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서진동이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돼?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냐구!}{난리치지 말고 일단 조용히 해봐. 사실 나도 그 문제로 여기에 돌아왔다. 팀원들의 도움이 필요해.}
{무슨 일인데 그래?}
루이가 북쪽 방향을 가리켰다.
{북쪽으로만 쭉 가다보면 마지막 관문이 나온다. 그런데 그 관문을 바오쮠이 지키고 있지.}{바오쯴? 설마, 크기도 엄청나게 큰거야?}서진동의 물음에 루이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작은 바오쮠이다. 하지만 키는 2미터 정도 되지. 그래서 말인데, 서진동 당신이 탱을 보면서 팀원들과 같이 녀석을 상대해줬으면 해. 그동안 나는 나락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보겠다.}
{어디로?}
{마지막 관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건물? 마지막 관문은 집이야?}{고풍스럽게 지어진 건물안이다.}{그런가. 아무튼 붙잡고 있는거야 쉽지. 그런데 내가 절대 귀찮거나 지금 지쳐서 그런건 아닌데 말이야. 바오쮠을 아예 상대를 말고 투명화 모드로 쑥 지나쳐 갈 수는 없는거야?}
{해봤다.}
루이는 투명화 모드를 써서 바오쮠을 몰래 지나쳐가려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바오쮠이 자신이 서 있는 방향을 노려보며 눈썹이 꿈틀 거렸던 것을 상기했다.
{녀석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서로 200M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먼 곳의 기척까지 감지해내고 있었어. 만약 가까운 거리였다면 곧바로 언월도를 휘둘렀겠지.}{흠... 그거 어렵군. 혹시 건물 안에는 뭐가 있는지는 알아?}{모른다. 하지만 바오쮠이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건물 안에 들어가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거기에 분명 나락을 빠져나갈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있을...... 크악! 아아악!} 루이가 갑자기 뒷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주를 포함해 팀원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말문이 막힌 채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며 괴로워 하는 루이를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주 잠시나마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크게 놀라며 당황했다.
자세히 보니 그의 뒷머리와 뒷목에는 녹색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어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두피와 피부가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천유시가 급하게 소리쳤다.
{저건 산성액이예요!}
베다와 리그베다가 가진 힐 기술은 피부의 상처는 치료하지 못한다. 그들이 가진 아트만에너지의 성향은 사탄의 사체를 섞어 만든 2세대 파워드 슈트만 치료가 가능했다.
{주변을 둘러봐! 또 괴물이 있나봐!}헬멧을 완전히 걷고 있던 루이가 속수무책으로 쓰러진 가운데, 우주가 불현듯 남쪽을 쳐다보았다. 근처 바닥에는 불똥이 튀기듯 녹색의 산성액이 이곳저곳 떨어지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나온거지?”
시선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5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무언가 거대한 실루엣이 비쳐졌다. 이내 거리가 가까워지며 검은 그림자가 걷히자 거대한 지네가 납작엎드려서 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었다.
우주가 바삐 소리질렀다.
{요괴요! 요괴! 남쪽에서 요괴가 나타났소!}{뭐? 어째서 남쪽이야? 거긴 이미 다 해치웠잖아!}{큰일났네! 아트만에너지도 바닥 났는데!}
{남은거라도 다 쥐어짜내봐!}
서진동이 부랴부랴 바닥에 던져놓았던 칼과 방패를 챙기고 지네를 마주보며 내달렸다. 거대 지네는 서진동을 보자마자 녹색의 산성액을 뿌려댔다.
그의 하이테크 슈트가 뜨겁게 타들어갔다. 서진동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가며 힐에 의해 파워드 슈트가 빨리 회복하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거대 지네가 사정범위 안에 들어오자 주저없이 칼을 휘둘렀다. 단단한 배껍질이 찢어지며 붉은 피를 튀겼다.
공격이 먹히자 서진동의 사기가 상승했다.
{황천길로 보내줄테니 각오해라 이 요물아!}때마침 리그베다의 민첩성 증가 버프와 베다의 힐이 서진동을 더 날쎄고 만들고 손상된 하이테크 슈트를 회복시켰다.
동시에 후방의 쯔단MSC 팀원들은 즉시 전열을 갖추고 질서정연하게 거대 지네를 공략해 나아갔다.
얼마 남아 있지도 않았던 아트만 에너지를 최대한 쥐어짜내가며 공격하고 꾸역꾸역 힐을 한 결과 마침내 거대 지네가 쓰러졌다.
팀원들은 승리를 환호하는 것도 잊고 서둘러 바닥에 쓰러져 있는 루이의 상태를 보러갔다.
