. 30m떨어진 거리. 유류고라고 써진 팻말 뒤에 여러개의 드럼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런데 붉은색 락카로 욱일승천기가 칠해진 드럼통 옆.

유난히 색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허공에 떠서 이쪽을 겨누고 있는 총이 보였다. 마치 유령이라도 있는 것인지 희한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총구에서 곧바로 불꽃이 내뿜어졌다.

투다다다다다다!

하나의 주변에서 차례차례 비명이 들여왔다.

“으악!”

“커헉!”

“히익!”

병사들이 픽픽 쓰러지고, 하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연달아 몸을 날렸다.

유령은 탄창이 빌 때까지 쏘아댔다.

하나가 지나간 자리는 빗나간 총알로 수차례 땅이 파였다.

이윽고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주변이 잠잠해졌다.

‘어디야? 어디!’

하나가 타이어를 수북히 쌓아놓은 곳에 몸을 엄폐한 뒤 황급히 적을 찾았다. 그러나 유류탱크 주변에 보이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총과 어지러이 널린 탄피뿐이었다.

적은 이미 온데간데 없었고 발자국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하나가 조심스레 부대 안을 넓게 둘러보았다.

동시다발적인 폭발로 인해 약간 공황 상태에 빠져있던 병사들을 향해 간부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함치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병력들은 부대 밖으로 시선이 향해 있었다. 무언가 이쪽으로 진군해오는 듯 해보였다. 보나마나 기연합의 후속부대가 마침내 당도한 것일터다.

그런 와중에 어떤이들은 쇠사슬로 된 목줄을 쥐고 철창 속에서 거머리들을 황급히 꺼내고 있었다. 그 부근에는 맹수 어드벤스를 착용한 자들까지 보였다. 빔 라이플을 들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머리를 경계하면서도 그들 역시 부대 밖으로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있었다.

하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유류고 쪽을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적. 그는 과연 기연합 소속일까 아닐까?

아군인지 적인지 확실히 모르는 가운데 섣불리 움직이기가 애매했다.

‘어째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또다른 의문.

어쩌면 투명화 기술을 가진 데바?

아니면 얼마전 캐나다에서 발명했다던 투명망토라도 착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고민을 하는 와중에 문득 머리에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래! 그 병사가 썼던 고글!”

하나는 조금 전 마주친 병사가 눈에 쓰고 있던 고글을 기억해냈다.

열영상장비가 탑재된 고글!

투명화 기술을 가진 데바든 투명망토든 간에 최첨단 장비 하나면 그 뿐!

아까 병사는 분명히 보이지 않는 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불현듯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병사들이 쓰러진 곳으로 서둘러 달려나갔다.

그러는 순간 허공에서 기쁜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있었어? 한참 찾아헤맸잖아.”

그와 동시에 이루어진 공격.

하나의 머리 위를 덮쳤다.

“!”

하나가 깨달았을때는 이미 늦었다. 보이지않는 적이 그녀에게 달라붙어 단검으로 등을 찌른 후였다.

적은 하나와 함께 흙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잽싸게 떨어져 나갔다.

하나는 구르는 것을 멈춘 뒤에야 적이 누군지 확인할 수 있었다.

투명화 능력을 지우고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여성.

“강미라?”

단검을 든 알몸의 강미라. 살색이 아닌 파충류 같은 녹색의 피부. 그 모습을 처음 목격한 하나로서는 크게 놀라울만한 광경이었건만, 감정을 담당하는 우뇌를 개조시킨 그녀로서는 표정 하나, 눈썹조차 꿈틀대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서 그런 능력을 얻은거죠?”

약 네 걸음 정도 되는 거리에서 하나를 내려다보던 미라는 윗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뭐야,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이었네?”

미라는 즉시 살기를 풀고 단검을 멀리 던져버렸다.

그녀는 이 상황이 재밌는지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진작 너라고 말하지. 아팠어?”

“별로.”

