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27화 (227/285)

227화

***

우주는 건물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경호원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제일 먼저 3층의 전략물자관리부에 들렸다.

그는 돈을 열심히 벌어서 조만간 천하 MSC 전원에게 하이테크 슈트를 입히겠다는 의욕이 있었고, 나중에 구매하기에 앞서 전략물자관리부장에게 파워드 슈트를 생산하는 각 제조사의 구매단가등을 비교한 견적서 비교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었다.

사무실 안은 온통 전화벨 소리로 넘쳐났다. 직원들은 업무와 상관없이 지인이나 거래처, 기자 등 이곳저곳에서 걸려온 전화를 상대하느라 혼쭐이 나고 있었다.

우주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전화를 받던 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장님!”

“다들 고생많으시오.”

우주는 부장의 책상쪽으로 걸어가며 덩달아 일어났던 직원들에게 앉아서 일보라고 손짓 했다.

“전화로 난리도 아니구만.”

“조금 전에 사장님께서 인터뷰한게 생방송으로 나간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묻거나 확인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입니다.”

“급한 일이 없거들랑 오늘 하루 전화선을 뽑아놓고 있으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틀 전에 부탁했던 건 다 끝났소?”

“아, 예. 여기 있습니다. 분부하신대로 완벽하게 비교를 끝냈습니다.”

“수고했소.”

우주는 부장이 건네준 서류철을 받고 그 자리에서 펼쳐보았다.

“음. 어디보자 하이테크 슈트 23벌이... 신라가 1200억, 오성이 1115억, 디시스(D-SIS)가 980억, 나인티나인(9T9)이 1005억, 펜다(PENDA)가 1100억이라... 일단 디시스가 제일 싸구려.”

“거기 밑부분을 보시면 각 제조사별 특징과 장단점을 첨언해놓긴 했습니다만, 디시스사의 하이테크 슈트는 가격이 싼 대신 성능이 좀 별로입니다. 아트만 에너지의 손실률이 높아서, 만약 데바의 아트만 에너지가 100만이라면 데미지 미터기에는 90만으로 체크될겁니다.”

“음. 그렇단 말이지. 알겠소. 내 방에 가서 천천히 훑어보리다.”

“아, 사장님. 구매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수의계약 형식으로 하시겠습니까?”

“그건 좀 생각해볼 일이오. 그런데 혹시... 누가 뭐라도 물어본게요?”

“그게 저...”

부장이 귓속말을 했다.

“실은 사장님께서 하이테크 슈트를 구매하겠다는 인터뷰가 방송으로 나간 뒤, 9T9에서 제일 먼저 연락이 왔었습니다. 섭섭치 않도록 여러 옵션을 잘 챙겨주겠다면서요. 당장 오늘 저녁이라도 좋으니 요정집에서 술 한잔 하는게 어떠냐면서 제게 권유했었습니다.”

우주는 피식 웃었다.

“어찌하기로 했소.”

“저야 아직 결정된 바가 없으니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통화를 끝냈습니다.”

우주는 웃으며 부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잘했소. 이 일에 관해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의논하기로 합시다.”

그렇게 말하고 등을 돌려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사무실안에 못보던 얼굴이 있었다. 거래처 직원들이 앉는 소파에 한 남성이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기 저 친구는 누구요?”

“아, 저 사람은 방위산업체 직원인데, 이번에 리영애 씨가 그만두고 새로 부임했다고 합니다.”

우주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영애가 전화 한 통화 없이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고?

애써 덤덤한 얼굴로 부장에게 말했다.

“알겠소. 그럼 일보시오. 난 잠시 저 친구 좀 만나고 가리다.”

“네. 조심히 올라가십시오.”

우주는 거래처 직원에게 다가갔다. 자사 직원과 대화를 나누던 그는 가까이 오는 우주를 보자마자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축하드립니다.”

“고맙소. 그런데 리영애 대리가 그만뒀다는게 사실이오?”

“예, 지난주에 갑자기 그만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유가 뭐라하오?”

“글쎄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동안 회사를 잘다니던 영애 씨가 난데없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바람에 저희도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흠... 잘 알았소. 그럼 고생들 하시오. 난 이만 가보리다.”

“안녕히 가십시오!”

우주는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곧바로 영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주는 미간을 좁혔다.

