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이어서 다른 공간 C.
그곳에는 료코를 포함해 천하MSC 세 명과 하나를 비롯해 신라MSC 세 명이 서로 마주보며 대치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료코와 하나를 제외한 양쪽 팀원들 간의 2 대 2 신경전이었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 하나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뒤로 빠져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3년 전에 반은 개조수술로 인해서 애당초 감정선이 마비되었으므로 바쿠의 디버프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음.”
한쪽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고, 반대쪽엔 산으로 가로막혀 있다.
하나가 마땅한 길이 있는지 근처를 한바퀴 돌아보고는 다시 팀원들에게 다가갔다.
“처음부터 니들이 이렇게 나올줄 알았어!”
“뭘 알아 알긴! 니들이 먼저 시작한거지!”
“어떻게 레이드 도중에 그딴짓을 할 생각을 해!”
“내가 했냐! 내가했어?”
양쪽의 팀원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나는 신라MSC의 남녀 팀원 두 사람의 등을 한번씩 툭툭 친 후 말했다.
“둘 다 적당히 해. 여기서 나가는게 먼저야.”
“윤 과장님! 여기서 나가기 전에 이놈들부터 조져야죠!”
“이 녀석들과 함께 다니다간 큰일 날거예요! 처음부터 싹을 잘라버려야 해요!”
“불필요한 싸움을 벌였다간 오히려 내가 너희를 가만놔두지 않겠어. 그러니까 그만해.”
“하지만 과장님!”
“과장님...!”
“저쪽에 있는 여자를 봐.”
하나는 천하MSC 팀원 두 사람 뒤쪽에 멀치감치 떨어져 있는 료코를 가리켰다.
그녀는 지금 쭈그리고 앉아서 땅바닥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다.
“저 여자는 너희가 쉽게 감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괜히 화를 돋궈서 헛되이 죽지나 말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여길 빠져나가는게 현명하다고 본다.”
하나의 충고로 팀원들의 기세가 죽고 말이 없어지자 천하MSC 팀원들은 더 열을 올려 그들을 비웃고 조롱했다.
하지만 천하MSC 팀원들의 짓궂은 행동은 오래못갔다.
주변을 살피고 온 료코가 천방지축처럼 보이던 천하MSC 팀원들을 향해 호통을 치고 타이르며 양팀 간의 분쟁은 한방에 일단락 됐다.
료코는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하나에게 다가갔다.
“셋 중에서 네가 우두머리냐? 잠시 할 얘기가 있다.”
“말해보세요.”
료코는 손에 쥔 갈색 털뭉치를 들어보이며 먼곳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거대한 곰 발자국이 발견됐다. 여기에 왔다간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고 아직 근처에 있을 것 같은데 서로 싸울 시간이 없다. 조금 전처럼 으르렁대기만 해서는 서로 득 될 것도 없어.”
“그건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현재 우린 한팀이니까 도와드리는게 당연하겠죠. 기꺼이 협력하겠습니다.”
이렇게 C공간에 떨어진 사람들은 료코와 하나의 주도하에 분쟁없이 지낼 수 있었다.
여섯 사람은 무언가 단서라도 찾을 생각에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모두가 강을 따라 걷는 와중에 문득 하나가 료코에게 말을 건넸다.
“료코 씨는 신우주 씨랑 같이 사신다죠?”
“그렇다. 서방님과 함께 산다는 건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지.”
“남편이니까 신우주 씨에 대해서 잘아시겠네요.”
“물론이다.”
“그래서 물어보는데, 혹시 제가 그 분하고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료코는 눈알을 굴리며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서방님과 네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예전에 집들이를 할때 널 본적은 있다.”
“집들이? 두 분이 사는 집 말인가요?”
“당연하지.”
“제가 거기에 갔었나요?”
“왔었다. 기억이 안나나 보지?”
“네. 좀 어렴풋 하네요. 그런데 그떄 저를 봤으면 그럼 우린 구면인가요?”
“아기용품을 잔뜩 사들고 왔었지. 그래서 더욱 기억난다. 네가 유일했거든.”
하나는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료코에 대한 기억이 전혀없다.
이상했다.
“제가 왜 료코 씨 집들이를 갔죠?”
“왜냐니. 그땐 우리 서방님의 직장 동료였으니까 여러사람들과 다 같이 축하해주러 온거잖느냐.”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제가 우주 씨의 직장동료...?”
매일 즐겨보던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장면에 료코가 무심코 웃으며 말했다.
“너랑 우리 서방님이 제네틱스에서 같이 일했잖느냐. 혹시 3년 전 일이 기억이 안나는게냐?”
하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에... 없나보네요.”
***
D공간.
