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지스트 쉴드-285화 (285/285)

285화

#. 에필로그.

6개월 뒤.

“우리 회사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오. 누님과 함께 일하기만을 줄곧 기대하고 있었소. 자, 긴 말은 필요없고 여기에 서명부터 해주시오. 얼른 끝내고 밖으로 나갑시다.”

얼마 전 완공된 천하그룹 신사옥.

서울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초고층 회장실에서 우주는 수연과 마주하고 있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두 사람 사이에는 여러장의 계약서가 놓여져 있다.

수연이 조심스레 하나씩 서명을 끝마친 뒤 고개를 들어 근심스러운 얼굴로 우주를 바라봤다.

“나 정말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 괜히 따 당할까봐 무서워. 정말 괜찮은거지?”

우주는 밝게 웃음지어보였다.

“걱정마시오.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소. 다들 환영할거요.”

“성일 씨와 수희 씨, 그리고 현아 씨가 아무 말도 없었어? 나 때문에 괜히 네 입장만 난처해지는건 아닐지 부담된다. 역시 좀 더 생각할걸 그랬나봐.”

“어허, 그게 뭔소리요. 세 사람과는 이미 다 이야기가 끝난 상태니까 아무 염려마시오.”

“정말?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 다 해봤어?"

“당연. 지난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지 않소. 당시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나더니 세 사람 다 누님에 대한 모든걸 용서해주기로 했소이다. 그리고 몇달에 걸친 수감 생활로 남은 죄값도 다 치뤘잖소. 그런 이상 평생 마음에 담아둘 사람들도 아니고 그릇이 큰 사람들이 염려마시오. 내가 누님을 영입하고 싶다고 밝혔더니 알아서 하라며 누구도 반대하지 않더이다. 오히려 관심들이 없길래 내가 더 놀랐소.”

“관심도 없어?”

“그렇더이다.”

“좋은 사람들이네. 그런 일을 겪고도 날 용서할 수 있다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만간 직접 한 명씩 찾아가서 정식으로 사과를 할게. 그래야만 나도 마음이 편해지고 여기서 잘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 꼭 그래야해.”

“멋진 생각이오. 나도 사실 그래줬음 했소. 역시 누님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니 사리분별을 잘하는구려. 사람의 됨됨이가 보이오.”

수연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땐 나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약 때문이라지만, 어떻게 사람이 그리 못되질 수가 있는건지. 체내에 남아있는 약물을 제거하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치료를 받으면서, 과거에 내가 저지른 잘못들이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너무나 부끄럽고 괴로워. 기억을 지워버리는 수술을 받고 싶을 정도로.”

우주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당시 그녀가 해로운 약을 복용하게 되는 위기에 처했을때 구해주지 못해 씁쓸했다.

우주가 탁자에 어지럽게 놓인 문서들을 가지런히 모아 탁자에 탁탁 두드리며 끝을 맞췄다.

“계약서에 서명도 다 했고, 때도 점심시간이고 배도 출출하니 그만 일어납시다. 내 좋은 식당을 알고 있으니 그리로 가서 같이 점심이나 한끼할 생각인데, 시간 괜찮소?”

우주가 말을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연도 덩달아 일어나더니 갑자기 그의 한팔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오?”

우주가 얼결에 쳐다보자 그녀가 초조한 기색으로 말했다.

“우주야, 아직 안끝났어. 너한테도 사과해야해.”

“에이, 나한테는 됐소. 다 잊은지 오래요. 그냥 넘어갑시다.”

우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고 그대로 발걸음을 떼려하자 수연이 다시금 그의 팔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그를 붙잡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한테도 큰 고통을 줬어. 내가 밉지?”

침묵.

우주는 행동을 멈춘 채 살짝 눈물을 머금고 있는 눈동자를 한동안 마주보기만 했다.

그러다 이윽고 입술을 열었다.

“예부터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했소. 누님은 한때 자신의 두 다리를 잃어가면서까지 내 목숨을 필사적으로 구해준 사람이오. 그때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내게 무슨 짓을 해도 누님을 평생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소. 사람의 본성은 가장 절박한 상황에 나온다 하지 않소이까. 누님이 어떤 사람인지 본게 있으니까 절대 밉지 않소. 전에 미쳤던 누님이야 오로지 약 때문이고 이제 좋은 누님으로 되돌아왔으니 된거 아니오? 본심이 아니었던 과거는 잊고 우리 다시 시작해나갑시다.”

