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하이테크 슈트를 입은 데바들의 와트(W)는 평균 10만이다.
우주는 그 20배였다.
***
인류보호기구 한국지부.
MPO 코리아.
데미지미터기에서 측정된 각 MSC 관련 자료들은 MPO 코리아의 데이터 서버로 실시간으로 전송되어 저장된다. 그리고 데이터 서버로 전송된 자료들은 MPO 코리아 데이터분석실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이, 이백만?!”
모니터를 쳐다보던 한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 다들 이리와보십시오! 천하 MSC에서 기본 아트만 에너지 수치가 무려 200만이 나왔습니다!”
“설마 그럴리가 있겠어. 뭔가 잘못된거 아냐?”
“에이, 오작동한거겠지.”
“맞아요. 200만이란게 애들 장난도 아니고.”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여러명의 직원들이 믿지못하겠다는 듯 말하면서도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저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일제히 눈이 커졌다.
“어라, 진짜네?”
“신우주? 신우주라면 내가 아는 그 신우주인가?”
“예, 맞아요. 천하 MSC는 천하물산 사장 신우주의 명의로 등록된 공격대입니다.”
“허, 이거봐라. 신우주라면 혹시 모르겠는데?”
“정말 200만이라면, MPO 국제본부에 신고해야되요. 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야.”
“이러지 말고 다시 한번 측정해보라고 전화해보죠.”
직원이 바로 천하 MSC 소속 애널라이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지스트 쉴드 일부 지역에서는 중계기가 설치되어 있기에 통화가 가능했다.
-오늘도 수고하십니다. 천하 MSC의 애널라이저 김토성입니다.
“여긴 MPO 코리아 데이터분석실입니다. 현재 천하 MSC는 레이드 중인게 맞습니까?”
-맞습니다. 신우주 사장님의 딜량 때문에 그러시는거죠?
“예, 실시간으로 전송된걸 봤는데, 혹시 데미지미터기가 오작동을 일으켰습니까?”
-오작동은 아닌 것 같고, 기계는 잘 작동되고 있습니다.
“그럼 정말로 신우주 사장님의 아트만 에너지가 맞단 말입니까?”
-저도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현재 조사중에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시면 정확한 결과가 나올테니 그때 다시 전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레지스트 쉴드 안.
천하 MSC는 우주의 아트만 에너지를 재측정 할 겸 토끼급을 한 마리 잡아보기로 하였다.
이번에도 200만이 나온다면 세계 최고의 딜러이자 스나가 탄생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아울러 재기 확정이다.
“저기 부팀장 님이 오고 있습니다!”
팀원 하나가 소리쳤다.
미라가 바동거리는 거대한 멧돼지를 양어깨에 짊어지고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팀원들과 한 50미터 쯤 떨어진 거리의 바닥에 쿵 하고 내려 놓았다.
그녀는 거대 멧돼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두 앞다리와 뒷다리를 쇠사슬로 꽁꽁 묶은 뒤 멀찌감치 떨어져 우주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이제 우주의 차례였다.
팀원들 앞으로 슬며시 걸어나온 우주는 자신의 두 손바닥을 막연히 쳐다보았다.
“나의 아트만 에너지...”
그는 곧 바이저를 닫고 정신을 집중했다.
휙, 휙!
한 팔을 X자로 휘두르자, 아까와 똑같은 초승달 모양의 섬광이 질풍처럼 날아갔다.
퓩!
퓩!
“꾸에엑!”
동시에 애널라이저 김토성 부장이 손에 쥔 데미지미터기를 보고 자신있게 소리쳤다.
“사천!”
“사, 사천!?”
“혹시 사천만을 말하는거야?”
“이번엔 2백만이 아니고 사천만이야?”
“야야! 니들 부장님을 볼게 아니라 저기 멧돼지를 봐야지. 멧돼지가 살아있는거 보면 몰라?”
이런.
모두의 힘찬 기대와는 달리 거대 멧돼지는 온전하게 살아있었다.
“꿀꿀, 꿀꿀! 킁킁.”
거대 멧돼지는 모기가 무는 것처럼 따끔거리기만 했는지 잠깐 비명을 지른 것 외에 별다른 상처도 없었다. 그저 팀원들쪽으로 코를 킁킁 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뿐이었다.
“사천......”
토성이 힘을 잃은 목소리로 데미지미터기에 표시된 수치를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평소의 5000와트 보다 못한 4000와트 입니다...”
전과 같은 형편없는 결과에 실망한 팀원들이 아쉬운 듯 일제히 고개를 떨궜다.
이후에도 재차 실험을 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토성은 씁쓸한 듯 입맛을 다시며 곧바로 MPO 코리아에 전화를 걸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조금 전 통화했던 천하 MSC의 애널라이저 김토성입니다. 예, 예. 재확인 결과 기기의 오작동인 것 같습니다. 예. 내일 오전에 교환받으러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밤 10시가 되어 사냥이 끝났다.
전방주둔지로 무사히 복귀.
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방주둔지의 넓은 광장은 대낮처럼 환했다.
