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무당벌레 2에게! 기연합 사령부에 있는 과학자들이 긴급 대책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니 방법이 나올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텨내! 우리 오성그룹엔 너 밖에 없다!]
오성그룹 통제실과의 교신.
현주는 자신있게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말고 주변에 남아있는 병사들이 있거들랑 얼렁얼렁 도망가 있으라고 전해줘. 도시 전체를 전장으로 활용할 작정이니까.”
[적 진영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후방으로 피신해 있는 상태다. 안심하고 마음껏 활개치고 다니도록.]
“어, 그러겠다.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하지."”
[말해봐라.]
“지금 즉시 여기에 있는 기연합의 지휘관과 교신을 해서 적 진영에 가 있는 신라그룹의 캐비어 20대 중 다섯 대만 내쪽으로 보내달라고 해줘.”
현주는 적 본진을 공격한 아군 부대와는 별개로 독립 작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어쩔 생각이지? 하필이면 왜 캐비어야. 설마, 신라그룹과 연합 작전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인가?]
“그럴 생각이다.”
[그건 승인할 수 없다. 조금 전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신라그룹이 전방주둔지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웠다고 한다.
북쪽을 지키던 수문장인 하시도루를 포획했단 말이야. 이 마당에 우리 오성그룹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더구나 박찬우 같은 대어를 다른 기업에게 빼앗기기엔 무척이나 아까워. 차라리 우리 오성그룹의 날개를 보내겠다. 다섯대가 아니라 삼십 대라도 보내주지.]
“잠깐, 실장. 정면승부를 벌여서야 녀석을 이길 수 없어. 이럴바에는 완전히 진을 빼놓을 작정이야. 그런데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캐비어의 도움이 필요해. 회사의 공적도 공적이지만 내가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어? 난 지금 생존 확률을 더욱 높이고 싶다.”
[날개론 안된단 말인가?]
“애석하지만, 현장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 보고 하는 소리다. 현재 적들의 맹수 어드벤스를 상대로 그나마 밥값을 하는건 캐비어 뿐이더군. 우리 회사의 날개는 성능면에서 크게 부족하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자는 말로 위안을 삼아야될 판이야.”
[처량하군.]
“걱정마라. 이번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그 후에 우리 회사도 사탄 공략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야. 지난번에 술자리에서 이야기 했었지? 내가 앞장 서서 뭔짓을 해서든 잡아줄테니까 염려 마. 우리도 강해질 수 있다.”
오성그룹 작전지휘소를 총괄하는 특수작전실장 오범석.
그는 아쉬운듯 입을 달싹였다.
[그리고 말인데, 신우주가 레지스트 쉴드 안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있다.]
“신우주가? 죽었다고?”
현주는 믿기지 않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럴리가 없다. 내가 아는한 신우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야. 그는 절대 죽지 않는다.”
[자세한건 이번 일이 끝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만약 죽었다면 세상은 춘추전국시대가 된다. 신우주 다음으로 독보적이라고 할만한 인재가 대한민국 기업에 없으니까 말이지. 그렇다면 이대로 실력 평준화가 되고 마는 건가.]
“김칫국 마시지 마라. 절대 죽지 않았을 거야. 어딘가에서 분명 짠하고 나타날테니 좋아하지마. 녀석은 항시 그랬어. 내가 위험할때마다 한순간 짠하고 나타나 멋지게 구해줬었지. 아무튼 그 얘긴 이만 됐고. 시간이 없다. 어여 신라그룹이 캐비어를 보낼 수 있도록 기연합의 지휘관이나 설득해. 이상.”
[수신양호. 꼭 설득해서 늦지 않게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날개가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또 그러는 군. 난 다른 회사 사람이 아니라 오성그룹 직원이다. 그러니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아무리 친구 사이라지만, 중요한 작전 중에 사사로운 관계를 드러내는 건 옳지 않아. 넌 임원이고 난 직원이다! 좀 더 남자답게 굴어라 이 자식! 여자는 약한 남자를 절대 좋아하지 않아! 그럼 이만 무전을 끊겠다!”
[잠깐! 작전을 말해야지! 무작정 캐비어를 투입시키기만 하면 되는 거냐?]
“아, 작전! 무작정 투입시켰다간 큰일나지. 맹수한테 박살이 날테니까 말이지. 우후후.”
[좋은 방법이 있는거겠지?]
“당연하다. 캐비어가 직접 달려들 필요는 없고 멀리서 견제만 해달라고 일러줘. 도망 잘치고 빠릿빠릿한 놈들로 다섯만 보내달라고 해.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양호. 건투를 빈다.]