수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어 눈동자가 똘망똘망해보였다.

“그렇게 말해주니까 좋다. 고마워. 넌 역시 따뜻한 사람이야. 나 정말 여기에 있어도 되는거지?”

우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천하그룹에 온 것을 환영하오.”

그녀가 촉촉해진 눈동자를 소매로 닦고 이어서 말했다.

“미안한데,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뭐든 물어보시오.”

“내가 이제 여자로 안보이지? 남자들 그런거 있다면서, 여자친구가 자신의 아이를 낙태하거나 유산하면 꼴보기 싫어진다고. 그러니까 직장 동료 그 이상으로는 이제 안보이지?”

우주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손에 쥐고 있던 종이들을 떨어뜨리며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그럴리가 있겠소? 누님의 모습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오. 품지 못해 안달이 날정도로 말이외다. 그리고 나야말로 되묻고 싶소. 누님은 일부다처제를 지향하는 날 어찌 생각하오?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겠소?”

우주의 품에 안긴 수연은 코를 훌쩍거리다 이내 대답했다.

“상관없어. 남자는 무조건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유전자를 남기려는 이기적인 본능을 가졌고, 여자는 우월한 유전자만을 받아 번식하고 생존하려는 차가운 본능을 가졌으니까. 법이 어떻고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든 간에 원시시대부터 가졌던 인간의 본능에는 이길 수 없어. 난 본능에 충실할거야. 우월한 유전자를 받아 앞으로 태어날 내 자식들을 좋은 환경에서 뛰어난 인재로 성장하게 만들거야. 그런데 그것도 그거지만, 이제 너와는 절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아. 일부다처제고 뭐고 유전자고 뭐고, 자식이고 뭐고, 너와 나. 이게 가장 중요해.”

우주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수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

한가로운 토요일 정오.

밝은 햇살이 창가를 통해 얼굴을 비추고, 그 눈부심에 료코는 살며시 눈을 떴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몸을 덮었던 이불이 스르르 내려갔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니 자신의 방이다.

“2년 만인가...”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감상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세상에 있던 그녀는 신들과 막 작별인사를 나누고온 참이었다.

오랜만에 깨어났지만, 자신이 없는동안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대충이라도 다 알고 있었다.

몸이 기운을 차리는 동안 한동안 멍하게 앉아만 있던 그녀는 문밖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한두명도 아닌 여러 아이들의 목소리.

시끌벅적했다.

이윽고 몸에 힘이 들어가자 서둘러 이불을 젓히고는 침대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가족들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

방문을 활짝 열고 거실로 나갔을 무렵 소란스러운 소리가 단숨에 사라졌다.

대가족의 점심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던 여자들과 거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모두가 잠옷을 입고 있던 료코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어, 언니! 돌아왔구나!”

여러개의 밥그릇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던 현아가 급히 그것을 식탁에 내려놓고는 료코를 향해 달려와서 힘차게 껴안았다.

신이 난듯이 펄쩍펄쩍 뛰었다.

“보고 싶었어요! 돌아와서 정말로 다행이야!”

“사, 살살 하거라! 숨 막힌다!”

거실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던 7명의 갓난 아이들은 저마다 갸우뚱하는 얼굴로 난생처음보는 큰 엄마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그때 주방에 있던 미소가 뛰쳐나오더니 제 엄마를 향해 와락 안겨들었다.

“보고싶었습니다!”

“미소야. 이 어미도 보고 싶었단다!”

미소는 제 어미의 무릎을 붙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흘려대기 시작했다.

“어머? 눈물의 가족 상봉이네.”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소라가 팔짱을 끼고 곁에 다가와 있었다. 비꼬는 듯 하면서도 그녀 역시 오랜만에 깨어난 료코가 반가운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서방님께 함부로 대한 것은 아니겠지?”

“누가 내 적이 아니랄까봐 어련하실까. 깨자마자 잔소리는. 가서 씻고 와서 얼른 밥먹을 준비나 해. 내가 주말을 맞이해 특별히 김치찌개를 끓여놨으니까 기대해도 좋을거야.”