{이, 이럴수가!}
{맙소사...! 크흑!}
{믿겨지지가 않아요...!}
루이의 상태를 확인한 팀원 모두가 이내 울먹이며 고개를 떨구었다.
루이는 얼굴이 전부 녹아서 사라져있었다. 뒷목에 심어두었던 나노바이오칩만 남겨진 채.
{레이드 도중에 만일 루이가 죽거든, 회사에서 나노바이오 칩을 수거해오라는 지시가 있었어.}서진동이 비통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이어 그는 허벅지에 꽂아두었던 단검을 빼내들며 목없는 루이의 시신으로 가더니 쪼그리고 앉아서 칼날을 세웠다.
루이의 심장이 멈춘 탓인지 나노슈트는 완전히 해제되어 있었고, 그는 가죽 슈트만 입은 채로 사망해 있었다.
우주가 서진동의 행동을 다소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떻게 수거한다는거요?”
{살을 찢어서 나노바이오칩을 꺼내야지.}
“한 개만 있는게 아니오?”
{나노바이오칩은 착용자의 뒷목, 양팔, 가슴, 양다리, 이렇게 총 여섯 부위에 심어진다네.}
“그럼 시체를 훼손하겠단 말이오?”
{어쩔 수 없지않나. 회사의 방침이 그런걸 어떡해. 나도 하기 싫어. 그런데 다들 칼을 못다룬다며 나한테만 떠넘긴걸 어쩌란 말인가. 아무튼 사전에 다 약속했던 일이야. 팀원들도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고.}
“허어...”
우주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뒤로 돌아섰다. 외부인이 뭐라고 간섭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의 규정이 그렇다니 그렇다고 알고 있을 수 밖에. 뒷짐지고 구경하는 수 밖에 없었다.
“후...”
우주는 문득 천유시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저만치 뒤에서 눈을 질끈 감고 묵묵히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
루이의 사망도 사망이지만 고인의 시신을 훼손해야한다는 점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리라. 이는 쯔단MSC 팀원 모두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우주는 서진동이 나노바이오칩을 꺼내는 동안 잠시 먼 곳에 가서 앉아있을 생각이었다.
첫발을 뗄 무렵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서 번쩍 떠올랐다.
그는 다시 뒤돌아서서 서진동에게 소리쳤다.
“기다리시오!”
{왜 그러지?}
“생각해보니 여긴 나락이오! 나락에서 나노바이오칩을 회수해서 어디에 갖다준단 말이오! 진짜 나노바이오칩은 현실세계에 있는 루이 도령의 시신이 갖고 있지 않소이까!”
우주의 현명한 생각에 눈물을 흘리던 팀원들이 갑자기 이마를 탁 쳤다.
{옳거니!}
{맞아요! 여기서 회수해봤자 쓸모가 없다는걸 잊었어요! 루이를 이대로 보내줍시다!}{휴, 십년감수했네. 못볼걸 볼뻔했어.}루이의 시신을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눕혀 놓고 천으로 덮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살아남은 29명의 팀원들은 하나같이 멍하니 서 있었다. 아트만 에너지가 바닥이 난 까닭에 지금 당장 어디를 갈 수도 없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동료의 마지막 모습을 슬픈 얼굴로 지켜보는게 전부였다.
그러다 몇몇 허기진 팀원들은 죽은 거대 지네의 사체를 뜯어다 불에 구워먹기도 했다. 아트만 에너지를 회복하려면 충분한 수면과 더불어 배를 채우는 것도 중요했다.
그렇게 식사할 사람은 식사를 하고, 잠깐 잘 사람은 자고, 우울한 사람은 쪼그려 앉아서 다리를 끌어안고 있고, 대화가 필요한 사람은 수다를 떨고, 경계를 맡기로 한 사람은 남쪽문으로 가서 경비를 서는 등 각자 알아서 휴식을 취하는 도중이었다.
난데없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남쪽 방향이었다.
문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두 사람이 산성액에 맞아 온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퉷!
-퉷!
{으아아악!}
이번에는 거대 지네가 세 마리나 나타났다. 남쪽을 지키고 있던 팀원들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뒤 본진쪽으로 잽싸게 기어왔다.
-너희가 감히 소천이를 잡아 먹었단 말이냐! 괘씸한 것들!
허공에 울려 퍼지는 여성의 목소리에는 독기가 서려있었다.
황급히 바이저를 내린 서진동이 냅다 칼과 방패를 들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팀원들 모두 비록 소량이지만 어느 정도 아트만 에너지를 채웠겠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오너라!}
서진동은 세 마리의 지네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가서 자신을 쳐다보게끔 즉시 도발력 기술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 마리가 갑자기 바닥의 벽돌을 부수고 땅속으로 파고들더니 이내 모습을 감췄다.
