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영입에 관한 이야기가 모두 끝난 뒤에 그녀와 단 둘이 술을 마시며 가벼운 잡담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고, 그러다 점점 즐거운 대화에 빨려들어가며 결국은 술을 과하게 마시고는 취해버렸다.
은근 슬쩍 오른 성욕과 알코올로 뒤범벅이된 모호한 에너지가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수희의 눈에는 우주가 제법 매력적인 사내처럼 보였고, 우주의 눈에는 수희가 섹시하게만 느껴졌다.
수희와 소민이 절친인 상태에서 소민의 낭군인 우주와 섹스를 한다는 것은 그녀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스스로도 무척 불가사의하다고 여길만큼 우주를 애타게 원하는 야릇한 감정을 느꼈고, 결국 그와 일을 저질러버렸다.
“으읏...!”
수희를 사정없이 괴롭히던 우주는 금세 사정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소중하게 간직해온 처녀의 그곳은 너무나 달짝지근했다. 그리고 동시에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올랐다.
‘이대로 사정했다간 그녀가 데바가 될지도 몰라. 어떡할까?’
사실은 쾌락의 절정 앞에서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동물적인 충동이 더욱 앞서 있었다. 우주는 바삐 핑계꺼리를 찾다가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강대한 힘을 주겠다고 했었지!’
자신의 배밑에 깔린 수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연신 신음을 내지르며 행복에 겨운 듯 표정이 풀려있었다. 마치 천국에 가 있는 듯한 표정이다.
‘도와주려면 확실히 도와줘야 한다. 낭자가 데바가 되면 전보다 더욱 크게 기지개를 켤 수 있을거야.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다 잊게될 정도로!’
생각을 굳힌 우주는 고추를 밖으로 꺼내지 않고 수희의 질안에다 과감하게 퓩퓩 사정을 해버렸다.
어느덧 불같이 활활 타올랐던 밤이 지나고 상쾌한 아침 해가 떠올랐다. 단잠을 자던 우주가 눈을 뜨면 방안에 술 냄새가 진동했고, 침대시트에는 지난밤 수희가 흘렸던 핏자국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창문에 달린 커텐이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조금씩 살랑거렸다.
“아뿔싸... 저질러 버렸구나.”
우주는 이마를 탁쳤다. 머리는 숙취로 지끈거렸다. 이윽고 우주의 기척에 수희가 깨어나, 어슬렁거리며 속옷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분홍빛 팬티에 다리를 하나 집어 넣으면서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이 잘 안나서 그러는데 어젯밤에 확실히 밖에다 사정했지? 나 그저께부터 가임기라서 말이야.”
우주의 눈이 저도 모르게 왼쪽 위를 바라봤다. 뒷머리를 살살 긁으며 최대한 담담하게 대꾸했다.
“...물론.”
수희는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일... 소민이 한테는 절대 말하지마. 알았지?”
“알, 알겠소.”
이후 씻은 뒤 근처 식당으로 가서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하며 우주는 테이블 위로 슬쩍 계약서를 들이내밀었다.
“에... 아침 식사 자리부터 돈 얘길 하는 것도 그렇지만 소생이 약 한 시간 뒤 공항을 가야해서 때를 보기에는 시간이 없고, 우리의 우정도 우정이지만, 옛부터 돈 관계는 피를 나눈 가족과도 철저히 하라 했소. 이 자리를 빌어 고용 계약서나 한 번 읽어보라고 가져왔소.”
읽어달라는게 아니라 실은 도장을 찍어달라는 것이다.
수희는 쥐고 있던 포크를 놓고 여러장의 계약서를 집었다. 그러고는 한 장씩 넘기며 천천히 훑어보았다.
“연봉은 얼마까지 줄 수 있을것 같은데?”
“그게 좀 알다시피 우리 회사 사정이.”
우주는 딴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가를 긁적였다. 그녀에게 많이는 못준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20억.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소민이 생각한 최대 마지노선이었다. 만약 수희가 그 이상을 원하면 테이블을 엎고 그대로 혼자 귀국하라고 우주에게 단단히 일러두었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의외로 소민이 먼저 돈 문제 앞에서 막역한 친구사이고 뭐고 없이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녀는 지금 수희의 가치를 냉철하게 판단했다.
현재 2세대 파워드 슈트와 코끼리급을 뛰어넘는 사탄의 출현 그로 인한 데바의 중요성으로 인해 수라인 수희의 가치는 전보다 두 단계 이상은 떨어졌고, 거기에 더해서 악성루머까지 따라 붙었으니 세 단계, 오래 쉼으로써 네 단계, 여기에 회사 사정까지 고려해 수희에게 줄 수 있는 최대 연봉이 20억이었다.