소라는 료코가 깨어난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평소처럼 행동했다.

그녀는 국자를 쥐고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료코가 깨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집안 이곳저곳에서 각자 볼일을 보던 여자들이 급히 몰려들었다.

계단을 밟고 2층에서 내려온 소민이 그녀를 보자마자 말했다.

“정말 잘됐어. 서방님도 크게 기뻐하실거야.”

“형님, 그간 집에는 별일 없었지요?”

“당연하지. 굳이 별일이라면 네가 깨어나지 않아서 모두가 걱정했었어.”

다른 여자들도 저마다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와 한마디씩 건넸다.

먼저 미라가 말했다.

“오래 잠들어 있어서 그런지 피부는 좋아진 것 같네요. 더 섹시해진 것 같아서 부러워.”

“정말 좋아뵈느냐? 잘됐군. 서방님도 그렇게 봐주면 좋을텐데.”

“사람 눈은 똑같으니까 예쁘다고 해줄거예요.”

다음으로 수희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다시 돌아오셔서 저도 기뻐요.”

“이름이 수희라고 했던가? 너도 우리집에서 살게되었느냐?”

“네, 2년 전부터 들어와 살고 있어요.”

“오래 살았구나. 잘됐다. 앞으로 잘지내 보자.”

이어서 료코의 시선이 그 옆에 미소를 짓고 있던 영애에게로 향했다.

“매일 직장에서 보던 얼굴이군. 너도 우리집으로 이사온게냐?”

“그렇습네다. 우리 남편이 너무 좋지 뭡네까. 조금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여기서 살게 됐습네다.”

“그 마음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 다음으로 명랑하게 웃고있는 하나를 쳐다봤다.

“넌 2년 전과 달리 얼굴과 체형이 많이 변했구나?”

“에헤헤. 이게 원래 제 모습이었어요. 그 당시 제 모습은 성형수술을 한거였구요.”

“그래, 그랬었구나. 그럼 그때 나락에서 품었던 궁금증은 다 해결이 됐고?”

“네. 다~ 해결되었습니다. 아주 완벽히.”

“잘됐다.”

료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으로 시선을 옮겼다.

안경을 끼고 있는 지연.

“넌 꽤 오래 전에 본 얼굴이구나. 일전에 우리 같이 탈출했었지 아마?”

“맞아요. 그때 미라 씨가 우리를 구해줬었죠.”

“그래, 기억하는구나. 그럼 이 집에서 우리와 같이 살게된 것이냐?”

“네, 료코 씨가 잠들어 있는 동안 들어왔어요. 우주 씨와 저 사이에서 아이도 낳았고.”

료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방님은 여전히 혈기가 왕성하시군. 그새 부인을 늘리시다니 정말 못말린다니까. 아무튼 잘됐다. 앞으로 함께 지내면서 서로 천천히 알아가도록 하자꾸나.”

그렇게 집안에 있는 여자들과 반가운 해후를 끝마쳤을 즈음 갑자기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우주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무심코 안으로 들어왔다.

“알겠소 누님. 그럼 이따 저녁에 우리 재웅이랑 같이 우리집으로 오시오. 주말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다 같이 전망 좋은 곳에 가서 외식이나 합시다. 아, 물론이오. 연화 낭자도 애랑 같이 오기로 했소. 그렇소. 그럼 그때 봅시다. 조심히 들어가시오.”

통화를 끊고 신발을 벗었다.

반가운 목소리를 듣고 어느새 현관으로 달려온 소라가 한손에 국자를 쥔 채 물었다.

“누구랑 통화했어요?”

“현주 누님. 그런데 왠 국자요?”

“왜요? 이상해요?”

“아니, 평소에 요리를 안하던 사람이 갑자기 요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길래.”

소라가 살짝 심통이 난 듯이 말했다.

“료코 먹여줄려고 했어요. 됐어요?”

“료코? 료코가 어떻게 먹는단... 어?”

우주는 거실쪽을 바라보자마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워있어야할 료코가 방긋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료코!”

“서방님!”

두 사람은 서로 소리치며 달려와 힘껏 껴안았다.

우주는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이 환희에 찬 표정으로 료코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다행이다!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그간 많이 힘들었지?”

“서방님을 그리워하며 견디고 또 견뎌냈습니다! 이렇게 다시 뵙게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사옵니다!”

