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사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 우주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자신의 회사로 차를 몰았다.
현재시각 오후 4시.
회사로 가서 일을 해도 괜찮을 시간이었다. 자신이 세운 회사니 만큼 밤 12시까지 일해도 부족할 판이다. 더욱 힘껏 일을 해야만 했다.
천하 물산.
소민과 함께 시작한 회사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성장이 부진했다.
그렇다고 회사의 실적이 나쁜것도 아니었다.
단지, 돌연변이 생물을 잡아서 유통시키는 산업에 늦게 뛰어든 까닭에 또 자본도 부족했던 이유로 다른 기업들보다 보유한 장비나 인재가 미천했고, 사탄을 가뿐하게 잡아내는 요즘 추세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소민과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세운 회사는 여전히 코끼리급 미만, 호랑이급, 토끼급만 주구장창 잡아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임현주가 있는 오성그룹은 주로 코끼리급 사탄을 잡아내고 있으며, 더 나아가 신라그룹 같은 경우에는 코끼리급 사탄을 뛰어넘어 그 이상하는 매머드급까지 간간히 잡아내고 있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탄에도 등급이 생겼다.
기존의 사탄이 코끼리급이라면, 그보다 강한 것을 매머드급, 더 강한것을 타이탄, 더더욱 강한것을 아틀라스급이라 등급을 매겼다.
이 중 아틀라스급은 과학자들의 추정일 뿐이고, 타이탄급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실제로 나타난 적이 있었다.
당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동부 해안에서 나타난 타이탄급 사탄은, 대도시 마이애미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인명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지역이었다.
이에 MPO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타이탄급 사탄과 맞섰지만, 끝내 퇴치하지 못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했다.
그 결과 수라와 데바를 합쳐 100여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감수해가며 마이애미 동부 해안에 있는 버뮤다 삼각지대로 타이탄급 사탄을 유인하는데 성공했다.
바다로 돌아간 타이탄급 사탄은 2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매일 미군이 던져주는 수천톤에 달하는 식량을 받아먹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양은 미국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어마어마 하기에 오늘날 미국이 전처럼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다시 우주의 회사이야기로 돌아와서, 돌연변이 생물의 생산, 유통, 가공을 전문으로 하는 중소기업인 천하물산의 성장이 정체된 이유는 딱히 별거 없었다.
시장에는 사탄의 사체가 매일 같이 유통되고 있지만, 천하 물산은 사탄을 잡을만한 여력이 없었다. 직원들에게 제공되어야할 무기나 보조 장비는 타기업보다 한단계 뒤처져 있었고, 남들이 2세대 파워드 슈트인 하이테크 슈트를 입고 일할때 그들은 여전히 맹수 어드벤스 같은 1세대 양산형 슈트를 입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 연유는 당연히 돈 때문이었다. 자신과 소민이 전재산을 털어 자본금 1조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우주의 활약을 기대해 첫해 매출 5조원을 예상했지만, 어이없이 9천억원에 불과했다.
이를 직원들 연봉과 강남에 위치한 건물 임대료, 경상비 같은 회사운영 자금을 지출 하고나면 새로 개발된 파워드 슈트나 최첨단 무기를 구입할 여력이 빠듯했고, 해안가에서 사탄이 출몰하는 인류의 대재앙과 맞물려 날이 갈수록 회사는 점점 힘들어져만 갔다.
어느날 소민이 푸념하듯이 한숨을 쉬며 그랬다.
회사를 세운 시기가 무척 안좋았다고.
맞는 말이었다.
전세계에 사탄이 주구장창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탄을 잡아내는 회사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천하 물산은 사탄을 잡을만한 능력이 없었다. 갈수록 토끼리급과 호랑이급의 사체는 값이 싸지고, 사탄을 잡는 기업들만 두둑히 이익을 챙겨갔다.
물론 사탄의 사체가 시장에 많이 풀릴수록 값도 점점 내려가겠지만, 그렇다고 토끼급이나 호랑이급에 견줄바는 못되었다. 사탄의 사체로 제조되는 상품들은 그 효능과 효과가 실로 신기에 가까웠다.
돈이 돈을 불러온다고.
고가의 하이테크 슈트만 있다면 코끼리급 사탄을 잡는 시도라도 해보겠지만 돈이 없는 천하 물산은 먼 10년 후를 내다보며 손만 빨아야 했다. 한푼, 두푼 모아서는 절대로 단기간에 25명분의 하이테크 슈트를 살 수가 없었고, MLRS라든지, 전술지휘차량 같은 최첨단 장비도 불가능했다.
