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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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지...?”
정신을 차려보니 사막처럼 메마른 바위산자락에 거대한 신전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배경이 되는 하늘은 낮과 밤처럼 푸르거나 검지 않고 영원할것처럼 붉은빛이 감돌았다.
막내를 만졌을 뿐인데, 한순간 빨려들어왔다.
이것이 조금 전 겪은 우주의 기억이다.
하늘 높이 날아 올라 찬란하게 빛나는 세이비어와 만났고, 그녀를 지상으로 데리고 갈 생각에 노란빛이 감도는 타원형 보호막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순간 몸이 세이비어를 향해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뒤 눈을 떠보니 이 모양이다.
여기가 어딘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보이는 것을 향해 움직일뿐.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신전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신전 입구 계단에 발을 올려놓자 돌연 거대한 창을 쥐고 있는 사탄이 입구 양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생김새는 순백의 피부에 도룡뇽의 얼굴을 한 코끼리급 사탄과 매우 흡사했다.
“이 무슨!”
우주는 미간을 좁히며 급히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그와 달리 두 마리의 사탄은 단순히 경비병처럼 정면을 주시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주에게 아무런 적대감도 보이지 않았다.
[겁내지 말고 들어오너라.]
갑자기 장엄하고 웅장한 느낌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오며 하얀 돌로 만들어진 문이 좌우로 천천히 열렸다.
“누구의 목소리였지?”
우주는 망설이다가 이내 두 마리의 사탄을 지나쳐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때였다.
전신을 감싸고 있던 네오 라바 슈트가 한순간 착용해제 되어버렸다.
희한했다.
우주는 재차 착용하려했지만 어떠한 힘에 가로막혀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작동을 하지 않았다.
그 힘을 이겨내리란 불가능해보였다.
그는 곧 순순히 받아들였다. 남의 왕국에 초대받은 이상 비무장이 당연하겠지 하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대단하군.”
신전 내부는 워낙 넓고 거대해서 자신이 마치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안에는 황금으로 조각한 거대한 여신상과 남신상이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고, 사방의 벽에 정교하게 장식된 부조에는 고래와 거북이, 사자와 호랑이를 비롯하여 각종 동식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놀랍군...”
우주는 그것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걸어 안쪽의 끝에 다다르자 또다시 커다란 돌문이 좌우로 열렸다.
문이 활짝 열림과 동시에 우주는 흠칫하며 네오 라바 슈트를 착용하려 했다.
그러나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 앞에는 오래전 쓰러뜨린 바즈라가 자신의 키와 똑같게 작아진 모습으로 마주보며 서 있었다.
머리가 셋에 팔이 여섯개 달린 매머드급 사탄.
한 몸통에 달린 여섯개의 팔에는 제각각, 활, 화살, 칼, 고리, 방울, 방망이를 쥐고 있다.
바즈라는 음침한 여성의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날 따라오라.]
우주는 침을 꼴깍 삼킨 후 얌전히 그녀를 따라갔다.
그러면서 감이 왔다. 이곳은 지구가 만든 세상이고 신들의 세계라는 걸.
또 야외복도를 지나치면서 황당한 현실에 기막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축구장보다 몇배나 큰 정원에는 한때 일본을 몰아세웠던 바쿠가 신처럼 보이는 돌조각상한테 꼬리를 치며 놀고 있었다.
새 하얀 천을 전신에 두른 돌조각상은 인간처럼 살아움직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광경을 놀라운 심정으로 바라보며 기묘하기도 했고, 어쩐지 허탈하기도 했다. 여태껏 자신들은 신들의 장난에 놀아났던 것이었는가.
‘우리 인간들은 이들에게 있어서 하찮은 개미 따위로 밖에 보이지 않았겠지!’
좀 분했다.
괜히 고생한 느낌이랄까?
그런 속마음을 감추며 바즈라를 따라가자 이윽고 어떤 신과 대면했다.
우주가 안으로 들어서자 돌문이 닫혔다.
문을 향했던 시선을 뒤로 돌려 한 100여미터 거리에 있는 신을 바라보았다.
그 신은 푸른색의 하늘과 같이 도배된 넓은 방안에서 보석등으로 정교하게 장식된 옥좌에 홀로 앉아 있었다.