“아버지! 어머니! 으아아앙!”

미소까지 달려와 두 사람의 다리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 어른스럽게 행동하던 아이가 제 또래처럼 콧물까지 질질짜가며 실컷 울음을 보였다.

지켜보던 부인들도 우주가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금세 눈시울을 적셨다.

***

이후 우주는 옷을 갈아입고 나서 료코를 씻겨줄 생각에 같이 욕실로 들어갔다.

2년 동안 침대에만 누워있느라 제대로 씻지 못한 그녀였다.

욕실 의자에 앉아 있던 료코의 새하얀 등을 정성스레 밀어주면서 기분이 묘했다.

언젠가 같이 목욕을 하던때가 어렴풋이 피어올랐다.

“그때... 기억나?”

“그때라면 언제적 말씀이시옵니까?”

“내가 처음에 원룸에 살았을때말이야. 어느날 집에 돌아왔더니 니가 현관에 엎드려서 절을 하길래 깜짝 놀라 자빠질뻔했던 날. 그때 정말 웃겼지.”

“아... 기억납니다.”

“그날 이후로 날 씻겨주겠다며 매일 욕실에 들어오려고 했잖아. 난 안간힘을 쓰며 거부했고.”

“그랬었지요.”

료코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는 아련한 옛 기억을 회상하며 절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마침내 같이 욕실에 들어가서 씻기 시작했고, 아마 그때부터였던것 같아.”

“무엇을 말이옵니까?”

“내가 너한테 마음을 열면서 점점 좋아지기 시작한 때가. 날이 갈수록 너만 보면 두근거렸지.”

“어머, 부끄럽사옵니다.”

료코가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자 우주는 피식 웃으며 천장을 둘러봤다.

“생각해보면 그 작은 원룸에서 이런 곳에 살줄 누가 알았겠어. 이렇게 큰 집에.”

“다 서방님께서 열심히 노력하신 덕분이옵니다. 제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전부 서방님께서 애써주신 탓. 언제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사옵니다.”

“난 니가 있어서라고 말하고 싶어. 니가 있어서 마음이 안정됐고, 밖에서 나가서도 열심히 돈을 벌어올 수 있었어. 고마워 료코. 그간 함께 지내오면서 싫어도 싫다는 말 한번 안하고 항상 날 응원해줘서 기뻐.”

“자꾸 칭찬만 해주시니까 몸둘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료코가 고개를 숙이며 수줍은 듯 제 몸을 감싸안았다.

두 팔에 가슴이 짓눌리자 더욱 풍만해보였다.

“기분이 좋아서 일까. 왠지 야릇하군.”

우주는 거품이 묻어있는 타올을 슬그머니 바닥에 내려놓고는 료코를 뒤에서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살며시 그녀의 젖가슴을 두 손으로 어루만졌다.

“아앙...”

료코가 곧 신음을 흘렸다.

“오랜만에 할까?”

“네?”

“옛날 생각도 나고, 욕실에서 하고 싶어졌어.”

가슴을 주무르던 우주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원을 그리며 음부를 매만졌다. 그에 료코가 부끄러운 듯이 다리를 오므리며 말했다.

“서방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저야 항상 준비되어 있사옵니다. 아내로서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 것 만큼 기쁜것도 없지요. 제겐 큰 행복이옵니다.”

료코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주는 곧 가느다란 목덜미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좋은 향기가 났고 또한 부드러웠다.

순식간에 욕망에 불타오른 두 사람은 농도짙은 애무 후에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욕실벽을 바라보며 내지르는 료코의 신음이 넓은 욕실을 가득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밖으로 새어나가기까지 했다.

“하앙, 하앙!”

그때였다.

갑자기 욕실문이 벌컥 열리며 8명의 부인들, 소라, 소민, 미라, 수희, 영애, 하나, 현아, 지연이 전부 알몸으로 뛰쳐들어왔다.

“여기서 무슨 짓들이예요!”

“이럴줄 알았어!”

“둘이서만 하기예요?”

“애들도 다 들릴 정도로 컸어요.”

“이날만을 기다려왔습네다!”

“어, 어쩐지 두근두근 거려서 미칠것 같애!”

“야, 넌 정말! 언니하고만 놀기야?”

