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천하MSC 포럼실.
“이 상태로 레이드를 뛰었다가는 분명 도발력이 튈겁니다. 사장님의 아트만 에너지가 너무나 강력해서 탱커인 미라 씨의 능력과 장비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천하MSC 1군 팀원들이 모두 모인가운데, 애널라이저 김토성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드디어 코끼리급 사탄을 공략할만한 장비와 인원은 대충 다 모였건만, 우주의 높은 아트만 에너지 수치가 걸림돌이었다.
보통 레이드가 성공하려면 탱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로얄가드가 도발력을 잘 쌓아야지만 사탄이 다른 팀원들을 쳐다보지 않고 자신을 계속 때리기 때문에 그로인해 안정적인 레이드 운영이 가능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팀원들보다 한단계 더 높은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있어야만 했다.
로얄가드가 돈 잡아먹는 직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들은 전용무기와 방패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여기에 파워드 슈트에 증폭석을 박으면 더 좋다. 그래야지만 딜러나 힐러보다도 도발력을 더 많이 쌓을 수 있게 되고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가 있었다.
일류기업에 취직할수록 실력좋고 장비도 뛰어난 딜러(위자, 스나)들을 만날 확률이 높다. 도발력은 아트만에너지의 수치가 높을수록 그에 비례해서 높아진다.
중소기업에 있다가 대기업으로 이직한 로얄가드들은 이들의 도발력을 감당해내기 위해서 은행에 빚을 져서라도 장비를 무조건 업그레이드 해야만했다. 그래야만 높은 도발력 수치를 유지할 수가 있고, 회사에서 짤릴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천하MSC의 메인 탱커인 강미라는 자신의 장비 업그레이드에 여태껏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전용무기와 방패도 없었다.
그런데 이는 무조건 그녀의 탓만도 아닌게, 그간 천하MSC는 토끼급이나 호랑이급 같은 변변찮은 돌연변이 생물만 잡던 팀이었고, 버는 수입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더구나 우주는 그녀가 가족이다보니 회사 사정이 어려울땐 주급을 못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우주의 아트만 에너지 200만 와트를 미라가 감당해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동안 우주와 함께 레이드를 벌였던 국군MSC의 이만철, 쯔단MSC의 서진동, 오성MSC의 임현주의 경우에는 그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장비가 뒷받침 해줬기에 겨우겨우라도 우주의 도발력을 감당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만철의 경우에는 한 국가의 군대를 대표하는 MSC의 탱커인 만큼 국방부의 지원으로 하이테크 슈트에 증폭석 2개라도 장착되어 있었고, 쯔단MSC의 서진동은 3개, 오성MSC의 임현주의 경우에는 증폭석 4개가 장착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평소 탱커란 직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에 자비로 큰 돈을 들여가며 전용무기와 방패에 각별히 신경을 써왔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레이드 일정을 한동안 미뤄야 한단말인가...”
우주는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뾰족한 수가 없었다.
좋은 방법이라면 미라의 하이테크 슈트에 증폭석을 장착시켜주고 전용무기와 방패를 구매해주면 그만이지만, 최근 하이테크 슈트 25벌을 구매하고 새로운 팀원들까지 영입하면서 자금이 많이 부족했다.
아울러 소라가 내일 모레 출소하는 즉시 레지스트 쉴드의 도로망 건설 작업을 위해서 천하건설 설립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처음에 도발력을 충분히 쌓고나서 공격을 시작하면 안됩니까?”
수희가 토성에게 물었다.
토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미라 씨의 장비로 사장님의 도발력을 감당하려면 최소 1시간은 쌓고 시작해야될겁니다. 그런데 우린 힐러가 영애 씨 한 사람뿐인데다가 리그베다란 직업이 원래 반쪽짜리 힐러나 마찬가지라서 그 1시간 만에 아트만 에너지가 앵꼬 날거예요.”
“그럼 공격진 중에서 사장님만 빠져있다가 레이드 막바지에 다다를때쯤 투입하는건요?”
“그것도 썩 좋은 방법이 아니예요. 솔직히 반쪽 힐러인 리그베다 한 명만 데리고 레이드를 하겠다는 발상부터가 사장님의 어마무시한 공격력을 전제로 짧은시간에 단숨에 잡아내겠다는 작전인데, 핵심 딜러인 사장님이 빠졌다간 레이드 시간이 길어지고 큰일날겁니다. 아무리 코끼리급 사탄이 사탄 중에서 제일 약체라지만, 그래도 힐러 하나로는 부족해요.”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는 가운데, 우주는 잠시 포럼실 뒷쪽으로 빠져서 그곳에 있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마셨다.
