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남의 손에 들어가서 악용이라도 되면 큰일이다.
유리한의 말에 도웅이 기겁하며 스킬 북을 꼭 끌어안았다.
“유리한 님! 덕질에는 휴덕이 있을 뿐, 탈덕은 없습니다!!”
고로 자신이 가지겠다는 말.
억지로 뺏었다가는 큰일이 날 기세였다.
도웅이 감격에 찬 눈으로 멀린이 제작한 쓸모없어진 스킬 북을 보는 사이, 백상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유리한 님? 은신처가 필요하시다면 지금 당장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됐어, 여기만큼 훌륭하고 좋은 은신처가 어디 있다고.”
더욱이 멀린이 제게 줬던 스킬 북에 적힌 대부분의 마법을 이곳에 사용했다.
‘침입자가 들어오면 그 즉시 경보가 울리는 마법이랑 공격을 가하는 마법, 결계도 쳐놨고 혹시 몰라 최상급 방어진도 펼쳐놨어.’
그야말로 완벽한 방공호.
행복 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됐다.
“다들 계약서는 읽어봤어?”
행복 머니의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에 적힌 내용은 별거 없었다. 유서아와 유시우를 보호하고, 둘의 존재를 함구한다.
그리고.
“좋아, 그럼 비밀 유지 조항에 기반하여 너희에게만 특별히 말해주겠어.”
유리한.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 계약서에 적힌 내용은 그것이 끝이었다. 유리한이 개구쟁이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 지금 스탯 초기화된 상태야. 레벨도.”
두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들렸다. 백상철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물었다.
“거짓말이시죠……?”
유리한에 의해 옥상에서 내던져졌던 우철만은 너스레를 떨었다.
“에이, 유리한 님도 참~! 농담도 잘하십니다!”
레벨이 초기화된 거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스탯이 초기화됐다니?
‘그런데 우리를 그런 식으로 두드려 팼다고? 스킬도 사용했고?’
하지만 멀린의 스킬 북을 꼭 끌어 쥐고 있었던 도웅은 알았다.
‘사실이시다……!’
이내 백상철과 우철만도 유리한이 농담 따위를 지껄이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행복 머니의 사장실에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유리한은 태연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마력 스탯은 그대로라서 스킬을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다만.”
[저주, ‘고난의 행군’의 효과로 단 한 번의 마법과 동시에 마력이 조절됩니다.]
그 스탯도 자칫 잘못하면 ‘1’로 조절이 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했다.
“뭐, 이건 넘어가고.”
어차피 쟤들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그래서 스탯부터 올릴까 하는데, 혹시 스탯을 올릴 만한 마땅한 장소가 있을까?”
플레이어 협회의 추적은 유리한의 관심 밖이었다.
뛰어난 플레이어는 대부분 탑으로 들어간 지금, 유리한이 이곳에 펼쳐놓은 마법을 파훼시킬 수 있는 플레이어는 전무했다.
유리한의 질문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예상한 반응이란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없을 줄 알았어.”
몬스터가 사라진 평화로운 세계.
이는 즉, 플레이어가 자신의 힘을 기를 수단이 사라진 세계라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리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럼, 여기 건물 안에 훈련장이나 뭐 그런 장소 있어? 마음 놓고 단련할 수 있는 곳.”
“있기는 합니다.”
행복 머니의 직원들도 플레이어였다. 탑을 오르는 것을 중도에 포기한 실패자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계속 단련했었다.
“오우, 먼지.”
5년 전까지만.
유리한이 손을 휘휘 저으며 콜록거렸다. 그에 우철만이 황급히 허리를 굽히며 외쳤다.
“지금 당장 청소하겠습니다!”
“아니, 됐어.”
유리한이 우철만의 충성을 말리고는 구석에 놓여있던 청소 도구를 들었다. 자고로 가장 고된 노동 중 하나가 가사 노동이라고 했다.
몬스터가 사라진 세상, 유리한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스탯을 올릴 생각이었다.
“너희는 가서 시우랑 놀아주기나 해. 슬슬 일어날 시간이네.”
유시우는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센터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는 출생신고가 되어있지 않았고 자연스레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나중에 상황이 일단락되면…….’
유서아가 깨어나고, 모든 복수를 행한 뒤에 유리한은 유시우가 마음껏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자, 그러니까 너희는 어서 나가. 그리고 내가 스스로 나올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마.”
“식사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음.”
유리한이 도웅의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했다.
“혹시 벽곡단 있어?”
“넵! 있습니다!”
“좋아, 그것만 매 식사 시간마다 문 앞에 둬줘. 아, 물도.”
“네, 알겠습니다!”
벽곡단은 플레이어가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마력의 순환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작은 크기로도 포만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유리한은 포만감 때문에 벽곡단을 즐겨 먹었었다.
‘마력이야, 자기네끼리 알아서 돌아가고 있으니까.’
유리한의 마력은 무한.
체내를 꽉 채우고 있는 유리한의 마력은 자기네들끼리 밀고 당기면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럼, 유리한 님. 씻거나 그런 건 어떻게…….”
“알아서 할 거야! 그러니까 좀 나가!”
쾅! 문이 닫혔다.
밖으로 쫓겨난 세 남자가 두 눈을 멀뚱거렸다.
“큰형님, 유리한 님께서는 스탯을 도대체 어떻게 올리실 생각일까요?”
그보다 마력이 무한이란다.
