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48화 (248/285)

248화

“뭐?”

바닥을 치우고 있던 우주는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오? 어떻게 살아나? 설마, 복제인간?”

수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연진 씨의 매니저를 했던 사람을 통해서 들었는데, 두 달 전에 연진 씨의 부모님께서 복제를 하기로 결정하셨다나봐.”

대한민국 법에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란게 있다. 이는 원래 인간복제행위는 금지하고 치료목적의 줄기세포연구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게 주요내용이었으나, 3년 전 마츠다이라가 서울에서 테러를 일으키자 다급했던 정부는 신라그룹이 소유한 복제인간들까지 총동원해가며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복제인간의 능력과 효율성 등을 우연한 기회로 만천하에 널리 알린 적이 있다.

그 이후 복제인간의 안정성까지 입증한 신라그룹은 국회의원과 종교계 수장, 여러 시민단체장들을 설득해가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도록 부단히도 노력했고, 당시 TV에서는 복제인간들이 마츠다이라와 반역자들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다면서 호평과 찬사 일색의 반응을 보이며 복제인간들에 대한 놀라움을 전하느라 연일 정신이 없었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복제인간들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국민들은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점차 좋은 이미지를 갖게되었으며 이는 추후 국회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

따라서 2014년 현재,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주요 내용 중에 '인간복제행위를 금지한다'라는 항목이 '복제인간에 대한 24시간 감시 및 관리 환경을 갖춘 기업에 한해서는 복제를 허용한다' 라는 내용으로 개정되었다.

우연진의 경우에는 그의 어머니가 CEO로 있는 수산 관련 기업에서 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우주는 그날 오후 우연진의 매니저였던 김승필을 만나 그와 함께 여수로 내려갔다.

그리고 우연진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기업을 방문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이윽고 찾은 곳은 해안가.

노을이 질 무렵, 부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낚시를 하는 한 사내가 보였다.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고 밀짚모자를 쓰고 낚시를 하는중이었다. 그 근처 해안가에는 아이 두 명이 모래사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우주는 조용히 뒤로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우 도령.”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더니 우주를 보자마자 곧 환하게 웃어보였다.

“이야, 오랜만이네.”

“잘지내셨소?”

“잘지내는건지, 못지내는건지. 아무튼 이리와서 앉아.”

우주는 그에게 다가가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발밑에 있는 통에는 잡아놓은 물고기들이 비좁은 곳을 헤엄치고 다녔다.

연진은 낚시대를 움켜쥔 채 웃으며 말했다.

“요즘 잘나가더라. 맨날 TV에 나오던데?”

“한창 때의 우 도령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외다.”

우주의 대답에 우연진이 큭큭 웃었다.

“승필이한테 들었어. 내 장례식장에 와서 천만원씩이나 놓고 갔다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그렇게나 냈다는 소릴 듣고 왠지 감동 받고 눈물도 찔끔 나오드라.”

“그거야 당시 수입이 좋아서 그런거니 대단하게 생각지마시오. 지금 그러라면 못할거요. 한푼두푼이 절실해서.”

우연진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내가 복제된 건 어떻게 알았어?”

“수희 낭자를 통해 전해 들었소.”

“아, 김수희. 잘 살고 있는가 모르겠네.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드만.”

“수희 낭자는 이번에 소생의 기업에서 함께 일을 하기로 했소. 다음주 중으로 공식적인 발표를 할 참이고.”

“오우, 정말? 하하하. 그게 또 그렇게 인연이 만들어지네. 옛날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인데. 그 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건가.”

우주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우 도령도 소생과 함께 일해보는것이 어떻겠소?”

“나보고 다시 돌연변이 생물을 잡으러 다니라고?”

“우 도령의 실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하오. 우 도령의 활약을 담은 영상들이 지금도 많은 후배들의 교육자료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고, 다시 정상에 설 기회를 마련해드리겠소. 그 실력을 썩히기엔 아깝소이다.”

“음... 어쩔까. 여기서 지내는 건 심심하기도 하고, 거기 가자니 고생길이 훤히 보이고. 그런데 내가 요즘 고민이 많아서 말이야.”