어딘가의 동굴로 떨어진 연합MSC 팀원들 간에 내분이 발생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적으로, 천하MSC와 신라MSC가 양분되어 전투를 벌였다.
“이 새끼들 다 죽여버려!”
처음 D공간에 떨어졌을 무렵, 태평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어리둥절해 하는 한동식을 발견하자마자 주저없이 달려들며 주먹다짐을 했다.
이어 그 광경을 보고 흥분한 다른 천하MSC 팀원 한 명과 신라MSC 팀원들까지 가세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태평과 신라MSC 팀원들은 결국 한동식과 천하MSC 팀원 한 명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홀로 살아남은 천하MSC 팀원은 바로 미라.
미라는 싸움이 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시 사라졌고, 태평과 다른 팀원 두 사람은 그녀를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자신들이 천하MSC 팀원들을 살해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목격자를 그대로 남겨둬서는 안된다.
그런 일념하에 세 사람은 동굴 깊숙이 걸어들어갔다.
더불어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노슈트의 투명화 모드를 실행시킨 상태에서 그녀를 추적했다.
동굴은 코 앞도 보이질 않을 만큼 어두웠다.
“하필이면 강미라가 남아가지고. 예전에 그년 또라이라고 소문났었다는데.”
팀원 중에 한 명이 중얼거리자 다른 팀원이 받았다.
“난 차라리 강미라라서 좋은데?”
“니 취향이냐?”
“애낳은 유부녀에다가 몸매도 섹쉬하잖냐. 생각해보니까 이번에 잘하면...”
그때 앞서걷던 태평이 뒤를 돌아보더니 두 사람의 이마를 딱딱 때리며 작게 말했다.
“소리내지마 새끼들아. 우리가 추적중인거 몰라? 되려 당해서 꼬추에 칼 맞고 싶냐?”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렇게 세 사람은 투명화 모드를 유지한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나노슈트의 기능으로 얕은 물속을 걷지 않는한 발자국 소리는 왠간해선 나질 않았으며 가끔씩 천장에 메달려 있던 박쥐가 푸드득 날개짓 하는 소리와 물 떨어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500m 이내의 물체를 모두 식별할 수 있는 센서는 한동안 반응하지 않았다. 어쩌다 삐삐 소리가 난다 싶으면 뱀이나 쥐였다.
매번 허탕만 치며 한참을 묵묵히 걷는 와중에 팀원 하나가 불안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태평 형님. 너무 깊숙이 들어가면 위험할것 같은데요. 조금만 더 가다 뒤로 빠지죠.”
“지랄 말어. 나중에 문제 생기기 전에 꼭 그년을 잡아죽여야 해.”
“하지만... 어?”
그때였다.
돌연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며 식별 센서에 여성의 윤곽이 잡혔다.
미라가 분명했다.
동시에 세 사람의 손에 힘이들어가며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튀어나가 제압을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알몸으로 나타난 미라의 모습을 보고 놀란나머지 안색이 크게 변하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저, 저건 뭐야! 파충류...?”
피부색이 녹색으로 변한 미라의 몸에는 파충류와 흡사한 비늘이 촘촘하게 돋아있었다.
그녀가 세 사람을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안녕, 기다리고 있었어.”
태평이 눈을 부랴리면서 소리쳤다.
“징그러운 년! 죽여!”
공격 신호와 동시에 세 가닥의 아트만 에너지가 미라를 향해 발사됐다.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공격을 받더니 피부가 까맣게 탄 채로 철푸덕 쓰러졌다.
살이 탄 냄새가 슬그머니 피어오르며 코를 찔렀다.
태평이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시체처럼 누워있는 미라를 발로 걷어찼다.
퍽!
시커멓게 탄 젖가슴이 조금 출렁거리기만 할뿐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팀원 하나가 다가오더니 침을 퉤하고 뱉었다.
“이년 괴물인가? 아까 뭐였죠?”
“내가 아냐?”
태평이 대꾸하면서 다시금 미라를 걷어찼다.
퍽!
확실히 죽은 것 같다.
그럼에도 태평은 불안했는지 단검을 빼내들었다. 그것을 옆에 서 있던 팀원에게 건네주더니 말했다.
“목 하고, 팔 하고, 다리까지 다 잘라.”
“예? 저보고 자르라고요?”
“그럼 내가할까?”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서 지켜보던 팀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님 니가 할래?”
그는 절대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싫댄다. 그러니까 니가 해.”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사지를 굳이 자를 필요가...”
“에휴, 개새끼.”
태평은 단검을 빼앗아 들더니 쭈그리고 앉아서 죽은 미라의 팔을 붙잡고 서걱서걱 썰기 시작했다.