“굳이 다른 스탯을 올릴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유리한은 스탯이 모두 초기화된 상태인데도 자신들을 압도했었다. 백상철이 자신도 모르게 가랑이 사이가 안전한지 확인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분 뜻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 우리는 시우나 보러 가자고.”
그때 도웅이 말했다.
“탑에 가려는 건 아닐까요?”
“탑?”
“네, 제가 소망의 탑에 대해 알려드렸었거든요. 그, 형님들께서 누워계실 때.”
도웅이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목 언저리를 긁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유리한의 유일한 동생, 유지한은 현재 실종 상태.
하지만 유리한은 그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협회장의 얼굴에 주먹을 날릴 리가 없었다.
백상철이 표정을 굳혔다.
“탑을 오르시는 건 힘드실 것 같은데…….”
혼란과 격변의 시대가 끝난 후, 수많은 플레이어가 각자의 소망을 안고서 소망의 탑으로 향했다.
플레이어들을 받아들인 탑은 먼저 그들의 레벨을 초기화시켰다.
그래, ‘레벨’만.
* * *
“사백이십팔… 사백이십구…….”
유리한은 한쪽 팔로 온몸을 지지한 채, 거꾸로 서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중이었다.
“오백! 아오……!”
목표 숫자 달성!
유리한은 곧장 바닥에 대(大)자로 누웠다. 헉헉, 가쁜 숨에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했다.
“힘들어 죽겠네.”
유리한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고는 몸을 일으켰다.
[스탯]
근력: 7 체력: 9 정신력: 5
속도: 2 명성: 1,030 마력: ∞
유리한의 레벨은 여전히 ‘1’.
스탯은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올랐다. 아주 지지부진하게.
지금 며칠이나 지났지? 일주일은 됐나?
유리한이 달력을 흘긋거렸다.
10월 13일.
10일의 시간 동안, 총 스탯 1,048이 올랐다. 이 중, 명성은 전투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거니까 차치하고 보면…….
“우와, 고작 십구야? 차라리 십팔이라고 해라, 십팔.”
유리한이 짜증스레 욕설을 지껄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10일 동안 몬스터를 잡았다면 스탯은 물론 레벨까지 올랐을 거다.
하지만 이 세상에 몬스터는 없다. 유리한이 미간을 좁혔다가 피식 웃었다.
‘몬스터가 없어졌다고 해도 플레이어는 존재하고 있지.’
그리고 스탯은 플레이어와의 전투 속에서도 얻을 수 있었다. 유리한은 후들거리는 몸을 스트레칭하고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랑 싸우자!”
행복 머니의 직원들에게 느닷없이 날벼락이 찾아들었다. 싸움판은 금방 마련됐다.
구경꾼은 유시우.
싸움꾼은 유리한과 행복 머니의 직원 총 스물네 명.
심판은 백상철.
“우우! 큰형님, 비겁합니다!”
“시끄러! 심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데!!”
백상철이 부하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는 룰을 설명했다. 룰이라고는 해도, 유리한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규칙 하나밖에 없었다.
“저… 유리한 님, 무기는요?”
“나는 됐어. 너는 사용해도 돼.”
유리한이 첫 번째 상대인 도웅을 향해 방긋 웃어주었다. 행복 머니 직원들의 평균 레벨은 18레벨. 도웅은 21레벨로 평균을 웃도는 레벨의 플레이어였다. 유리한의 말에 도웅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무기를 꺼냈다.
꺼낸 무기는 창.
“오! 내가 좋아하는 무기 중 하나야. 창이랑 검, 그리고 총.”
좋아하는 무기가 좀 많군요.
도웅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유리한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
“먼저 갑니다!”
그는 속도계 플레이어였다.
속도에 한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던 그는.
‘엇……?’
눈 깜짝할 순간에 몸이 뒤집혀 바닥에 처박히는 기적을 맛봤다.
도웅의 속도는 빨랐다.
일반인은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유리한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스탯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도웅의 속도를 눈으로 좇았고, 그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렸다. 그다음은 엎어치기.
“어떻… 쿨럭! 어떻게…….”
도웅이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유리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너보다 빠른 사람을 워낙 많이 만나봤어야지.”
몬스터가 들끓었던 혼란과 격변의 시대.
유리한은 속도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를 여럿 만났었고,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머릿속에 새겨 넣었었다.
뛰어난 암기왕(A).
유리한은 모든 것을 기억했다. 그것이 무술이든, 어떠한 정보에 관련된 것이든. 무술이면 제 것으로 만들었고, 정보면 이용하여 계획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끔 하였다. 그것이 유리한이 싸우는 방법.
도웅을 손쉽게 제압한 유리한은 기지개를 쭉 켜고는 웃었다.
“다음.”
결과는 24전 24승 0패.
유리한이 행복 머니의 직원들과의 대련으로 얻은 스탯은…….
[플레이어 유리한의 근력이 ‘3’ 올랐습니다.]
[플레이어 유리한의 체력이 ‘2’ 올랐습니다.]
[플레이어 유리한의 속도가 ‘1’ 올랐습니다.]
[플레이어 유리한의 명성이 ‘5’ 올랐습니다.]
총 11.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아니 근데 명성은 또 왜 오른 거야? 다른 게 오를 것이지!”
유리한의 신경질 뒤로 짝짝! 아이의 손뼉이 체력 단련실을 울렸다.
“와아! 고모 대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