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그런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우주는 울리는 휴대폰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나마나 함께 레이드를 가자고 할 것일텐데 어쩔까.’
현 시대 데바의 숫자는 수라에 비해서 무척이나 적다. 왠만한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기업당 3~5명 밖에 되질 못하였다.
게다가 아트만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데바다 보니 수라와의 연봉 차이도 크게 났다. 또 데바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2세대 파워드 슈트까지 덩달아 구입을 해야함으로써 그 비용도 적지않게 들어갔다. 중소기업이 데바를 열 명이나 갖고 있다간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따라서 서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기업과 기업의 협동 레이드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현주가 속한 오성그룹의 경우에는 그녀 포함 데바를 9명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오성그룹은 마냥 코끼리급 사탄에만 만족할 수 있는 기업규모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윗등급인 매머드급을 잡자니 데바 인원이 부족했다.
2년 전 사탄이 전 세계로 출몰하면서 데바로 각성하는 수라도 마치 자연현상처럼 꾸준히 늘어갔지만, 음식을 먹어도 간에 기별도 안가는 것처럼 여전히 적어 보이는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오성그룹 또한 자력으로 로얄가드, 스나, 위자, 베다, 리그베다가 적절하게 조합된 MSC를 꾸릴 형편이 되질 못했던 것이다. 부족한 데바의 숫자는 다른 기업과의 협력으로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누님, 잘지냈소?”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는거냐?
“잠깐 뭣 좀 알아보느라 그랬소.”
-혹시 자지가 하나 더 달리게끔 하는 비법을 찾는다거나 뭐 그런건 아니겠지? 부인도 여럿이고 하나로는 부족할테니까 말이야.
“하하하.”
우주가 코를 비비며 밝게 웃었다.
“누님의 저질개그도 이제 적응할때가 된것 같은데 참 적응이 안되오. 아무튼 항상 유쾌해서 좋소이다. 그나저나 왠일이오?”
-왠일이긴, 우리가 꼭 무슨 일있어야만 전화하는 사이더냐?
“한동안 연락이 뜸하길래 그랬소. 그럼 그간 뭐하고 지냈소?”
-이번에 매머드급을 잡으려고 한달 동안 회사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지 뭐냐. 새로운 녀석이다 보니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거든.
“공부만 한게요?”
-그렇게 됐다. 그래서 말인데.
“같이 가자는 말이군.”
-그렇지. 아하하하.
우주는 고민했다.
자신이 가진 아트만 에너지의 한계를 시도해볼만한 아주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지만 그는 머뭇거렸다. 천하물산의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5000W 밖에 나오지 않던 자신을 챙겨주려는 현주의 의도야 빤히 알지만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갑작스레 들이닥칠 세간의 눈길에 좀 더 유연해지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빠르면 다음주 월요일 오전에 열기로한 미래전략경영실 긴급회의가 끝난 이후부터 언론과 대중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파죽지세로 밀고 나갈 생각이었다.
참고로 천하물산의 미래전략경영실은 소라가 자리를 비운 동안 우주가 임시로 수장을 맡고 있었으며, 천하물산 오너 일가(우주, 료코, 소라, 소민, 미라)와 사내 중역들이 매달 한번씩 모여 앞으로 회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관해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소생은 5000W 밖에 되질 않소. 그런데 이런 날 데려갔다간 누님께 큰 민폐를 끼칠가 우려된다오. 미안하지만 말이라도 해줘서 고맙소이다.”
그는 일단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메인 로가(로얄가드)니까 괜찮다.
“아무리 MSC에서 탱커가 귀하고 목소리가 크다한들 아닌건 아닌거요.”
2세대 파워드 슈트를 착용함으로써 출현하는 로얄가드의 숫자는 다른 직업들에 비해 극히 적었다. 공급은 적은데 수요가 많듯이 그간 레지스트 쉴드 안에서 생산활동을 벌이던 대기업들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대신하려는 신생기업들의 MSC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시장의 요구와 달리 로얄가드의 출현 빈도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며 그 숫자가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치료와 버프를 담당하는 베다, 리그베다보다 더욱 적었다. 스나와 위자들만 넘쳐났다.