“하지만...”
우주는 좀 걱정이 되었다. 수희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최고 300억 가량의 연봉을 받던 대스타였다. 그런데 20억이라니. 최소 100억이라면 모를까 그 자존심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금액을 제시하면 서로가 좋을텐데 현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테이블을 엎고 나가는건 자신이 아니라 수희가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억이란 단어는 좀 고심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천천히 꺼내보자. 중간에 농담으로 똥구멍도 살살 긁어주고 말이야. 기분이 좋아보인다 싶으면 그때 꺼내는 거야.’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르다 수희가 돌연 내뱉었다.
“오억.”
“뭐요?”
그녀가 터무니 없이 적은 금액을 부르자 우주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오, 오억? 지금 오억이라고 했소?”
“응. 그런데 설마, 그것도 어려워? 그럼 더 깎을까? 알았어. 3억 하자 그럼. 3억 콜.”
수희는 돈이 중요치 않다는 듯이 정말 가볍게 그런 말을 했다. 우주의 입장에서는 덩실덩실 춤을 춰야할 판에 너무도 황당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캐물었다.
“왜 이리 낮게 부른거요? 너무 적은거 아니오? 정말로 괜찮은 거요?”
“야아, 사람들이 다 쳐다보니까 목소리 좀 낮추고 얼른 앉아봐.”
그녀가 재차 앉아달라는 손짓을 하자 우주가 진정하고 앉았다.
“어쨌든 이게 지금 내 몸값이라고 생각해. 한국에서 내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진 마당에 받아주는 회사가 있다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이유는 그것뿐이야.”
그후 식당에서 여러장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일사천리였다. 수희는 애당초 우주가 계약서를 내밀줄 어떻게 안것인지 인감도장을 미리 갖고 왔었다.
그리하여 연봉 4억에 계약 완료.
남은 시간에는 앞으로의 계획을 짰다.
수희가 이번주 내로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다음주 초 한국에 들어오기로 했다.
“낭자가 한국에서 지낼 집은 내 먼저 가서 구해놓고 있으리다. 자가용도 따로 준비해놓을테니 옷 몇벌하고 몸만 갖고 오시오.”
“그래, 고생해줘.”
식사가 끝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주는 밖으로 나가기 전 수희에게 물었다.
“‘소생이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찾아왔소?’ 가 영어로 뭐라고 하오?”
수희는 고개를 갸웃해 하면서도 알려주었다.
우주는 곧 밖으로 나가면서 식당 점장으로 보이는 외국인에게 다가갔다.
{소생이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소?}
“와, 왓(What)!?”
점장은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우주는 웃음을 띄운 채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한국말로 말했다.
"고생들 하시오. 난 이제 미국을 떠날 참이외다."
우주가 식당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점장은 쏜살같이 주방으로 달려가서 소형 무전기를 귀에 꽂았다.
{드, 들켰습니다!}
-뭐라고? 거기서 당장 철수해! 해리스!
우주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면서 줄곧 식당 주차장에서 대기중이던 빌과 톰슨은 그대로 차안에 머물러있어야만 했다. 우주에게 정체가 발각된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참 재밌는 친구들이로군.”
우주는 웃음을 머금고 수희와 함께 그녀의 아파트로 걸어갔다.
아파트로 돌아온 우주는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야?”
“홍콩이외다.”
“홍콩? 거기에 누가 있는데?”
“낭자도 잘 알것이오. 왜냐면 많이 친했으니까.”
수희와 다시 만나자는 작별 인사를 한 뒤 그녀의 집을 나와 공항으로 이동했다.
***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경비가 삼엄했다. 홍콩은 현재 전 지역이 시끄러웠다. 중국의 내정 간섭에 반발하는 시위대가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고, 홍콩에서 가장 크고 신비한 섬인 란터우섬에는 타이탄급에 준하는 매머드급 사탄이 출현해 수뇌부가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아무튼 홍콩은 홍콩이고, 우주는 우주였다. 공항에 도착한 우주는 사전에 약속했던대로 한국말을 잘하는 현지인을 만났다.
여성 가이드는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를 입고 우주를 반겨주었다.
“사장뉨, 반, 갑, 습뉘다.”
“당신이 왕짜이짜이 씨요?”
“네!”
그녀를 따라 차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했다. 차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 속에 거리에는 한자가 즐비했다.
막상 홍콩에 와보니 거리의 표지판과 상점 간판에 써진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주는 100여년전 한자를 써봐서 그 의미들을 잘 아는지 자주 중얼거렸다.
“하늘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누룽지는 맛있어. 맛있으면...”
