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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8)화 (8/235)

8화 

뜀틀에 앉아있던 유시우가 낑낑거리며 내려와서는 유리한에게 달려왔다.

“어떻게 하면 고모처럼 싸울 수 있어요? 시우도 싸우고 싶어요!”

“안 돼. 싸우기는 뭘 싸워. 시우는 잘 먹고 잘 크기만 하면 돼.”

또래보다 월등히 체구가 작은 아이였다. 유리한은 유시우의 머리를 헝클어뜨려 주고는 겉옷을 챙겨 들었다.

유시우가 유리한의 뒤를 졸졸 쫓으며 재잘거렸다.

“고모, 어디 가려고요? 시우도 갈래요! 같이 가요!”

“노놉, 고모는 애는 따라오면 안 되는 곳에 갈 거예요.”

“어디 가는데요? 나이트?”

나이트라니.

유리한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행복 머니의 직원들은 눈치 좋게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애한테 뭘 가르쳐 준 거야?”

“그… 가르쳐 준 건 아니고요. 애가 심심할 때, 클럽 노래를 몇 번 틀어줬었는데…….”

“쓰읍.”

백상철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유리한은 백상철에게 두 눈을 부라려 준 뒤 유시우에게 말했다.

“두더지 잡기 하러.”

“두더지?”

“응, 두더지를 망치로 뿅뿅 잡는 건데 알아?”

“우웅.”

유시우가 고개를 저었다. 유리한은 그 고갯짓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다음에 같이하러 가자.”

“오늘은?”

“오늘은 고모만 즐기고 올 거야.”

유시우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단단히 삐친 모양이다. 유리한의 그런 조카를 달래주기 위해 달콤한 제안을 했다.

“올 때 치킨 사올게.”

“다녀오세요, 고모!”

뭔가 섭섭하다.

그러나 유리한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향한 곳은 행복 머니가 위치한 건물에서 꽤 먼 곳에 있는 호프집이었다.

떠들썩한 소음이 들려와야 할 곳.

그러나 유리한이 들어선 가게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자리가 만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 손님? 죄송하지만, 지금 자리가 없어서요.”

가게의 종업원이 유리한에게 양해를 구했다. 유리한은 종업원의 어깨 너머를 흘긋거렸다. 그의 말대로 여럿의 장정이 가게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어휴, 눈빛으로 사람 하나 죽일 기세네.’

하나같이 유리한에게로 향해있었다. 유리한은 제게 몰린 시선에 입가를 만지작거리고는 웃었다.

“종업원님, 여기 사장님이랑 무슨 관계야?”

“네? 저희 아버지인데…….”

그 말에 유리한이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백상철의 명함이었다.

“나중에 일 끝나면 여기로 전화 걸어. 가게 배상 좀 해달라고.”

“네? 가게 배상이요?”

아니 그보다 무슨 일을 끝낸다는 건지 모르겠다.

호프집의 주인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유리한이 덮어쓰고 있던 후드를 끄집어 내리고는 웃었다.

“아, 참고로 가게 일 말고 내 일이 끝나면 그쪽으로 전화 걸라는 거야.”

“헉……!”

유리한이 맨얼굴을 드러내기 무섭게 여럿의 장정이 몸을 일으켰고, 그녀는 웃으며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잠깐, 유리한 님! 대화 좀……!”

우당탕!

대화가 이뤄지는 일은 없었다.

* * *

유리한이 달려들었던 무리는 플레이어 협회 소속의 플레이어들이었다. 몬스터가 사라진 세상이라고 하나 플레이어는 여전히 존재했다.

그들 대부분이 탑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많은 플레이어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탑을 오르는 것을 포기했다.

플레이어 협회는 그들을 위한 곳이었다.

그랬지만.

“야, 죽었어? 안 죽었지?”

그들은 사이좋게 바닥에 두 다리 뻗고 기절한 상태였다. 유리한은 미동도 않는 여자의 모습에 짧게 혀를 찼다.

플레이어 협회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이야 진작 알았다. 그러나 내버려 뒀다. 그들이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거슬렸다.

그리고 꼬리가 길면 언제고 잡히는 법.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유리한은 움직이기로 했다. 겸사겸사 스탯도 올리고.

그때였다.

“이… 이게 무슨…….”

“책임자님 오셨나 보네?”

옆구리에 서류를 끼고 있던 여자가 유리한을 보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머리를 빠르게 굴려 상황을 파악한 후, 유리한에게 고개를 꾸벅거렸다.

“…협회장님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 그런데 나는 너희 협회장 안 보고 싶은데.”

유리한이 방긋 웃고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협회장님께 전해줄래? 내가 너를 안 죽이고 있는 건, 옛정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귀찮게 좀 굴지 말라고 말이야.”

유리한은 여자의 어깨를 툭툭 털어주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유지한 님……!”

아니, 옮기려고 했다.

동생의 이름이 유리한을 멈춰 세우지만 않았더라면 그랬을 거다.

여자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유지한 님에 대해 알려드릴 것이 있다고 합니다.”

같잖아라.

유리한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내가 직접 알아볼 거라고 전해. 오광이니 사광이니 뭐니 하는 것들한테서.”

유리한은 여자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가서는 경고성 짙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나씩 잡아다 족치다 보면 알게 되겠지. 내 동생이 왜 그런 꼴을 당해야 했는지. 응? 그렇지?”

여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말이리라.

유리한이 방긋 웃었다.

“그럼, 아가씨. 밤길 조심하면서 돌아가세요. 종업원님은 알아서 연락하시고요.”

