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레이드에서 빠지겠다는 직업이 힐러인 베다 1명과 딜러인 스나 2명에 위자 1명이었다.
총 네 명의 이탈자.
“정 못하겠다면 할 수 없지. 알겠다. 하지만 너희 넷 모두 레이드에 참가하는 다른 팀원들과 똑같은 대우는 해줄 수 없다. 여러가지 회사 규정을 들먹일 수 있겠지만 더도 말고 레이드 무단 이탈로만 끝내줄테니 바로 퇴근 하지말고 후방에서 지원팀과 함께 대기하고 있도록 해.”
현주는 굳이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한웅철이 불만을 토로하기 이전에 그는 회사와 계약한 처지였고, 팀장의 권한을 내세워 강제로 참가시킬 수도 있었지만 현주는 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대로 자신의 욕심 때문에 우주를 데려온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녀도 자각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한웅철은 입밖으로 꺼낸 감사하다는 말과는 달리, 레이드 무단이탈이라는 그녀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팍 쓰면서 떠나갔다.
“어쨌든 인원이 빵꾸났으니 2군에다가 넷만 보내달라고 요청해야겠군.”
오성그룹에는 총 세 개의 MSC가 있다. 하나는 1군인 오성 MSC, 또 하나는 2군인 오성 21 Stars, 마지막으로 유소년팀인 오성 퓨처 그레이트(Future Great)였다.
이중 2군 오성 21 스타즈는 주전급 실력이 못되거나 1군에서 부상을 당해 잠시 2군으로 내려온 직원 등 즉시 전력에서 제외된 21명의 직원들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주로 레지스트 쉴드 안으로 들어가 토끼급, 호랑이급을 사냥하는 간단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2군에는 1군 팀장인 현주가 호출한다면 한걸음에 달려올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그녀에게 눈도장을 받아서 승급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혼란스러워 하는 팀원들 부터 진정시키는게 급선무였다.
“모두 불안해 할필요는 없다. 부족한 인원은 2군을 불러다 채울테니 안심해. 고작 코끼리급이다. 데바가 몇명 줄어도 수라만으로 상대할 수 있어.”
“하지만 그래도...”
“목숨이 달린 일이라.”
“참고 하고 싶어도 우리 MSC에서 가장 딜을 잘하는 일식이까지 나가 버려서 불안합니다. 하루 종일 잡아야 할지도 몰라요...”
저마다 땅이 꺼져라 한숨만 푹 내쉬었다. 그래도 그나마 나았던 것은 남은 팀원들은 회사의 징계와 승진누락을 두려워하며 앞서 이탈한 사람들처럼 자신있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불어 현주를 지지하는 몇몇 팀원들이 한 번 해봐도 괜찮을것 같다며 그들 속에 섞여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기도 하였다.
“봐. 저쪽에는 강미라라는 로얄가드도 있어. 로가가 흔한 것도 아니고 로가 두 명이면 딜이 아무리 후져도 사상자는 절대 안나올걸? 내가 장담하니까 두고봐라.”
“아이구들, 걱정마러. 우린 수라 데바할것 없이 전원 하이테크 슈트를 입고 있잖여? 구세대 파워드 슈트를 입고 싸울때나 코끼리급이 두려웠지 요즘 코끼리급이 코끼리급인가 뭐. 일식이 없어도 내 딜로 다 씹어먹어줄텡게 염려놓으란 말여.”
“그래. 이 친구들 말이 명답이고 사실이다. 그러니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알겠나?”
현주는 자신의 결정을 지지해주는 팀원들 덕분에 일단 한숨 돌리며 2군 팀장에게 전화를 넣으려고 했다.
“어째 고심이 많아보이오.”
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한 우주가 웃는 얼굴로 곁에 다가와 있었다.
현주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그를 반갑게 껴안아주었다.
“작은 문제가 생겨서 말야. 오랜만이다.”
“그런데 못본 사이에 피부가 많이 하애진걸 보니 나 몰래 피부샵 좀 다녔나 보오. 현장에 오자마자 여기에 왠 김태희가 서 있길래 깜짝 놀랐지 뭐요.”
“김태희는 무슨. 잠을 많이 못자서 창백해져서 그렇다 이녀석.”
우주가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게 물었다.
“팀원들이 뭐라 불평은 없었소?”
“없었다.”
현주는 이어 덧붙였다.
“다른 문제가 생겨서 우선 해결해야될게 있다. 잠시만 저쪽가서 기다려라. 통화 끝내고 바로 갈테니.”
“거짓말 마시오. 내 누님을 한두해 알고지냈소? 얼굴 보면 뭘 숨기고 있는지 다 티가 나외다.”
