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아,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시간 후.
규모 9.0 규모의 대지진이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했고, 후쿠시마 후타바군에 소재한 후쿠시마 제1원전에 15m의 쓰나미가 덮쳤다.
이로 인해 해안가에 있던 원자로 1, 2, 3호기의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면서 원자로를 식혀 주는 긴급 노심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추고 과열로 인해 대폭발이 일어났다.
본래 강진과 쓰나미가 바로 원전 폭발 사고를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원전은 지진이 발생하면 자동 정지하도록 설계돼 있고, 후쿠시마 원전은 리히터 규모 7.9까지 내진 설계가 되어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역시 1, 2, 3호기는 9.0 규모의 지진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작동을 정지했다.
여기까지는 대처가 완벽했다.
문제는 냉각시스템. 가동 중지로 핵분열은 멈추더라도 이미 달아오른 핵연료를 식히는 냉각시스템은 계속 가동되어야 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제 1원전에 전력을 공급해온 변전소 철탑이 지진으로 쓰러져 전원이 끊겼고, 자동으로 비상용 발전기가 가동됐지만 이마저도 쓰나미가 덮치자 유명무실해졌다.
후쿠시마 제 1원전을 관리하던 도쿄전력은 다시 냉각수를 투입하려 했지만, 손을 쓸 겨를도 없었다. 사고는 폭풍처럼 발생했다. 과열된 1, 2, 3호기가 일말의 자비도 없이 폭발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폭발로 인해 원자로 격벽이 붕괴되고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바다로 누출이 됐다.
속수무책으로 바다로 흘러들어간 방사능은 그대로 태평양을 오염시키고, 점차 전세계로 뻗어 나갔다. 인류의 대재앙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대서양과 인도양을 연달아 오염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일본 오키나와 미태평양통합군 사령부.
“(이 시각부로 자위대의 모든 작전을 무조건 중단한다! 한국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이 취소됐단 말이다!)”
한반도로 출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자위대는 후쿠시마 원전이 무너졌다는 소식과 함께 작전이 중지되었다는 말에 얼이 빠지고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았다.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으로 자위대의 발이 자연스레 묶이게 되었다. 나라가 뒤숭숭한 판에 병력을 움직인다는 것은 여론의 반발만 살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 총리대신관저.
나베 신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이 마당에 미국에게 군사 협조를 요청할때가 아니라 미국에 있는 원전 전문가를 보내달라고 해야할 판이었다. 그의 지지율과 지지자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후쿠시마 지역에 발생한 난민에 대한 대책과 사고 수습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미국까지 한반도를 침공하려는 계획에 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내왔다.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난리가 나자마자 그들은 즉시 본국으로 회군하겠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그렇다보니 마츠다이라와 관련된 일들은 모두 뒷전이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단 말이오! 우린 더 이상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원수님께는 미안하지만, 우리 일본은 이제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헤라클레스에 탑승하고 있던 마츠다이라는 너무나 기가막혀 허탈한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엔 나와 선을 긋겠다? 이건가? 이런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할 수 없지. 네 외할아버지에 관련된 일들을 모두...)”
나베 신쥬는 퍼득 말을 잘랐다.
-(하십시오! 할테면 해보란 말입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란걸 왜 모르십니까!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방사능으로 인해 일본이 망하게 생겼단 말입니다! 오염된 공기가 도쿄까지 날아올지도 모른다고요!)
“(거기도 바쁘겠지만, 나도 내 상황이란게 있다. 이대로 힘을 보태주지 않는다면 조선의 한복판에 갇혀있는 우리 야스쿠니 특공대는 당장 어쩌란 말인가. 또 이번에 정복을 실패한다면 대일본제국의 부활은 앞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자네는 정령 후회 안할 자신이 있는가?)”
-(그 참 고리타분하네!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시대도 바꼈는데 뭔놈의 대일본제국의 부활 타령이나 하고 계신겁니까! 시대가 크게 바뀌었으니 이제 정신 좀 차리십시오! 막무가내 독불장군 식으로 나라를 운영했다간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국민들에게 미움을 받았다간 한 나라의 총리라도 자리에서 쫓겨나는 그런 시대입니다! 옛날 방식만 알고 있다 보니 참 감각이 없으시군요! 하긴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옛날 감각으로 어찌 이 시대를 살아나가겠습니까? 야스쿠니 특공대 따위 다 버리고 일본으로 와서 현대 정치를 좀 배우십시오! 내 사비를 들여 개인 과외 선생이라도 붙여주겠습니다!)
“(너 이놈! 그걸 말이라고 뱉는것이냐!)”
마츠다이라는 이가 으스러질 정도로 분한 얼굴을 지었다.
나베 신쥬는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계속 실컷 떠들어댔다.
-(누가 그럽디다! 우리 일본인들은 뒤통수를 잘친다고요! 과거에도 전례가 하나 있긴 했었습니다! 일본에서 관동 대지진이 일어났을때 미국에서는 자선모금을 해가며 도와주었으나 수년후 우리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단행했었지요! 저 역시 그 피를 물려받았나 봅니다! 그러니까 그런줄 아십시오!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 됐고 전화를 이만 끊겠습니다! 우리 서로 모르는 척 합시다! 애당초 정체 불명의 집단 아니었습니까? 왜 전화를 걸어서 화딱지 나게 시비를 걸고 난리입니까!)
“(네 이놈! 당장 일본으로 가서 니놈의 목을 잘라주겠다!)“
-(얼마든지 해보십시오! 그러시든지 마시든지 아무튼 간에 신경쓸 가치도 없습니다!)뚝!
그대로 교신이 끊겼다.
