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그럼 지금만이라도 수마리를 만날 수 있습니까?”
[그 아이는 할 일이 있어. 안됐지만 만날 수 없단다.]
“할일이라니요? 아까는 여길 지켜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켜만 볼 뿐 그게 전부란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다.
신들의 일방적인 선포였지만 우주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소행성을 막기만 하면, 막내와 료코를 구하는 것을 넘어 인류가 더이상 사탄에게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료코...”
그 후 가로아의 방을 떠나면서 료코와 헤어지는 것을 크게 아쉬워하며 발걸음이 쉽게 떼지질 않았다.
눈앞에 떠있는 료코의 영혼을 향해 그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당부와 함께 우주는 쓸쓸히 돌아서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전처럼 바즈라의 안내로 신전을 나가려는데 인간처럼 작은 체구의 하녀가 다가왔다.
“라힐다님께서 잠시 들렸다 가시랍니다.”
“소생을 말이오? 무슨 일로?”
“가보시면 자연스레 알게되실 것입니다.”
그녀를 따라 황량한 복도를 화사하게 채우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을 지나쳐 이윽고 라힐다의 방에 들어섰다.
그곳은 가로아와 대면했던 방과는 달리 아늑한 침실이었다.
라힐다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좀 전의 거대했던 모습이 아닌 보통 인간들처럼 체구가 작아져 있었다. 더불어 방안의 모든 것들도 그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쉴때는 몸을 작게 해서 이런곳에 와서 쉬나?’
우주는 의아한 얼굴로 라힐다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그를 마주보는 중이었다.
“어째서 절 여기서 보자고 하신겁니까?”
[네게 용무가 있어 불렀느니라.]
“용무라면 아까 끝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그것이고, 이번에는 다른 용무란다. 너와 나, 우리 둘만의 볼일이지.]
“둘만의 볼일이라면... 그게 무엇이옵니까?”
[우선 문앞에만 서 있지말고 이리 안으로 들어오렴.]
라힐다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걸어갔다.
우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중앙 탁자가 있는곳까지 걸어들어왔으나 그녀가 침대에 걸터 앉더니 그에게 바로 손짓했다.
[거기 있지 말고, 여기까지 오려무나.]
“침대로 말입니까?”
[그렇단다.]
우주는 영문을 몰라 머뭇거렸다.
라힐다가 잠시 그의 행동을 지켜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두려운 것이냐?]
“저와의 볼일이란게 무엇인지 말씀을 해주십시오.”
[나를 기쁘게 해다오.]
“네?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너의 몸으로 나를 기쁘게 해달란 말이다. 인간세계에선 이를 성행위라고 하더냐?]
라힐다가 덤덤하게 내뱉은 말에 우주는 내심 크게 놀랐다.
얼른 표정을 추스리고 물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는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이 몸은 네게 수십개의 강대한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그 힘들을 하나씩 얻으려면 번식을 대가로 삼지. 아이 세 명당 힘 하나라니, 인간들이 정해놓은 규범으로 인해 힘 하나 얻기조차 어려우리라 예상했지만 넌 아주 잘해나가고 있더구나. 특히나 잠자리에서 인간 여자들을 다루는 솜씨하나는 탁월한 것처럼 보이더군. 평소에 널 지켜보면서 번식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몸소 체험하고 싶을 정도로 많이 궁금했단다. 이만하면 이유가 되었느냐?]
라힐다의 본심을 듣고나서 우주는 한동안 얼이 빠져있었다. 조금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기가 막혔다.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 저... 제가 라힐다님과 관계를 가진 사실을 나중에 가로아가 알면 절 죽이려들지도 모릅니다. 두 분 혹시 부부사이가 아닙니까?”
[부부? 하하하.]
라힐다는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까지 뒤로 젓히며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한참웃던 그녀는 남은 웃음을 억지로 삼키고 말했다.
[녀석은 내 남동생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남매라는 것은 가족이 있다는 뜻입니까?”
[당연하다. 내겐 부모형제가 없을줄 알았느냐?]
