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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9)화 (9/235)

9화 

* * *

유리한은 두 손 두둑하게 들고 나온 것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백상철이 운전석에 앉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모실까요?”

“너희 사무실로 가자. 가는 길에 피자랑 치킨도 사고.”

유시우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유시우는 잠들어 있었다.

“기다리다가 조금 전에 잠들었습니다.”

“아이고, 빨리 올 걸 그랬네.”

유리한이 아쉬워하며 유시우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우움, 칭얼거리는 아이의 목소리에 곧장 손을 거뒀지만 말이다.

“피자와 치킨은 냉장고에 넣어두겠습니다, 유리한 님!”

“부탁할게.”

“맡겨만 주십시오!”

누가 보면 기밀 임무라도 수행하는 줄 알겠다.

유리한이 우철만의 충성스러운 태도에 피식 웃었다. 그때 도웅이 유리한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어깨에 걸치고 있는 정장 재킷을 들어 옷걸이에 걸어두기 위해서였다.

“됐어. 아니 그보다 너희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깍듯해?”

“네? 그야…….”

도웅이 우물쭈물했다.

“내일이 튜토리얼이지 않습니까?”

“아하, 그래서 이렇게 과할 정도로 잘해주고 있는 거구나?”

튜토리얼, 그게 뭐라고 이렇게들 난리인 거지.

유리한이 코웃음을 쳤다.

“평소대로 해.”

여유가 넘치는 모습에 백상철이 불만스레 그녀에게 물었다.

“유리한 님은 긴장도 안 되십니까?”

“응, 안 되는데?”

유리한이 태연히 대꾸하고는 몸을 돌렸다. 방을 나가려는 기세에 도웅이 그녀를 붙잡았다.

“어디 가시려고요?”

“서아 보러.”

튜토리얼을 통과한 후, 소망의 탑을 오르게 되면 50층에 다다를 때까지 바깥으로 나올 수 없다고 들었다.

그럴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하나.

탑의 공략을 포기했을 때뿐.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었다. 유리한의 말에 도웅이 그녀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

“모시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는데.

하지만 유리한은 그렇게 말하는 대신 도웅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주면 고맙지.”

이 호의를 다시 받을 수 있는 것도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니.

* * *

유리한을 태운 검정색 SUV 차량이 유서아가 입원해 있는 병원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참 좋은 병원]

행복 머니와 깊은 채무 관계에 있는 종합 병원이었다.

물론, 병원장이 을이고 행복 머니의 백상철이 갑인 관계였다.

‘병원장한테는 어떻게 사기를 쳤으면 그런 갑을 관계가 됐을까?’

유리한은 호기심을 뒤로하고는 도웅의 안내에 따라 걸음을 옮겼다. 향한 곳은 병원의 최상층.

유서아가 입원해 있는 1인실이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줘.”

유리한은 도웅에게 병실 앞에 있어주기를 부탁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삐― 삐이―

일정하게 울리는 기계음 사이로 곤히 잠들어 있는 조카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 서아야.”

내뱉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유리한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좋은 꿈 꾸고 있니? 그랬으면 좋겠는데.”

있는지 없는지 모를 신에게 유서아의 안녕을 빌며, 유리한은 조카의 이마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검은 연기가 그 주위로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을 지배하는 자(S)가 칭호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대상의 미래를 감춘 어둠을 걷어내고자 합니다.]

유리한은 이를 악물며 손끝에서 느껴지는 힘에 집중했다. 하지만 한데 모여 점을 이루는가 싶던 검은 연기가 맥없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칭호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아 대상의 미래를 감춘 어둠을 걷어내지 못했습니다.]

유리한이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보고는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칭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까? 응? 서아야, 너는 방법을 좀 알겠어?”

답이 들려올 리가 없는 질문이었다. 유리한은 간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는 기도하듯이 두 손을 맞잡았다.

“제발, 좋은 꿈 꾸고 있어. 고모 금방 돌아올게.”

그리고 너를 깨울게.

날이 밝을 때까지 유리한은 같은 말을 수십 번 되풀이했다. 유서아게 닿지 않는 말이라고 해도 유리한은 좋았다. 이건, 유리한. 그녀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으니.

* * *

10월 27일.

태평양 에리어에 위치한 소망의 탑, 그곳에서 플레이어를 초대하는 날이 밝았다.

이름하여 튜토리얼.

“안녕하세요, 롤리! 오늘 드디어 소망의 탑에서 튜토리얼이 열리는 날이라지요?”

“그렇습니다, 폴리! 이번에는 어떤 루키가 나타나 선발대를 따라잡을지 궁금하네요!”

“하하! 루키라고 해봤자, 다들 한 사람을 생각 중이잖아요?”

“롤리, 설마 저랑 똑같은 분을 생각 중이신가요?”

“엇? 폴리, 혹시 당신도……?”

유리한은 디바이스를 통해 송출되고 있는 방송을 심드렁한 얼굴로 보는 중이었다.

당신도……?

라니. 롤리폴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야 어차피 뻔했다.

“유리한 님, 도착했습니다.”