우주는 팀원들을 모두 귀가 시키고나서 미라와 료코만 데리고 광장에 위치한 출입통제소에 들렸다.
어느 기업이든 레지스트 쉴드에 출입하려면 출입통제소에서 먼저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혼자 갔다올테니 밖에서들 잠시 기다리고들 계시오.”
우주는 다섯 계단 오른 뒤 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왔다가시더니 또 어쩐 일이십니까?”
PC 앞에 앉아있던 중년 소장이 눈을 깜빡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비를 정리하다 보니 놓고온게 있어서 말이오. 그것을 찾으러 갈까해서 왔소이다.”
“아, 장비를 두고 오셨구나.”
그는 책꽂이에서 서류철을 꺼내 신청서 한 장을 집어서 건넸다.
“여기 인원 하고 가는 목적, 이름, 서명 좀 적어주세요. 다른건 안적으셔도 됩니다.”
우주가 의자에 앉아서 슥슥 적는 동안 뒤에서 뒷짐지고 조용히 바라보던 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라, 세 명이서 가시게요?”
“그렇소. 세 명이오만.”
“그럼 위험해서 안되는데요. 최소 20명은 되야 합니다 사장님.”
“그게... 직원들이 다 퇴근해서 말이오. 다시 불러서 잔업을 시키기도 그렇고 세 명으로 갈 참이오.”
우주는 투명한 유리벽 너머, 무언가 대화를 나누며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료코와 미라를 보며 이어 말했다.
“하이테크 슈트 두 벌과 구 파워드 슈트 1기를 가져갈 생각이오. 값비싼 장비라서 그러는데 어찌 안되겠소? 이런데서 시간만 보내다가는 다른 기업이 장비를 가져갈까 무섭소.”
“음... 아시다시피 레지스트 쉴드는 무척 위험한 곳이라 20명 이하의 인원으로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냥 다음 출근날에 직원들과 함께 다시 가보심이 어떨까요? 사장님.”
“......”
우주는 잠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신의 상위 왼쪽 주머니에 슬며시 손을 넣었다.
“내 박 소장과 알고 지낸지가 언 2년이 다 되어 가는것 같소. 서로 바쁘다 보니 허가 받을때만 마주치고 식사 한 끼 못해봤는데, 조만간 좋은 곳에서 식사자리 한 번 마련하리다. 꼭 섭섭치 않게 대접하겠소. 물 좋은 곳에서.”
우주는 상위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흰 봉투를 꺼내 허가신청서 종이 밑에 깔아두고 박 소장에게 같이 건넸다.
두툼한 흰 봉투를 만진 박 소장은 만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쿠, 뭘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십니까. 저야 뭐 그냥 김밥 한 줄이면 되는데. 아하하, 아하하하!”
그가 책상쪽으로 힘차게 걸어가며 덧붙였다.
“값비싼 장비라니 저도 안타깝군요. 그래서 곰곰이 잘 생각해보니 그리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원래 규정이라는게 살짝만 비틀면 아 다르고 어 다르지 않겠습니까? 규정에는 분명히 20명 이하는 금지라고 되어있지만, 그건 개인화기를 휴대한 인원을 뜻하는 것이고 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한 인원에 대해서 만큼은 정확히 명시된 것이 없습니다.
옛날에 만들어진 규정은 이래서 문제예요. 3년 전만 해도 개나 소나 파워드 슈트를 쓸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는 책상 서랍을 열어 종이 세 장을 꺼냈다.
“밖에 계신 두 분도 얼른 들어오라고 하세요. 세 분한테 사고책임각서만 받고 당장 출입시켜드리겠습니다.”
“감사하오.”
이후 우주와 료코, 미라는 모든 사고에 관해서 자신들이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서 출입통제소를 떠났다.
박 소장은 사무실 안의 직원들을 피해 화장실로 급히 뛰어들어갔다.
“히히, 과연 얼마나 들어 있을까. 기업 사장이니 만큼 한 1억은 들어있을라나? 어디 한 번 열어보자. 해에 저~문 낙동강에~ 황혼이 지~면 쿵짜쿵짜, 쿵짜쿵짜쿵짜♪”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우주가 주고 간 흰 봉투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어?”
막상 열어보니 그가 기대했던 게 아니다.
우주의 친필 사인 몇장과 편지 한장.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박 소장, 사랑하오.”
박 소장은 크게 낙심했다.
“사랑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가 게이냐!”
그는 종이를 동글동글 구겨서 휴지통에 냅다 던져넣었다.
“반쪽 짜리도 못되는 데바 주제에!”
***
우주는 직접 백공트럭을 몰고 레지스트 쉴드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레지스트 쉴드로 다시 들어온 이유는 갑자기 치솟은 자신의 힘을 다시금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팀원 전원이 모여있을때 발휘했던 힘은 가짜였다.
아트만 에너지의 수치를 재측정하기 위해서 발휘했던 힘은 사람이 숨쉬는데 쓰는 힘과 똑같은 수준으로 최대한 기운을 빼고 공격한 것이었다.