그러니 천천히, 차곡차곡 모을 수 밖에.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우주가 인재개발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일하고 있던 사원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앉아달라는 제스쳐를 취한 후 안쪽으로 걸어가 한켠에 마련된 집무실 문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장급 직원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한 부사장은 퇴근했소?”
소민은 부사장이면서도 회사가 궁핍하기에 인재 채용 및 사원 교육 업무를 직접 도맡았다.
“3시 쯤 퇴근하셨습니다.”
“아, 알겠소이다.”
소민은 첫 임신 중이다.
몸이 불편해 먼저 퇴근한 것 같다.
우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왔다.
다음으로 간 곳은 다른층에 있는 전략물자관리부였다. 이곳에서 최첨단 장비와 파워드 슈트를 구매하거나 되팔기도 하고, 그 산하에는 보유한 장비들을 유지하고 정비하는 팀도 속해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거래처 여직원인 리영애가 눈에 띄었다.
그녀가 화사하고 예쁘게 차려입은 까닭에 유독 빛이났다.
“지금 오셨습네까?”
안으로 들어온 우주를 보자마자 직원들이 전부 긴장한 얼굴로 벌떡일어서는 가운데, 오직 그녀만이 환한 얼굴로 그를 반겼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인연은 3년이나 되었고, 마츠다이라가 테러를 일으켰을 당시 전우로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였기 때문인지 영애는 무척이나 우주를 편하게 대했다.
“이제 막 끝내고 온 참이오.”
“누구, 대장동무를 함부로 대하던 아새끼는 없었습네까?”
“없었소이다. 그나저나 오늘 어쩐일이오? K2소총은 지난주에 구매가 다 끝났을텐데.”
“추가로 전해줄 것이 있어 잠시 얘기 좀 하고 있었습네다. 전에 계약할때 옵션으로 달아둔거 있었잖습네까? 다음주쯤 해서 그걸 전달하려합네다.”
“아, K3 기관총 20정 말이오?”
“그렇습네다.”
영애가 방긋 웃어 보였다.
그녀는 현재 방위산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제네틱스가 정부에 의해 공중 분해된후, 다른 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1년을 쉬다가 방위산업체로 들어가버렸다.
“끝나고 술 한잔 어떻습네까? 기막힌 북한 음식점을 알아냈습네다. 사장이 탈북자 출신인데 사라진 북조선 맛을 알지 뭡네까?”
우주는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한잔 하고 싶지만, 오늘은 야근을 해야될것 같소이다. 모처럼 명당자리가 비었다지 뭐요.”
“레지스트 쉴드 말입네까? 다른 기업이 일하다가 오늘 쉬는가 보구만요.”
“그렇소. 지금 자리를 맡아 놓고 있다니 얼른 가봐야 하오.”
“알겠습네다. 대장동무는 회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입장인데 내래 어쩔 수 없지요. 그럼 내일 또 뵙겠습네다.”
“다음주가 아니라 내일 말이오? 내일은 우리 회사 쉬는날이오만.”
“아, 그러십네까? 그럼 제가 다른 회사랑 착각했나봅네다. 아무튼 거 아쉽구만요. 여기는 왠지 제 친정 같은 느낌이라 자주 오고 싶지 뭡네까.”
우주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일하는척하면서 힐끔 힐끔 쳐다보던 직원들이 즉시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영애는 연예인급의 미모로도 근접할 수 없는 대단한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주말쯤 해서 한잔하러 갑시다. 영애 낭자를 보면 소생도 편안해진다오.”
“고맙습네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네다.”
“우리 사이에 그런말 하지 마시오. 어쨌든 소생은 이만 가보리다.”
우주가 떠나기 전 영애가 그의 손을 저도 모르게 붙잡았다.
우주는 뒤돌아보며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뭔가 할말 있소?”
“그... 말입네다.”
“말해보시오.”
“국군 MSC에서 모함하거나 건방지게 구는 자가 있으면 당장 제게 말해주십디오. 고아새끼 목을 내 단칼에 베어버리겠습네다. 내래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다보니 높으신 분들을 많이 알게되지 뭡네까.”
우주는 픽 웃음이 나왔다.
“그런 일 없으니 걱정 마시오.”
“없으면 다행이구요.”
“아무튼 고맙소.”
우주는 영애의 손을 한번 꽉 잡아준 뒤 사무실을 걸어나왔다.
영애는 닫힌 사무실 문을 지그시 바라보며 왠지 모를 열의를 불태웠다.