오른편에 있는 새장에는 별빛처럼 은빛깔의 광채를 뿜어내는 작은 것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과 대화를 하고 싶기에 이곳으로 안내한 것일 터.
그것으로 보아 지난날 막내가 한 말이 기억났고 대충 감이 잡혔다.
우주는 말없이 신을 향해 당당히 걸어나갔다.
신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처럼 거대했으며 알몸에 천 한장만 두르고 위엄있게 앉아있었다.
거인 같은 덩치로 보나 뭐로 보나 그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그는 이렇다할 말도 없이 그저 우주가 하는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주는 신과 가까워지자 발걸음을 멈춰섰다.
이어서 신을 조심스레 올려다보며 물었다.
“당신이 아버지와 같은 지구요?”
신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옥좌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붙이고 턱을 굈다. 하찮은 존재를 쳐다보는 듯한 시선. 이내 입을 열었다.
[난 지구 그 자체. 별의 탄생과 진화, 보존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가로아라고 한다.]
그는 평범하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우주의 귀에는 쩌렁쩌렁 울렸다.
귀청이 따가웠다.
“좀 작게 말해주시오. 이러다 귀 막히겠소.”
[나한테 명령하지 마라!]
가로아가 갑자기 성을 내자 그와 동시에 엄청난 강풍이 우주에게 몰아닥치며 그를 가볍게 날려보냈다.
뒤로 나가 떨어진 우주는 구르는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가로아에게 당당히 걸어갔다.
강대한 적을 눈앞에 두고 기죽기 보단 오히려 배짱을 부렸다.
“강력한 힘을 가진 당신 앞에서 내가 비록 하찮은 존재처럼 보일진 몰라도 그래도 대우는 해주시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이곳으로 데려온게 아니었소? 하지만 당신 위주의 일방적인 대화만 하고 싶다면 계속 강압적인 자세로 나가도 좋소. 내 아무말 안하고 그냥 듣기만 하리다. 어차피 말이 안통할테니.”
그에 가로아는 코웃음을 치며 여유있게 웃어보었다.
[제법 고집이 있어 뵈는 녀석이로구나. 그럴테지. 그러니까 라힐다가 널 선택했을테지.]
가로아의 위압적인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조금은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우주는 물었다.
“라힐다가 누구요?”
[수마리가 네게는 어머니와 같은 지구라 말했을 것이다.]
“수마리?”
라힐다에 이어 수마리까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곧 깨달았다. 라힐다는 가로아의 말대로 이해했고, 수마리는 세이비어, 즉 막내를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수마리는 지금 어디 있소이까?”
[좀 전에 만나봤을텐데?]
“언제 만났다는거요? 혹시 이곳에 오기 전 한반도의 상공에 떠있던 몸을 두고 하는 말이오?”
[그렇다.]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었소. 그게 무슨 만났다는 거요?”
가로아는 양손을 펼치며 대답했다.
[수마리는 이곳에도 있다. 내 보살핌으로 인해 이 방에서 우리가 하는 대화를 다 듣고 있을터이니 이 또한 너와 만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마리의 정신은 이 안에서 멤돌고 있느니라.]
우주는 미간을 좁혔다.
가로아를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말하는 만나고 싶다는 말의 뜻은, 어딘가에 숨어서 날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라는게 아니라 직접 손을 마주잡기도 하고, 반갑다며 뺨을 비비기도 하고,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 소리를 하는거요.”
[그것은 안된다.]
“어째서 안된다는 거요?”
[수마리는 나의 소유물. 내 허락없이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느니라.]
“왜 당신의 소유물이라는 거요. 그리고.”
우주는 눈에 힘을 주며 가로아를 노려보았다.
“내 부인인 료코는 또 어디에 있소이까?”
[그녀라면 여기에 있다.]
가로아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왼쪽을 가리켰다.
새장.
새장안에 갇혀 은빛깔의 광채를 뿜어내는 아주 작은 물체.
우주가 방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이리저리 날뛰는 중이었다. 마치 자신 좀 봐달라는 것처럼.
“저, 저게 료코란 말이오?”