“남성 혼자서 이 많은 여인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 같네요.”

“허걱!”

그녀들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우주가 크게 당황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료코를 뒤에서 찌르던 동작을 멈추고 급히 소리쳤다.

“가, 갑자기 이게 무슨 짓들이오! 민망하오! 얼른들 나가시오!”

소라가 제일 먼저 혀를 빼죽 내밀며 말했다.

“우리가 밥을 하는 틈에 둘이서만 즐기기에요? 어림없지!”

소민이 기분 좋게 소리쳤다.

“저도 같이 해요! 오랜만에 료코도 있고, 신난다!”

미라가 요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후후, 아까부터 계속 이런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죠. 전 이런 문란한 성생활이 좋아요.”

수희가 두 눈을 꼭 감았다.

“어쩐지 부끄럽지만, 나도 질 순 없어!”

영애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래 이럴때를 대비해 괄약근 조이기를 하루도 쉼 없이 했습네다! 누가 더 서방님을 만족시키는지 우리 서로 겨뤄보는겁네다! 각오들 하시라요! 기필코 내래 우승할겁네다!”

하나가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이런 난교는 처음인데, 꺄~ 부끄럽다! 평소에 BL은 많이 봤는데!”

현아가 인상을 썼다.

“우주 너! 나만 쏙 빼놓으면 화낼거야! 료코 언니랑은 그만하고 나부터 해줘!”

지연은 달랑거리던 우주의 고환을 쳐다보며 계산을 했다.

“음... 여성 9명에 남성 한 명이라. 보통 성인 남성의 정액은 하루에 1.4cc 정도가 고환에서 만들어지고, 한번의 사정으로 분출되는 정액량은 2~5cc. 연속 사정시에 감소되는 정액량은 0.5cc. 사정을 해봤자 고작 4번 정도가 한계겠군요. 다시 말해 이중에서 최대 네 사람만 관계가 가능합니다.

다섯번째부터는 고추가 서질 못할거에요. 아, 그런데 료코 씨가 벌써 하는 중이니 세 명으로 줄여야 겠군요. 기회는 세 번. 물론 사정을 참아가며 번갈아 한다면야 상관없습니다. 허리힘과 체력만 좋다면 9명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을겁니다.

알겠나요 남편?”

서로 자기가 먼저 우주와 하겠다며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흥에 겨운 즐거운 정사가 벌어졌다.

그리고 열린 욕실문으로 미소, 유라, 현우도 알몸으로 뛰어들어와 한참 황홀경에 빠져 있는 부모들 곁에서 서로 물장난을 치며 해맑게 뛰어놀았다.

띵동.

행복한 목욕을 끝내고 거실로 나오자 곧바로 초인종이 울렸다.

부인들이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으러 각자 방으로 가 있는 동안 우주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현관으로 가서 인터폰을 바라보았다.

“음?”

아무도 없었다.

장난인가 싶어 뒤로 돌아서면 또다시 초인종이 띵동 하고 울렸다.

인터폰을 재차 바라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다시 뒤로 돌아서면, 또다시 띵동 거린다.

나가서 확인해봐야겠다 싶어 대충 옷을 주워입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오후 3시. 푸른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에는 눈부신 햇살이 내려쬤다.

그리고 대문 밖에 서 있는 한 사람.

익숙한 여성의 실루엣이었다.

순간 우주의 두 눈이 커지며 얼른 가서 대문을 열어주었다.

단아한 기모노를 차려입은 여성이 밝은 미소를 짓고 그를 마주봤다.

우주가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소윤 낭자!”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오늘 옆집으로 이사와 이렇게 떡을 가지고 왔습니다.”

리에가 들고 있던 떡 접시를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옆집?”

우주는 얼결에 떡을 받으면서 옆집을 바라봤다. 자신의 집 보다 더 으리으리 한 집.

“저기로 이사왔다는게요?”

“네.”

“오늘부터?”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 여기서 계속 사는거요?”

“물론이지요.”

“일본에서의 일은 어찌하고?”

“요시자와 그룹이 한국 진출을 위해 준비중이라서 당분간 이곳에 머물며 업무를 봐야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일본에 가더라도 주말에는 꼭 이곳에 들려서 쉴 생각이구요.”

“아...!”

우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환하게 웃어보였다.

