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그러나 결국 그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무는 실패했다.
전원 실종자 처리 되었다.
“종말이 다가온다!”
한가닥 희망이 사라지자 전세계는 다시 혼돈에 빠졌고, 종교 집단에 가입하는 사람들과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여기에 유럽에 속한 여러 나라들은 무정부상태에 가까운 폭동이 밤마다 벌어졌다.
시민들은 백화점을 약탈하고, 길거리에 세워둔 차량을 아무런 이유없이 불태우고, 여성들을 강간했다. 경찰들과 군인들은 폭력행위 등에 대해 거의 체념한 상태였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생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할 뿐이었다.
그에 반해 군권력이 강한 어떤 나라는 군과 경찰들이 폭동을 일으킨 수천명의 청년들을 기관총으로 사살하는 등 무자비한 진압을 서슴치 않았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종교 신자들이 불어나자 종교계의 수장이 권력을 쥐고 국가를 뒤흔들 것을 우려한 나머지 군부대를 동원해 종교를 탄압하고 국민들의 신앙생활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런 와중에도 소행성은 점점 지구와 가까워지고 있었고, 지구촌 곳곳에서는 쓰나미가 일어나고 아울러 지진까지 발생하였다. 여기에 물고기와 조류가 떼죽음을 당했고 가축들도 돌연사를 당하는 일도 잦아지기 시작했다.
***
지구촌 전체가 혼란스러운 세기말 상황속에 한국 역시 국가 전체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정부는 치안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주는 차분한 모습으로 이세종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데바들이 여의도로 집결하도록 방송을 통해 말씀해주십시오. 그들이 모이기만 하면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무슨 뾰족한 수가 있기는 한가?”
“네, 이날을 위해 저희 천하그룹에서 준비해온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때마침 오늘 아침에 완성되었지요.”
그 말에 대통령의 어두웠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우주의 두 손을 잡아주며 설명을 보챘다.
이후 30분에 걸쳐 우주의 설명을 다 듣고난 대통령은 탄성을 자아냈다.
“그것 때문에 아틀라스급 사탄 레이드에도 참가를 거부했었던 건가?”
“그런 것도 있고, 다른 이유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그것'을 개발하고 성능을 테스트 하는데 시간이 부족했었습니다.”
“이제 끝난 일이고 아무튼 잘됐어. 인류에게 아직 한가닥 희망이 남아있다는게 가장 중요하지. 그것도 우리 한국인이 이끄는 희망 말일세.”
우주가 돌아간 후 이세종 대통령은 오후에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생방송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국민과 전세계를 향해 희망의 메세지를 전했다.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자랑스러운 한국인 신우주와 천하그룹이 저 우주에 떠있는 소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해냈다고 합니다.”
한 시간에 걸친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정부는 국내 모든 기업을 향해 공문을 보냈다.
각 기업이 보유한 데바를 5일 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소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불러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상황이 급박한 이때 시간 낭비를 하는 것 같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쨌든 마지막 희망이라는 말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
5일 후.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다.
국회의사당 앞 광장 중앙에는 거대한 포가 설치되어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포 하단에는 수만개의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멀지않은 곳에 포를 제어하는 첨단 기계장치도 설치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데바의 수는 무려 5만명.
국내 6천명을 비롯해 해외 각국에서도 유능한 데바들을 보내와 국회의사당 앞 광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수라와 데바가 나타난 이래 이렇게 많은 능력자들이 한 자리에 몽친 것은 최초였다. 더구나 전원이 하이테크 슈트 이상의 2세대 파워드 슈트를 착용중이었다.
한편, 우주는 본격적인 발사에 들어가기 전 소라, 소민, 수희, 현아, 영애, 하나, 연화와 만나 격려와 응원을 해주고 본부석이 있는 야외천막으로 들어왔다.
과학자와 직원들로 북적거렸다.
지연이 그를 발견하고 곧바로 다가왔다.
“준비는 다 됐어요. 모두에게 ‘AT헤드기어’를 착용하라고 전해주세요.”