어렸을적 재미삼아 불렀던 노래를 즐겁게 흥얼거리며 이윽고 밤 9시가 되서야 홍콩 북서쪽에 위치한 구역인 센트럴에 도착했다. 홍콩의 가장 번화가라면 번화가였다.
그곳에서 해외로 출장 나온 회사 직원을 만났다. 우주가 자신이 아는 정보를 근거로 세번째 인재의 행방을 파악하기 위해서 먼저 홍콩으로 보내놓은 직원이었다.
“사장님, 이쪽입니다.”
직원이 안내한 곳은 어느 클럽이었다.
우주는 여성 가이드와 직원을 남겨둔 채 홀로 클럽으로 향했다. 현재 그의 복장은 선글라스에 정장 차림이었다. 더불어 미국에서 겪은 일을 교훈 삼아 머리에는 가발을 썼다. 혹시 모를 미행자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대머리로 변장을했다.
{너 들어올 수 없다 해.}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는 몰라도, 클럽 입구를 지키고 있던 정장차림의 덩치들이 그를 막아섰다.
우주는 계속 손짓으로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덩치 큰 두 사람이 인상을 쓰며 그의 가슴을 밀쳤다.
{꺼지라 해! 여긴 너 같은 놈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 아니다 해!}{여긴 높은신 분들의 자제분들이나 올 수 있는 곳이다 해! 정 들어가고 싶걸랑, 니 직장 명함이나 유명한 친구 데려오라 해!}그들이 험악하게 가로막자 우주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어쩔 수 없이 여성 가이드와 남자 직원이 있는 차량으로 되돌아왔다.
“저기능 홍콩의 연예인과 부잣집 자제들이 다니는 클럽입니댜.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서요.”
“어떡하죠 사장님?”
“음...”
우주는 다시 혼자 클럽쪽으로 가서 서성거렸다. 자신을 쫓아내던 덩치가 클럽에 들어가려던 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잽싸게 지하로 뛰어들어갔다.
{저놈 잡아라 해!}
우주는 얼른 지하로 내려와서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과 한데 뒤섞였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고쳐쓰며 대머리 가발을 바닥에 벗어던졌다.
이어 태연하게 화장실을 찾아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밖으로 나왔다.
현란한 조명 속에 사람이 북적대는 곳에서 덩치들이 그를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바로 옆을 지나쳐도 몰랐다.
우주는 여유롭게 세번째 인재를 찾아 헤맸다. 춤을 추는 사람들 중에는 없었기에 구석에 마련된 룸쪽으로 다가가 일일이 문을 다 열어보고 다녔다. 안쪽에 있던 사람들이 욕을 하든 말든 신경도 안썼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를 찾았다.
“술에 떡이 됐군.”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거의 벗다시피 한 옷 차림에 삐죽빼죽한 짧은 머리를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우주는 당당하게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서 그를 제지하는 사람들을 밀치고 제일 안쪽에서 상체를 비틀거리며 겨우 앉아있던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나와.”
우주가 한국말을 하자 그녀가 잠시 갸우뚱 하더니 이내 불쾌한듯이 한국말을 내뱉었다.
“너어, 누군데에?”
그녀는 잔뜩 술에 취해서 혀가 꼬였다.
우주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눈에 힘을 주고 그녀에게 말했다.
“눈 크게 뜨고 잘봐 박현아. 나야, 모르겠어?”
세번째 인재는 박현아.
현아는 흐릿한 눈동자로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았다.
풀려있던 그녀의 초점이 한순간 돌아왔다.
“시, 신우주?”
“그래, 일단 여기서 나가자.”
{너 뭐야?}
한 남성이 우주를 막아섰다. 댄디 하게 차려입은 모양새가 어쩐지 재벌 2세 같았다.
{어디서 굴러먹다온 놈이 함부로 끼어드는 거야? 현아는 오늘밤 나랑 보내기로 했어. 당장 안꺼져?}우주는 그의 말을 전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술취한 현아의 꼴을 보고 갑자기 화가났다. 이렇게 망가지도록 술을 먹이다니. 그래서 다소 폭력적으로 변했다.
눈앞의 남자를 같잖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이내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소생을 방해하지 마시오!”
퍽!
“컥!”
남자는 주먹을 맞고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룸 안에 있던 여성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꺄아악!”
우주는 현아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소란으로 인해 그를 발견한 덩치들이 즉시 덤벼들었다. 한손은 현아의 손을 붙잡은 채 두 다리만으로 그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클럽은 단숨에 난장판으로 변했고, 여기저기서 놀란 여성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우주는 비틀거리는 현아를 냅다 들쳐업고 지상밖으로 뛰쳐나갔다.
클럽을 빠져나온 우주는 들쳐업고 있던 현아를 즉시 차에 태웠다.
“얼른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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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요즘 바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