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24화 (224/285)

224화

-아니 바쁘지 않다. 한달 뒤에 부장급 진급 시험이 있어서 공부 좀 하다가 잠깐 짬내서 쉬는 중이었어.

“저번엔 매머드급 공략을 연구하더니 이번엔 또 진급 시험이오? 매일 바쁘게 지내는 것 같소.”

-그러게 말이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고 누가 그러더군. 좌우간 어쩐일이냐? 네가 먼저 전화를 다하고?

“그... 지난번에 우리 천하물산과의 협동레이드 말이오. 아직 유효하오?”

-당연하지!

현주의 대답은 매우 혼쾌했다.

이로써 오성그룹과의 협동레이드는 전화 한 통화로 단숨에 성사되었다. 오성그룹의 레이드 일정은 주로 현주가 짜는 편이었고, 회사 내에서 톱실력을 가진 사원답게 윗선을 향해서도 그녀의 입김이 강했다.

현주가 최약체나 다름없는 천하물산과 협동레이드를 하겠다고 선언하자, 그룹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하지만 그들은 금세 그런 생각을 지웠다. 수지타산을 잘따져보면 남는 장사 같았다.

천하물산은 강미라라는 로얄가드를 하나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딜량도 무척 낮기에 어쩌면 큰 이익을 바랄 수 있었다.

다른 직업보다 희귀한 로얄가드가 둘(임현주, 강미라)이라는 이점으로 안정된 사냥이 가능함과 동시에 천하물산은 딜량이 무척 낮기 때문에 자신들이 큰 이득을 볼 것이란 생각.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점은 자신들이 직접 레이드를 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서류에 사인만 하면 끝이다.

모험은 오성 MSC 소속 팀원들이 하니까.

이후 양기업의 실무진들이 모여 레이드에 참가하는 인원과 배분 문제 등 전반적인 사항들을 하루만에 협의한 뒤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하여 매머드급을 잡는 본 레이드는 2주일 후에 하기로 했고, 우선 예비(豫備, 준비 단계) 레이드라고 해서 매머드급 공략에 앞서 미리 손발을 맞춰보자는 의미로 코끼리급 사탄을 먼저 잡기로 하였다.

“천하물산 사장 신우주요.”

“MPO 한국지부 대표 고준표라고 합니다.”

우주가 예비 레이드를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MPO 코리아 대표가 직접 직원 여러명을 대동하고 회사로 찾아왔다.

우주가 지난번 MPO 코리아와의 통화를 거절하며 이야기 하고 싶거든 회사로 찾아오라고 했던 것도 있고, 우주의 신분이 기업 사장이기에 격에 맞게 대표가 직접 나선 것 같았다.

우주는 사장실에서 대표만 따로 만났다.

젊은 여비서가 들어와 탁자에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나갔다.

MPO 코리아 대표 고준표는 가져온 갈색 봉투에서 A4 용지 만한 크기의 종이를 한 장 꺼내서 탁자에 살며시 올려 놓았다.

“이게 뭐요?”

“사장님께서 지난번 국군MSC 레이드에 참가하셨을때의 딜량입니다.”

우주는 종이를 집어들고 대충 훑어보았다.

1위 신우주.

자신의 딜량이 1위라는 것에 내심 흡족했으나 티는 안냈다.

종이를 도로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고준표에게 시선을 줬다.

“갑자기 치솟은 아트만 에너지 때문에 찾아온거요?”

“그렇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어찌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우주는 꺼릴게 없어 사실대로 이야기 했다. 레지스트 쉴드로 사냥을 갔을때 천하 MSC 팀원 한 명(이진혁)이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고, 그를 구하려다가 갑자기 아트만 에너지가 치솟았다. 그 이유는 본인도 정확히 모른다. 이게 다였다.

고준표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턱을 어루만졌다.

“음... 신기한 일이로군요. 아트만 에너지의 위력이 변하는 사례는 MPO 국제본부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아마 전세계 최초일 것 같습니다.”

듣고 있던 우주는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사장님의 기본 아트만 에너지가 2백만이 나오셨는데, 전세계 데바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세계 최고라는거죠.”

“소생 다음으로 두 번째인 사람은 얼마나 나오는거요?”

“그 사람은 미국 사람인데, 사장님의 절반인 100만 와트 입니다.”

“그 자도 굉장하군.”

“예, 직업이 로얄가드입니다. 이름은 빌 바티스타 라고 하지요.”

“아, 빌 바티스타라면 소생도 몇 번 TV에서 본적이 있소.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지 않소이까.”

