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빗맞았지만 고온에 살이 타들어가며 오른쪽 어깨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현주는 아픔을 참아가며 왼쪽으로 몸을 굴렸다. 방금 전까지 있던 곳으로 빔이 세차게 날아들었다. 그녀는 다시 벌떡 일어나 이동하면서 쉬지않고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무용지물. 맹수의 장갑에 총알이 팅팅팅 튕겨나가느라 바빴다.
찬우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피하느라 급급한 현주를 보며 애처롭다는 양 떠들었다.
“그러길래 절 왜 방해하신겁니까.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개죽음은 면했을텐데 말입니다. 제가 원하는건 오직 유하나 뿐이었어요.”
“유하나? 제네틱스에서 근무했던 유하나?”
“예, 맞습니다. 솔직히 전 야스쿠니 특공대니 뭐니 완구 특공대니 뭐니 신경쓰고 싶지 않았어요. 시작이야 내가 했지만, 내 곁에 하나만 머물러 있었으면 이런 일이 애당초 벌어지지도 않았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냥 어서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끝내버리고 싶어요. 하나를 찾아낸 뒤에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 이 말입니다.
”
“네놈이 유하나를 좋아했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왜 어처구니가 없다는 겁니까?”
“그녀라면 일전에 내가 데리고 있었기에 아주 잘알지. 그런데.”
현주는 정색을 하며 소리쳤다.
“신우주라면 모를까, 그냥 너 같은 놈한테는 주기가 아깝다!”
“시, 신우주라고? 그놈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오는데!”
찬우는 이를 갈았다. 그의 빔 라이플이 더욱 화끈하게 불을 내뿜었다.
“웃기지마 이 년아! 나한테 주기가 아깝긴 뭘 아까워! 두고봐! 네년을 잡아족쳐서 신우주라는 이름을 다신 못꺼내게 만들어주겠다!”
“선배한테 년이라니 네놈이 미쳤군!”
현주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찬우가 곧바로 뒤쫓았다.
“하하하! 이 상황에 선배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야! 다 끝난 마당에!”
두 사람은 도심지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시간이 갈수록 앞서 달리는 현주의 입안이 바짝 마르고 있었다. 아무리 기를 쓰고 달려도 거리 차이는 좀 처럼 벌어지질 않았다. 이대로 무식하게 달리기만 하다간 따라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기동력으로도 안되니 이거원.”
그 사이 찬우는 어깨에 달린 다연장 로켓포로 현주의 등을 조준.
발포했다.
쉬이익-
세 발의 로켓이 날아가며 그대로 현주를 직격해 폭발했다.
현주는 세차게 튕겨져 날아갔다. 도로를 가로질러 맞은편 보험회사 빌딩에 부딪히면서 1층 유리벽을 와장창 깨뜨리고 안쪽으로 나뒹굴렀다.
“흥! 꼴 좋다!”
찬우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도로 위에 선 채로 빌딩 1층을 향해 적외선 센서를 작동시켰다. 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을 못차리는 현주의 모습을 디스플레이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마지막이다. 크큭.”
그는 씨익 웃으며 다연장 로켓포를 재차 조준했다. 이번에는 현주가 아니라 빌딩이었다. 21층짜리 빌딩을 폭삭주저앉게 만들어 그녀를 산채로 매장시킬 속셈이었다.
그러나 돌연 디스플레이창에 표시되는 경고 문구.
[8시방향에 적 출현!]
“뭐?”
찬우는 황급히 몸을 돌려 그곳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지상에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인적없는 고요한 상점가, 도로와 그 주변에 난잡하게 주차되어 있는 주인 잃은 승용차들,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 등 을씨년스런 황량한 풍경을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다 이내 머리 위를 올려다 보았다.
붉은색 파워드 슈트를 착용한 자가 10층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치잇!”
그것은 찬우도 익히 알고 있는 신라그룹의 캐비어였다.
“저 빌어먹을 놈이 여기까지 쫓아왔단 말이지!”
찬우는 다연장 로켓포를 급하게 회전시켜 캐비어를 향해 정조준했지만, 캐비어의 대응이 한발 더 빨랐다. 어깨에 달린 숄더 캐논으로 입자포를 발사해 찬우의 가슴팍에 정확히 명중시켰다.