지연은 앞서 5개월 전 우주가 레지스트 쉴드에서 돌아오자마자 그에게서 모든 사실을 전해듣고 소행성에 대적할만한 무기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신라그룹의 남궁철민 박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국방부와 미국 NASA, 유럽 우주국(ESA), 일본 우주국(NASDA)로부터 전폭적인 지원도 받았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자들이 뭉친 결과 수많은 아트만 에너지를 하나로 응집시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빔을 발사하는 무기를 개발해냈다.
현장에 모인 5만명의 데바들이 모두 AT헤드기어란 것을 쓰고 아트만 에너지를 방출하게되면, 그 아트만 에너지들은 모두 광장 중앙에 세워진 거대한 무기, '제우스'로 전해지게된다.
“지금 방송으로 전하겠소.”
그리고 덧붙였다.
“아마 낭자가 없었으면 소생이 직접 우주로 날아가서 소행성을 때려부숴야 했을거요. 고맙소.”
우주가 웃음 짓고 말하자 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주 씨가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안그랬으면 고작 5만명으로 소행성을 파괴하기란 불가능했을거거든요. 전세계에 있는 모든 데바를 총 동원한다 하더라도 우주 씨 없이는 이처럼 강한 위력을 구현해내기는 어려웠을거예요. 수백만명이 한 곳에 모일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장비 부족으로.”
AT헤드기어 5만여개를 생산해내는데만 3조원이 깨졌다. 타이탄급 사탄의 사체를 내다팔지 않았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자비를 들여가며 무상으로 인류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들어간 금액에 대해서는 나중에 MPO국제본부와 UN본부에 제대로 청구를 할 예정이다. 이에 대한 협상은 진즉에 완료되어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수백만명이나 되는 데바에게 경비를 대주기도 어렵고, 숙소를 잡아주는데만 시간 다 보낼 것 같군. 좌우지간 잘됐으니 다행이오. 어서 시작합시다.”
우주는 마이크를 입가에 가까이대고 광장에 질서정연하게 대기중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AT헤드기어를 착용해주시오. 5분 후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겠소.”
말과 동시에 전원이 AT헤드기어를 머리에 썼다. 5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정갈한 움직임은 나름 장관을 이루었다.
뒤이어 우주도 본부석을 나섰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AT헤드기어가 아닌 오직 그를 위해 마련된 원통형 캡슐이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 곧게 누웠다.
뒤따라온 지연이 캡슐문을 닫고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곧 캡슐을 작동시켰다.
안쪽에 불빛이 들어오며 기계음성이 들려왔다.
-제우스 발사까지 앞으로 2분. 아트만 에너지를 발현해주십시오.
우주는 체내의 아트만 에너지를 끌어모아 캡슐에 연결된 케이블을 통해 광장 중앙에 있는 거대한 포로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광장 중앙의 포신이 천천히 움직였다.
멀리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제 시작했다며 크게 탄성을 자아냈다.
그 소리가 우주에게도 들렸다.
그는 편히 누운 채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침내 이 생활도 끝인가.”
처음 이 시대에 떨어졌을때부터 지금까지 경험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료코와의 인연, 고릴라팀의 운명, 철수와 강민과 보낸 연예계 생활, 홀로 금강산에 갔던 일, 소민의 돌변, 러시아 데바들과의 싸움, 미라와의 무인도 생활, 드롭존에서의 1위 등등등. 수없이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살며시 미소를 띄운 채 중얼거렸다.
“앞으로 딴 직장을 알아봐야할지도 모르겠군.”
한쪽에서는 지연이 PC앞에 앉아 바삐 손가락을 움직였다.
소행성의 좌표를 입력하자 그대로 포신이 움직임을 멈추며 아주 먼거리에 있는 소행성을 정확히 조준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발사 스위치를 누르기 전 짧게 말했다.
“레지스트 쉴드, 안녕.”
꾸욱.
그 즉시 하늘을 향해 조준되어 있었던 포구에서 푸른색의 거대한 빔이 구름을 뚫고 일직선으로 솟구쳐 나아갔다.
============================ 작품 후기 ============================
다음화는 에필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