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77화 (277/285)

277화

“뭐라고?”

“애석하게도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 지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어머니와 같은 지구는 내가 오라버니에게 이러한 진실을 알려주길 원했고, 아버지와 같은 지구는 이런 행동을 탐탁치 않아하지. 난 중간에 놓인 입장이라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선 안돼. 나머지는 오라버니의 판단에 달려 있어.”

막내는 덧붙였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고민은 하지 마. 어떤 길을 선택해야 옳은 것인지 답은 없으니까. 그저 오라버니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그뿐이야.”

막내의 말에 우주는 충동적으로 대답했다. 그의 길은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

“난 레지스트 쉴드 중심부로 꼭 갈것이다. 너와 그녀를 구하고 반드시 이 지구를 원래대로 돌려놓겠어. 더이상 사탄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막내는 미소지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을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겠지만, 오라버니라면 잘 해낼 수 있을거야.”

그 말을 끝으로 점토로 빚은 막내의 모습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 광경을 본 우주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헤어짐이 아쉽지도 않았다. 오직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미묘한 메아리가 되어 귓가에 울려왔고, 머지않아 막내를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 빨리 레지스트 쉴드 중심부로 향하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했다.

쿠콰쾅!

거짓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무너지며 우주는 현실세계로 되돌아왔다.

동시에 거대한 바쿠가 쿠웅 하고 눈앞에서 쓰러지며 지진을 동반했다.

그러자 곧바로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환호성.

레이드 현장 주변 일대가 축제분위기처럼 떠들썩 했다.

귀가 따가웠다.

어찌나 요란하게 소리를 질러대는지 산 저편에서 지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게다가 레이드 성공 축하 폭죽이 피유우웅 날아가 팡팡 터지며 오색의 영롱한 불꽃들이 노을진 저녁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또 다른쪽에서는 지난날 레이드에서 사망했던 일본MSC 팀원들의 넋을 위로함과 동시에 삶터를 잃은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고통에서 벗어나 예전의 평화로운 삶을 회복하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수백여 개의 풍선이 두둥실 날아올랐다.

“으음...”

“아우, 머리야...”

“우움... 여기 어디야...”

땅에 쓰러져 있던 팀원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근처에 쓰러져 있는 바쿠를 보자마자 놀라버렸다.

“우리가 잡은거야? 타이탄급 사탄을?”

“이야아! 세계 최초다!”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다들 고생했어!”

환호성을 지르고 웃고 떠들며 저마다 함께 싸워준 팀원들을 향해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수고했다는 말들을 주고 받는 사이 취재진들은 여지없이 찾아오고 그들은 제일 먼저 우주를 찾았다.

그러나 우주는 인터뷰할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기뻐하는 팀원들 속에 마냥 우두커니 서서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료코를 슬픈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

다음날.

우주는 개인사정을 이유로 레이드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와 요시자와 그룹측에서 마련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부인들과 함께 먼저 귀국길에 올랐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 또한 난리도 아니었다.

타이탄급 사탄을 잡았다는 소식에 국민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일본 총리의 전용기에서 내리자마자 이세종 대통령이 반가운 미소를 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는 그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조만간 청와대를 방문하기로 약속한 뒤 혼수상태에 빠진 료코를 데리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차에 타고 있던 소민, 미라, 현아 역시 집으로 가는동안 서로 몇마디 대화만 오갔을 뿐 모두가 침울한 분위기였다.

“어쩌다 이렇게 된거에요?”

오전에 회사로 출근했다가 잠시 집에 들린 소라가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침대에 누워있는 료코를 바라보더니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주를 쳐다보았다.

“왜 료코만 돌아오지 못한거죠?”

“그것과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소. 다들 거실로 와서 앉아보시오.”

우주는 료코가 누워있는 방문을 조용히 닫고나서 부인들과 같이 소파에 둘러앉았다.

그는 막내가 해준 이야기들을 차분한 어조로 모두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이나자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천하그룹의 목표는 레지스트 쉴드의 중심부로 향하기 위해서 건설사업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을 생각이오.”

소민이 물었다.

“사탄 레이드는 당분간 중지하나요?”

“그렇소.”