“어떤... 고민이오?”

“뭐, 뻔하지 않겠어? 이미 죽은 놈이 왜 세상에 다시 돌아왔나 싶지.”

“......”

우주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말해줘야할지 몰랐다.

“그야 우 도령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런게 아니겠소.”

“그건 그런데, 그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별로 즐거움이 없는것 같아. 내가 정말 우연진이 맞나 싶기도 하고,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인간 취급은 받을 수 있나 싶기도 하고, 난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나?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까.”

그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조금 이따가 봐라. 나 데리러 의사 선생이 하나 올거야. 정신과 전문의라는데 시도때도 없이 따라다니고 귀찮게 하지. 한번은 부모님께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법을 들먹이면서 복제인간을 소유한 기업은 복제인간 1명당 주치의가 꼭 따라다녀야 한데. 법 규정이라나 뭐라나. 이렇게 정신병자 취급하고 다닐거면 왜 살려놨냐고 대체.”

“힘든일이겠소.”

“암, 힘들지. 힘들어.”

그때였다.

바다속에서 다리가 달린 거대한 물고기가 수면 위로 솟구치더니 그대로 근처 해안가에서 놀던 아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꺄아악! 엄마아!”

“으아앙!”

우주가 급히 부두를 돌아서 뛰어가려던 찰나 연진이 벌떡 일어서더니 쥐고 있던 낚시대를 힘으로 부러뜨리고 거대 물고기의 등을 향해 힘껏 날렸다.

휘익!

푸욱!

부러진 낚시대가 거대 물고기의 등에 꽂히고 녀석은 그 즉시 연진을 바라봤다. 도발력이 오른 거대 물고기는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부두가를 향해 헤엄쳐왔다.

그에 맞서 연진도 물속으로 다이빙했다.

마주오는 거대 물고기와 물속에서 한데 뒤엉켜 싸우더니 이윽고 그가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왔다.

오른손에는 죽어버린 거대 물고기의 아가미를 쥔 채 사체를 모래바닥에 질질끌고 있었고, 왼쪽팔은 날카로운 이빨에 물렸는지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벌벌떨고 있는 아이들 곁에 있던 우주는 이제 막 모래사장을 밟고 있는 연진을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우 도령! 괜찮은거요?”

연진은 난데없이 쾌재를 불렀다.

“어! 괜찮지! 아아!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그는 씨익 웃었다.

“역시 이게 내 천직인가봐. 쓸데없는 잡념이 안들어서 좋은데?”

우주는 그 모습을 보고 조금 어이없어 피식 웃었다. 연진의 속을 알 수 없지만 감정의 기복이 큰편인게 긴 말 할것 없어서 고용주 입장에서는 오히려 다행같았다.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연진의 어머니를 만나 무난하게 설득한 뒤 임대 계약서를 작성하고 2년 임대료로 10억을 주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며칠 뒤 연진은 젊은 여성 주치의와 더불어 서울로 올라왔고, 우주는 그 두 사람을 수희가 사는 아파트로 안내해주었다. 자신을 서윤하라고 소개한 여성 주치의는 연진과 앞으로 한 집에서 같이 살 계획이었다. 연진은 그것을 무척이나 싫어했지만.

그 후 연진이 천하물산 본사를 방문했을때였다. 소민은 자신의 과오로 인해 연진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고, 그를 만나기를 무척 꺼려했으나 우주가 두 사람을 재회시켜주었다.

그때 자신없어하는 소민 앞에서 연진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신이 알던 그 사람이 아니야. 내 과거의 기억은 코끼리급 사탄을 잡기 전까지가 전부고, 그러니까 난 당신에게 불평불만 따위 가질 생각이 없어. 그리고 꼭 나만이 아니라 그 녀석도 살아있었다면 나랑 같은 생각을 말했을거야. 우리 일은 항상 위험천만하고 언제든 죽음과 맞닿아있어. 그때의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냥 일하다가 능력이 부족해서 개죽음 당한거야. 어쨌든 내 이름은 뉴(New) 우연진이예요. 앞으로 잘부탁 해.”

