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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244화 (244/285)

244화

하이테크 슈트까지 전부 착용하고 난 뒤 먼저 말문을 연것은 천유시였다. 우주는 분위기로만 그녀의 말을 파악하고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가볍게 잡아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좌우간 이제 생존자는 단 둘뿐. 다음 관문으로 향할 차례.

우주와 천유시는 나란히 서서 북문의 현판을 지그시 올려다 보았다.

“경문(競門)이라...”

경문에서 경자는 다투다, 겨루다의 의미였다. 이에 관해 천유시와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어떠한 의견도 주고받지 못했고, 우주는 그저 가능한한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천유시를 전선에서 제외시킨 채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각오뿐이었다.

“갑시다.”

우주는 마음을 굳게 다잡은 뒤 철문을 힘껏 밀었다.

그리고 곧 눈앞에 펼쳐진 광경.

천만 다행이었다.

드디어 루이가 말했던 마지막 관문에 다달은 것 같았다. 왜냐하면 작아진 바오쮠이 웅장한 고대 건물을 뒤로한 채 두 사람을 쳐다보며 먼곳에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오른손에 쥐고있는 언월도는 날카롭게 빛나며 날이 살아있었다.

“낭자는 여기 꼼짝말고 가만히 계시오. 일대일이라면 자신있고, 소생이 혼자 상대하겠소.”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잘 모르겠어요.}우주는 자신을 가리킨 뒤 이어 바오쮠을 가리켰다. 이어 천유시를 가리키고 나서 바닥을 가리켰다.

그 뜻을 단숨에 이해한 천유시가 함께 싸우자며 극구 거부했지만, 우주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천유시의 두 눈동자를 마주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I'm World Star. Believe me.”

{......}

우주가 지은 여유있는 미소에 홀린 듯한 천유시는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조금 전 그와 몸을 섞은게 원인인것 같았다.

어쨌든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우주는 자신있게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북문 앞에 당당히 서 있던 바오쮠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져 갔고, 이윽고 서로의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바오쮠이 먼저 언월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후 결론을 말하자면 바오쮠은 결국 우주의 상대가 못되었다. 우주는 넘어진 바오쮠을 향해 빼앗은 언월도를 가차없이 휘둘렀다.

바오쮠의 목이 싹둑 잘려나가며 피를 분수처럼 뿜어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천유시는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는지 두 눈을 크게 뜬 채 두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시다. 저 안으로.”

우주가 웃으며 손짓을 했다.

천유시는 아직도 못믿겠는지 그를 뒤따라가면서도 바닥에 누워있는 바오쮠의 시체를 계속 쳐다보며 지나쳤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최후의 관문. 건물 안은 화려하고 웅장한 외관에 비해 엄청나게 좁았다.

문을 열자마자 넓고 커다란 통에 담긴 이질적인 괴물의 모습만 보였다.

둥글고 넓적한 대야 같은 곳에 담긴 괴물의 본체.

괴물은 오직 찹쌀떡처럼 생긴 둥그런 몸뚱이만 가지고 있었다.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었다. 양서류처럼 갈색의 칙칙한 매끄러운 피부만 가지고 있었다.

숨은 쉬고 있는지 일정 간격으로 계속 피부가 들썩거렸다.

{이 녀석만 죽이면 밖으로 탈출할 수 있어요.}천유시는 곧바로 허벅지에 장착된 단검을 빼들었다.

그런데 우주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며 행동을 제지했다.

천유시가 당황하며 우주를 쳐다봤다.

{왜 그래요?}

그는 대답이 없었다. 돌연 이루어진 괴물의 이상 현상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괴물의 피부가 꾸물꾸물. 누군가 반죽을 빚는것처럼 들쑥날쑥거리고 이내 사람의 형태를 이루더니 마침내 우주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익숙한 막내의 모습.

점토로 빚은것과 같은 모습으로 막내의 전신이 우주의 눈앞에 웃으며 서 있었다.

“막내니?”

“응. 이런 모습인데도 잘맞추었네? 이런걸 보면 역시 피를 나눈 내 오라버니라니까. 쓸쓸했던 기분이 좋아졌어.”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거냐? 왜?”

“오라버니에게 해줄말이 있어서 온거야. 그리고 여기, 나락이 아니면 오라버니를 만날 기회가 없는걸.”