소라가 말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 기업은 수익을 창출하지 못할거에요. 하다못해 기업 운영 자금은 어떡하구요? 레지스트 쉴드에 있는 돌연변이 생물들만 갖다 팔아서는 어림도 없어요. 매머드급 사탄 한마리가 돌연변이 생물 2천마리와 같다구요.”

“그럼 2주에 2천마리씩 잡읍시다.”

“네?”

소라가 팔짱을 끼며 미간을 좁혔다.

“천하MSC 1군, 2군을 다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2주에 2천마리는 절대 불가능해요. 심지어 오백마리 채우는것도 버거울걸요? 게다가 직원들한테 무리하게 일시키다 병나면 어쩌려구요. 그거 전부 회사가 물어줘야 해요.”

“그건 걱정마시오. 부족한 물량은 내가 다 채우면 되니까. 직원들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재량껏 하면되오. 평소처럼 무난하게.”

“부족한 물량을 혼자 채우다니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아. 깜빡하고 부인들에게 아직 말을 안한게 있는데...”

우주는 체내에 존재하는 아트만 에너지의 양이 거의 무한대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듣고나서 부인들이 전원 깜짝 놀랐다.

현아가 제일 먼저 말했다.

“그, 그거 혹시 애가 여섯이나 생겨서 그런거야?”

우주가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사스럽긴 하지만 그런 이유로 생긴 능력인것 같아.”

료코, 소민, 미라, 수희, 영애, 연화가 아이를 낳거나 임신을 한 상태이고, 이와 더불어 소라와 현주, 현아가 차례차례 임신 소식을 들려줄 차례였다.

현아가 갑자기 손뼉을 마주쳤다.

“맞다! 나 바쿠 레이드 준비한다고 깜빡 잊고 있었어! 얼른 테스트 해봐야 해! 벌써 2주나 지났어!”

현아는 바로 약국에 달려갈 생각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둥지둥 신발을 신고 현관을 뛰쳐나가는 그녀를 보고 미라가 말했다.

“하나마나 막내 부인 확정.”

우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따라말했다.

“하나마나 막내 부인 확정...?”

“냄새가 나거든요. 임신한 암컷의 냄새가. 임신테스트기 해봤자 두 줄 나올거예요.”

“오오, 현아가 임신했단 말이오?”

“네.”

우주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잘됐군!”

그런데 미니스커트를 입은 소라가 다리를 꼬운 채로 미라를 향해 쏘아붙였다.

“말을 해도 그렇지 임신한 암컷이 뭐야. 사람을 짐승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왜. 찔려요?”

미라가 그녀를 향해 히죽거리더니 소라에게서 시선을 떼지않고 우주에게 말했다.

“여기 또 한 명 있어요. 음부에서 진한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임신한걸 알면서도 안한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네요.”

“뭣이오?”

미라의 말에 우주를 비롯해 소민까지 소라를 쳐다봤다.

소민이 천천히 물었다.

“너 임신했어?”

“흥.”

소라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했다면 어쩔건데.”

“오, 낭자! 고맙소!”

우주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라한테 달려들었다.

“어머머! 이거 왜이래요!”

“좋아서 그러지!”

“아파요! 천천히!”

그녀를 부둥켜 안고 어린애처럼 기뻐 날뛰는가 싶더니 바로 눈을 마주보며 기대감에 들뜬 얼굴로 물었다.

“데바가 되었소?”

“됐어요, 됐는데.”

소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썼다.

그러더니 그녀가 한 손바닥을 피자 작은 불꽃이 곧바로 피어올랐다.

“이게 뭐야. 난 이런 힘 필요없는데.”

“오오...!”

실망이 가득한 소라와 달리 우주는 그녀의 손바닥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마법 같군...!”

미라가 말했다.

“이를테면 파이어볼?”

소민이 물었다.

“멀리는 있는 표적을 향해 쏠수도 있는거야?”

소라가 불꽃을 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

“대단하네.”

“대단해? 난 이딴걸 바란게 아니야.”

소라는 주먹을 쥐자 금세 불덩이가 사라졌다.