“잘됐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소생도 종종 낭자가 생각이 났었소. 잘지내고 있는지, 뭐하고 지내는지.”

“잘됐군요. 그럼 서로 그간 쌓인 그리운 마음을 달랠겸 이참에 한번 안아봐도 될련지요.”

“소생과?”

“네, 꼭 그러고 싶습니다.”

리에에게서 어쩐지 간절함이 묻어났다.

우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마음대로 해도 좋소.”

리에는 떡을 들고 있던 우주에게 다가가 그를 꼬옥 껴안았다.

품에 안긴 그녀는 행복에 겨운 듯 눈을 감고 나직히 말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혼자서 100여년을 살아오느라 그간 고생이 많았소. 그리고 이렇게 잘됐으니 참 다행이오.”

“다 도령님 덕분이지요.”

그런데 포옹하는 시간이 뜻밖에 길어지자 우주는 점점 주변의 눈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안에서 부인들이 볼까 두렵기도 했다. 조금 전 부인들과 즐거운 정사까지 나눈 참이다. 그새 다른 여자를 껴안고 있는게 부담이 됐다.

“나, 낭자.”

“네?”

“그게... 좀... 긴것...”

그와 동시였다.

리에가 떨어질 생각조차 안하고 한참을 껴안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한쪽 구석에서 에헴! 하고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남성은 아니고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 그렇지! 내 정신 좀 봐!”

리에가 서둘러 떨어지더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는 우주에게 재차 편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고 보니 저 말고도 찾아온 손님이 또 계시더군요?”

“손님?”

“그렇사옵니다. 아까 벨을 누르고 계속 숨는 사람이 있길래 그 연유를 여쭤봤더니 이 집 주인과 잘 아는 분이시라더군요. 그래서 가벼운 장난을 치는 중이라고 말하시지 뭡니까.”

“아는 사람? 그 사람은 어디에 있소?”

“저기 계십니다.”

리에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골목에 주차된 차를 바라봤다.

“자, 이제 다 됐으니 이리 나와보시지요.”

곧바로 저편에서 생기발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느라 혼났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 뒷쪽에 숨어있던 누군가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더니 단숨에 옆으로 껑충 뛰면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연두색 원피스를 입고 해맑게 웃고 있는 소녀.

그 모습을 본 우주가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소리쳤다.

“막내야!”

“그새 날 잊고 여자한테 정신 팔려 있기야? 오라버니 한테 실망했어. 이럴거면 더 골려줄걸 그랬다.”

“아아...!”

우주는 그녀를 보자마자 감격에 겨워 말이 나오질 않았다. 순간 목이 메이고 가슴이 뭉클거렸다.

막내도 마찬가지였다.

“오라버니!”

짓궂은 표정을 짓던 막내가 금새 울것 같은 얼굴로 소리치며 뛰어와 우주의 품에 안겼다.

소녀는 어린 시절 미소 그대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하고 큰 오빠랑, 작은 오빠 있을때처럼 행복하게 살자. 이제 독립운동 같은거 안해도되니까 집 나갈일도 없겠지?”

“응. 이제 두 번 다시 헤어질 일은 없을거다. 두 번 다시.”

어느날 갑자기 세이비어가 종적을 감추면서 레지스트 쉴드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 또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한국, 중국, 러시아 정부의 극심했던 우려와는 반대로 그 안에 존재했던 방사능까지 완전히 사라졌으며, 레지스트 쉴드 안에서 서식하던 사탄과 돌연변이 생물들은 이미 나타난 것들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개체수가 늘어나지 않았다.

이는 전세계 바다에서 출몰하던 사탄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이상 새로운 사탄은 나타나지 않았고, 인류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사탄들을 마저 처리해가며 점점 평화에 다가서 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그간 얻어온 신기한 자원들을 바탕으로 인류는 점차 우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세계의 자원이 고갈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새로운 에너지 자원에 대한 갈망과 비좁은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이주를 하려는 희망이 모두를 미래로 이끌 것이다.

한편, 천하그룹은 최근에 무척이나 바빠졌다.

지구상 곳곳에 잔존해 있는 사탄의 처리.

가장 믿음직스럽고 강력한 천하MSC를 향해 지구상에 남아있는 사탄을 처리해달라는 의뢰가 각국 정부로부터 빗발치는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우주와 천하MSC 팀원들은 이번에는 미국을 찾았다.