“오케이.”
현주는 약간 긴장된 기색으로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자신의 몸을 주욱 훑어보았다.
“후후, 이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헤쳐나갈 수가 있지. 상대가 비록 강대한 힘을 가졌더라도 말이야. 난 내 자신을 믿는다. 박찬우를 꼭 이길 수 있어.”
얼마지나지 않아 날개의 센서가 찬우를 포착. 스크린에서 바로 경고 문구가 떴다.
-2시 방향에서 제네틱스사의 맹수 출현!
찬우는 현주의 위치를 이미 탐지하고 공격태세에 들어간 뒤였다.
현주는 간신히 그 동작을 눈치채고 먼저 달아나기 시작했다. 날개와 맹수의 성능 차이는 압도적으로 맹수의 승이다. 무턱대고 전면전을 벌여봤자 피보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현주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어디 쫓아올테면, 쫓아와보거라! 힘으로는 불리하지만 그동안 쌓인 내공으로 이겨주겠다!”
장비의 차이를 경험과 노련함으로 커버하겠다는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며 팀장도 오래 해먹어봤겠다, 근무년수도 얼마 안된 신참을 골려먹듯이 상대하는 것 쯤이야 간단하리라 믿었고, 극명하게 드러나는 파워드 슈트간의 격차는 가진 역량을 모두 발휘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비겁하게 도망갈 생각이냐!”
찬우는 도망가는 현주를 향해 빔 라이플을 몇발 쏘고 나서 날개의 착용자가 누구인지 재빨리 확인했다.
맹수는 날개를 포착하자마자 그에 관한 정보를 주르륵 나열한 상태였다. 일전에 우주와 마주친 적이 있던 현주의 날개는 모델명과 그 착용자가 누구인지 맹수의 데이터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이 상황에 임현주라니, 너무 뜬금없잖아 이거. 큭큭.”
그는 현주를 쫓아 달리는 와중에 외부 스피커를 켰다. 그리고 조롱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오호라. 날 공격한게 누군가 했더니 바로 임현주 팀장님이셨습니까?”
“날 아는것처럼 말하는군!”
“알지 왜 모르겠습니까. 스컹크 팀이라면 최고는 못되었지만 그래도 중간이라도 갔던 팀이 아니겠습니까. 임현주 팀장님이라면 나름 유명세도 있고, 전방주둔지에서 간간히 마주칠때마다 제가 인사하며 지나치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설마 제 얼굴 한 번 못보셨을라고요.”
“생각이 잘 안나서 그러는데 맹수를 벗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나?”
“지금 농담하시는거죠?”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다.”
“진심이라. 그럼 제가 직접 벗는 것 보단 선배님이 한번 벗겨보시죠. 그게 더 재밌을것 같습니다. 그만 도망치시고 어서 이리와서 벗겨보십시오.”
“그건 됐다! 순순히 벗어주면 재미없으니 네놈과 좀 놀다가 벗길련다!”
“제게 다가오는 것도 어렵습니까? 혹시 저한테 죽을까봐 겁이나시는 건 아니고요? 오 이런, 선배가 되서 후배한테 겁을 먹다니요.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아하하하! 그놈 참 재미있군! 일단 내 선물이나 받아라!”
현주는 이동하면서 무기를 빼들었다. 우선 허리에 달린 고폭 중장용 수류탄(중장갑의 파워드 슈트나 군차량 파괴용)을 꺼내들어 뒤쪽에서 쫓아오는 찬우를 향해 휙 던졌다.
콰앙!
후방에서 즉시 큰 폭발이 발생하고 인근 건물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맹수는 끄덕도 없었다.
찬우는 솟구치는 먼지를 뚫고 빔 라이플을 발포. 현주는 우측으로 구른 다음 자세를 가다듬고 파워드 슈트용으로 특수 개발된 K-2T 돌격 소총으로 응사. 전 탄이 모두 명중했지만, 찬우는 무적과 다름없었다. 그는 총탄을 일일이 맞아가면서 반격을 해왔다.
“이건 불공평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사기가 아닌가! 이래서는 내가 당하고 말겠어!”
맹수와 날개간의 압도적인 기술력 차이를 눈으로 실감하고 나서야 비로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마침내 현주의 판단이 한순간 흔들리며 찬우가 쏜 빔을 끝내 피하지 못하고 피탄. 장갑에 구멍이 뚫리며 그녀의 피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