“나노슈트의 기능 중에 상처수복 기능이 있는거 몰라? 피부가 탔다고 안심하긴 이르단 말이야. 지금의 공격으로 적으로 판정된 우리가 떠나고 나면 나노슈트가 금세 이년의 피부를 회복시켜줄거다 병신들아.”
“아, 그래서 자르라고 하셨구나.”
미라의 시체는 토막을 당한 채 그곳에 버려졌다.
이제야 안심한 세 사람은 동굴 입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밝은 햇살이 비치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전원 나노슈트를 해제했다.
아무래도 내 몸이 아니다보니 슈트를 오래 착용할 수록 그 답답한 기분이 가중된다.
세 사람은 입구쪽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잠시 쉬기로 했다.
그들이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을 무렵, 동굴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의 데바 능력인 재생 능력을 활용해 어느새 정상적인 모습으로 되돌아온 미라가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앞으로는 타이탄급 사탄만 골라 잡아야 할까봐. 나락이라는 거 재밌네. 사람을 실컷 죽일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미라는 그리 착하지 않다는 것을 오랜만에 보여줄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우주와 만나 애를 낳고 살면서 깊숙이 잠들어 있던 처녀시절 본능이 용솟음 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천사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으면서도 누구든지 눈빛만으로도 떨게 만들 수 있는 그녀.
“심판은 우리 자기에게 맡기고 모두 죽여주지.”
미라는 밑을 쳐다봤다.
자신의 몸에서 잘려 나간 팔과 다리 그리고 입을 벌리고 눈이 뒤집힌 채 새까맣게 타 죽은 얼굴이 보였다.
또다른 자신을 보니 묘하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을 흉내내어 만든 단백질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잘린 신체를 하나씩 쥐고 손톱으로 살을 찢었다. 피부가 타서 그런지 쪼개는 것도 쉬웠다.
곧 피부속에 심어져 있던 나노바이오칩을 찾아 다섯 개를 모두 입안에 넣고 꿀꺽 삼켰다.
미라의 체내 세포들이 알아서 나노바이오칩을 운반해주며 저마다 신체 각 부위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다음으로 잘린 다리를 집고 허벅지 부분의 살을 모조리 발라냈다.
허벅지뼈인 대퇴골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것을 양손으로 잡고 이쑤시게 부수듯 가볍게 부러뜨렸다.
타닥!
“웰컴.”
그녀는 부러진 부분을 유심히 돌려보며 흐뭇해했다.
단 한 번만에 아주 뾰족하고 날카로운 무기를 얻을 수 있었다.
무기도 얻었겠다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미라는 단검만한 크기의 뼈칼을 쥐고 자신의 데바능력 중 하나인 투명화 기술을 써서 금세 모습을 감췄다.
그녀가 가야할 곳은 하나뿐이다.
동굴의 입구로 향했다.
동굴 입구.
바위에 걸터 앉아 있던 신라MSC 팀원 중 하나가 근처에 서서 밖을 내다 보고 있던 태평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까 너무 성급하게 죽인거 같아요.”
“뭐가?”
“강미라 말이에요. 이쪽은 남자 셋이고 그년은 혼자였는데 왜 우린 보자마자 죽였을까요. 아무리 괴물이었어도 재미 좀 보다 죽였으면 좋았을텐데.”
“병신 새끼. 넌 파충류처럼 징그러운년을 보고도 꼴리냐?”
다른 팀원이 말했다.
“이 부장님. 저 새끼요. 어릴때부터 브이(V) 존나 좋아했어요. 그래서 파충류 여자한테 꼴리나봐. 전에 집에 한번 놀러가봤는데 벽이 전부 다이애나야, 다이애나.”
“브이가 뭔데? 다이애나는 또 뭐고 외국 그룹 이름이냐?”
“아 왜 그 미국 드라마 브이 몰라요?”
“몰람마.”
“허 참. 나보다 나이도 더 먹었으면서 그걸 또 모르시네. 아무튼 그 브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쁜놈들 중에 다이애나 라는 외계년이 있었는데, 그년 얼굴 가죽을 벗기면 파충류 눈깔이랑 징그러운 뱀 피부가 나왔어요. 그래서 저놈이 파충류 인간을 좋아하는 거야. 다이애나 때...”
말하던 사내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까지는 한 3초 정도 걸렸다.
사내가 무심코 시선을 내리자 파충류의 피부를 한 손과 그 손에 쥐여진 하얀 뼈가 자신의 심장을 파고들고 있었다.
휴식을 취한답시고 나노슈트를 해제하고 있었던게 잘못이다.
“크윽...”
사내는 시선을 위로 들었다.
미라가 히죽거리며 오른손에 쥔 뼈 칼을 더 깊숙이 찔러넣었다.
그 순간 그는 많은 양의 피를 울컥 토해냈다.
“쿠,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