“당신들의 본모습은 둥그런 지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눈에 비치는 당신의 모습은 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지구가 일부러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하고.”
[후후후, 재밌구나.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지구가 아니다. 별을 관리하는 신일 뿐이지. 이 은하계를 통솔하는 최고 신의 명을 받고 나와 남동생은 수십억년 전에 이 별에 왔느니라.]
“그렇군요. 그럼 신이 한 두명이 아니라는 소리로군...”
우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하는 동안 라힐다는 빨리와 앉으라는 식으로 보채듯이 푹신한 침대를 두드렸다.
[그나저나 나야말로 네가 망설이는 이유를 모르겠구나. 성행위야 인간세상에서 많이 해봤을 것이 아니더냐. 네가 주변 여성들에게 그랬던것처럼 망설이지 말고 어서와 날 품어보거라.]
우주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차피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 심지 굳어보이는 두 눈빛에는 멋지게 해내보이리란 강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 무례를 범해도 용서하십시오.”
[원하는 바란다.]
라힐다는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푸른빛이 감도는 옷을 하나씩 풀어헤쳤다.
마침내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벗은 그녀의 몸매가 나타났다.
옥으로 빚어놓은 것처럼 너무도 아름답고 눈이 부셨다.
“여기에 앉으십시오.”
우주도 옷을 벗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의 전라를 보고 어느새 발기된 고추가 가랑이 사이에서 우두커니 솟아 있었다.
[오랜만에 남성의 성기를 보니 나도 모르게 두근거리는 기분이 드는구나.]
“남신들의 성기도 이런 모양이오?”
[그렇다. 그래서 수줍고 부끄럽단다.]
라틸다에게는 조금 전의 당당함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제법 부끄러워 하면서 우주의 두 무릎 위에 엉덩이를 내리며 살포시 앉았다. 동시에 크고 단단한 고추가 자신의 음부를 스쳐 허벅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양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며 고추를 따뜻하게 감싸줬다.
[내게 무한한 쾌락을 선사해다오. 내가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곧 인류를 포함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위한 길이니라.]
“당신의 감정과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단 말입니까?”
[그렇단다. 산과 들판에 꽃이 활짝 피고, 메마른 가뭄을 겪고 있는 땅에는 비가 내려 풍년이 들고, 종들에게 번식을 가져다 주며, 모든 이들의 내면 속에 희망을 싹트게 해준단다.]
“최근에 행복에 이른 적이 언제이옵니까?”
[까마득하구나. 이 별이 생기기 전이었으니 50억년 전일까?]
우주는 놀라운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려 50억년을 참고 살았다니 그녀가 과부도 아니고 이 무슨 시련인가.
‘신이지만 참으로 불쌍하도다! 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여 그간 라힐다가 독수공방하며 지내온 나날들을 싹 잊을 정도의 강렬한 쾌락을 폭풍처럼 선사해주리라! 그녀가 내게 큰 도움을 준 만큼!’
우주는 입술로 풍만한 젖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아아.]
라힐다는 지그시 눈을 감고 낮게 신음을 내질렀다.
부드럽고 따듯한 감촉의 혀가 완급을 조절해가며 춤을 추었다. 유방과 유두를 비롯해 상반신 구석구석을 물이 흐르듯 유려하게 훑고 다니자 그녀는 행복에 겨워 꿈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 꿈속에서 그녀는 우주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갑자기 떠나가 버릴 것만 같은 우주를 놓칠까봐 안달이 나기도 하였다.
마침내 라힐다가 침대에 누우며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고 비오듯 땀을 쏟으며 열정적으로 정사를 나누었다.
라힐다는 정신없이 신음을 내지르면서도, 시종일관 우주에게 남신도 울고갈 정도의 고추와 체력이라며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윽고 우주는 으읏! 하고 외마디 신음을 내지르고 그녀의 질안에 힘껏 사정을 했다. 몸안에 있는 정액을 하나도 남김없이 쏟고 나더니 뜨거운 한숨을 몰아쉬고 그녀의 몸위에 쓰러졌다.
