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그리고 마침내 천하MSC의 첫 코끼리급 사탄 레이드가 있는 날.
아침 일찍 현장에 와있던 우주가 분주한 직원들 속에서 미라에게 나노슈트의 사용법을 설명 해주는 중이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아트만 에너지를 한번에 다 쏟아내고 싶을땐, 마치 자신이 수류탄이 된 것처럼 폭발하는 이미지를 상상하라고 그랬소. 그럼 나노슈트가 뇌의 신호를 인지하고 실제로 구현해준다고 하더이다.”
“구현해주는 건 좋은데 아트만 에너지를 한번에 다 써서 뭐하죠?”
“그건 이거요. 아마데우스측 직원이 말하길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라 그랬소.”
“최후의 수단으로만?”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되겠지만, 예를들면 자폭 같은거요. 레이드 도중 팀원들이 다 쓰러진 상태고 나만 살아남았다 생각해보시오. 거기에 사방이 꽉 막혀 도무지 탈출할 방법은 없고 눈앞에는 수많은 적들이 개떼처럼 몰려오고 있소.”
“정말로 짜릿한 상황이네요.”
“그때 이 기술을 쓰는거요. 어차피 적들에게 둘러싸인 채 놈들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치욕을 당할바에야 조금이라도 발악을 하고 죽어보자는 거지. 자신이 가진 모든 아트만 에너지를 일순간 다 쏟아부어서 주변을 초토화시키는거요. 운좋으면 적들이 전멸 당할 수도 있는 일이고.”
“와우. 위자처럼 범위 공격이군요. 한 번 밖에 못쓴다는 게 단점이지만. 폭발 반경은 얼마나 된다던가요?”
“체내에 남아있는 아트만 에너지의 잔량에 따라 다르다 그러오. 하지만 손톱만큼의 양만 남아있어도 반경 10M 안에 있는 물체는 다 쓸어버릴 수 있다더군.”
미라가 슬며시 미소지었다.
“과연 써볼일이 있을까요?”
“제발 없길 바라오.”
그때 곁으로 소민이 다가왔다.
“당신. 이건 이렇게 하는건가요?”
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하는 게 어려웠는지 우주에게 물어왔다. 덧붙여 데바 능력이 치료 능력이었던 소민까지 팀원으로서 당당히 레이드에 참가했다. 그녀의 아트만 에너지의 성질은 평상시 능력과 동일하게 베다로 판정되었으며, 힐러가 부족했던 천하MSC로서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하지만 우주는 경험없는 그녀가 레이드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를 극구 만류하며 전력외로 분류했지만, 소민은 비싼 돈을 주고 베다를 영입해올 바에야 차라리 그 돈을 자신이 받고 천하MSC의 팀원이 되겠다며 그를 강력하게 설득했다.
아마도 집까지 찾아온 이선주를 보고 그녀의 머릿속엔 무언가 떠오르는게 있었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늘 책상에만 앉아있던 자신. 거칠고 위험한 현장에 있으면 성격이라든지 어머니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크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이다.
“이건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되는거요.”
우주는 벨트를 잡고 그녀의 허리를 코르셋을 조이는 것처럼 꽉 조여준 뒤 잠금장치를 걸었다.
“아, 이렇게 하는거구나. 고마워요.”
“답답하진 않소?”
“좀 갑갑하긴 하지만 느슨한것 보단 나은 것 같아요.”
소민이 긴장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주는 막사 앞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날이 기사화 되고 전세계인들의 주요 관심대상이던 천하MSC의 파급력은 이 날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과 취재진들의 열기로 입증됐다.
레이드에 참가하는 팀원들의 막사 근처에는 회사 관계자들과 투자자들, 그리고 국내외 취재진들, MPO 코리아 관계자들, 해외 유명기업에서 파견나온 스카우터, 심지어 MPO 국제본부 직원을 비롯해 레이드 강국인 중국과 러시아 관계자들까지 집결해 있었다.
오늘 레이드는 그야말로 지구촌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특히 세인(世人)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바로 코끼리급 사탄의 공략 시간.
400만 아트만 에너지를 가진 신우주는 과연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보여줄 것인가.