그러니 형편없을 수 밖에.
우주는 더이상 세간의 주목을 받는걸 원치 않아했다. 유명해져봤자 돌아오는건 험담, 음해, 비방, 악성댓글과 비난 뿐이었다.
처음에야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쓰기도 피로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나중이 되니 그냥 귀를 닫고 사는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는 묵묵히 제 할일만 하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인생을 택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평범하게 살아가리라.
아울러 이것은 가족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좋은 일이라면 모를까, 좋지 못한 일로 인터넷상에서 이슈화 되는 날에는 상처받을 아내들과 아이들이 제일 먼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부다처제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과 비난. 그리고 그것이 자라나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떠한 악영향을 줄지 극히 조심스러웠다.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연예인 생활을 관둔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처음엔 다섯 마리로 시작해봅시다.”
적당한 사냥 장소를 찾은 우주는 미라에게 부탁해 주변에 있는 돌연변이 생물을 몰아오게 하려던 참이었다.
“여보. 그 전에 키스부터.”
미라가 바이저를 열고 절로 품에 안겨왔다.
곁에 있던 료코는 탐탁치 않은 눈빛을 지었지만, 가족끼리 흔한 일이기에 그냥 넘어가는 듯 했다.
“으음...”
짧고도 진한 키스가 끝나자 미라가 우주를 한 번 끌어안더니 먼지를 일으키며 힘차게 달려나갔다. 이른바 키스 파워다. 키스로 충전을 받고 기운이 넘쳐보였다.
미라가 떠나고 난뒤 료코가 기모노를 주섬주섬 뒤적이며 무언가를 찾아 꺼냈다.
“이거 드십시오.”
“뭔데?”
료코가 건네준건 껌이었다.
우주는 무심코 받아들고 물었다.
“이걸 왜 줘?”
“왜 주긴요. 서방님의 입안이 지금 더러우니까 주는겁니다.”
료코의 흔치 않은 독설에 우주는 피식 하는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일단 입안에 던져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껌을 왜 갖고 다녀?”
“우리 서방님이 다른 계집과 키스하고 나면 입안을 깨끗히 청소해 드릴려고 갖고 다니지요. 불만 있으십니까?”
“없어.”
우주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미라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잠자코 껌을 씹었다.
질겅질겅.
“밤하늘 별빛이 참으로 예쁘군.”
료코가 시원한 밤바람을 맞아가며 상쾌한듯이 하늘을 우러러 보고 말했다.
그에 우주가 즉답했다.
“너보단 예쁘진 않아.”
우주는 여러 마누라와 함께 살다보니 이쪽저쪽 비위를 맞추며, 집안이 화목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냈다.
그 어떤 상황속에서도 닭살스러운 멘트가 절로 튀어나왔다.
“너야말로 온세상을 비추는 가장 빛나는 별이니깐.”
“......”
그 말에 감동을 받은 료코가 똘망똘망 눈동자를 빛냈다.
“서방님이 다른 여인을 품에 안는게 싫지만, 역시 소녀는 서방님 밖에 없어요!”
우주는 아무말없이 그저 흐뭇하게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얼마 안되서 미라가 토끼급 다섯 마리를 달고 돌아왔다.
“주변에 몹(돌연변이 생물)이 별로 없어서 찾는데 좀 애먹었어요.”
“수고했소 낭자.”
우주는 짧게 대답하고 나서 바이저를 닫고 정신을 집중했다.
몇시간 전부터 몸속에 생긴 기운 찬 에너지는 그를 더욱 활기차고 패기있게 만드는 중이었다.
휙, 휙!
“꾸에에에엑!”
그의 손짓 하나하나에 몹들이 한방에 죽어나갔다.
두 번 때리거나 죽었는지 확인하는 등의 잔동작이 전혀 필요없을 정도로 정갈하고 간단했다.
딱 5초 걸린것 같다.
다섯 마리의 돌연변이 생물들이 순식간에 죽고 나자 미라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
“와아...!”
“소생도 놀랍구려. 최고군!”
우주는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에 달고 있던 가슴의 통증도 이제는 없었다. 아트만 에너지가 급격히 상승함과 동시에 완치된것 같았다.
그는 가까이 다가온 료코와 미라를 껴안으며 말했다.
“이제야 나도 제몫을 할 수 있게 된것 같소. 그동안 내 초라한 아트만 에너지를 보고도 함께 살아줘서 정말로 고맙소이다. 내 앞으로 회사를 크게 키우고 부인들 역시 떵떵거리며 살게해주리다.”
우주는 유명세로 CF를 찍고 드라마를 촬영하겠다는게 아니다. 그건 세상에 대해 잘 모를때나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며 언론에는 최대한 노출을 자제하고 자신의 기업과 가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만 힘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본디, 인간의 속마음이란게 원체 약았기에 힘이 있는 자를 추종하며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추락한 자신의 이미지라든지 일부다처제에 관한 부정적인 여론도 자연스레 수그러들것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죽을테니까.
‘앞으로는 나를 이 나라의 임금 마냥 떠받들어 모셔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