바로 자신.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도웅의 목소리에 유리한이 방송을 끄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한반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 국립 중앙 박물관.

유리한이 기지개를 쭉 켜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오, 건물 하나 새로 들어섰네? 바뀐 거 하나도 없는 줄 알았더니. 저기 뭐야? 뭐 하는 곳이야?”

“혼란과 격변의 시대에 남겨진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입니다.”

유명 플레이어들이 사용한 무기를 비롯하여 몬스터의 사체, 힘을 다한 마정석 등등이 전시된 곳.

유리한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저기에 내가 기부한 우리 예쁜이도 전시되어 있겠네?”

“예쁜이요?”

“그런 게 있어.”

유리한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도 잠시, 그녀는 몸을 돌려 도웅에게 말했다.

“도웅 씨는 이만 돌아가도 돼. 괜히 나랑 같이 움직이다가 눈에 띄면 곤란해질 테니.”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러네?”

유리한은 도웅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마치 쫓아오는 강아지를 물리치는 듯한 손짓이었다. 도웅은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가 이내 고개를 꾸벅거렸다.

“무사히 무기를 되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튜토리얼 시작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뵈었으면 하니까요. 시우랑 제대로 인사도 못 했지 않습니까?

도웅이 치미는 말을 삼켰다. 유리한은 그가 속으로 삼킨 말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오케이.”

그럼 우리 시우와 서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잘 부탁할게.

도웅은 유리한이 소리 없이 건넨 말을 알아듣고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한은 그대로 몸을 돌려 중앙 박물관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신분증 검사와 소지품 검사가 있었지만, 그녀는 오감 지배자를 이용해 가볍게 통과했다.

“어? 어엇?”

“아이고, 몸이 많이 안 좋으신가 보네요? 어서 병원 가보시고 수고하세요.”

눈과 귀가 한순간 멀어 당황하는 직원에게 덕담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튜토리얼이 치러지는 날이라 그런지, 박물관 내부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혼란과 격변의 시대를 기념하여 만들어진 특별 전시관에는 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중이었다.

“보자, 여기 유리한 특별 기념 전시실이란 곳이…….”

윽, 진짜로 있어.

유리한이 질색하는 얼굴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실로 걸음을 옮겼다. 가슴 언저리에 닿는 적당히 웨이브 진 머리칼이 그녀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다.

유리한이 제 이름을 딴 기념실에 다다를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몰렸다. 유리한이 제 얼굴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혹시…….”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

유리한을 흘긋거리던 관람객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

자신의 특별 기념 전시실에 들어선 유리한이 제 무기들 앞에 서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들 모두 진품 맞겠지? 설명문에는 진품이라고 적혀있는데.”

뒤통수를 워낙 많이 맞았어야지.

유리한이 고민에 잠긴 듯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아니면 어쩌지? 수장고라도 털러 가야 하나. 그렇게 되면 영웅 이미지 단번에 하락하게 될 텐데.

‘아, 그건 협회장 새끼 면상 때린 걸로 이미 하락 중이었나?’

잘 모르겠네.

유리한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두꺼운 유리판 안에 전시되어 있는 제 무기를 바라보았다.

에이, 모르겠다.

“이판사판!”

유리한이 인벤토리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꺄아아악! 가, 강도! 강도다!”

“경비! 경비 어디 있어!”

유리한을 눈짓하며 전시실을 관람 중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내려앉은 혼란 사이로 탕탕,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유리한의 마력이 응집된 총탄에 의해 그녀의 무기들을 보호하고 있던 유리판이 맥없이 부서져 내리고 말았다.

유리한은 곧장 제 무기를 꺼내 손에 쥐었다.

“와아, 다행이다. 진짜 우리 예쁜이들이었네? 레플리카면 어쩌나 했는데.”

유리한은 박물관에 기증했던 제 무기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활짝 웃었다. 그러다 느껴지는 시선에 몸을 돌리고선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박물관 내에 있던 경비 요원들이 그녀를 향해 무기를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경계심에 가득 찬 얼굴.

유리한이 키득거렸다.

“뭘 그렇게 노려봐요? 원래 주인이 가지러 온 것뿐인데.”

중앙 박물관에 고용된 경비 요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유리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 내에서 아무도 없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확장하더라도 그랬다. 그런 유명인이 자신이 기증한 것들을 도로 가지고 간단다.

막을 도리가 있을 리 없었다.

때마침, 유리한의 앞에 하얀 빛으로 이뤄진 문이 생겼다. 유리한이 난데없이 나타난 것에 어리둥절해하는 찰나, 경비 요원들은 그것을 알아보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유리한’을 소망의 탑으로 초대합니다!]

소망의 탑.

튜토리얼로 향하는 첫 번째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유리한이 시야에 보이는 메시지에 눈웃음을 짓고는 문으로 들어갔다.

“그럼, 안녕! 박물관 관장님께는 잘 설명해 줘요!”

“아니, 잠깐……!”

경비 요원 중 용기 있는 어떤 남자가 유리한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문 너머로 사라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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