“맞습니다. 나중에 직접 한 번 만나보시죠. 우람한 근육질을 하고 있어서 거칠고 무뚝뚝 할것 같지만 아니더군요. 전에 한 번 연말 MPO 파티에 초대돼서 우연찮게 만나봤는데 야한농담도 스스럼없이 하는 무척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야.”

“기회가 되실겁니다.”

“마치 확신하듯이 말하는 구려.”

“예, 그렇잖아도 말씀드릴게 하나 있습니다.”

고준표는 가져온 007 가방에서 두툼한 책자를 꺼냈다. 책이름은 '월드 디펜더스 가이드 북' 이었다.

“MPO 국제본부에서는 세계 상위 데바 25명에 한해서 월드 디펜더스, 줄여서 WD(World Defenders)라는 칭호를 부여합니다.”

“월드 디펜더스? 이 유치한 칭호는 뭐요? 혹시 어벤져스 흉내낸거요?”

“그런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이건 순전히 MPO 국제본부에서 독창적으로 창조한 칭호입니다. 월드 디펜더스라는 호칭이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듣다보면 익숙해질테니 꼭 안심해주십시오.”

“뭐 그건 됐고, 그래서 소생보고 가입하라는 거요?”

“그렇다는 말이지요. WD에 선정된 데바는 전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멘사(Mensa)의 회원제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가입비나 연회비도 없고, 혜택이 아닌 특혜라고 불릴 정도로 특별한 권한과 자격을 부여받게됩니다. 그리고 이는 전세계 어느 국가를 가든 무조건 누릴 수 있습니다.

“빌 바티스타도 여기 가입되어 있고?”

“네.”

“그래서 조금 전에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하셨군.”

“물론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사장님께서 협조를 구하는 바입니다. 저희는 사장님의 아트만 에너지량을 조만간 MPO 국제본부에 신고할 예정인데, 그러기 전에 아트만 에너지의 정확한 재측정을 위해서 MPO 코리아 본사에 방문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희가 MPO 국제본부에 신고해야 정식절차에 의해서 사장님이 WD 회원으로 자동 승급되지요.”

우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MPO 국제본부가 부르면 WD에 속한 사람들이 뭉쳐서 국제 레이드를 뛰어야 하는거요?”

고준표가 손사래를 쳤다.

“그건 아닙니다. WD 제도가 창설된지는 이제 막 한달 지났습니다.

게다가 그 수준에 맞는 데바는 전세계적으로 사장님을 포함해서 딱 5명 뿐입니다. 나중에 상황이 바껴서 레이드에 동원될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은 무척 어렵다고 봅니다.

매우 엄격한 기준에 의해서 선발되는데 남은 20명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적어도 10년은 걸린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우선 가입하셔서 편하게 있으시면서 다양한 혜택을 받아가시는것도 좋다고 봅니다. 기껏해야 MPO 홍보대사라든지, 각국 수장들과의 만남, WD회원들과의 정기적인 교류, 그것뿐입니다.

“괜찮군.”

“그렇죠?”

고준표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올해 52살인 그는 한국의 데바들을 관리하는 MPO 코리아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우주앞에서 한껏 낮은 자세를 보였다. 우주의 옛 경력을 자세히 아는 것도 있고, 코앞에서 마주대하니 마치 조각상을 깎아놓은듯 포스가 남다른것도 있었다.

더불어 그의 2백만이라는 아트만 에너지의 수치는 각국 MPO 대표들 앞에서 자신을 떵떵거리게 만들정도로 꽤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 정말로 대견한 인물이 한국에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준표는 밝은 얼굴로 사장실을 떠났다. 우주는 내일 당장 MPO 코리아를 찾아가 아트만 에너지 측정을 받기로 그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날.

우주의 에너지는 변함없이 2백만이 나왔고, 그는 MPO 국제본부에서 관리하는 WD 회원에 무난히 가입될 수 있었다.

***

우주의 아트만 에너지가 2백만이라는 사실이 MPO 국제본부에 의해 그날 오후 3시에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는 날이었다.

참고로 MPO 코리아는 MPO 국제본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까진 그 어느 하나 언론에 떠벌릴 수가 없었다. 그것은 국군 MSC도 마찬가지였다. 군의 철저한 통제에 의해 우주의 2백만 와트 에너지 소문은 밖으로 새어나갈수가 없었다. 이것은 누구의 명령이라기보다는 원체 군이 폐쇄적인 집단이라서 그렇다.

좌우간 당일은 천하물산과 오성그룹의 협동레이드가 있는 날이었고, 새벽 일찍 출근하느라 누구나 바쁜 와중에 아무도 그런 사실을 접하지 못하던 그런때였다.