따라서 돈이 많은 대기업들은 해외의 로얄가드를 용병으로 영입해올 정도고, 돈이 적은 기업들은 아예 로얄가드 없이 사냥하고 있을 정도로 그 수가 무척 적었다.
-이 자식. 괜찮다니까 그런다. 그래도 만약에 뭐라 지껄이고 비꼬는 놈들이 있거들랑 내가 오범석이한테 가서 다 짤라버리라고 말하면 된다. 5000W가 뭐 어때서 그러냐. 누군 많고 누군 적을 수도 있는거지. 안그래? 마치 자지 길이처럼 말이다.
누군 자지가 말좆처럼 길고 누군 쥐좆처럼 짧을 수도 있는거 아니겠냐. 개인차가 있는걸 어쩌겠어.
오범석. 오성그룹 소속의 수라와 데바들을 관리하는 임원이다.
우주는 그녀의 어이없는 발언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말은 하지 마시오. 나 같아도 우리 MSC에 5000W짜리 딜러가 끼면 하기 싫겠소이다. 우리 일은 항상 사람 목숨이 달려 있는게 아니겠소. 이왕이면 데미지가 잘나오거나 힐량이 좋거나 탱을 잘보는 그런 사람들이 와야 오성그룹 직원들도 더욱 든든할거요.”
-자꾸 튕기지만 말고 한 번 와보라니깐. 매머드급이면 기업끼리 나누는 분배금도 클텐데 회사 살림에 보태야 할것 아니냐.
“돈 벌면야 좋긴 하지만, 여기저기 민폐끼치면서 다니고 싶진 않소. 그리고 요즘 보니까 신라 MSC하고 협동해서 잘 다니는 것 같더니만, 왜 갑자기 우리랑 하려는 거요?”
-신라 MSC야 뭐 국내 최고 팀이니까 같이 하면 우리도 편하고 좋긴 하다. 그런데 말이야. 걔들이랑 하면 우리가 남는게 없더군. 차영웅, 이태평, 오수연, 윤혜진 얘들이 워낙에 잘해서 말이지. 나중에 데미지미터기를 보고 분배금을 나눌라치면, 그놈들이 다 해쳐먹어 가지고 2:8, 3:7 이렇게 밖에 못번다니까. 딜(공격량)이 딸려서 운이 좋아야 4:6이다.
“아무리 그래도 코끼리급보다는 많이 벌잖소.”
-그런데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더군. 로가 입장에서. 또 오성그룹 임직원 대부분 그런 분위기이고. 그래서 너희랑 해보려고 하는거다. 또 아냐 은근히 손발이 척척 잘맞을지.
“그것도 그거지만 사실은 천하 MSC랑 하면 오성 MSC가 돈을 더 벌어갈 수 있으니까 그런건 아니오?”
-아하하하하! 그런것도 있다. 그리고 더가 뭐냐 거의 다 싹쓸어가는거지!
레이드로 잡은 사탄의 사체는 둘 중 한 기업이 싼 값에 사가던지, 시일을 기다려 제 3의 유통, 가공업체나 연구소 같은 곳에 판매하고 거둬들인 그 수익금을 가지고 각 MSC의 기여도에 따라 차등분배한다.
“그렇다면 파트너를 잘못고른게 아니오? 매머드급을 잡을때 둘이 합쳐 2가 필요하다면 우린 0.2, 그 상태로 오성 MSC와 합쳐봤자 1.2 수준밖에 안되니까.”
-0.2라니, 료코 씨한테도 우리가 보유한 하이테크 슈트를 지급해줄 작정이니 너무 낮게 잡지마라. 0.3이다.
현주는 말을 끝마치자마자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강하게 나왔다.
“우리 전력이 0.2든 0.3이든 간에 우린 못가니 다른데 알아보시오. 이만 끊겠소.”
-엇! 잠깐 미안! 미안하니까 끊지마! 미안하다고 인마!
참으로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에 그녀의 진심이 엿보여서, 우주는 큭큭 웃은 뒤에 얼른 부드럽게 다시 말했다.