[그렇다. 정확히는 그녀의 영혼이고, 이 별빛은 영혼을 담아놓은 그릇이지.]
“료코! 료오코오!”
우주가 갑자기 흥분하며 새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가로아가 손가락을 허공에 딱 하고 튕겼다. 또다시 거센 돌풍이 불어오면서 우주의 몸을 저만치 뒤로 날려버렸다.
“크윽!”
우주는 데굴데굴 구르며 멈춰섰다.
그대로 누운 채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가로아를 노려보며 소리를 쳤다.
“왜 그녀를 데려갔소! 료코는 아무 죄도 없단 말이오!”
가로아는 피식 웃더니 거대한 손가락을 움직여 작은 새장의 문을 열었다. 곧바로 료코의 영혼이 새장 밖을 뛰쳐 나와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
“료코!”
우주는 두 손을 모아 그녀를 반겨주었고, 살며시 가슴에 품었다.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료코의 영혼은 이어 두 손을 벗어나 우주의 뺨에 뽀뽀를 하듯이 살며시 비벼대더니 금세 그의 어깨로 올라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동안 기다리느라 힘들었지?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구해줄테니까.”
료코의 영혼이 한 번 가볍게 붕뜨더니 이내 내려앉았다.
그 모습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주는 가로아를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료코를 풀어줄 생각이오! 그리고 막내는 또 어떻게 해야 놓아줄 생각이오!”
[내가 너에게 되려 묻고 싶다. 어떻게 해야 날 방해하지 않을 생각인가. 어떻게 해야 라힐다의 은총을 거부해줄텐가.]
“내가 방해하다니, 그리고 라힐다의 은총?”
가로아는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네 녀석이 내가 보낸 타이탄급 사탄을 연거푸 잡아내지 않았느냐. 라힐다에게서 받은 힘으로.]
라힐다의 은총이라는 것은 아이가 세 명씩 늘어날때마다 얻게 되는 힘을 말하는 것 같다. 우주는 바로 이해하고 대꾸했다.
“당신이 사탄을 보내지만 않았어도 내가 나설 일은 없었을 것이오!”
가로아가 순간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며 발끈했다.
[성가신 인간들만 없었다면, 아름답던 이 별이 결코 이처럼 병들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무섭게 내지른 목소리가 실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쾌청한 하늘처럼 푸른색이었던 공간이 변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인간들이 행하는 갖가지 모습들을 비추면서 그들이 히히덕 대는 목소리와 함께 우주의 정신을 사납게 했다.
우주는 인상을 찡그리고 귀를 막으며 받아쳤다.
“인간은 당신이 만든거잖소!”
[내가 만들어내? 흥! 라힐다가 만들어냈겠지! 내 허락도 없이!]
“그럼 두 사람 사이의 문제인 만큼 그것이 해결될때까지 인류는 끌어들이지 마시오! 우리는 당신들에 비하면 너무도 나약한 존재요! 당신들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지고 이제 방해가 되니까 멸종을 시키겠다니! 이런게 어딨소! 당신들은 만물의 창조자인 만큼 아주 작은 결정이라도 그 하나하나를 무겁고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오!”
[함부로 지껄이지마라!]
가로아가 흥분을 하며 허공에 손을 휘젓자 우주의 몸이 또다시 바람에 날아가며 벽에 쿵하고 부딪혔다.
우주는 가슴이 탁 막히는 충격을 받고 그대로 밑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가로아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았다.
[보자보자 하니 갈수록 제 멋대로 지껄이는구나! 차라리 잘됐어! 여기서 죽여주지!]
가로아가 우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대로 주먹을 움켜쥐자 우주의 목이 짓눌리며 숨이 턱턱 막혀왔다.
우주는 알 수없는 힘에 의해 짓눌려진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런다고 내가! 이런다고 내가...!”
우주는 이를 악물었다. 흐트러져있던 정신을 한데로 모아 최대한 집중했다. 그 어떤 힘에 가로막혀 착용할 수 없었던 네오 라바 슈트.
우주는 체내에 흐르는 아트만 에너지를 증폭시키기 위해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발악을 했다. 무한히 샘솟는 아트만 에너지가 그의 의지를 지탱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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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네요.
눈 쓸어야되서 눈 오는게 싫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