동시에 라힐다의 행복한 꿈도 끝이 났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흡족한 웃음이 내내 끊이질 않았다.
색욕에 굶주린 요부에서 기품 넘치는 우아한 여신으로 다시 돌아온 라힐다는 자신에게 절정의 쾌락을 만끽하게 해준 우주에게 보약을 지어 먹여줄 생각에 하녀를 시켜 정체 모를 탕약을 가져오게 했다.
[이것을 마시고 가거라.]
그녀는 하녀가 가져온 그릇을 집어 우주에게 권했다.
우주는 그릇을 받아들기 전 그 안에 담긴 거무스름한 탕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신들이 평소 즐겨마시는 좋은 약이다. 정사로 인해 소진된 체력을 말끔히 회복시켜줄터이니 남김 없이 모조리 마시거라.]
“그렇다면.”
그저 몸에 좋다는 말에 넙죽 받아들고는 꿀꺽꿀꺽 목구멍속에 들이붓다시피 시원하게 다 마셔버렸다.
그 다음 곧바로 신전을 나섰다.
우주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려 신전 입구까지 배웅을 나온 라힐다.
아무래도 그에게 푹 빠진 모습이다.
그녀가 저 멀리 바즈라의 안내를 받아 사라져 가는 우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동안 옆에 공손히 서 있던 하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인간에게 '아룸'을 마시게 해도 될련지요?”
[상관없다. 땀을 많이 흘린 것 같아 기운 차리게 해줬을 뿐이니 신경쓰지 말거라.]
“하지만 아룸은 신들이 마시면 보양식과 다름없으나 인간이 마시면 불로장생을 누릴 수 있는 명약이 됩니다. 따라서 저 자는 앞으로 제 수명을 넘어 무한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라힐다가 밝게 웃었다.
[내심 그걸 바랐지. 그래야 나와 두고두고 계속 만날 수 있을 것 아니냐.]
이어서 그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뜨거운 열기를 토해냈다.
[후... 아직도 내 안의 열기가 식지 않는구나. 정말로 대단한 인간이었어. 가로아가 벌인 짓으로 인해 인류의 멸종을 우려한 나머지 새로운 인류의 번식을 위해 선택한 자가 이렇게 대단한 번식능력을 갖고 있었다니, 참 제대로 골랐구나 싶었어. 후후.]
***
인류가 지구로 향하는 소행성을 발견했을 때는 우주가 신전에서 돌아온지 석달이 지나서였다.
전세계 각 국가의 수뇌부는 대대적으로 난리가 났고, 연일 보도되는 소행성 충돌설로 인해 사람들은 이 세계에 곧 종말이 찾아올 것이라고 좌절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돌연 성질이 변한 세이비어는 MPO 국제본부로부터 타이탄급 사탄을 뛰어넘는 아틀라스급 사탄으로 판정되었다.
{세이비어가 소행성을 지구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당장 세이비어를 공략해야 해요! 전세계가 힘을 합쳐 연합레이드 팀을 꾸립시다!}MPO 국제본부 수장의 지휘하에 부랴부랴 연합레이드팀을 꾸렸지만, 세이비어에게 다가가기란 완벽히 불가능했다. 타이탄급 사탄 수십마리가 레지스트 쉴드 안에서 출몰해 육해공 가리지 않고 그녀를 에워싸며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인류는 크게 경악하며 그들의 보루였던 연합레이드팀은 단 한발짝도 다가설 수 없었다. 시간과 물자만 낭비한 채 곧바로 해산되었다.
세계는 즉각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지구를 대표해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미국의 NASA였다.
그들은 소행성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중앙까지 침투한 뒤 그 속에서 핵탄두를 폭발시켜 소행성을 둘로 쪼개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러면 둘로 분리된 소행성들의 진로는 변경될 것이고 급기야 지구를 피해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으며 여러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 직접 실행에 옮겼다.
머지않아 미국의 유능한 우주비행사들, 브루스 윌리스타, 벤 에플렉트 등 총 8명이 탑승한 로켓이 핵폭탄을 싣고 우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