“뭐야, 천하물산이었어?”

장비를 가득 실은 천하물산 차량들이 하나둘씩 레이드 현장에 줄지어 도착하자 오성 MSC 팀원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생각하는 천하물산의 이미지는 과연 어떠할까?

싼티났다. 짝퉁이나 만들것 같은 그런 기업이었다.

현주앞에서 그나마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팀원이가서 따지듯이 말했다. 그는 오성그룹을 다닌 경력이 꽤 되었다.

현주는 료코에게 빌려줄 하이테크 슈트를 관리자에게 내달라고 하던차였다.

“서프라이즈라고, 이번주는 꼭 기대해달라고 하시더니만 겨우 쟤들이었습니까?”

“천하물산이 뭐 어때서 그러나. 한때는 유명했던 신우주도 있다.”

현주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리란걸 미리 짐작하고 협동레이드 당일까지 팀원들에게 그간 아무소리도 안하고 있었다.

심지어 언론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보통 기업과 기업간의 협동레이드에 대한 계약이 성사되면 홍보를 위해서라도 언론에 알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생각해보십시오. 쟤들 수준을 잘 알지 아시지 않습니까. 코끼리급도 제대로 못잡게 생겼다구요.”

“그건 해봐야 안다.”

“해보나마나 입니다. 코끼리급 레이드에 실패해서 다른 기업의 비웃음을 살지도 모를일입니다.”

“내가 보장하지. 결코 그럴 일은 없다.”

“어떻게 보장하십니까. 설마, 5000 와트 밖에 안되는 신우주를 데리고 우리 보고 쩔(온라인 게임에서 고렙이 저렙을 키워준다는 뜻.)이라도 해주라는 겁니까? 천하물산이 돈 좀 벌어가게 할 생각으로요?”

“쩔을 해주라는게 아니다. 저들도 제 몫을 하려 최대한 노력할거야. 일단 예비 레이드를 해보고 난뒤 못봐줄 정도로 수준 이하라면 내가 앞장 서서 협동레이드 계약을 파기하겠다.”

우주는 친한 친구나 마찬가지인 현주를 놀래켜줄 작정으로 그때까지 아무소리도 안하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현주의 완고한 고집은 오로지 그녀가 가진 우주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거라 할 수 있었다. 지난날 자신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준 우주였다. 한 번은 레지스트 쉴드 안에서, 또 한 번은 드롭존에서.

그녀는 팀원들의 모든 비난을 감수할 생각이었고, 우주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일단 시도라도 해볼 생각으로 전력을 다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탱커인 자신이 사탄을 꽉 붙들어매서 딜이 낮든 말든 간에 하루가 걸리든 이틀이 걸리든 어쨌든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무조건 잡을 수 있다는 자긍심. 그런 각오로 회사 임원진들까지 설득했었다. 그런데 팀원의 불만 하나 감당하지 못하랴.

“팀장인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다.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게 아니야. 가능하니까 하는거다.”

“저야 물론 여지껏 팀장님을 믿어왔습니다만, 이번 만큼은 팀장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인맥에 의한 폐해로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팀장님께서 제네틱스에 재직하시던 시절, 신우주와 친분을 쌓으셨다고 들었거든요.”

오성 MSC의 베다 한웅철. 그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자리를 떠났다. 그러고는 친한 무리들에게 다가가 현주의 독단적인 행동과 천하물산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흉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들이 현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이것 참... 무작정 데려오면 어쩔 수 없이 알았다하며 넘어가줄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무식하고 무대포 같았나.”

힐러인 베다가 파업을 할것같은 행동을 보이자 현주는 난관에 봉착했다. 코끼리급 사탄부터는 힐러가 필수였고, 오성 MSC가 가진 힐러 세 명중에 한 명이라도 없어진다면 레이드 단계가 더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코끼리급이 마치 매머드급이 될 정도로 힘들어진다.

“그래, 알았어.”

한웅철은 자신과 친목을 다지는 무리들과 대화를 끝마치고 다시금 현주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통보하다시피 말했다.

“전 이번 레이드에 참가 못하겠습니다. 저 말고도 준영이, 현미, 일식이도 마찬가지구요. 저희는 괜한 인맥관리에 희생되고 싶지 않고,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 작품 후기 ============================

빌 바티스타는 데이브 바티스타 + 빌 골드버그에서..

레지스트 쉴드 전자책 6권, 7권이 출간되었습니다. 만약 전자책 서점에 없다면 각 사이트마다 업데이트가 늦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리디북스가 가장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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