딸랑, 문이 닫혔고 여자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 *

대로변에 나온 유리한은 후드를 뒤집어썼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거리는 평화로웠다. 어떠한 몬스터의 위협도 없이 자유롭게 거리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

언제고 바랐던 풍경이었다.

제 동생이 그걸 원했으니까.

하지만 유지한은 이를 누리지 못했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연구 센터의 지하에서 온갖 실험을 당하며 차갑게 식어갔을 뿐이다.

“오광.”

유리한이 이를 으득 갈았다.

제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 일조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탑의 다섯 길드.

유리한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탑으로 가야 해.’

더군다나 동생의 시신이 탑에 있단다. 그것만으로 가야 할 일은 충분했다.

무엇보다…….

‘어둠을 지배하는 자.’

조카인 유서아를 깨울 수 있는 유일한 희망. 이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라도 탑에 들어가야만 했다. 유리한이 복잡한 심경이 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스탯]

근력: 13 체력: 15 정신력: 7

속도: 5 명성: 1,035 마력: ∞

레벨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플레이어 협회의 플레이어들을 스킬의 사용 없이 때려눕힌 결과 스탯은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게 됐다.

“탑에 들어가면 더 빨리 올릴 수 있겠지?”

그래야 할 텐데.

유리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탑을 오르면 혼란과 격변의 시대에 맞닥뜨렸던 플레이어들 역시 마주치게 될 터. 그들이 30년의 세월 동안 얼마나 성장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모든 걸 다시 시작하는 중이지.’

레벨도 스탯도.

하지만 유리한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플레이어의 사회를 한 번 겪은 몸.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성장할 자신이 있었다.

유리한은 가볍게 제 뺨을 두드렸다. 정신 제대로 붙잡고 가자는 나름대로의 다짐이었다.

그 순간, 참으로 오랜만이라고 느껴지는 시스템 창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Hello, Earth?]

[20△0년 10월 27일, 소망의 탑에 진입하실 플레이어 여러분을 모십니다!]

언제나 그랬듯, 시스템은 일방적인 메시지를 통보하고서 사라졌으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뭐야, 이건?”

유리한은 손목에 새겨진 날개 모양의 문신을 살폈다. 소망의 탑에서 보내는 티켓이었다.

* * *

소망의 탑.

지구에 나타났던 마지막 보스 몬스터, 니르로르가 처치된 후 등장한 원형의 탑이었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를 끝마친 플레이어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이룩하기 위해 탑으로 향했다.

탑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플레이어들 역시 맞이했다.

그렇게 열리게 된 것이 튜토리얼의 시험.

분기별로 열리는 탑의 시험은 세계에 큰 이벤트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곳, 플레이어들만을 위한 마켓이 즐비해 늘어선 곳.

한때는 ‘용산 전자 상가’라고 불렸던 이곳은 여느 때와는 다른 활기를 띠고 있었다. 탑으로 입성하는 신규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크게 한탕을 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건 온갖 무기를 취급하는 ‘욜라(Oyla)’의 사장, 비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비올라는 한눈에 봐도 호구로 보이는 고객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중이었다.

“유리한 님… 이 아니라, 유 씨. 이건 어떻습니까? 아니, 어떤가?”

품이 넓은 후드를 뒤집어쓴 여자가 남자가 건넨 것을 받아 들었다. 이를 놓칠세라, 비올라가 실실 웃으며 둘에게 다가왔다.

“손님~! 보는 눈이 탁월하시네요? 그 물건은 탑의 34층에서 반출된 것으로…….”

“창은 됐어.”

여자가 비올라의 말을 끊고는 남자에게 말했다.

“중앙 박물관에 좋은 거 하나 있거든. 그거 가지고 가면 돼.”

“아, 그렇군요!”

뭘 수긍하는 거야?

비올라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남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욜라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무기를 한 번 둘러보고는 그에게 물었다.

“사장님, 총기류는 없어요? 좋은 거 하나 가지고 싶은데.”

“네? 아, 넵! 당연히 있죠!”

비올라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곧이어 여자의 앞에 한 무더기의 총기류가 놓였다. 여자는 비올라가 보여준 총기류를 꼼꼼히 살펴보다가 권총 하나를 들었다.

“흐음, 이거 좋네.”

“어머, 손님!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그 무기로 말하자면, 탑의 57층에서 반출된 것으로…….”

“초보자도 쉽게 다룰 수 있는 그런 무기다, 뭐 이런 말을 하려는 거죠?”

할 말을 빼앗긴 비올라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거랑 같이 열기 저항 아이템 싹 다 모아서 주세요.”

“모두… 다요……?”

“네, 여기 있는 열기 저항 아이템들 저한테 모두 팔아주세요. 값은 충분히 지불할 능력이 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어머, 손님! 제가 언제 그런 걱정을 했다고!”

비올라가 후다닥 계산대로 달려갔다. 값을 치른 건 남자였다. 남자는 묵직해 보이는 종이봉투를 받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가지 쓴 것 같습니다만.”

“여기는 예전부터 바가지로 유명한 곳이었어.”

다 들린다, 이 자식들아.

어쨌거나 크게 한탕을 벌였다. 비올라는 기분 좋게 손님들의 배웅을 해주었다.

남녀를 향해 연신 허리를 꾸벅이던 비올라는 그들의 모습이 흐릿해지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누구지? 저렇게 씀씀이가 큰 걸 보면, 꽤 유명한 사람 같은데.”

지금 튜토리얼의 시험과 관련하여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비올라는 머릿속에서 떠오른 인물을 황급히 지웠다.

그러나 그는 몰랐을 거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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