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강민이 신나는 댄스곡과 더불어 파워풀한 춤으로 무대 위에서 화려한 공연을 펼치는 동안 우주는 인사차 다가온 철수와 포옹을 했다.
철수는 최근 살이 10kg이나 불어서 그런지 정장 단추가 위태로워보였다.
“아 왜 요즘 연락이 안돼요~ 전화해도 맨날 통화중이고.”
“그렇잖아도 기획사를 한 번 찾아갈까 싶었는데, 미루다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됐소. 요즘따라 일이 많아져서 말이오.”
“하하하. 다 이해하죠. 그리고 다음주에 안바쁘면 술 한잔 어때요? 쟤 데리고.”
철수는 무대 위에 있는 강민을 가리키며 쓰고 있던 안경을 고쳐썼다.
우주가 밝게 웃으며 화답했다.
“좋소이다. 한가한 날로 골라 날잡읍시다.”
이어서 우주는 장난스럽게 철수의 불록한 배를 툭 쳤다.
“소생은 요즘 바빠서 힘들어죽겠는데, 김 사장은 요즘 살 맛 나는가 보오. 형수님께서 맛있는 반찬을 많이 해주시나?”
“아하하 그게, 혼자 살때는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하루 한끼 대충 때우고 그랬었는데, 결혼을하니까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챙겨먹게돼서 말이죠. 저절로 살이 찌게 되더라구요. 게다가 하루 세끼 말고도 맨날 여기저기 불려가서 밤에 술 마시고 이러다보니까 체중이 빠질 틈이 없어요.”
철수는 4년 전만 해도 2D여자가 좋다고 매일 같이 떠들고 다닌 경력이 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반년 전에 결혼을 했다. 상대는 프랑스 여성이었으며, 철수가 홀로 유럽배낭여행을 갔을 당시 우연한 계기로 알게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신우주 사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강민의 무대가 끝나고 난 뒤 사회자의 소개로 우주가 연단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시오 신규 입사자 여러분. 천하물산의 사장 신우주라 하오. 먼저 천하물산의 새로운 가족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오이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패기에 찬 여러분의 모습을 대하고 보니 참으로 마음이 뿌듯하며 천하물산의 미래가 참 밝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소.”
홀 안에는 정장차림의 신입사원들 뿐만 아니라 캐주얼 차림의 각 언론사 취재진들도 몰려와 있었다.
우주는 단상에 놓인 A4 용지를 집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신입사원 환영회를 겸해서 임직원 모두와 언론사 기자분들에게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싶은 사항이 하나 있소. 그게 무엇이냐 하면, 오늘부로 우리 천하MSC는 1군과 2군으로 팀이 나뉘어 운영될 것이오. 1군은 코끼리급, 매머드급 사탄 레이드를 위주로 활동할 것이고, 2군은 레지스트 쉴드 안으로 들어가 토끼급 및 호랑이급 돌연변이 생물을 사냥하는 생산활동 및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무엇보다 1군 승급을 목표로 각자의 역량을 배양하는데 중점을 두게 될 것이외다.”
우주가 하는 이야기가 앞으로 본인들이 맡게될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라 그런지 모두가 귀를 기울이며 장내는 다소 긴 침묵을 유지했다.
앞열에 앉아있는 기자들의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아주 잘 들렸다.
“지금부터 각 팀의 명단을 발표하겠소. 1군 팀장 쿠로가네 료코, 부팀장 강미라. 팀원 우연진, 김수희, 리영애, 박현아, 이진혁 ...(중략)... 이제부터는 2군 명단이오. 2군 팀장 한성일. 부팀장 추신애. 팀원 김아라...”
공식 발표가 끝나고 나서 기자들의 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한 기자가 손을 들고 일어나 우주를 향해 물었다.
“타임리스 지의 송새벽 기자입니다. 신라그룹 같은 경우에는 차영웅, 이태평, 이만섭, 김옥희 등등 다수의 복제인간을 비롯해 유하나 씨까지 조직재생공학연구소에서 '신체강화' 를 받게 했는데, 천하MSC에서도 그럴 의향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어느 팀원인지도 말씀해주십시오.”
우주가 바로 대답했다.
“있소이다. 우리 회사에선 우연진 씨만 받게될거요.”
신체강화. 조직재생공학연구소의 산하 연구팀인 스파르타 팀이 기술을 개발했다. 평범한 인간을 약물투여와 유전자 개조, 내/외과 수술 등으로 강화시켜, 아트만 에너지를 쓸수 있는 데바에 준하는 능력을 갖게 만드는 기술이나 인위적인데다가 시술 도중 사망의 위험성도 높고, 추후 발생할 부작용에 관한 데이터도 부족해 복제인간을 제외하고는 정작 일반인들은 시술을 꺼려하고 있었다.
“우연진 씨도 동의하신겁니까?”
“동의고 뭐고 처음부터 그가 요구한 일이오.”
“회사측에서 압력을 넣거나 한건 아니구요?”
“우리 천하물산에서는 그에게 신체강화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소. 그리고 앞으로는 그런 초딩도 안할 형편없는 질문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겠소.”
그때 갑자기 사원들 틈에서 우연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것이 왠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투다.
우주가 연단으로 올라오라고 손짓했다.
연진이 성큼성큼 걸어와서 당당하게 연단 위로 올라왔다. 말쑥한 정장차림의 그는 단상 앞에서더니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내가 받겠다는데, 니들이 무슨 상관이야아!”
연진이 난데없이 소리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헤프닝이 발생했다며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까 신경꺼!”
우주는 뒤에서 살짝 웃음기를 머금으며 며칠 전 사장실로 찾아온 연진을 떠올렸다.