콰앙!
“우욱!”
공격을 받은 찬우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두 발짝 뒷걸음질쳤다. 일반 무기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던 그가 캐비어가 쏜 입자포를 맞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놀라웠다.
신라그룹의 무기 개발 기술은 국내에서 따라올 기업이 없을 정도로 가히 월등했다. 캐비어의 무기는 맹수에 내장되어 있는 무기와는 애당초 수준이 달랐다. 맹수는 다연장 로켓포나 개틀링포니 하는 20세기 무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캐비어나 삭스핀의 경우는 근미래형 무기를 탑재 하고 있었다.
찬우도 물론 그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일찍이 본진에서 기연합의 후속부대와 교전을 벌일 당시 몇 대의 캐비어를 상대하면서 살짝 거슬린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기에 우선순위로 제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서도 그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었다. 우려할 정도로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공격을 받으면 동체가 조금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뿐이지 파손을 우려할 정도로 매서운 공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캐비어도 정면으로 덤벼들지못하고 저 멀리 빌딩 옥상에 숨어서 공격하지 않겠는가.
“얍실한 놈 같으니!”
찬우는 왼쪽의 빌딩 옥상을 향해 빔 라이플 수십발을 난사했다. 캐비어는 뒷걸음질치며 꼬리감추듯 숨어버렸다.
고로 사격중지.
찬우는 괜스레 승질만 났다. 한 대 맞았으면 확실하게 되갚아줘야 했을텐데 그렇지 못했으니 말이다.
“저 년부터 처리한 뒤에 쫓아가주마! 두고 봐!”
찬우가 다시 보험회사 건물 1층으로 시선을 돌린 찰나였다.
조금 전 캐비어를 상대했던 반대 방향.
4시 방향에서 또다른 적이 감지되었다.
피융!
건물 뒤에 숨어 있던 적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바로 숄더캐논을 쏴버렸다.
찬우는 옆구리를 정통으로 맞고 두어번 비틀거리다가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찬우는 곧바로 다연장 로켓포 한 발을 날리며 응전. 적이 숨어있던 건물에 명중하며 세찬 굉음과 함께 부서진 콘크리트 가루가 폭풍처럼 휘날렸다.
아울러 적은 이미 건물 뒤편으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두 명의 적을 놓친 찬우는 이쯤에서 문제점을 하나 발견했다.
“어째서 센서에 잡히질 않는거지?”
1층에 갇혀있는 현주를 제외하고는 방금 전 캐비어 두 기가 레이더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몸을 숨긴다. 적외선 센서에 걸리지 않고 몸을 숨긴다...”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설마, 저놈들이 착용한 파워드 슈트에는 스텔스 기능이 달려있다는 것인가?”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 붉은색 파워드 슈트는 대체 어느 기업이야? 어떤 놈들이 저런걸 갖고 있었냐고!”
갑자기 화가 솟구치며 짜증이 폭발했다.
“이 천하에 얼어죽을 하시도루 새끼! 한규만 새끼도 마찬가지야! 두놈 다 맹수가 최고라며 자신만만해 하더니 겨우 이딴 무기를 갖고 일을 벌일 생각을 했어? 이 쓰레기 같으니라고! 다른기업한테 뒤쳐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던 주제에!”
투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투!
분을 푸느라 개틀링 포를 정신없이 사방에 갈겨댔다. 주위 건물과 간판에 탄환이 박히며 세찬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더불어 근처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적들을 찾기 위해서 총을 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찬우는 대충 주변을 살펴보고 나서 다시금 보험회사 건물 1층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깜짝 놀란 것이 어느샌가 현주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센서에는 그녀가 잡혔지만, 그의 착각이었다.
현주가 있던 건물 내부를 2D 평면에서 3D 입체 영상으로 표시한 결과, 그녀는 1층이 아니라 어느새 21층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돌연 현주의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숨박꼭질은 이제 시작이다! 만약 날 잡는다면 유하나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어딘데!”
찬우가 고개를 들어 크게 대꾸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거대한 물탱크가 시야에 들어왔다.
현주는 두 손으로 물탱크를 번쩍 들더니 21층 아래에 있는 찬우를 향해 힘껏 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