전문가들은 공략시간을 2분 이내라고 분석했다. 지난번 오성그룹과의 협동레이드로 코끼리급 사탄을 잡았을때 세운 기록이 4분 49초였고, 당시 우주의 아트만에너지는 200만이었다. 전문가들은 그 기록을 기준 삼아 예상했다. 참고로 전 세계 기업의 코끼리급 사탄의 평균 공략 시간은 30분.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나고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도끼와 방패를 든 미라가 농가를 부수고 있는 코끼리급 사탄을 향해 힘차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사탄의 발목을 도끼로 한대 후려치는 순간 무전기를 통해 애널라이저 김토성의 외침이 들려왔다.
-미라 씨가 아주 그냥 최고입니다! 꽉 붙들어 맸으니까 안심하시고 바로 공격하십시오!
미라의 스펙이 대폭 향상되다보니 도발력을 쌓는 시간 따위 전혀 필요치 않았다. 공격진들은 토성의 신호와 동시에 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사탄은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 곧바로 페이즈 전환을 했다.
공격진들은 다시 토성의 신호로 일제히 공격을 멈추고 기다렸다가 2페이즈로 완전히 돌입하자 딜을 재개했다.
2페이즈 역시 쉬운건 마찬가지였다.
별다른 긴장감 없이 간단하게 3페이즈가 찾아왔고, 날개가 생긴 사탄이 날개짓을 하며 허공으로 솟기도 전에 중간에서 떨어뜨려버리면서 레이드는 무사히 끝이났다.
레이드 내내 위기가 찾아올 틈이 없는 실로 무지막지한 공격력이었다.
“와...!”
지켜보고 있던 취재진들은 저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코끼리급 사탄 레이드가 단 2분여만에 끝났다는 기사를 급히 써내려가느라 손가락이 불탈 정도였다.
-천하MSC 세계 최고의 공격력으로 코끼리급 사탄 손쉽게 격파!
-천하MSC! 말뿐이 아니었다!
-기적이 일어나다! 인류의 혁명!
우주는 레이드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장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크게 외쳤다.
“이제부터 코끼리급 사탄의 씨를 말려버리겠소! 코끼리급 사탄이 여러분의 안방을 습격하거든 우리 천하MSC에게 맡겨주시오!”
그날부터 천하MSC는 하루가 멀다하고 하루 두 차례 코끼리급 사탄을 잡으러 전국 방방곡곡 안가는 곳이 없었다.
보통 다른 MSC의 경우에는 코끼리급 사탄을 잡는데 최소 30분, 심하면 1시간이 넘어가며 팀원들의 소모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대략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의 휴식을 필요로 하지만 코끼리급 사탄을 잡는데 단 2분여가 걸리는 천하MSC에는 그런게 없었다. 어디에 코끼리급 사탄이 출몰했다고 신고가 오거나 비공격 성향을 가진 녀석들을 직접 찾아가며 무작정 잡고 보았다.
이렇다보니 회사의 매출이 급상승하는건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일일 최고 매출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는 등 매출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본격적인 대기업으로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팀원 중에 현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완벽하게 레이드를 마친 후 철수 준비를 하던때였다.
왠지 기운없어보이는 그녀를 발견한 우주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어? 왜 똥씹은 얼굴이냐?”
현아는 조금 울것 같은 얼굴로 땅을 쳐다보며 작게 입술을 열었다.
“나... 진짜 너무 못하지 않냐?”
“니가 왜 못해.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이거 봐.”
현아는 손에 들고 있던 데미지 미터기를 보여주었다.
촤르륵.
1위 신우주(천하MSC) 250,554,164 St.
2위 료코(천하MSC) 84,369,155 St.
3위 우연진(천하MSC ) 39,787,567 St.
(중략)
21위 박현아(천하MSC) 305,654 St.
우주는 딜러가 준 피해량 순위를 대충 보고나서 바로 현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런거 신경쓰지마. 넌 아직 수라니까 그런거잖아.”
“수라든 아니든 이게 뭐냐구. 그리고 나만 수라도 아니잖아. 그런데 맨날 나만 꼴찌야.”
“훈련을 더 해봐 그럼.”