마츠다이라는 순간 혈압이 끌어올라 뒷목을 부여잡았다. 자칫했다간 홧병에 쓰러질뻔했다.
“직쑈!(제기랄!)”
주먹을 불끈 쥐고 지휘석에 놓인 책상을 쾅 내려쳤다.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부하들이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으나, 모두 모르는척 하며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갑자기 한 병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마츠다이라님! 크, 큰일났습니다! 헤라클레스의 네 다리, 각 관절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경고 메세지가 뜨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고장이라도 났다는 말인가!)”
“(무거운 몸통의 무게를 못이긴 나머지 부러질지 모르겠습니다!)”
“(뭐하고 있는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라!)”
병사는 행동을 머뭇거리며 우물쭈물했다.
“(저, 저희가 만든 것이 아니라서 어찌 해야될지를 모르겠습니다...)”
“(이런 병신 같은 놈!)”
마츠다이라는 사실 전부터 고령의 나이에 부정맥이 좋지 않았다. 심장마비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커헉! 컥!)”
“(마, 마츠다이라님!)”
쓰러진 그를 부축하던 병사가 주변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당장 의무병을 불러와라! 마츠다이라님이 쓰러지셨다!)”
영등포 C마트.
소라는 가공할 병기인 헤라클레스를 처부수기 위해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었다.
아울러 헤라클레스를 만든 장본인인 전지연 박사를 눈앞에 앉혀 두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었다.
도대체 어찌하면 좋겠냐는 소라의 물음에 전지연 박사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이 시대 기술력으로 헤라클레스라는 거대한 공성로봇을 만든 것 자체가 애당초 실현 불가능 한 것이었습니다. 제아무리 울트라 레일건처럼 오버테크놀로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제네틱스라지만, 인간 크기의 로봇을 비롯해 강아지만한 크기의 소형 로봇도 제대로 못만드는 형편에 63빌딩 크기의 거대한 헤라클레스는 정말 말도 안되는 물건이지요.”
전지연 박사는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물을 한모금 마신 뒤 이어 말했다.
“흉내만 낸 것입니다. 한규만 회장님의 억지스러운 부탁에 의해 쫓기듯 만든게 헤라클레스. 하물며 네 다리로 잘 걸을 수 있는지에 관한 보행 테스트조차 해본 적이 없는 물건입니다. 한순간 고장이나 작동을 멈춰도 이상할 것 없지요.”
“그거 듣던 중 희소식이로군요.”
“그런가요. 하지만 만든이의 입장에서 정말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다소 아쉬울지도 모르는 상황이네요.”
“네?”
소라는 조금 눈을 크게 떴다. 모두가 헤라클레스를 처부수길 바라는 상황에서 지연의 대답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금세 미소로 화답했다.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애써 만들었는데 고장이 나면 허망할테니까.”
“그렇죠.”
***
누구도 감히 대적할자가 없어보였던 헤라클레스는 거짓말처럼 작동을 멈추었다.
몸통을 지탱하던 네 다리가 힘없이 무너져 내리며 몸통이 지면으로 곤두박질쳤다.
쿠콰쾅!
지진이 난것처럼 대지가 크게 흔들리고 대량의 먼지가 휘날렸다.
먼 거리에서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군병력과 기연합측은 뜬금없이 벌어진 희한한 상황에 그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들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때마침 현장에 도착한 우주.
치누크 수송 헬기를 타고온 우주는 맹수를 착용한 채로 헤라클레스의 몸통을 향해 강하했다.
그는 직접 헤라클레스의 내부로 진입하여 야스쿠니 특공대의 야망을 완전히 산산조각내고 숙적인 마츠다이라를 찾아 죽일 작정이었다.
“선수필승! 일격필살!”
슈우우우웅.
착!
우주는 순조롭게 낙하했고 작동이 정지된 헤라클레스의 널따란 등에 떨어지며 찰싹 달라붙었다.
헤라클레스의 등은 보통 배의 갑판과 다름없었다. 둘레에는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하늘과 땅을 향해 쏠수 있는 요격용 수직 미사일 발사대, 전투기가 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 심지어 한쪽 구석에는 여가를 즐기기 위한 테니스 코트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전쟁이 나면 여기서 버티기로 아주 작정을 했었군!”
우주는 테니스 코트를 보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즉시였다. 우주의 존재를 눈치 챈 야스쿠니 특공대 병사들이 맹수 어드벤스를 입고 갑판으로 뛰쳐나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우주는 즉시 반격했다.
“(마츠다이라는 어디에 있느냐!)”
한 대부수고,
“(마츠다이라는 어디에 있지?)”
또 한 대 부수고,
“(마츠다이라가 있는 곳을 어서 말하란 말이다!)”
맹수 어드벤스를 착용한 적들은 우주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우주는 계란 후라이를 하는 것처럼 손쉽게 그들을 요리하고 박살냈다.
이어 하늘을 쳐다보니 자신을 뒤따라 특수부대원들이 강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츠다이라는 내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넘길 수 없어!”
우주는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듯이 서둘러 실내로 뛰어들어갔다.
마츠다이라는 절대 전범 재판을 받게 해서는 아니되었다.
재판을 받는 기간동안 무슨 꿍꿍이를 부릴지 모르거니와 일본까지 끼어들면 골치가 아프다. 인도주의적 차원 어쩌고 저쩌고 해서 갖은 핑계를 다 대거나 유엔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해 그의 사형 집행을 방해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100년 전 인간은 100년 전 인간이 죽이는게 마땅하다! 본래 이 시대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겠다!”
<확실히 결의가 대단하시군요.>
줄리엣이 말을 걸어왔다.
<몸의 상태로 보아 이렇게 화가 나신 모습은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이다! 녀석은 철천지 원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