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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210화 (210/285)

210화

그리고 매우 짧은 순간의 깨달음.

디스플레이창에는 맹수 어드벤스를 착용한 마츠다이라의 키와 무게가 구석에 작은 글씨로 표시되고 있었다.

우주는 아차 싶었다.

아까부터 표시되는 중이었는데, 대화에 몰입한 나머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마츠다이라는 본래 키 180의 장신이다. 1900년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키였다. 180이 맹수 어드벤스를 착용하면 2M가 된다.

그러나 이 자는 그렇지 않았다.

대략 180 초반의 키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힌 듯한 느낌.

키 160대 사람이 착용하면 180쯤 나오게 된다.

우주는 여태껏 이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180의 키로 파워드 슈트를 착용하면 당연히 2M가 될텐데, 이 자는 어째서 제 키와 똑같이 180인가?

그렇다면 이 사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설마 마츠다이라의 키가 그 사이 줄어들기라도 했단 말인가?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마츠다이라를 상대할땐 항상 함정과 계략을 조심해야한다!’

우주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다짜고짜 그를 감싸려 달려들었다.

“(넌 대체 누구냐!)”

쿠콰쾅!

동시에 슈퍼 메가 하이드로 포가 벽을 뚫고 우주를 직격했다.

대기가 떨리고, 맹수의 장갑 표면에서 스파크가 튀기며 맹렬한 충격이 전신을 덮쳤다.

“크윽!”

우주는 광자에너지를 맞고도 밀려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두 팔을 벌린 채 빛의 파장을 통째로 뒤집어쓰며 꿋꿋하게 버텨냈다. 여기서 튕겨져 나가떨어지면 다음은 가짜 마츠다이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고,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사망에 이를 것이 뻔했다. 진실을 알기 전까지 그것만은 막아야했다.

“보나마나다. 보나마나!”

우주는 100여년 전 마츠다이라의 계책을 수없이 보고 수없이 당해보았다. 마츠다이라는 적을 속이고 희롱하는 수법에 능했다.

특히나 그가 가장 즐겨쓰던 계책은 자중지란(自中之亂, 같은 패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과 이간계(離間計),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적을 공격함)였다. 상대방 세력을 이간질하고 내분을 일으켜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전세를 역전시키는 것이 마츠다이라의 주특기중 하나였다.

“이제 속지 않는다. 절대로 두 번 이상 속지 않아!”

우주는 다시 소리쳤다.

“줄리엣!”

<말씀하십시오.>

“당장 슈퍼 메가 하이드로 포를 중단하라고 전해! 마츠다이라는 이곳에 없다!”

<속히 이행하겠습니다.>

우주는 자신을 뚫고 지나가려는 강력한 힘을 상대로 악착같이 버텨냈고, 얼마지나지 않아 끊임없이 몰아치던 빛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헉, 헉...!”

계속 해서 숨을 고를 겨를도 없었다.

우주는 숨을 꿀꺽 들이 삼킨 뒤 곧바로 뒤로 돌았다.

자신을 향해 똑바로 서 있는 맹수 어드벤스.

마츠다이라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법이군. 내 자네를 너무 우습게 보았던 모양이야. 예전과 달라져도 많이 달라져 있을 줄이야. 축하하네. 통찰력이 꽤 늘었어.)

“(시끄럽다!)”

우주는 냅다 달려들어서 뒷목의 장갑을 강제로 뜯어냈다. 두꺼운 호스를 손으로 움켜쥐고 확 뽑아버렸다. 속에 들어있던 액체가 흘러내리며 바닥을 적셨다. 인간의 신체 구조와 비교해 척수 역할을 하는 기관을 제일 먼저 파괴시킨 셈이었다.

뒤이어 동력까지 완벽하게 차단하자 맹수 어드벤스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않고 말았다.

마침내 눈앞의 인물의 베일을 벗길 차례였다.

우주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그 앞에 섰다.

손을 뻗어 맹수 어드벤스의 헬멧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우주는 헬멧속의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나서 눈이 휘둥그레지며 크게 놀랐다.

동시에 맹수를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을 지켜보던 군부대와 기연합 관계자들까지 모두 경악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대통령 각하!”

맹수 어드벤스를 착용하고 있던 이는 다름 아닌 이세종 대통령이었다. 입이 은색 테이프로 봉해진 채 머리가 땀으로 흥건히 다 젖어 있었다.

우주는 얼른 이세종 대통령의 입을 막은 테이프를 떼어 냈다.

“헉, 헉! 사, 살려줘서 고, 고맙네...!”

이어서 뚫린 벽을 통해 복도로 침투한 병사들은 굳게 닫혀져 있던 대통령 집무실 문을 발로 뻥차며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청와대 직원들 여러명이 밧줄과 테이프로 꽁꽁 묶인 채 신음하고 있었다.

군부대와 기연합의 상황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마, 맙소사! 우리가 대통령님을 죽일뻔 했어!”

“정말 다행이야! 신우주가 아니었으면 큰일날뻔 했다고!”

“그렇다면 마츠다이라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다시 청와대.

“각하!”

“어, 얼른 이것도 좀 벗겨내주게. 무거워 죽겠어.”

동력이 끊긴 파워드 슈트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우주는 서둘러 맹수 어드벤스의 장갑을 조심스레 벗겨나갔다.

마지막 남은 장갑을 마저 던져버리고 나서 이세종 대통령을 마주보았다.

“각하! 다치신 곳은 없으시옵니까?!”

이세종 대통령은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않은 채,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천천히 대답을 열었다.

“나, 난. 괜찮다네. 모두 자네 덕분이야. 자네가 날 살렸네. 정말 고마우이. 하마터면 적에게 농락당한것도 모자라 이대로 세상을 하직할뻔 했어.”

“어쩌다 이렇게 되신 것이옵니까? 아니, 마츠다이라는 언제 떠난 것이옵니까?”

“자네가 이곳에 오기 10분 전이었네.”

신우주가 청와대에 도착하기 10분 전.

송은혁 대위를 쓰러뜨린 마츠다이라는 이미 그 길로 대통령 집무실에 도착해 이세종 대통령을 사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우주가 청와대에 도착했을 무렵 마츠다이라는 이미 이곳을 탈출한 상태.

영문을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우주는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대통령을 납치 하지 않은거지? 마츠다이라가 청와대를 공격한 이유도 순전히 대통령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두고 간것일까?’

생각을 거듭할 수록 그 의문은 증폭되기만 할뿐이었다.

괜스레 깊게 생각하지 말자는 듯이 고개를 휘휘저었다.

심신이 지쳐있던 이세종 대통령은 곧바로 육군 의무반이 와서 간단한 응급처치후 그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해갔다.

현장에 남아 있던 우주에게 슬그머니 영애가 다가왔다. 청와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어느새 최첨단 장비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글을 머리 위로 올리며 우주에게 물었다.

“마츠다이라가 어데로 갔는지 아시겄습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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