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06화 (206/285)

206화

***

서울.

파주시에서 부터 다른 기업의 차량을 얻어타고 왔던 우주는 망원한강공원에 도착할 즈음 운전석에 앉은 사내에게 말했다.

“여기서 세워주시오.”

“엥? 여기에? 같이 우리 회사로 가지 그러나?”

“괜찮소. 소생은 당장 청와대로 가봐야 한다오.”

“청와대라니, 어쩌자구 그런 위험한 곳을 맨몸으로 가려고 하는가? 거긴 지금 광화문 광장부터 시작해서 난리도 아니라고 들었어.”

“그래도 꼭 가야만 한다오.”

“뭣 때문에 거길 가려고? 청와대에 두고 온 약혼자라도 있는게야?”

남자가 농담조로 한 말에 우주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약혼자는 없소이다. 그냥 애국하러 가는 길이오.”

“하하하, 애국이라니. 멋지긴 한데 그러지 말고 잠실에 있는 기연합 사령부로 가서 그들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도록 하게. 아니면 나를 따라 우리 회사로 와도 좋고. 어차피 다들 청와대로 출동할텐데 같이 움직이지 그래.”

“생각은 감사하오만, 어딘가에 소속되어 단체로 움직이기엔 소생이 해야할 일이 너무 크다오. 상관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일개 병사의 신분은 목적을 이루기엔 한계가 있고 소생은 그 한계를 벗어나야만 큰 뜻을 이룰 수 있소. 독단적으로 움직이는게 수월하다 보고 있으니 이만 조심히 가시오. 여기까지 태워다 줘서 정말 감사하오.”

“에구 이 사람. 정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그럼 모쪼록 몸조심 하게. 같이 가는 처자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도로를 줄줄이 달리던 차량 중에서 우주가 타고 있던 차량만 속도를 줄이며 도로가에 멈춰섰다.

우주는 조수석에서 내려 뒷칸에 실어 놓았던 맹수를 착용하고 다시 차량에서 뛰어내렸다. 영애도 덩달아 따라 내렸다.

“잘가시오!”

“태워다 줘서 고마웠습네다! 복 받으실 거라요!”

두 사람은 떠나는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청와대였다.

그러나 맹수의 동력원을 생각해 차량을 하나 구해서 가야만 했다.

두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화를 주고 받으며 걷다가 문득 주변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주차된 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쟁이 벌어지면서 버려진 차들이었다.

개중에서 맹수를 싣기 좋은 1.5톤 화물차가 눈에 띄었다.

“내래 한때는 열쇠 없이 차를 끌고 다녔지라요.”

영애는 힘으로 조수석 차문을 떼어낸 뒤 글로브 박스를 뒤져 일자 드라이버 같은 공구들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공구를 사용해 핸들 밑을 강제로 뜯어냈다.

복잡한 그 안에 손을 넣고 이것저것 만지고, 뜯고, 뒤집고 하더니 이내 두 개의 선을 찾아서 연결했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차가 시동이 걸렸다.

“오오, 대단하오. 이런 기술은 대체 어디서 배웠소?”

“제 아바이께서 생전에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셨었습네다. 그렇다보니 어릴적부터 차와 함께 지내왔습지요.”

“오, 그랬었군.”

“신기하십네까?”

“아녀자가 차에 대해 잘 아니 신기하다마다요. 최고요. 최고.”

“적당히 하시라요. 내래 부끄럽습네다.”

영애는 엄지를 추켜 세우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우주의 얼굴을 보고 기쁜 표정으로 덧붙였다.

“보시니까 오떻습니까? 내래 매력있는 여자지 않습네까? 시집 가믄 서방도 잘 모시고 살림도 열심히 잘 할것 같지요?”

“영애 낭자는 관상도 좋아서 분명 남편에게 복을 불러다주는 현모양처가 될거요.”

“오마나, 과찬이십네다. 그럼 기왕 말나온 김에 시험삼아 집안에 들여보시지 않으시렵네까?”

“누굴 말이오?”

“누구긴요. 당연히 저입네다. 내래 집안일도 착실히 하고 밤일도 최선을 다하겄시요. 게다가 성격도 순하고 속살도 알맞게 여물을 나이니 결코 후회는 않하실 겁네다.”

“그런 여성이라면 마다하지 않긴 하지만.”

우주는 정색을 하며 등을 돌리고 뒷짐을 졌다.

“집에 방이 없어서 말이오. 가사도우미를 부업으로 하려거든 다른데 알아 보시오.”

영애는 서운하다는 얼굴을 짓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후회하실기라요.”

“후회는 나중에 할테니 우선 여길 떠나기나 합시다. 한가하게 잡담이나 나누고 있을때가 아닌것 같소. 한시바삐 청와대로 가는 것이 중요하오.”

그대로 우주가 화물차 뒤쪽으로 걸어가자 영애는 심통이난 얼굴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흥, 나는 이게 제일 중요합네다.”

우주는 화물차 짐칸에 맹수를 살포시 내려놓은 뒤 곧바로 운전석에 탑승했다.

영애가 조수석에 올라타자 차가 출발했다.