“대체 어찌된 일이지.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지고.”

이럴게 아니라 저녁에 퇴근하거든 영애의 집에 가보기로 했다.

우주는 한번도 찾아가본적이 없지만, 그녀의 집주소는 여전히 수첩속에 갖고 있었다. 일전에 영애가 말하길, 집에서 부인에게 쫓겨나거나 갑자기 외로움을 느끼고 쓸쓸해질때 언제든 찾아오라고 알려준 그녀의 집.

다음으로 들린 곳은 인재개발부였다.

회사의 확장을 위해 천하물산은 곧 신입 및 경력사원 채용 공고를 낼 예정이었다.

그로인해 부서 직원들은 바빠보였다. 덩달아 기자들의 전화까지 불어닥치니 조금이라도 건드렸다간 짜증을 낼 정도로 여유가 없어보였다. 더불어 부사장실에 앉아 있던 소민도 정신이 없어보였다.

“방해하지 않는 편이 좋겠군.”

그 다음으로 들린곳은 MSC 포럼실(Forum)이었다. 이곳에서는 천하 MSC 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돌연변이 생물에 관한 VTR을 시청하거나 레이드할 대상에 관해서 연구하고 토론하는 장소였다.

문에 달린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 오성그룹과의 협동레이드로 인해 매머드급 공략 연구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오성MSC에서 파견나온 전문가가 앞에 나와서 강연중이었다.

우주는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늦지않게 도착해서 다행이야.”

사장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었다. 팀원들 보다 더 잘하면 잘했지 결코 못해서는 아니되었다.

그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윽고 해가 지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우주는 차를 끌고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그곳에 영애가 사는 집이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문을 열고 나오기 전 그는 선글라스를 꼈다.

수첩에 적힌대로 아파트 동을 찾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서 내렸다. 그리고 복도를 걸어 1004호 문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인터폰에서는 기대와 달리 아줌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주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물었다.

“여기에 리영애 라고 하는 낭자가 살고 있지 않소?”

-리영애? 없는데요. 여기 안삽니다.

“그럼 언제쯤 이사갔는줄 아시오?

-지난주 토요일에요. 실례지만 그분과 어떻게 되시는데요?

“소생은 영애 낭자와, 아니오. 알겠소이다. 그럼 수고하시오.”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생사고락했던 벗을 잃었다는 아쉬움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어째서 이리 말도 없이 무심히도 떠나버렸을까. 그러고 보면 난 항상 영애 낭자의 고백을 거절했었지. 어쩌면 그녀의 자존심이 한계에 다다랐던 것은 아닐까? 그런거라면 하는 수 없지. 그녀를 이해해줄 수 밖에. 미안했소 영애 낭자. 다른 곳에 가서는 부디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살길 바라오. 그리고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동안 무능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부인만 늘릴 수 없었기에 차마 그대의 진심을 받아줄 수가 없었소. 이제부터라면 달라졌겠지만...”

***

며칠이 지나 매머드급 레이드날이 밝았다.

레이드 준비로 분주한 현장에서는 다양한 언론사에서 파견나온 취재진들이 목숨을 걸고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국내 취재진 뿐만이 아니었다. MPO 국제본부에서 보낸 수십명의 전문가 및 해외 취재진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우주를 한결같이 지켜보고 있었다.

“나... 떨고 있니...?”

오성 MSC 다음으로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천하 MSC 팀원들은 전세계의 관심이 부담이 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고, 한걸음을 걷더라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부자연스럽고 쭈뼛거렸다.

오성 MSC 팀원들이야 언론의 취재 열기가 늘 익숙해서 그나마 나은 자세를 보였다고는 하나 천하 MSC 팀원들은 그렇지 못했다. 대부분이 레이드 경험이 부족한 까닭도 있었고, 남들의 이목을 끄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매의 눈으로 팀원들의 모습을 캐치한 우주가 얼른 그들을 한데 모았다.

“언론 따위는 의식하지 마시오. 그냥 똥이라고 생각하시오. 똥! 어쩔땐 날 들뜨고 기쁘게 해주다가도 한 번의 실수로인해 남들이 날 욕할때 제일 먼저 나서서 헐뜯고 선동하는게 언론이외다! 아시겠소들? 자, 날 따라 외쳐보시오. 이 빌어먹을 언론놈들!”