“훈련을 백날해도 이래.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줄 알아? 그런데 막상 레이드가면 또 꼴찌고... 이런거 재미없어. 기자들도 나한테 아무도 관심 없구 맨날 너나 우연진이나 료코 언니 아니면 소민, 미라, 수희 언니 등등. 옛날엔 이러지 않았는데. 씨. 나만 관심 밖이야. 나쁜놈들.”
우주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보이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너무 성급해 하지마라. 차차 나아지겠지.”
한편, 우주는 바쁜 일정속에서도 삼일에 한번씩 909 울트라 프로젝트 연구소를 방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연화와 관계를 가진 2주가 넘은 시점에 그녀의 임신 소식이 들려왔고, 이미 예상했던대로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는 데바가 되었다.
연화가 가진 능력은 동물을 마치 자신의 하수인 마냥 부리는 것이었다.
우주가 임신 소식을 듣기 전 그녀의 연구실을 방문했을때, 부대 내에서 키우는 개들과 주변의 산짐승들이 연구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바람에 실내에 날리는 무수한 털들과 그 냄새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낭자는 데바가 되었고, 이제 또 다른 처자와 성교를 하면 되는거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우리 연구의 목적은 어떻게 데바화가 진행되는 것인지 밝혀내고 그것을 모든 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신약을 만드는데 있지 이사람저사람 임신을 시켜서 국가 소유의 데바를 무작정 늘리겠다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럼 이제 성교는 안해도 된다는 거요?”
“당분간은 그럴 것 같네요. 언제 다시 부탁할지는 모르구요. 일단은 제가 제 몸을 관찰하면서 사장님의 정자 연구도 병행할 생각입니다. 인공수정이 성공하도록 말이지요. 모르는 여성들과 언제까지 성교를 하실 순 없잖아요? 부인분들도 탐탁치 않아 하실테고.”
연화의 생각이 무언가 조금 달라진것 같았다.
그 차이가 미묘했지만 우주는 신경 안쓰기로했다.
“그런것도 있을것 같긴 한데, 뭐 아무튼 좋소이다. 어쨌든 낭자가 데바가 되었으니 이제 내 조건대로 해주시오.”
연화는 다음날 부터 천하물산으로 출근했다.
하이테크 슈트를 착용한 그녀의 아트만 에너지의 성질은 천만다행으로 베다였다.
이로써 천하MSC는 소민에 이어 두번째 힐러를 갖게 되었고, 여기에 리그베다인 영애까지 합치면 어중간한 매머드급 사탄 정도는 노려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MSC로 거듭나게 되었다.
“대단해...!”
“요즘 잘나가는구만.”
“난 결국 신우주가 해낼줄 알았지.”
최근 TV에 자주 등장하는 천하MSC를 보면 파죽지세란 말이 실감날 정도라고 국민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천하MSC는 강원도에서 출몰한 코끼리급 사탄을 싹쓸이 한 후 그 아래지방 충청도로 내려가 비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코끼리급 사탄을 모두 독식하고도 모자라서 경상도까지 내려가더니 그 일대의 코끼리급 사탄까지 전부 거덜내버렸다.
덩달아 천하물산이 코끼리급 사탄의 사체를 유통시장에 매일매일 무식하게 공급함으로써 국내 유통시장을 비롯해 해외로 수출되는 코끼리급 사탄의 사체의 양도 점점 늘어만 갔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지다보니 시장가격이 하락 하는것이 당연지사였고, 그렇다보니 종래의 코끼리급 사탄만을 잡아 기업을 운영하던 중소기업들이 자신들의 상권이 타격 받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우주에게 몰려와 술 한잔씩 사주며 레이드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래서 이제 종목을 바꿔보려하오.”
우주도 언제까지 코끼리급 사탄만 잡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코끼리급 사탄을 잡으면서 팀원들의 결속력도 단단해졌고, 실력과 경험도 충분히 늘었다고 생각한 그는 그 즉시 오성그룹의 현주에게 연락해 매머드급 사탄 협동레이드를 성사시켰다.
협동레이드 당일.
우주는 조심스레 자신의 두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그는 요즘 조심스러웠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까지 합해서 현재 그의 핏줄을 물려받은 아이는 총 여섯.
일전에 막내가 말하길 아이 세 명당 새로운 능력이 개방된다고 했고,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 두 번째 통증이 시작될지 몰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