“기왕이면 지능지수가 높아지고 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든지, 무언가를 한 번보면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이 생긴다든지, 남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들처럼 사무적인 업무에 도움될 수 있는 그런걸 바랐단 말이야. 그런데 MSC에 들어갈 생각도 없는 내게 이딴 능력이 생기다니, 짜증나.”

투정부리는 아이 같았다.

우주는 잔잔한 미소를 짓고 그녀를 가볍게 껴안아 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래도 없는것보단 낫소. 그리고 무엇보다 낭자와 나만의 아이가 생겼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기쁜일이외다.”

우주의 말에 뱃속의 아이가 생각났는지 시무룩하던 소라의 얼굴이 대번 밝아졌다.

“저는 딸이 좋아요. 날 닮은 딸.”

“좋았어! 딸 낳읍시다!”

“딸 낳자고 딸이 나오나요?”

“그럼 딸 낳을때까지 계속 낳읍시다! 우리 둘이 힘 닿는대까지!”

이후 약국에 다녀온 현아 또한 임신으로 판명되었고 집안에 큰 경사가 연달아 생겼다.

우주는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주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그녀 역시나.

-우후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자식. 그렇잖아도 네녀석이 빨리 귀국하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 요즘 여자 임신시켜놓고 도망가는 사내 같지 않은 놈들이 많아서 말야. 아무튼 다 필요없고 이것 한 가지만 말하지. 넌 이제 끝났어. 이 나를 네놈의 씨로 임신시킨이상 이제부턴 내 손아귀에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사실 넌 내 덫에 걸려든거야. 이 모든건 널 평생 곁에 두기 위한 내 작전이었지. 우후후. 앞으로는 일주일에 최소 세 번은 우리집에서 자고 가야할테니 각오해두려무나. 알겠지? 강한 아빠! 아하하하하하!"

“가, 강한 아빠? 벌써 이름까지 다 지어놓은게요?”

-물론이지! 신강한 어떠냐! 강한 남자가 되라고 신강한이다! 이게 마음에 안들면 적을 한방에 때려 눕히라는 뜻에서 신한방도 괜찮은것 같은데 말이야!

좌우간 이로써 소라에 이어 현아, 현주까지 우주는 다시 세 명의 아이를 얻게 되었고, 아이가 총 아홉이 되어 세 번째 능력 개방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부터 천하그룹은 하루 빨리 레지스트 쉴드 중심부로 향하고자 기업이 가진 모든 역량을 고속도로 건설에 투자했다.

우주는 세이비어가 떠있는 함경남도 장진군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 건설기간 동안 대부분의 밤과 낮을 현장에서 보내는 열정을 쏟았다.

공사중 서식지를 위협받은 돌연변이 짐승들이 한꺼번에 엄청난 수로 들이닥쳐 건설된 도로를 파괴하고 인부들을 공격하는 현장에서도 그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천하MSC와 함께 당당히 막아내고 부서진 도로를 다시 깔며 전진해 나아갔다.

이런 와중에 신라그룹은 연일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그들과 관련된 사건이 이곳저곳에서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그 첫번째로 신라그룹이 지난날 제네틱스가 가진 맹수의 기술을 훔쳤다는 것.

두 번째로 과거 수희와 현아와 관련된 스캔들이 이선주 회장의 지시하에 거짓으로 조작되었다는 것.

세 번째로 옛 천하물산 공장의 방화범은 한성일이 아니라 오수연이라는 것.

네 번째로 천하MSC와 함께 한 연합 레이드에서 난생처음 지고 말았던 차영웅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결국 총을 들고 길거리로 나가 미쳐날뛰었다.

그로 인해 열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그는 909 특임대에 붙잡혀 구속되었다.

이중에서 특히 네 번째 사건은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아직 미완성 기술인 인간복제가 초래한 부작용이라면서 이번 사건으로 그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길 바라며 수년 전 개정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다시 되돌려 놓고, 현재 활동중인 복제인간들을 전부 격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작품 후기 ============================

어제 저녁부터 조아라 홈피에 악성코드 있다고 뜨더니 이제 되네요.

료코가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 이유는 설문조사에서 가장 보고 싶은 히로인 1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메인히로인 결정!

레지스트 쉴드 전자책 8권이 나왔습니다. 리디북스에 올라와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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