“소생을 챙겨주려는 누님의 깊은 마음을 잘 아오. 그런데 나도 역시 누님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리 해서는 안될 것 같소이다. 좌우지간 누님. 지금 할 일이 많아서 이만 끊겠소이다. 추후에 긴히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으니 그때 다시 연락드리겠소. 즐거운 트라이(Try, 사탄을 잡는 행위) 하시오.”
-추후 할 얘기라니? 지금 말해! 지금......!
뚝.
우주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자꾸 거절만 하는 게 미안해서 이야기를 더 못 할것 같았다.
휴대폰을 책상 위에 도로 올려 두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 가보고야 싶지만... 이제 난 혼자가 아니다. 들뜬 기분으로 경거망동 하지말고 모두와 함께 철저하게 준비한 뒤에 세상으로 나가야 해.”
드르르르르.
책상 위에 놔둔 휴대폰에서 금세 문자 메세지가 왔다.
[감히 이 누님의 전화를 함부로 끊다니! 이놈! 다음에 만났을때는 침대 위에서 각오해야 될거야!^^m olo>]
우주는 문자를 보고 한 번 씨익 웃고는 그대로 휴대폰을 내려놓고 쭈욱 기지개를 켰다.
재개의 날개를 펴는 시점.
앞으로 무척 바쁠 것 같았다.
***
설레이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월요일에 갖기로한 미래전략경영실의 중요한 회의가 끝나고 그날 오후.
국군 MSC로부터 수요일날 레이드를 가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국군 MSC에서는 상관에 명령에 의해 우주를 억지로 끼워주는 입장이다보니 그게 불만스러운지 연락이 아닌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다.
우주도 물론 그들의 냉담한 시선을 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었다. 여태까지 자신은 5000W의 스나였고, 있으나 없으나 마나한 존재였으니까.
그럼에도 꼬박꼬박 열심히 참여했던 것은 레지스트 쉴드에서 토끼급, 호랑이급을 잡는 것보다 국군 MSC로 가서 한 단계 높은 코끼리급을 잡는 것이 돈이 더 되었기 때문이다. 국군 MSC에 한달 두 번 나가는 것이 천하물산의 한달 매출과 거의 엇비슷했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큰 돈이었다.
그리하여 기업의 오너로서, 자신의 회사를 더욱 크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한때의 비난과 조롱을 감수하고 그는 꼬박꼬박 나가야만 했다. 천하물산이 나중에 대기업이 되었을때,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고개를 조아릴 것을 그는 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었기에.
한편, 보통 격주로 한 번씩, 한 달에 두 번 레이드를 하는것이 정상인데, 이번 달은 어째서인지 레이드를 갔다온지 일주일 만에 바로 레이드를 간다니까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늘 그랬던것처럼 우주는 이번에도 역시 근면성실하게 레이드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힘을 빼고 4000W 수준으로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최대한 힘을 발휘할 생각이었다.
기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과 갑작스레 변하게될 기업의 대내외 이미지에 대해선 이미 월요일 기업오너와 중역들이 참가한 회의로 이것저것 부족하지 않게 대응 대책을 확실하게 수립했고, 이제 부터는 돈을 마치 낙엽을 긁어모으듯이 크게 버는 일만 남았으므로 우주 자신은 그야말로 하늘 높은줄 모르고 이히히히 하며 미친듯이 날뛰는 일만 남았다.
우주는 이번 국군 MSC의 레이드에서 있는 힘껏 공격해서 기여도에 따른 분배금을 최대한 독차지 할 생각이었다. 더구나 장비값도 안들고 팀원들 연봉도 안챙겨줘도 되는 국군 MSC야말로 우주에게 있어서는 달디단 꿀이었다.
맨몸으로와서 공짜로 돈만 벌고 가는데다 이것저것 자잘하게 신경쓸 필요없이 편안하게 공격만하다 집에 가는 꿀중의 꿀!
“이게 다 이세종 대통령님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이다. 조만간 찾아뵈야겠군.”