“내래 3년을 기다려왔서! 다음 주말 만큼은 절대로 놓치지 않갔어!”
밖으로 나온 우주는 최상층 사장실로 걸어가며 어쩔 수 없이 지난날을 떠올렸다.
3년 전.
마츠다이라가 죽고 나라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끝난 뒤, 반역자들을 이 잡듯이 찾아내 숙청하는 작업이 시작되고 우주는 김수희와 함께 새로운 드라마에 출연하였다.
그 드라마는 상처를 받은 국민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 대히트를 쳤다.
그런데 우주의 인기가 사그라들고 몰락하기 시작한 시점이 이때부터였다.
드라마가 성황리에 종료되고 난 후, 그 즈음 하여 소라에 대한 전범 재판이 열렸다.
우주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죄를 감량시키고 또 최대한 징역살이 만은 면하게 해주기 위해서 전국방방곡곡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국민들에게 호소해가며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 노력에 비해 이런 그의 행동은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주는 모든 비난을 감수해가며 최선을 다했다. 더구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붕괴와 관련해서 이를 진작에 예언했던 그를 맹신하고 추종하는 집단이 일부 생기기도 하였지만, 우주는 그들에 대한 대처가 대단히 미흡했고, 한때 불타올랐다 곧 사그라들것이라며 신경도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우주 맹신자'들의 행동은 우주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우주의 뜻에 따라 한소라의 무죄를 역설한답시고 집회를 갖다가 일반 시민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이르렀으며 덩달아 우주까지 대다수 국민들의 눈총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쯤해서 우주의 여자관계가 언론에서 터졌다.
매일매일 신문에 대서특필되며 한소라에 이어 한소민, 그리고 강미라를 더해 동거하는 일본 여성까지 총 네 명의 여자를 동시에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대한민국을 태풍처럼 휩쓸었다.
우주의 문란한 사생활에 대한 소문은 신라그룹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연예계 기자들의 통설이었으며, 어찌되었든 이는 국민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다 주었다. 네 명의 여자를 동시에 사귄다는 것은 외국은 몰라도 한국에서 만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국민들은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변태적인 인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의 열성팬들도 하나 둘씩 차츰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에 마침표를 찍게 되는 일이 발생했으니, 우주를 향한 대국민적인 비난속에서도 그나마 중립을 지키려는 시민들에 의해 신우주는 마츠다이라를 쓰러뜨린 나라를 구한 국민영웅이라는 이미지는 유지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카운터 펀치를 날린 것이 전세계에 사탄이 출몰하고 2세대 슈트가 개발되고 나서 부터였다.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아트만 에너지가 형편없었던 우주는 국민들의 기억속에서 금세 잊혀져만 갔다.
“다 왔군.”
강남에 있는 천하물산 본사에서 전방주둔지로 이동한 우주는 곧바로 레지스트 쉴드 안으로 들어갔다.
“소생없이 사냥하느라 고생들 했소.”
호랑이급 돌연변이 생물들이 잘나오기로 소문난 명당 자리에는 아침부터 직원들이 죽치고 있는 중이었다.
여담이지만, 레지스트 쉴드는 예전같지 않았다.
그간 레지스트 쉴드에서 활동하던 기업들은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며 세상밖으로 뛰쳐나갔다.
레지스트 쉴드에서 활동을 하는 것보다 전세계에 널린 코끼리급 사탄이 더욱 돈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레지스트 쉴드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현재 그 안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소규모 영세기업이나 그나마 나은 중소기업들 뿐이었다.
그리고 이마저도 정부의 사주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레지스트 쉴드 안에 있는 돌연변이 생물들의 숫자를 줄이지 못하면 그것들이 언제 서울까지 내려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항상 그 숫자를 줄여줘야만했다.
“하루종일 보고 싶었는데, 참느라 무척 힘들었어요.”
“서방님, 무사히 돌아와서 참말로 다행이옵니다.”
지질시대에나 있을 법한 울창한 숲속에서, 하이테크 슈트를 입은 미라와 기모노 속에 파란색 슈트를 껴입은 료코가 똘망똘망한 눈빛을 띄우며 그를 매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천하물산에는 하이테크 슈트가 두 벌 있었다.
없는 돈을 써가며 간신히 구입한 것이었고, 하나는 탱커인 미라가 착용했으며 다른 하나는 딜러인 우주가 착용했다.
이에 반해 료코는 우주가 쓰던 1세대 맹수를 착용하는 중이었고, 아직 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