“덮치자 마자 군복속에 입은 붉은색 슈트를 봤기에 망정이지 자칫 1mm라도 더 들어갔으면 척추가 찔려서 그 자리에서 죽었을거야.”

“적당히 찔러줘서 고마워요.”

“고마워요? 하하하. 그런 말이 어디있어. 좌우간 고맙게 생각해줘서 좋긴 한데 정말로 안아픈거야?”

“네.”

하나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지 가뿐하게 일어나 보였다.

주르륵.

뚝.

뚝.

등을 곧게 펴자 허리에서 엉덩이를 타고 흐른 피가 한방울씩 줄지어 땅바닥에 떨어졌다.

미라는 그 광경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할 것이지 엉뚱하게 왜 센척이야?”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허리가 펴지긴 하는거야? 희한하네. 등에 칼을 찔리면 허리 펴기가 수월하질 않거든. 일반인이라면 거의 못 펴.”

“그건 일반인이니까 그렇겠죠.”

“수라야 좀 더 낫겠지만 결국엔 같은데?”

“그것도 수라니까 그렇겠죠.”

“음?”

하나의 말에 무언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미라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는 하나를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못느꼈는데 다시 보니 자신과 키가 비슷했다.

“가슴과 골반도 커졌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고쳤네 아주. 어디서 고쳤어? 거기 의사 솜씨 좋아? 병원 이름이나 알려줘봐.”

하나는 미라의 말을 무시하고 되물었다.

“당신은 데바가 된건가요?”

“글쎄? 어떨까? 난 데바일까? 맞춰볼래?”

“관두죠.”

하나는 흥미없다는 듯이 먼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총탄의 굉음이 귀를 때렸다. 부대 입구까지 쳐들어온 기연합의 후속부대가 찬우의 완구특공대와 치열하게 접전중이었다.

미라가 다시 말을 꺼냈다. 그녀는 오직 눈앞에 서 있는 하나에게만 관심이 있을뿐이지 저 멀리서 벌어지는 전투에는 일체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왠지 하나 씨한테서 좀 거만한 기분이 드는데 내 착각일까?”

하나는 먼 곳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느끼는 그대로겠죠.”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나. 그럼 왜 이렇게 변한걸까? 사람이란게 본래, 제 성격대로 살아가야하는데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정말로 괜찮은거야? 내가 좋은 정신병원 아는데 같이 가서 약이라도 지어줄까?”

하나가 시선을 돌려 미라를 바라봤다.

“영양가도 없는 이야기는 그만 두세요. 한가하게 노닥거릴 장소도 아니에요 여긴.”

“와우, 제정신은 있네.”

하나는 그녀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미라는 그저 자신을 흥밋거리로 여기는 것 같았다.

다시 입술을 떼며 말을 돌렸다.

“여긴 어떻게 온거죠? 미라 씨도 기연합 소속인가요?”

“그 말에 대답하기 전에 나에 대한 적의는 이제 없나봐?”

“적의?”

“나 강미라야. 모르겠어? 예전에 우상님을 납치했던 그 강미라. 내가 재판장에 섰을때, 그때 넌 마치 날 당장에라도 죽일것처럼 노려보고 이를 갈았었어. 그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 그런데 지금 그 말투와 이 친근한 분위기는 대체 뭐야? 다 잊어버린거야? 유하나는 원래 이렇게 쿨한 여자였나? 후후, 내가 다 웃기네.”

“신우주와 관련된 일을 말하는 거라면 제 앞에서 다시는 꺼내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그를 생각하면 안좋은 기억 밖에 떠오르질 않거든요. 적절한 단어를 써서 표현하자면 그에 대한 기억은 제겐 악몽이네요."”

“와아.”

미라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하나를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이 당당한 느낌은 뭘까? 미국 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에 나오는 골드미스도 아니고.”

그리고 이내 배꼽 잡고 크게 웃었다.

“풉, 푸하하하! 이제야 알겠다, 이제야 알겠다고! 내가 잡히고 나서 그 후에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 대충 감이오는 것 같아!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몰랐네. 몰랐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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