부우웅!

***

퍼엉.

퍼엉!

저 멀리 상공에서 간헐적으로 폭음이 들려왔다. 그쪽은 청와대가 있는 방향이었다.

“아직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보니 수비군이 잘버텨주고 있나보군.”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올수록 우주의 심장도 덩달아 뛰었다. 그는 마츠다이라와의 재회가 두렵다기보다는 매우 기대되고 설레였다.

이번에야말로 비로소 처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그와 반대로 들뜬 마음에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긴장감.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로 인해 한껏 고조되는 기분을 애써 다독이고 있었다.

“길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습네다.”

“그러게 말이오.”

도심은 썰렁했다. 간간히 지나치는 군차량과 검문소 군인들 이외에는 일반 시민들은 통 마주칠 수가 없었고, 건물은 텅텅비고 거리에는 쓰레기만 날렸다.

버려진 개나 길고양이들은 무너진 음식점을 뒤져 썩은 고기들을 주워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간혹 거렁뱅이 차림을 한 노숙자나 젊은 양아치들이 순찰을 도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 너댓 명씩 몰려다니면서 주인없는 편의점이나 귀중품 가게를 터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조수석에 타고 있던 영애가 발끈했다.

“야이 좆간나새끼들아! 그게 뉘들 오마니꺼니!”

“호된꼴 당하기 전에 신경끄고 얌전히 갈길이나 가라 쌍년아!”

“이런 반동분자 같은 새끼들이!”

발끈한 영애는 들고 있던 기관단총으로 그들의 발밑에 총격을 가했다. 젊은 사내들은 당황하면서 총알을 피해 춤을 추다가도 금세 총격이 멈추자 골목으로 허겁지겁 도망치느라 바빴다.

우주는 운전을 하면서 씩씩거리는 그녀를 칭찬했다.

“거 잘했소.”

“아무리 전시라도 그렇지 시민의식이 정말로 개판입네다! 저런 것들은 모조리 군대로 끌고가서 정신을 개조시켜야 하는건데!”

우주는 슬며시 미소 지으며 계속 차를 몰았다. 도로가 뻥뚫려서 운전하기도 편했다.

거리는 텅 비었지만, 시민들은 이 시각 자택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죄다 동마다 마련된 지하 방공호로 대피해 있었다.

지하방공호는 애당초 돌연변이 생물의 침공을 대비해 지은 것이었지만, 뜬금없이 일본군이 쳐들어올지 그 누가 알았으랴. 이 상황에 아주 좋은 피난구역이었다.

사상자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사거리를 지나는 군차량을 통과시키고 정차해 있던 차를 곧 출발시키려니 시동이 바로 꺼졌다.

“음?”

“왜 그러십네까?”

“시동이 안걸리오.”

차가 퍼졌다. 기름은 중간이나 남아있었지만, 희한하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고장이 난 것 같았다.

“혹시 어디가 고장났는지 알 수 있겠소?”

“사실 제가 할 수 있는건 열쇠없이 시동거는 것 뿐입네다. 다른건...”

“알겠소. 할 수 없지.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정비기술이나 배워둘걸 그랬소.”

주변에 널린 차중에서 다른 차를 골라 탈까도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영애가 지나가던 군인을 급히 붙잡고 물어본 결과 부근에 군부대가 주둔중이었다.

군부대가 임시 거처로 삼은 곳은 2호선 신촌역이었다. 지휘관이 있는 지휘통제실은 철로가 있는 지하에 꾸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무난히 위병소를 통과해 2번 출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밑에 있던 군인들이 두 사람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상황 속에 영애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우주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내래 얼른 뛰어가서 이곳 지휘관을 만나보고 오겄습네다. 여기 잠시만 서 계시라요.”

“혼자갈 생각이오?”

“저만 믿으시라요. 사내는 모름지기 잡다한 일은 모두 계집한테 맡기고 그저 뒷짐지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만 있으면 되는겁네다. 마츠다이란지 뭔지 하는 작자를 잡는 큼지막한 일만 직접 나서서 처리하시디요. 누군가에게 부탁해 차를 빌리는 것처럼 사내의 자존심에 금이가는 일은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겄습네다.”

“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오. 나도 갑시다. 어찌 여성에게 다 맡길 수가 있겠소.”

우주의 대답에 영애가 약간 성을 냈다.

“제 말도 좀 들어주시라요. 제 마음을 항상 거절하시면서 이런 부탁도 못들어주시는 겁네까? 일단 제게 맡기고 설득이 통하지 않을때나 헛기침 하면서 슬그머니 와보시라요.”

“......”

우주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럽시다.”

“금방 오갔습네다.”

영애는 홀로 지휘통제실로 향했다.

지휘통제실은 T-24 24인용 텐트로 세워져 있었다.

우주는 기다리면서 영애를 생각했다.

“허허, 참으로 심지 굳고 적극적인 여성이로다. 남자를 추켜 세워줄줄 아는 것이 여태 만나온 다른 여성들과 달리 색다른 매력이 있군. 은근히 료코를 닮았어.”

이윽고 그녀가 밖으로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