“나락에 오면 널 볼 수 있다는게냐?”

“틈새 시장을 노린다는 걸까? 나도 때론 간섭할 수 있지. 지금처럼.”

“간섭? 그런데 해줄 말이라니...?”

막내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에게 큰 도움이 될거야. 오라버니는 지금 엄청난 힘을 갖고 있지?”

“아트만 에너지 말이냐?”

“인간들은 그렇게 부르더라. 우리 지구는 생명의 에너지라고 불러. 오라버니는 지금 생명의 에너지가 많이 커졌을거야. 왜 그런지 알아?”

우주는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나도 영문을 모른다. 오랜 기간 생각중이었어.”

“간단해. 그건 오라버니의 자식이 세 명이 돼서야.”

“세 명?”

우주는 순간 당황한 나머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해봐야 했다.

료코와 낳은 딸, 또 미라와 낳은 딸, 그리고 소민이 임신한 아들.

“맞아, 세명이다. 그런데 그게 왜?”

“오라버니는 앞으로 세 명 단위로 자식을 낳을때마다 커다란 힘을 얻게 될거야. 따라서 두번째 힘을 개방하려면 세 명의 아이를 또 낳도록 해.”

“말도 안돼. 어떻게 무작정 자식을 낳으란 말이냐? 양육비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면 매년 몇 억씩 줘야할 대학 등록금도 걱정이 된다. 게다가 시집장가 다 보낼려면 어휴.”

막내는 재밌다는 듯이 웃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오라버니. 지구는 인간이 정해놓은 규칙, 도덕, 윤리를 몰라.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아.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들의 일부분이자 실 한가닥일 뿐이고,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지구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종의 번영이지. 반대로 아버지와 같은 지구가 원하는 것은 인간은 단기간에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를 거듭해왔고, 이제는 처리해야될 골칫거리 같은 존재가 되었어.”

막내는 계속 말했다.

“이 중 오라버니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의 지구에게 선택받았어. 어머니와 같은 마음의 지구에게 도움을 받아 인류를 지키고 싶다면, 인간의 규범에서 벗어나도록 해. 태초의 인간이 가졌던 짐승같은 본능에 충실해도 좋단 말이야.”

“그 말은 즉, 나보고 아무 여자나 만나서 씨를 뿌리고 다녀도 좋다는 소리냐?”

“명쾌한 대답이네. 맞아. 내가 볼때, 그래야 인류를 지킬 수 있거든. 그런데 수천명의 조카들을 내가 감당할 수나 있을지 그게 걱정이긴 하지만.”

“그건 완전히 개새끼라고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될거야.”

우주의 말에 막내가 배꼽을 부여잡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걸 걱정할때가 아니야. 인류는 현재 지구의 시험대 위에 올라와있고, 인류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오라버니 뿐이야. 앞서 말했듯이 인간이 정해놓은 규범과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인류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걸 알아줬으면 해.”

우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같은 지구는 인류의 인구가 겉잡을 수 없이 늘어만 가서 지구를 파괴하는 까닭에 인류를 싫어하는데, 어머니와 같은 지구는 어째서 번식을 강요하는 것일까? 난해했다.

그런 가운데, 막내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조급함이 들었다. 막내에게 묻고 싶은 말은 밤을 새서 할 정도로 수없이 많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두 개 뿐이었다.

서둘러 말했다.

“레지스트 쉴드로 가면 널 만날 수 있는거지? 그리고 두 번째 힘은 어떤 힘이냐?”

“레지스트 쉴드로 오면...”

휘익!

막내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에 천유시가 재빨리 단검으로 그녀의 목을 자르고 복부를 찔렀다.

푹!

막내는 모래처럼 산산이 조각남과 동시에 입자처럼 작은 수많은 알갱이들이 후두둑 아래로 떨어졌다.

“지금 뭐하는 거요!”

우주는 그녀의 양어깨를 흔들며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천유시는 우주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까 저처럼 귀신한테 홀린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저한테 윽박지르는걸 보니 지금도 홀리신 것 같지만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제 귀신을 죽였으니까 우린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거예요. 부디 진정해주시고 힘내세요.}천유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건물을 비롯해 고대 중국의 모습을 담았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깐 눈을 깜빡였을땐, 어느새 현실세계로 되돌아와 있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고 모든게 평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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