“나도 이볼브 에너지(Evolve Energy)를 쓸수 있게 만들어줘. 그것만 있으면 데바처럼 아트만 에너지 같은걸 쏠수있다며?”
데바가 2세대 파워드 슈트를 착용했을때 발현하는 에너지를 아트만 에너지라고 부르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신체강화를 받은 인간이 2세대 파워드 슈트를 착용했을때 발현하는 에너지를 이볼브 에너지라고 부른다.
아트만에너지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힘이기에 순수하고 깨끗하다면, 이볼브 에너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힘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탁한 성질이 있다.
아울러 질적으로도 차이가 나는데, 아트만 에너지의 1 와트는 이볼브 에너지의 1.5 와트에 해당하는 위력을 지님으로써 학자들 사이에서 이볼브 에너지는 신체강화를 받는 위험부담에 비해 원조를 넘어서지 못하는 아류와도 같다는 혹평이 지배적이었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어왔는가 모르겠지만 당장 그만두시오! 절대 안되오!”
“왜 안된다는 거야?”
“위험부담이 너무 크오. 시술을 받다 자칫 하다간 사망에 이를수도 있소.”
“그건 어차피 상관없어. 난 복제인간이니까 죽으면 또 만들어내면 되지.”
“......”
우주는 어쩐지 슬픈 기분이 들어 뭐라 대꾸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연진은 어째서 이런 말을 그리도 쉽게 할까? 아무리 낙천적으로 보이는 성격이라지만, 자신이야말로 큰 상처가 될 말일텐데?
“그냥 데바가 되길 기다리시오. 어떤 논문을 보니 최근 수라에서 데바가 되는 확률이 전보다 높아졌다 하더이다.”
“고작 2%? 그리고 말야. 난 복제인간이야. 복제인간에서 데바가 되는 사례는 아무리 뒤져도 없더라.”
연진이 수라인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이것저것 조사를 해본 것 같았다. 굉장히 고민하고 연구한 흔적이 엿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안되는건 안되오.”
“신라그룹의 차영웅을 봐. 그놈도 이볼브 에너지로 국내 탑까지 갔다며?”
“그건 순전히 장비빨이오.”
“장비빨이든 뭐든 이볼브 에너지도 쓸만하단거야.”
“틀렸소. 신라MSC는 전원 데바에 신체강화를 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팀인데다가, 팀원 모두 나노슈트 착용에, 특히 차영웅의 경우에는 자신의 나노슈트에다가 하나에 1000억씩이나 하는 증폭석 5개까지 전부 다 박았소이다. 그러니 장비빨과 팀원빨로 국내 최고가 되는건 당연한게 아니겠소.”
연진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나 우연진이야. 전에 국내탑을 달리던 우연진이라고.”
“알고 있소.”
“간만에 복귀했는데 남들은 새가 되어 날고 있고 나 혼자만 바닥을 기어가기에는 굉장히 초라해보이고 임팩트가 부족하잖아. 사람이 자존심이 있지. 부자한테 어디 강원도 산골마을에 있는 전기도 안들어오고, 빗물도 새고, 화장실도 없고, 수돗물이나 온수도 안나오는 집에 가서 평생 살으라고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애? 사람이 하던게 있는데 말야. 나도 이 상태로 머물러 있다간 반짝 하고 곧바로 추락할거야. 난 알아. 그게 더 비참해. 보나마나 방송에 나가면 옛날엔 대스타였던 우연진 씨~!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우연진 씨~! 한시대를 풍미했던 우연진 씨~! 하고 소개를 받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물간 스타라고 갖은 비웃음과 조롱까지 당하게 될거야.”
연진은 정말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로.
“방법은 신체강화 밖에 없어. 만약 시술하다 죽으면 다시 복제하면 그 뿐이야. 난 어차피 인형 같은 몸. 시술로 죽든 임무를 수행하다 죽든 어쨌든 죽어봤자 네 앞에는 또다른 우연진이 나타나겠지. 이런 운명을 가진 나 우연진 2호는 가늘고 길게 사는 것보다 굵고 짧게 사는게 낫고, 차라리 짧은인생 누구보다 폼나고 멋지게 사는게 더 중요하다. 그러니 부디 내 소원을 들어줘. 아무리 위험이 높아도 신체강화는 꼭 할거야.”
다시 현재.
우주는 그때 연진의 간절했던 눈동자를 떠올리다보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착잡해지기도 하였다.
좌우간 연단으로 나왔던 연진이 다시 들어가고 기자들의 질문이 재개되었다.
기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이번에 일본에서 출몰한 타이탄급 사탄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우 가슴이 아프오. 이 자리를 빌어 이번 사태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분들께 삼가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애도를 표하오.”
“그렇다면 만약 일본에서 천하MSC에 의뢰를 해온다면 응해줄 생각이 있으십니까?”
“음...”
우주는 곰곰이 생각하며 대답을 주저했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일이다.
일본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야 있었지만, 그를 발목 잡는게 있었다.
그 첫번째로 나베 신쥬 일본 총리는 3년 전 서울에서 발생했던 테러에 관해서 전혀 사과를 하지 않고 있고, 이에 더해서 일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무책임성 발언을 했었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우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분노하는 일이다.
우주는 그들이 자신들이 행한 죄를 인정하기 전까진 일본과 관련된 일은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대답했다.
“천하MSC는 아직 여건이 좋지 않아 타이탄급 사탄을 공략할만한 능력이 못된다오. 매머드급도 잡기 힘든 판에.”
“그건 어느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연합MSC가 구성된다면 개인 자격으로 참가할 의사는요?”
곤란한 질문을 나름 유도리있게 피했다고 생각했건만 산 넘어 산이었다.
“연합MSC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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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