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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213화 (213/285)

213화

줄리엣과 대화하는 와중에도 우주의 손놀림은 바빴다. 실내 여기 저기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그를 가로 막는 적들을 상대로 불꽃을 튀기며 개틀링 포를 쏘거나 고주파 블레이드로 아작을 내는 중이었다.

비좁은 통로에서 패고, 차고, 마구잡이로 날뛰며 전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병사에게서 마츠다이라의 위치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의, 의무대에 있습니다! 여기서 우쪽으로 꺾어서 복도를 쭉 따라가십시오! 다 말했으니 목숨만은 살려주십...!)”

쑤컹!

“(살려주기에는 네 죄가 너무 크다.)”

우주는 가차없이 그를 죽이고 의무대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그대로 복도 끝까지 달려나간 끝에, 있었다.

마츠다이라는 손에 칼을 쥐고 하오리하카마를 단정하게 입은 채로 통로를 가로막으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는 미소를 짓고 서 있는 그를 노려보며 당차게 말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군.)”

우주의 비장한 말에 마츠다이라는 느긋하게 한숨을 내뱉고는 차분한 어조로 입술을 열었다.

“(난 완벽히 실패했다. 그토록 충성을 다바쳤던 조국에게 배신당하고 결국엔 혼자 남았지. 그래서 일까? 자네를 보니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드는군.)”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썩을놈아.)”

“(네가 뭐라 지껄여도 화조차 나지 않는군. 아마 이런 기분도 모든걸 다 잃어서겠지. 뭐, 상관없다. 좌우지간 답답해보이는 그 고철 덩어리는 과감히 벗어던지고 우리 100여년 전으로 돌아가보는게 어떠한가? 각자 가진 실력으로 순수하게 겨뤄보는게.)”

줄리엣이 즉시 경고음을 울렸다.

<누가봐도 우리쪽이 휠씬 유리한 상황입니다. 적의 도발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알고 있다.”

이성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치 않았다. 마츠다이라는 1대1 승부를 바라고 있고, 100여년 전 그를 잡지 못한 우주로서는 발달한 문명의 도움없이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무모하다고 해도 좋다.

100여년 전 그때로 돌아가도 얼마든지 자신의 실력으로 마츠다이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순전히 고집이었다.

“(도전을 받아들이겠다.)”

<팀장님! 쉽게 갈일을 어렵게 가지...>

삑.

우주는 줄리엣의 음성을 제거하고 착용 해제버튼을 눌렀다.

푸쉬이이익.

흰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며 전신을 조이고 있던 장갑이 자동으로 열렸다.

우주가 한걸음 내딛자, 지지대가 없는 맹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쿵 소리를 내고 바닥에 떨어졌다.

마츠다이라는 여전히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월한 상황임에도 적군을 배려하는 그 여유와 자신감. 경의를 표하지.)”

“(잡소리는 집어치워라. 얼른 시작하자.)”

“(칼이 없어도 되겠나? 이쪽은 보다시피.)”

마츠다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앞으로 드러내보였다.

“(이거야 원. 순식간에 입장이 서로 뒤바뀌고 말았군. 이렇게 되면 나도 칼을 버려야 서로가 동등한 건가?)”

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널 제압하는데 있어 칼이나 도구 따위는 전혀 필요치 않다. 오히려 방해만될 뿐이거니와 본래 내 실력은 맨손 격투술에서 더욱 빛이 난다는 것을 명심해라.)”

마츠다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랬었지. 그랬던것 같아. 네가 본격적으로 칼을 들기 시작한 시점은 료코가 등장했을때부터였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어.)”

“(잡소리 집어치우고 이번에야말로 네놈을 기필코 죽이겠다!)”

우주는 으르렁 대는듯이 읊조리며 두 주먹을 들고 격투 자세를 취했다.

마츠다이라가 웃으며 말했다.

“(기쁘군.)”

“(뭐가 기쁘단 말이냐.)”

“(글쎄 뭐랄까. 아직 할일이 있는 것 같아서.)”

“......?”

“(혼잣말이니 흘려들어도 좋다. 자, 그럼 시작하지.)”

“(잠깐.)”

“(이번엔 그쪽에서 할말이 있나?)”

“(허 낭자에 관해서다.)”

마츠다이라는 피식 웃었다.

“(물어봐라 뭐든지.)”

“(길게 이야기할건 아니다. 단지 그녀의 지금 이름을 알고 싶다. 허 낭자의 일본식 이름은 무엇이지?)”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츠다이라는 순순히 알려주었다.

“(요시자와 리에.)”

“(알겠다.)”

“(과연 찾아볼 수나 있을까? 여기서 곧 죽을텐데 말이지.)”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노려보며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웃음을 달고 있던 마츠다이라는 돌연 표정을 무섭게 지으며 우주를 향해 칼을 겨누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우우웅 대는 통로.

부근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병사들의 목소리. 그리고 연달아 터지는 폭음.