그런데 이게 왠일. 상황은 그의 의도와 다르게 예상밖으로 흘러갔다. 국군 MSC 소속 몇 사람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것 같았다.
국군 MSC의 애널라이저 신충일이 오늘도 출근한 우주를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며 다가왔다.
“아프신줄 알았는데 오늘은 괜찮으세요?”
“말짱하오. 오늘은 힘껏 공격할 수 있소이다.”
“아, 그래요. 힘껏 공격할 수 있구나... 그런데 어쩌죠?”
“왜 그러시오?”
“저희가 우주 씨 대타를 구했거든요. 오늘은 아파서 못오실 줄 알았습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미리 연락이라도 드리는 건데, 하하하. 이게 다 상황병들이 일을 게을리 해서 그래요.”
“그럴 수도 있으니 괜찮소. 대타분께 사정을 말하고 정중히 양해를 구해주시길 바라오. 전달에 실수가 있었고, 본래 하던 사람이 와서 같이 하기로 했다고.”
우주가 그렇게 말하자 신충일이 좀 당황하는 듯 했다.
“그게 아니구요. 우주 씨가 오늘만 쉬시면 안될까요? 이번에 오신 대타분이 딜이 좀 많이 잘나오시는 편이라.”
우주는 갑자기 이게 뭔말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대타는 대타고, 소생이 정식 멤버이니 소생이 참가해야 되지 않겠소?”
“그건 그런데, 우주 씨 아프잖아요.”
“다 나았다고 했소만.”
“그래도 혹시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주가 말을 잘랐다.
“확실히 나았소.”
“확실히 나았어도 이미 데려온 사람이니까 미안해서라도 한번만 참가시키죠.”
우주는 빤히 신충일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신충일은 무조건 거절할 생각인것 같았다.
“그 대타분께서 딜이 잘나온다길래 한번쯤 들어본적이 있나 물어봅시다. 성함이 어찌되오?”
“이만형입니다.”
“이만형이라...”
이름을 듣고 머릿속에서 곧바로 연관되는게 있었으니 국군 MSC의 탱커이자 로얄가드인 이만철이었다.
“혹시 그 대타분이... 로가님의 추천이 있었소?”
“예, 뭐. 그렇죠. 우주 씨께서 아프시다니까 저희는 빨리 대타를 구해야 했고, 데바가 가뜩이나 귀한데 때마침 로가님께서 추천해주시니까 감지덕지하며 받은거죠.”
MSC에서는 보통 로얄가드와 애널라이저의 목소리가 똑같았다. 그에 비해 스나, 위자, 베다, 리그베다는 발언력이 약했다.
“뭔 얘기인지 알겠소.”
우주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보며 단념했다. 애널라이저 신충일과 싸우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무엇보다 자신은 한 기업의 사장이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기업인 주제에 체통이랄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신분에 맞게 행동해야만 했고 그럴려면 조용히 물러나있어야 했다.
아쉽긴 했지만, 그냥 알았다고 하면서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이제 무언가 짐작이 갔다. 전 주에 사탄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그 다음주로 일정을 잡은건, 순전히 아팠던 자신을 열외시키고,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것 같았다.
“그 마음을 이해하긴 하지만, 막상 당해보니 싫어. 싫군.”
조금 먼 곳을 바라보니 로얄가드 이만철이 이만형의 어깨를 토닥이며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며 열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만철, 이만형이라... 마치 형제같아 보이는데.”
아마도 코끼리급 사탄을 순조롭게 잡기 위한 필수 공략을 설명하는 중인 것 같다.
“혹시 이번이 처음인가? 아무튼 좋다. 나보다 더 딜이 좋은지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하자꾸나.”
우주는 이제 제 삼자로써,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하다가 니들이 과연 대타를 끼고 잡으면 얼마나 잘잡겠냐 하는 분한 마음에 살짝 승질이 뻗쳐 계속 남아서 지켜보기로 했다.
부디 꼭 실패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 작품 후기 ============================
소설속에 나오는 국군은 픽션입니다!
실제 국군은 이렇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써주시는 우리 국군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