“이 빌어먹을 언론놈들!”

미라가 옆에서 거들어주었다. 그녀는 후후 하는 미소를 지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 사장님의 말씀을 다들 명심하세요. 언론은 똥입니다. 전혀 의식할 필요없어요. 우리가 의식해야될 것은 매머드급을 잡고 나올 인센티브와 보너스입니다. 아셨나요?”

“오! 인센티브와 보너스!”

“돈이 최고!”

“아자! 아자! 아자!”

천하 MSC 대부분이 젊어서 그런지 적당히 욕설을 섞어 혈기가 끓어오르는 말 한마디에 초상집 같던 분위기가 금세 반전되었다. 얼굴에 웃음기가 멤돌며 서로들 활기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고맙소, 낭자.”

우주는 남들 모르게 미라의 엉덩이를 한번 주물럭 거렸다. 갑작스러웠지만, 그간 그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다. 미라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킨쉽 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미라는 그의 손길을 느끼면서 가슴과 밑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우주를 볼때마다 언제 어디서나 성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고맙긴요. 이번 기회로 우리 회사가 더 잘되는거죠? 그래서 자기가 웃을 수만 있다면 전 아무래도 좋아요. 나중에 돈을 많이 벌거든 서울 한복판에 에덴동산 하나만 세워주세요. 그 에덴동산이라는 놀이동산의 테마는 신우주와 강미라 관련된 것 밖에 없어요. 주제는 섹스, 사랑, 판타지, 욕망, 금기, 쾌락. 그리고 이렇게 자유분방한 생각을 가진 우리와 닮은 사람들을 초대하는거예요.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은 꼭 가면을 써야 하죠. 어때요?”

“좋소. 내 꼭 이루게 해주리다.”

우주는 엄지를 추켜세우고 환하게 웃어보이며 이내 다른곳으로 이동했다.

료코는 MPO 국제본부에서 나온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지난번 코끼리급 사탄을 사냥할때 아트만 에너지의 수치가 40만이 나왔다. 이는 하이테크 슈트를 입은 데바의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WD 회원에 가입해도 충분했다.

“저 사람들이 뭐라 그래?”

우주가 나타날때까지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녀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어보였다.

“통역에 의하면 40만이 확실하다고 하옵니다.”

“잘됐다. 40만이라니 나도 놀랐어.”

“다 서방님 덕분이지요. 강미라 같은 계집을 제쳐두고 소녀만 매일 사랑해주시는 덕분이옵니다.”

우주는 그저 웃어보였다. 그녀도 참 불쌍한 것이 우주가 2백만이 나왔다는 소식으로 전세계가 떠들썩한 가운데 그녀의 아트만 에너지 수치에 관해서는 그 어떤 언론사에서도 일언반구도 없었다. 우주의 2백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40만도 대단한 수치다. 그러나 소리소문 없었다.

하긴 그렇다. MPO 국제본부에서도 현재 조사중이고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으니까.

“다 끝나거든 우리 막사로 와. 레이드 시작하기 전에 모두 모여서 화이팅 하는 시간을 가질거야. 난 잠시 저쪽에 갔다가 막사로 갈게.”

“알겠사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우주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사방은 각종 장비와 도구들로 어지러웠고, 레이드에 참여하지 않는 오성그룹과 천하물산의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현주가 있는 지휘본부 막사로 가서 모니터를 주시하던 그녀의 허리를 툭쳤다.

현주가 고개를 돌려 우주를 쳐다봤다.

“어. 왔냐. 이거 봐라.”

현주의 표정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평소라면 반갑게 맞아줬을 그녀가 긴장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우주는 그녀가 가리킨 모니터를 함께 들여다 보았다. 이곳과 5km 떨어진 지점에서 드론(무선 비행기)이 찍어서 보내오는 영상이었다.

울산의 한 바닷가. 거기에는 삼면육비(三面六臂). 즉 머리가 셋에 팔이 여섯개 달린 매머드급 사탄이 있었다.

한 몸통에 달린 여섯개의 팔에는 제각각 활, 화살, 칼, 고리, 방울, 방망이를 쥐고 있었고, 마치 명상하듯이 파도가 치는 해안가에 가만히 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레지스트 쉴드 완결!!

신작은 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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