{빌어먹을!}
서진동은 당황하지 않고 일단 두 마리를 단단히 붙들었다. 딜러와 힐러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우선 한 마리씩 순차적으로 점사해서 잡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돌연 사라진 거대 지네로 인해 팀원들의 머릿속은 근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 발밑이오! 흩어지시오!”
공격을 하는 와중에도 날카롭게 촉각을 곤두세우던 우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전부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는 서둘러 옆에 있던 천유시의 허리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순간 땅이 솟구치며 거대 지네가 튀어나왔다.
녀석은 단숨에 진형을 망쳐놓고 사방에 산성액을 흩뿌리며 팀을 혼란에 빠뜨렸다.
{으악!}
{아악!}
산성액에 맞은 팀원들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로인해 힐이 분산되자 거대 지네 두 마리를 데리고 있던 서진동도 위태로웠다. 애당초 링 메이가 힐러로 참여를 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이제 없다. 현재 쯔단MSC에는 힐러다운 힐러가 한 명, 반쪽짜리 힐러인 리그베다가 둘, 힐러는 총 세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잠깐 휴식을 하면서 채웠던 아트만에너지가 곧 바닥을 드러내려던 참이었다.
{큰일났어요! 전 이제 아트만에너지가 없어요!}남성 베다가 주변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팀원들이 워낙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듣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사람은 분명히 들었다. 천유시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렀던 우주가 잽싸게 일어나며 혀를찼다.
“일단 남은걸로 탱커님만 신경쓰시오!”
그는 자신이 가진 아트만 에너지를 적당히 분배해 일단 본진을 망치고 있는 거대 지네를 공격했다. 일곱, 여덟. 여덟방만에 녀석은 칼같이 쓰러지고, 이어 두 마리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서진동이 본진 주위를 크게 돌며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로얄가드가 힐을 제대로 지원받지못할때 쓰는 비책이었다. 도발력을 사용해 괴물이 자신을 쳐다보게끔 만든 뒤 절대 맞지 않고 앞으로만 내달리기.
서진동은 이제 막 숨이 차오르는지 달리기 속도가 점점 느려지는게 보였다. 저러다 거대 지네 두 마리에게 따라잡히게 생겼다.
“내 곧 가리다!”
우주가 서둘러 거대 지네를 뒤쫓았다. 이윽고 아끼고 아껴두었던 아트만에너지를 다 쏟아내서 두 마리를 멋지게 쓰러뜨렸다.
{만약 우주 씨가 우리팀에 없었다면, 아마 우리도 다른팀과 똑같이 전멸났을거야. 정말 있어서 다행입니다.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해주셔서 정말로 고마워요.}
“과찬이오.”
우주가 팀원들의 칭찬에 머쓱해하는 한편, 어떤 팀원은 조금 전 우주에게 말한 팀원에게 다가가 칭찬이 무슨 중2병처럼 과하다고 놀리기도했다.
아무튼 생존자는 이제 20명. 거대 지네 세 마리를 상대하면서 무려 9명이나 산성액에 당해 사망했다.
남은 쯔단MSC 팀원들은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움직였다. 아트만에너지를 꽉 채운건 아니지만 70% 정도 찼을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작정 시간만 보내고 있기에는 마음이 쫓기고 있었다. 참고로 현실세계의 5분이 나락에서는 2시간이었다.
그들은 북문으로 다가갔다.
이번 북문의 현판에는 재회문(再會門)이라고 써져있었다.
“재회라, 누굴 만난다는... 건가?”
{혹시 헤어졌던 동료를 만난다는거 아니오?}
{뭣이?}
순간 서진동의 눈이 커지며 잽싸게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문이 활짝 열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텅빈 광장.
그런데 갑자기 서쪽 문이 열리며 돌연 한 여성이 허둥지둥 튀어나왔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
{꺄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줘!}그 다음.
서진동이 뛰쳐나갔다. 익숙한 실루엣을 보자마자 감이 왔는지 누가 뭐라고 제지하기도 전에 그는 튀어나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이하며 스위치가 켜지고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기다려어어어!}
“서 도령! 팀에서 이탈하지 마시오!”
우주가 목청을 높여 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서진동은 무작정 여성을 구하기 위해서 내달리고 있었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었기에 우주는 그 여성이 누군지 알 턱이 없었다.
그러나 우주의 뒤에 서 있던 천유시가 무심코 그의 팔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떨었다.
{저, 저 사람, 아, 아무래도 링 메이 같아요.}
“정말이오?”
{예. 목소리도 그렇고, 여기선 잘보이지 않지만 알 수 있어요. 링 메이가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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