이런 가운데 두 사람의 눈빛은 오직 눈앞의 상대를 짓밟는다 그것만이 관심사였다.

“(이렇게 비좁은 통로에서 칼을 쥔 상대와 맞붙는다는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지.)”

그 말과 동시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마츠다이라는 번개같이 칼날을 휘둘렀다. 바람 가르는 소리가 깨끗하게 들려올 정도로 깔끔하고도 탁월한 솜씨였다.

그러나 마츠다이라가 미처 생각 못하고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우주는 완전히 맨손이 아니었다. 그가 입은 제네틱스 슈트의 우측 허벅지에는 전투 단검이 부착되어 있었다.

우주는 마츠다이라의 칼날을 왼쪽으로 잽싸게 피하면서 허벅지에 착용하고 있던 단검을 뽑아 다트를 던지듯 마츠다이라의 목을 향해 재빠르게 날려보냈다.

휙!

“커헉!”

단검은 화살처럼 날아가 마츠다이라의 목에 정확히 꽂혔다. 그의 목에서 일순간 피가 솟구쳤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칼을 떨어뜨리며 두 손으로 목을 부여잡았다. 숨쉬기가 상당히 힘들어 보였다.

우주는 냉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똑바로 섰다.

“(이런 수법에 걸려들을줄이야.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예상외로 쉽게 당해주시는군.)”

“(너, 너... 이 비, 비겁한......!)”

“(난 정정당당하게 승부한다고는 안했다. 내가 그동안 네놈을 상대하면서 수백번 느꼈던 기분이다. 당해보니까 어떻나? 분통이 터지고 화가 나는가? 아니, 이 순간에는 죽을 것 같은게 맞겠지.)”

“(그, 그렇다...!)”

마츠다이라는 고통속에서도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처럼 보였다.

“(내가 왜 이 단검을 못봤을까... 평소의 나라면... 쿠, 쿨럭!)”

목과 가슴이 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개미 목소리만큼 작게 들려서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래... 한평생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 바쳤건만, 결국 돌아오는건 배신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먹어서 그랬겠지. 마음이 흐려져 주위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던게야... 그게... 패배의 원인이었던 것이지. 크크...)”

싸움은 이렇게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간단히 끝이나버렸다.

더 공격할 것도 없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마츠다이라는 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무릎꿇었다. 가만히 놔둬도 얼마 안가 곧 죽을 목숨이었다. 흐릿해져가는 그의 시야에는 우주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 끝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그는 히죽 웃는 얼굴로 죽어버렸다. 목표를 이루어 편안한 표정이라기보다는 외롭고 쓸쓸한 웃음이었다.

마츠다이라를 무심히 내려다 보던 우주는 절대 그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 마츠다이라가 생전에 한 일을 생각하면, 조국에게 배신당하고, 마지막에 홀로 남고, 억울한 패배를 당하는 굴욕만으로는 부족했다. 더욱 처참한 꼴을 당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를 죽이면 통쾌하고 후련해질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그렇게 되고 나니 그냥 무덤덤했다.

“당시였다면 모르겠지만... 역시 10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인가. 감흥이 없군... 차라리 이완구를 죽였을때가 더욱 후련했어. 그땐 보는 이들이라도 있었으니까.”

***

1년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야스쿠니 특공대와 완구트공대의 남은 잔당들과 그와 관련된 세력들이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척결되었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정부는 수도권 지역의 피해를 수습하느라 기업의 레지스트 쉴드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수라들을 동원해 집과 건물을 새로 짓고 다리를 건설하는 등 사고 복구 작업에 전력을 기울이며 정신없는 한 해를 보냈다.

그런 가운데, 전세계인들은 지구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 여름밤에 불현듯 나타났고, 미국의 캘리포니아 해변, 영국의 브리스톨 해변, 러시아의 북극해변, 프랑스의 보르도 해변, 일본 도쿄, 중국 칭다오 등등 전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아주 크고 거대한 돌연변이 생물들이 해변가로 걸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1부 같은 1부가 끝났습니다.

무언가에 쫓겨서 어영부영 끝난 느낌이 강하네요. ㅎㅎ원래 레지스트 쉴드를 처음 쓸 당시 여기까지가 마지막권이었어요.

마츠다이라를 죽이는게 대망의 엔딩으로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었죠.

그런데 쓰면서 인물이 추가되고 스토리가 방대해지면서 애초 구상을 벗어나게되었네요.

독자분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지만, 굳이 신경쓸 생각은 없어요.

저부터 소설에 대한 애착이 옅어진 만큼 독자분들도 글로 그것을 느끼신거겠죠.

할수없네요 ㅎ

아무튼 앞으로 내놓을 신작의 분량을 확보하는데 주력할 생각이고, 레지스트 쉴드는 일주일에 2회 연재를 할까 고민중입니다.

당장의 계획은 레지스트 쉴드 전자책 7권 퇴고를 마친 뒤에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오래걸리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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