버뮤다 삼각지대로 불리는 대서양 바닷속에 머물며 수년간 미국을 괴롭혀왔던 타이탄급 사탄 "골드버그".

오늘 그 녀석을 처치하러 왔다.

천하MSC를 태운 미 대서양 함대.

이번 레이드는 잠수 기능이 있는 나노슈트급 이상의 파워드 슈트를 전원 착용하고 수중전을 벌여야할 것 같다.

우주는 레이드 준비를 완벽하게 끝마친 뒤 갑판 위에서 팀원들을 향해 외쳤다.

“마실 갔다온다 생각하고 즐겁게 뛰다 옵시다! 딜이 부족하면 소생이 채워주고, 아트만 에너지가 바닥나면 그것도 소생이 채워주겠소! 내 세 번째 능력은 바로 타인에게 아트만 에너지를 주입시키는 것이니까! 이를 믿고 어디 한 번 화끈하게 놀아봅시다!”

100여년을 건너뛰는 등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열혈남아 신우주.

오늘도 그는 당찬 인생을 살기 위해서 변함없이 의욕을 불살랐다.

바닷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던 팀원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외쳤다.

“자, 출발! 사탄에 의해 질곡의 나락에 빠져들더라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다시 올라옵시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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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12

신작이 연재되었습니다.

제목은 이세계 모험 헬퍼 입니다.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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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인가, 5월인가부터 첫 연재를 시작해서 약 19개월에 걸친 연재가 드디어 끝이났습니다.

중간에 한 번 길게 쉬기도 했고, 그럼에도 독자님들 못난 소설을 여기까지 따라오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혹시 연재 초반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분 계신가요?

있다면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전개 중간중간 답답하셨을 텐데 혈압약도 사드리고 싶음. ㅎㅎ우선 후련합니다.

소설 내용이 어쨌든, 망작이든 뭐든 완결을 냈다는 것과 관심있게 지켜봐주신 독자분들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어서 많이 후련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안계셨다면 끝을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소설이 여기서 끝을 맺지않고 전개가 더 나아갔다면, 감옥에 있는 박찬우의 탈출과 예전에 한소라를 납치하려했던 추만택과의 만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으로 도피한 한규만과 한소영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몇몇 독자분들께서 말씀하셨던 러시아 데바들에 이어 중국 데바들까지 등장했을거구요.

근데 거기까지 안가서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여기서 딱 끝맺어서 잘했고, 좋은것 같아요.

이 레지스트 쉴드 덕분에 잘팔리는 글이 어떤 글인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소설이 후반으로 갈수록 흥하진 못했지만 실컷 두들겨 맞고 난 뒤에 깨달은게 많았습니다.

흥하는 글을 썼다면 몰랐겠지만 흥하지 못한 글을 썼기에 독자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나름 이것저것 시도도 해보고 마음껏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만약 흥한글이었다면 과감한 시도를 하기가 무척 어려웠겠죠. 흥하지 못한글이었기에 갈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일명 막장 전개가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신작은 더 잘쓸 수 있을것 같아요. 제 만족이 아닌 독자분들을 만족시켜드리기 위해서. 기대해주세요.

마지막으로 제 다음 일정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끝을 맺겠습니다.

먼저 레지스트 쉴드 전자책 작업을 내일부터 미친듯이 해서 완결권까지 출판사 편집자분께 넘겨드릴 생각이구요. 한번에 다 받아보시면 힘드시겠다.ㅎㅎㅎ두번째로, 12월 20일 전후로 해서 다음 신작을 올리기 시작할겁니다. 제목도 다 정해놨어요. 멋집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지켜봐주신 여러분 덕분에 제가 힘을 내서 완결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처음에 후기를 길게 쓰고 싶었는데 아침 9시부터 지금 저녁 5시까지 마지막 화를 쓰느라 눈이 침침하네요.

하루 1만자라니 하루에 1만자를 쓴건 정말 오랜만이군요.

이만 쓰고 물러가겠습니다.

그 밖에 제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나 궁금하신거 있으면 코멘으로 달아주세요. 신작이 나오기 전까지 매일매일 찾아오며 성심성의껏 답변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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