찬물을 마심으로써 복잡한 머릿속을 잠깐 식힐려고 했다.
그때 긴 파마머리에 캐주얼 차림의 미라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녀의 표정이 시무룩하고 기운이 없어보였다.
“미안해요 자기. 저 때문에...”
“낭자는 아무 잘못없소이다. 모든일은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서 하나씩 하나씩 준비를 해야하는데 소생이 너무 급하게 서두를려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거요.”
“아니예요. 제가 평소에 열심히만 했다면 괜찮았을텐데.”
“낭자는 못한게 없소. 오히려 소생이야말로 낭자에게 큰 부담을 준것 같아서 미안하오. 더이상 슬픈 표정 짓지말고 부디 마음을 편히 가져주시오.”
“하지만 너무 힘들어요. 이대로는 자괴감마저 들것 같아요. 저 하나 때문에 모두가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볼수록 제 마음이 더 찢어지는 것 같아요. 흐흑...!”
미라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우주에게 대뜸 안기려고 들었다.
“어림없다 이년.”
그 순간 료코의 세키가하라 칼집이 나타나 미라를 가로막으며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미라가 고개를 돌려보니 기모노 차림의 료코가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료코는 코웃음을 치며 미라에게 핀잔을 주었다.
“네가 누구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모습은 처음봤다. 거 주제를 알아서 좋구나. 이참에 팀장인 나한테도 그래보거라. 너그럽게 받아줄터이니.”
미라가 정색을 하며 콧방귀를 꼈다.
“오해하지마. 너한테 줄건 이것뿐인데?”
미라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료코는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여유로워보였다.
“흥. 그래야 니년 답군.”
“어? 혹시 화가 안나는거야?”
“평소 네년 답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길래 기운을 북돋궈줄 생각에 의도적으로 했던 말이었다. 걸려든 것은 네년이지 내가 아니니까.”
미라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전에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더니 많이 노련해졌네.”
“날 우습게 보지마라. 네년과 함께 산지가 3년이다. 게다가 조금 전 서방님께 보인 슬픈 표정도 가짜였겠지.”
“그것도 들통나버린 거야?”
“검객 생활 자고로 20년. 검을 쓰다보면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다.”
료코는 덧붙였다.
“하나 더 말해줄까?”
“뭔데?”
“서방님께서도 네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워낙 상냥한 분이신지라 진지하게 받아주셨지.”
“진짜로? 와아, 역시 우리 자기라니까.”
“흥! 이제 알았느냐? 맨날 장난만 칠 궁리나 하고 있는 너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분이시지. 넌 그분의 생각을 반에반도 읽지못할게야. 본부인인 나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료코와 미라가 서로 말을 주고받는 동안, 우주는 어느새 앞자리로 가서 회의중이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현재 회사 자금이 부족한 상태고 끌어다 쓸 곳이라고는 은행뿐이오. 2000억 정도 대출을 해서 증폭석은 포기 하고 전용무기와 방패만이라도 구매합시다.”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건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럼 이번주 중으로 주주총회를 소집하실 생각입니까?”
토성이 물었다.
법인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을 하려면 주주총회를 열어 이사회의사록을 작성해야한다. 모든 주주들을 대표해 대출 행위가 대표이사에게 위임 되었다는 사실을 은행에 증명해야했다.
참고로 천하물산의 전일 시가총액이 5조에 달했고 우주의 지분은 70%에 소민이 5% 료코가 5% 미라가 5%를 보유하고 있었다. 외부에 팔린 나머지 15%의 지분은 주주들이 경영에 별 관심이 없고 배당 등 자산소득에만 관심이 있는 투기성 투자가 짙었다.
주주총회를 여나마나 우주의 주도하에 은행 대출은 확실했다.
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합시다.”
그날 저녁 10시.
뜬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소민이 갑작스럽게 복통을 호소하며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가 몸무게 3.5kg의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예정됐던 출산일보다 열흘 가량 앞당겨 태어난 아기였다.
우주는 크게 기뻐하며 힘차게 우는 아들을 품에 안았다.
“현우야! 너와 만나게 되어서 대단히 기쁘구나!”
“응애~! 응애~! 응애애애애!”