현주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은 말야. 우리측에서 레이드 이탈자가 생겼다. 그래서 부족한 인원을 메꿔야 해. 연락만 하면 바로 올테니까 레이드 시간을 조금 늦추자.”
“몇명이나 이탈했소?”
“네 명.”
“빠진 사람들 직업은 뭐요.”
“딜러 셋이랑 힐러 하나다.”
“음...”
우주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내 멀리있던 천하 MSC의 애널라이저 김토성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어이! 김 부장! 이리와보시오!”
“예! 사장님!”
김토성은 한달음에 달려왔다.
“무슨일이십니까?”
“오성쪽에서 딜러 셋과 힐러 하나가 빠졌다 그러오. 김 부장이 볼때 21명으로 코끼리급 사냥이 가능하겠소? 참고로 남은 힐러는 두 명이라 하오.”
이번 레이드에 참가하기로 한 오성 MSC 인원은 15명, 천하 MSC는 10명이 참가하기로 양측이 계약되어 있었다. 그리고 천하물산에는 보유중인 힐러가 없기에 오성 MSC쪽에서 힐러 세 명을 동원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가능하다 마다요. 몇명 빠진다고 해서 뭐 문제가 있겠습니까?”
애널라이저 김토성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별문제될게 없다는 투다.
현주가 눈을 조금 크게 뜨며 물었다.
“두 명의 탱커를 제외하고, 딜러 17명과 힐러 두 명으로 무난히 잡힌단 말입니까?”
“예. 당연하다마다요.”
김토성은 데미지미터기를 꺼내서 시뮬레이터 프로그램을 켰다. 그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듯이 말했다.
“공식적으로 코끼리급 사탄의 체력은 5억 스태미나라 산정하고 있고... 에... 딜러 17명이 뭡니까 10명이면 충분하고, 또 힐러 두 명도 필요없습니다. 정신바짝 차린 애로 한 명이면 족합니다. 그리고 이런 인원수로 잡아도 15분이면 잡히니까 별로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어, 어째서 그런 계산이 나오지? 코끼리급을 잡으려면 힐러가 최소한 두 명인게 정설 아닙니까?”
김토성은 귀밑을 살살 긁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건 평범한 기업들이나 그렇구요. 우리 천하MSC는 급이 달라서 말이죠. 전원 하이테크 슈트만 걸치고 있다면 12명으로도 잡습니다. 수라 데바 반반씩 섞어서요.”
“뭣이? 어째서?”
현주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우주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누님 화내지 마시오.”
“뭘?”
“이거.”
우주는 슬쩍 WD 자격증을 꺼내서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현주는 그것을 받아들더니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그게 뭔줄 아시오?”
“이, 이건... 기본 아트만 에너지가 최소 30만이 되어야만 가입할 수 있다는 월드 디펜더스 프리미엄 회원 카드가 아니냐?”
“맞소.”
“이걸 네가 왜 가지고 있어?”
“내가 거기 회원이오. 물론 딜러로.”
“뭐어?”
드디어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평소에 하이테크 슈트를 극구 거부하던 료코도 마침내 오성 MSC가 대여해준 하이테크 슈트를 입고 딜러로서 참가했다.
그녀는 사실 우주에게는 그동안 몸매가 드러난다며 입기를 꺼려하는것처럼 말해왔었지만서도 실은 천하 MSC에 단 두 벌뿐인 하이테크 슈트를 우주가 입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입기를 피해왔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우주가 하이테크 슈트를 현주로부터 받아왔을때, 다행히도 그녀는 두 말 않고 입어주었다.
“지금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도망갈 준비를 하는게 좋아. 분명히 실패할거라구.”
레이드를 포기한 채 후방에서 대기하던 한웅철이 동료들에게 중얼거렸다.
저 멀리 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한 현주가 우두커니 잠자고 있던 사탄에게로 달려드는 광경이 그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난장판이 될 것 같으면 바로 차 있는 곳으로 뛰는거야. 알았지 다들?”
“응, 알았어.”
“잡을 가망성도 없어 보이는데 왜 하는걸까. 대체 이해가 안가.”
“튈땐 튀더라도 조금은 도와주는 척이라도 해야되지 않을까? 나중에 변명꺼리라도 만들어놔야할거아냐.”
함께 먼 곳을 지켜보던 세 사람이 저마다 한 마디씩 툭툭 내뱉었다. 한웅철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말했다.
“1페이즈는 뭐 어떻게든 넘어가겠지. 문제는 2페이즈부터야. 그때부터 긴장하도록 해. 여차하면 뒤도보지말고 뛰는거야.”