이틀 후.

천하MSC는 국내에서 네임밸류(name value)가 있는 우연진, 김수희, 한성일을 위주로 새로운 팀원들의 영입을 공식발표하며 세간의 이목을 대대적으로 끌었다.

언론과 SNS가 난리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죽은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우연진의 재등장 소식이 대단했다. 연일 톱기사로 보도가 되며 며칠이 지나도 관심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렵 갓 법인회사로 전환한 천하물산은 주식을 발행하면서 자본조달이 훨씬 용이해졌다.

아울러 유명 스타들의 영입과 우주의 아트만 에너지가 200만 와트라는 소식으로 대외공신력과 신용도가 높아져 관공서, 금융기관 등과의 거래도 전보다 원활해졌다.

회사가 한층더 발전하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우주는 회사에 유입된 자본을 바탕으로 하이테크 슈트 25벌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우주와 미라가 쓰던 두 벌의 하이테크 슈트는 새로 만들어질 2군팀에 넘겨줄 생각이었다.

국내에서 2세대 파워드 슈트를 생산하는 업체는 총 다섯군데가 있다. 신라그룹, 오성그룹, 디시스, 나인티나인, 펜다였으며 우주는 이 중에서 경쟁사인 신라그룹과 오성그룹을 제외하고 오로지 2세대 파워드 슈트 생산에만 전력을 다하는 나머지 세 기업의 제품에만 관심을 보였다.

“하이테크 슈트 25벌에 디시스(D-SIS)가 980억, 나인티나인(9T9)이 1005억, 펜다(PENDA)가 1100억이라...”

이와중에 천하물산이 2세대 파워드 슈트를 구매하고자 하는 의욕이 보인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가 나가면서 천하물산의 주요 임직원들에게 디시스, 나인티나인, 펜다측의 치열한 물밑 로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우주에게도 협상을 하고자 만든 자리에서 한창 잘나가는 여자 연예인을 요정집으로 부르는 등 성로비를 하려고한 기업까지 있었다.

하지만 우주는 막 옆자리에 앉은 여자 연예인을 당장 내쫓아내며 한마디했다.

“소생은 이런 분위기에서 대화하는건 싫소. 지금 안으로 들어온 여성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우리끼리만 마십시다. 여기 술이나 한 병 더 갖다 주시오.”

“아, 그러시다면야...”

“에헤헤. 그, 그러시죠 사장님.”

협상테이블에 앉은 관계자들은 애당초 우주의 반응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자 행여나 실수라도 한 것은 아닌지 그 앞에서 매우 긴장을 하며 우주의 눈치를 봐야했다.

며칠에 걸쳐 세 기업 관계자들을 다 만나본 우주는 직원들과 면밀히 검토해본결과 세 기업 중에서 나름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파워드 슈트 자체의 보안 기능도 철저하다고 소문난 펜다 사의 사장과 접촉을 하고 마침내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펜다 사의 사장은 계약에 앞서 하이테크 슈트 판매를 조건으로, 임무 중 하이테크 슈트가 파괴당했을 시 추가로 1벌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3년 간 무상 A/S, 파워드 슈트 속에 내장된 소프트웨어 역시 5년간 무상 업그레이드, 마지막으로 구매 가격 인하를 약속했다.

“이로써 하이테크 슈트까지 완벽하게 구매했고, 경험과 실력이 부족했던 천하MSC의 수준도 새로운 멤버의 영입으로 한차원 끌어올렸어. 앞으로 남은건 코끼리급 사탄을 잡는것 뿐이다.”

연일 승승장구하는 기분이 들던 어느 화창한 오후였다.

수희가 불쑥 사장실로 찾아왔다.

“여긴 어쩐 일이오? 오후에 신입 사원 교육에 간다고 하지 않았소?”

“그게...”

그녀의 안색이 웬일인지 어두웠다.

우주도 덩달아 표정이 심각해졌다.

“무슨 일인지 솔직히 말해보시오.”

“우주야, 큰일났어.”

“큰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그러오?”

“나, 임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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