침대에 누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소민이 흐뭇한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그녀는 흐트러진 긴 머리를 가볍게 쓸어내리고 자신의 데바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민의 능력은 치료. 출산으로 생긴 통증 따위 순식간에 싹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거뜬히 일어나 침대 밖으로 걸어나오더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놀란 채로 서 있는 간호사에게 말을 걸며 자신의 옷을 찾았다.
우주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산후조리원에는 안가도 되겠소?”
“그런곳에 갈 시간이 어디있어요. 한시가 급한 마당에 내일부터 당장 회사로 나가서 일해야죠.”
그렇게 당일 새벽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우주는 부인들을 거실로 불렀다.
이틀 후 소라가 출소하는 시점에서 미리 밝혀두고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게 한 가지 있었다.
현아는 미소와 유라를 재우고, 현우를 돌보느라 다른방에 가 있었다.
료코와 미라, 소민은 소파에 앉자마자 그를 쳐다보았다. 소민은 무언가 심각한 일 같아서 약간 낯빛이 어두웠다.
우주는 소파에 앉자마자 나직하게 운을 뗐다.
“909 울트라 프로젝트 말이오. 사실은 기존에 말했던것과 좀 다른게 있소.”
“뭔데요?”
소민이 즉시 물었다.
우주가 턱을 쓰다듬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909 울트라 프로젝트라는건 사실 우리가 공략한 사탄의 사체 일부를 국방부에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라 소생을 통해 수백명의 데바를 양산하기 위한 프로젝트였소.”
우주는 계속 말을 이어나가면서 모든것을 솔직하게 토해냈다. 더해서 수희가 임신한 일, 영애가 임신한 일, 연화가 임신한 일까지 소상히 다 밝혔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두번째 능력이 개방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까지.
“수희의 아기 한 명, 영애 씨의 아기 한 명, 연화라는 사람의 아이까지 합쳐서 세 명. 여기에 우리 아이들까지 합하면 총 여섯이 되니까 두 번째 능력이 생기는거네요?”
“그렇소.”
소민의 물음에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요. 무엇보다 데바가 생길수록 우리 회사 소속 데바도 늘어나니까 정말로 잘된 일이예요. 아기들이야 뭐 그녀들이 알아서 키운다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요즘 선진국에서는 정자은행이나 대리모가 점점 늘어가는 마당에 우리도 생각을 바꿀때가 됐다고 봐요.”
“아무렇지도 않은거요?”
“네. 참고로 옛날에 로마가 강성했던 이유가 뭔지 아세요? 개방적인 성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하는데, 비록 우리는 일개 기업이고 한 국가에 견줄바는 못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성관계에 기반해 일의 능률을 올리고 회사의 세력을 키워보는 것도 좋다고 봐요. 한가지 확실한건 데바가 많아질수록 회사가 수익을 내는건 시간문제니까요.”
미라가 코웃음치며 그녀를 비꼬았다.
“자유로운 성관계에 기반한다라, 그럼 당신도 밖에 나가서 다른남자랑 마구잡이식으로 하고 다닐려고?”
“제가 말하는건 우주 씨에 한해서입니다. 저한테 우주 씨처럼 남들이 데바가 되게끔 하는 강대한 능력이 있는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현명한 여자라면 어떤게 소중한지 무엇이 행복인지 잘 알겠죠. 저처럼요.”
소민의 반응은 뜻밖에 여유로웠다. 제 아무리 본처에 첩까지 두고 있지만, 아무데나 씨를 뿌리고 다닌다고 해서 부인들이 화내리라 생각했던 우주는 그녀의 변호로 무척 안심이 됐다.
그는 시선을 돌려 료코와 미라의 반응도 살폈다.
“서방님!”
료코는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는 중이었다.
우주의 손을 덥썩 잡더니, 빨리 둘째를 임신하러 방으로 들어가자며 난리를 쳤다. 자신이 본부인이니까 첩들보다 무조건 애가 한 명 더 있어야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또 이대로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다간 본부인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속사정도 언뜻 엿보였다.
우주가 극구 거절했다.
“임신은 안돼. 지금 우리팀에서 네가 빠지면 큰일나. 당분간 피임을 철저히 하고 나중에 회사에 여유가 있을때 둘째를 갖도록 하자.”
그에 반해 미라는 별로 신경도 안쓰는 눈치였다. 그녀는 '전 언제나 자기편이니까 자기가 하자는대로 따라갈게요. 알아서 해주세요.' 하며 하품을 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자신의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
며칠 후.
3년 간 교도소에서 복역했던 소라의 만기 출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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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