“물론.”
“당연하지.”
“아무리 그래도 조금은 도와주는척...”
네 사람의 주변에는 오성 MSC의 애널라이저 한채영도 함께였다.
20대인 그녀는 손안에 쥔 데미지미터기를 내려다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딜러가 17명 밖에 안되는데 데미지가 왜 이렇게 좋지?”
그 옆에 같이 있던 김토성이 실실 거렸다. 그녀는 자신보다 후배였다.
“전체 딜량만 보지 마시고 화면넘겨서 개인 딜량을 일일이 확인해 보십시오.”
“예? 아, 알겠습니다.”
한채영은 화면을 전환해서 개인딜량을 눈여겨보였다.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딜을 할 수가 있죠!?”
채영이 놀란 마음에 크게 소리치자 주변에 있던 한웅철과 그 무리들은 뭔일인가 하며 일제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 소리쳤다.
“헐! 벌써 2페이즈야! 레이드 시작한지 3분만에 2페이즈라니! 말도 안돼!”
누군가의 환호성에 이끌려, 한웅철은 다시 레이드 현장을 쳐다보면서 기가 막혔다. 누군가 소리쳤던대로 사탄은 시작한지 3분도 안돼서 2페이즈에 돌입하고 있었다.
“저, 저게 말이돼?”
“사탄은 1페이즈에서 아무것도 못했어! 잠깐 때렸더니 바로 2페이즈로 넘어가는거봐! 대체 뭐야!?”
후방에서 대기하던 지원팀들은 저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들의 놀라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직접 보고도 차마 믿지못할 광경이 연달아 벌어졌다.
“2페이즈 돌입한지 겨우 5분 지났을 뿐인데 벌써 3페이즈!?”
평소대로라면 2페이즈에서 3페이즈로 가는데만 최소 20분이 걸렸다.
그런데 5분만에 3페이즈라니?
한웅철은 데미지미터기를 들고 있던 한채영에게로 냅다 뛰어갔다.
“조, 좀 봅시다. 딜이 왜 이렇게 잘나오는거죠?”
“그게...!”
채영이 눈을 크게 뜨고 소리치며 말했다.
“천하 MSC의 신우주 사장님께서 완전 미친듯이 딜을 하고 있어요! 이건 마치 인류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시대로 바뀔때처럼 일종의 대혁명이야!”
*데미지미터기 딜러 순위* (단위: St 또는 Stamina, 1스태미나당 돌연변이 생물이 가진 체력을 1소모시킨것과 동일.)1위 : 신우주(천하MSC), 289,546,164 St.
2위 : 쿠로가네 료코(천하MSC), 31,287,789 St.
3위 : 김춘삼(오성MSC), 4,131,389 St.
....
..
.
“그럴리가 없어! 신우주는 분명 5000와트였잖습니까!?”
한웅철은 데미지미터기에 나온 딜량을 보고도 전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에 듣고있던 김토성이 몸을 움직여 한채영의 데미지미터기에 나온 신우주의 와트량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요기, 5000와트가 아니라 2백만 와트라고 써져있습니다만. 그리고 우리 사장님께서는 이제 하룻강아지가 아니라 범이라는 것만 명심해주십시오.”
데미지 미터기에 나온 수치야 한웅철도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긍하기가 싫었다. 머리를 쥐어싸매고 바닥을 쳐다보며 한탄했다.
“제기랄! 무단이탈을 해버린 이상 전년도에 이어 올해 최우수 장기 개근 사원상은 받기 글러버렸어......!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하는건데! 내가 왜!”
이후 3페이즈까지 갔던 사탄은 채 5분도 안되서 순식간에 쓰러졌다.
레이드에 참가했던 오성 MSC 팀원들을 비롯해 천하 MSC 팀원들마저 어리둥절한 가운데, 우주는 탱커였던 현주에게다가가 훈훈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우리 회사에 불만을 품고 레이드에 빠졌던 그들에게 굳이 뭐라 하지 마시오. 나 같아도 그런 행동을 했을것 같고,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솔직했던것 뿐이외다.”
가진자의 여유랄까.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헤아려주는 우주의 말투에는 자비로움이 넘쳐났다.
그에 반해 직접 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이 너무 빨리 잡혀서 크게 놀라고 있던 현주는 간신히 제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리고 그렇게 깐깐한 사람들이 나중에 아군으로 돌아서면 남들보다 목소리도 크고 내게 큰 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루일과가 끝이나고, 저녁에 천하MSC와 오성MSC는 뒷풀이 자리를 가지며 친목을 도모했다.
그리고 그날밤 우주는 현주의 집에 가서 달콤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