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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트 쉴드-251화 (251/285)

251화

잘 생각해보니 왜 곤란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데 신경쓸 겨를이 없다. 따라서 대답할 가치도 못느꼈다.

“일본이 공식적으로 한국에 요청한 것도 아닌데 뭐하러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김치국부터 마시는 소리를 해야하는건지 소생은 도통 이해를 못하겠소. 이곳은 천하물산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축하하는 자리이고 덩달아 천하물산의 소식을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기에 앞으로 우리 천하물산과 상관없는 질문들은 정중히 사양하겠소이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신입사원들이 한명씩 또는 무리지어 우주의 자리로 찾아왔다.

우주는 밝은 미소로 그들을 맞이하며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와 악수를 나누던 남성이 이내 자리를 뜨자 곧바로 여성 신입사원이 다가와 꾸벅 인사를 건넸다. 우주는 그녀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눈여겨보았다.

“아라 낭자. 열심히 일해서 우리 천하물산을 빛내주시오.”

“맡겨만 주시라예.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더.”

아라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우주의 기억으로 그녀와의 만남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 첫번째는 아라의 오빠 김일준이 사망했을 당시 우주가 빈곤한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서 직접 대구로 내려가서 만났을때고, 두 번째는 그녀가 잘지내는지 보기위해서 변장을 한 채 노량진에 있는 그녀의 학원과 집을 찾아갔을때였다.

우주는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그런데 우리 왠지 구면이지 않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사실은예, 쪼기 계시는 김철수 사장님하고 예전에 저희 대구집에서 같이 뵌적이 있었습니더.”

“아, 아아. 기억나는구려. 그때 그 낭자?”

“맞아예. 잘기억하시네예. 고맙습니더.”

“뭐 고마울 것 까지야. 그런데 이것 참 많이 예뻐진 것 같소. 그때는 상큼발랄한 여학생 같더니 이제는 다 큰 숙녀가 되었구려. 이만 하면 시집가도 되겠소이다.”

“주변에 좋은 사내 있으믄 사장님께서 소개시켜주시라예.”

아라는 사장님 앞에서 농담을 할만큼 넉살도 좋아보였다. 그녀의 명랑하고 밝은 모습이 그저 흐뭇한 우주가 웃으며 화답했다.

“내 한번 알아보리다.”

“농담입니더.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예.”

“음?”

우주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아라가 언제 남자친구를 사귄것일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생애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 같은 심정이었다.

표정이 조금 굳어지며 무심코 물었다.

“뭐하는 사람이오?”

“아니라예.”

아라가 수줍은 듯 시선을 내리며 대답했다.

“그분과 잘될지는 모르겠어예. 실은 지 혼자만의 짝사랑이라서 말입니더.”

이어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보다 사장님께 실례했어예. 오랜만에 만나봬서 반가운 나머지 지가 주책없이 굴었다아입니꺼. 너그러이 용서해주시라예.”

“괜찮소이다. 아라 낭자가 친근하게 대해주니 나도 기분이 좋소. 사장이라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내는 직원들이 많아 그들과 편한 대화를 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다오.”

“아, 그랬어예? 그럼 지가 회사에서 많이 어울려드릴게예. 사장님께서 심심하지 않도록 말도 많이 걸어드릴테니까 나중에 지겹다고 불평하시면 안돼예?”

우주가 마냥 훈훈한 웃음을 머금었다.

“고맙소. 낭자는 왠지 직장생활을 잘해나갈 것 같소이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우주에게 한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아저씨!

오늘 환영회에서 우리회사 사장님 하고 이야기했어요!

제가 긴장해서 실수를 했는데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정말로 근사하신 분이었어요!

아라로부터 온 메세지였다. 전에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지만,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꽤 오래걸리고 1초가 1년 같은 나머지 결국에는 연락방법을 휴대폰으로 바꾸며 서로 문자만 했다.

게다가 3년 전 서울에서 난리가 났을때 그녀에게 연락이 닿질 않아 생사여부가 불투명했던 까닭에 우주가 크게 근심을 했던 점도 한몫했다.

참고로 우주가 가진 휴대폰은 철수의 명의로 개통되어 있었다.

우주는 바로 답장을 했다.

천하물산의 사장님이라면 신우주가 아닌가요?

대단합니다. 유명인사와 만났네요.

부러워요.

부러우시죵?^^

나중에 사인 받아줄게요!!

근데 아저씨는 지금 어디세요?

집입니다.

아이들이 옆에서 뛰어다녀서 정신이 없네요.

앗, 맞다!! 조카들 사진은 언제 보내주실거예요?

꼭 보고 싶어요!! +_+

미안해요.

아이들이 사진만 찍으면 울어대서 힘들군요.

대신 갓난아기때 사진으로 보내줄게요.

아라 양은 뭐합니까?

내일 회사에서 입을 가죽슈트에 명찰을 달고 있어요.

학교를 그만두고나서 많이 바빠졌군요.

바쁘니까 외로울 틈이 없어서 좋아요.^^

***

신라그룹 본사 회장실.

이선주 회장은 늦은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었다.

책상에 앉아 뉴스 기사를 읽고 있던 그녀.

만세하듯이 양팔을 위로 쭉 뻗은 연진의 사진을 보고 분한 마음에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왜 그쪽으로간거야 나한테 올것이지...!”

똑똑.

노크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가죽 자켓에 청바지를 입은 차영웅이 안으로 들어왔다. 현재 나이 27세인 그는 머리카락을 투블럭으로 자르고 연예인 못지않은 멋을 뽐냈다.

“아직 계셨군요.”

“퇴근 안했어요?”

“집에 가려다 오늘 왠지 회장님 생각이 나서 말이죠.”

차영웅은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책상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자 마자 이선주가 보고 있던 모니터를 살짝 옆으로 돌려 보더니 이내 눈매가 가늘어졌다.

“우연진이군요. 한때 신라그룹의 에이스였던.”

“한때나 그랬죠.”

“전 지금 회장님의 속을 알 것 같습니다. 우연진이 복제된걸 진작에 알았다면 우리 신라그룹으로 당장 끌어들였을텐데 하고 많이 아쉬우시겠죠?”

“전혀요. 이 기사는 우연진에 관한 기사라서가 아니라 경쟁기업의 기사이기에 본겁니다. 천하물산은 이미 사라진 제네틱스로부터 뻗어나온 것 같은 기업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더군요.”

“그것보다는 따님이 거기에 있어서겠죠.”

“......”

차영웅은 그녀가 앉은 의자 뒤로 걸어갔다. 유리벽 너머로 비치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오후쯤에 일본 요시자와 그룹 관계자한테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조만간 그쪽 회장님과 함께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회장님과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타이탄급 사탄 때문에?”

“그렇겠죠. 아마도 우리 MSC와 연합레이드를 벌이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선주는 코웃음을 쳤다.

“가망성 없다는 것을 잘 알텐데, 올 필요 없다고 전하세요.”

“제 생각으로는 좋은 기회인것 같습니다.”

“잠시 잊은것 같은데, 저들이 잡자는건 타이탄급 사탄입니다. 매머드급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우리 실력은 세계 최고이며, 장비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런 신라MSC가 매머드급에서만 머무를순 없죠. 세계 최초로 타이탄급 사탄을 잡아 새롭고 값비싼 자원을 채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듣기로는 나노 슈트의 윗단계 파워드 슈트가 '네오 라바 슈트' 라고 하는데, 우리 신라의 연구진들이 말하길 이미 그것을 개발할 기술력은 갖고 있는데 써먹질 못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타이탄급 사탄의 골수를 채취해야지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입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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