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0)화 (10/235)

10화 

* * *

10월 27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날.

도웅은 여전히 국립 중앙 박물관에 차를 대고 있었다.

유리한은 그에게 가도 좋다고 했지만, 도웅은 떠날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롤리! 드디어 튜토리얼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현재 시간, 오전 10시 37분!”

“드디어 소망의 탑 72회 차 튜토리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튜토리얼에 시대의 영웅이신 유리한 님이 과연 참가했을까요, 폴리?”

“당연히 참가하지 않았겠어요? 저희는 곧 나타날 옵저버를 통해 튜토리얼의 상황을 보도록 하죠!”

도웅이 씹던 껌을 휴지에 뱉고는 차를 몰았다. 국립 중앙 박물관을 빠져나와 향하는 곳은 행복 머니. 유리한이 부탁한 그녀의 조카들 중 한 명, 유시우가 있는 곳이었다.

도웅이 멀어지는 국립 중앙 박물관을 보며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다녀오십시오, 유리한 님.”

염치없지만, 유서아 양과 유시우 군은 저희가 잘 돌보고 있겠습니다.

* * *

소망의 탑, 50층.

평화와 화합의 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대회의실에 여럿의 남녀가 앉아있었다.

그들 중 하나.

푸른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화면 속의 인물을 보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돌아왔다는 소문이 정말 사실이었군.”

그가 보고 있는 사람은 유리한. 남자의 말에 눈 밑의 점이 인상적인 여자가 키득거렸다.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라이. 바깥은 영웅의 귀환으로 진작 난리였다고?”

남자의 이름은 라이 에스페란도.

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 중인 다섯 개의 길드를 일컫는, 오광.

그곳 중 하나인, ‘청의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소란인지 모르겠어.”

“음?”

“저 여자가 암만 유명인이라고 해도 그래 봤자 구시대의 인간.”

여자가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와 유리한과는 30년이라는 차이가 있어.”

혼란과 격변의 시대.

흔히들 만렙이라고 부르던 최대 레벨은 50레벨이었다.

하지만 니르로르가 처치된 후, 소망의 탑이 등장하면서 레벨의 제한은 풀렸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플레이어가 50레벨을 뛰어넘어 아득한 초월의 경지에 올랐다.

여자는 지금 그 사실을 짚는 중이었다.

“저 유명인께서 과연 우리를 뛰어넘는 실력을 가지고 있을까?”

여자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짓는 그 순간, 그녀를 놀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큭, 크하하하!”

여자가 불쾌하다는 듯이 눈가를 찡그렸다.

“뭐야, 영감. 갑자기 왜 쪼개?”

“웃겨서 말이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여자를 향해 노골적인 비웃음을 지었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를 겪지 못한 애송이라서 그런지, 그녀에 대해 참 쉽게도 말하는군.”

“뭐?”

늙은 노인의 이름은 구천하.

청의 기사단과 마찬가지로 오광 중 한 곳인, ‘천하태평(天下泰平)’의 종주였다.

대회의실에 모인 사람 중 유일하게 혼란과 격변의 시대를 경험한 그가 비릿하게 웃었다.

“보면 알게 될 거다. 유리한, 저 여자가 얼마나 무시 못 할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두려워하게 될 거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 * *

“아오,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러워? 행복 머니 그 자식들, 내 욕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유리한은 괜히 귀를 만지작거렸다. 하얀 문을 통과하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숲.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평화로운 숲이었다.

“여기서 뭘 하라는 거야?”

유리한이 미간을 찡그리며 팔짱을 낄 때였다.

우웅, 공기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날개가 달린 구체의 물건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유리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게 옵저버라는 거겠지?”

정식 명칭은 옵서버(Observer).

유리한은 도웅으로부터 얻은 탑의 정보 중 한 가지를 떠올렸다.

옵저버란, 튜토리얼이 이뤄지는 순간을 탑의 안과 바깥에 전달해 주는 통신 장치.

“날파리같이 생겼네.”

그것도 꽤나 큰 날파리. 가만 보니까 날파리가 아니라 나방 같다. 유리한이 손을 뻗어 옵저버를 건드리자, 푸른 윈도우 창이 어지럽게 나타났다.

- [43층] : 우와! 할머니 안녕!

- [27층] : ㅋㅋㅋ할머니랰ㅋㅋㅋ

- [45층] : 할머니 맞짘ㅋㅋ

- [27층] : 30년이면 나이가 몇이냐?

- [31층] : 52살 아님? 할머니가 아니라 아줌마였넼

- [43층] : 그럼, 아줌마! 다시 안녕! 님 근데 진짜 유리한 맞음? 맞다면 상태 창 좀 보여주셈ㅎㅎ

- [31층] : 너 같으면 보여주겠냨ㅋㅋㅋㅋ?

아, 맞다. 옵저버에는 채팅 기능도 있다고 했지. 나는 보낼 수 없는, 아주 일방적인 채팅 기능이.

빠르게 올라가는 글자들에 유리한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꼭…….’

우리 속에 갇힌 동물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유리한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튜토리얼이 이뤄지는 1층에 옵저버가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

탑을 오르고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유흥거리를 주기 위해서였다.

‘오광인가 사광인가, 여튼 그런 녀석들은 이걸 통해 루키를 발견해서 데리고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관심 있게 들은 내용이 아니라서 모르겠다.

‘인생 솔로지.’

혼자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은 동료와 함께하면 됐고.

‘멀린, 디에스.’

생사를 함께 넘나들며 싸웠던 동료들을 떠올린 유리한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탑은 유리한이 과거에 잠길 틈을 주지 않았다.

- [28층] : 크으, 우리 언니 인생 2회 차 미소를 지으신다. 아주 아름다우시다!

- [31층] : 유리한이 왜 네 언니임? 우리 누나임.

- [28층] : 지랄 No임.

- [43층] : 아니 근데 진짜 유리한 맞음?

- [31층] : 맞다지 않음?

- [27층] : 그런데 이 지랄 중이냐? 대단한 녀석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유리한이 피식 웃었다.

“이 싸가지들. 익명이라고 되는대로 지껄이는 것 좀 봐. 너희 어디에 있는지 다 기억해 놨다?”

거기서 딱 기다려.

채팅 창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곧이어 폭발하듯이 무수한 글이 올라왔지만 말이다.

“아오, 정신 사나워! 뮤트 기능 어디 없나?”

유리한은 옵저버 내의 기능을 면밀히 살펴보고는 채팅 기능을 꺼버렸다.

이제 튜토리얼에 집중할 시간.

[안녕하십니까, 소망의 탑을 오르기로 결심한 플레이어 여러분?]

시작됐다.

유리한이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입꼬리를 올렸다.

[여러분은 탑에 들어선 순간부터 플레이어(Player)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탑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플레이어인 분들도 계실 겁니다.]

사설은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꺼내줬으면 하는데.

유리한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시험의 내용이 그녀의 앞에 떠올랐다.

[플레이어 여러분들에게 탑을 오르는 자격을 묻는 ‘테스트’가 곧 시작됩니다!]

[Test Open!]

[주어진 시간 동안 ‘고블린의 숲’에서 ‘생존’하십시오.]

[생존에 치열하게 맞선 경험에 따라 점수가 책정됩니다.]

[책정된 점수는 이후 스탯 및 보상으로 환산됩니다.]

[소망의 탑, 1층에서 겪은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 아니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이후 2층부터 겪게 될 죽음은 진정한 죽음입니다.]

[부디 무운을 빕니다.]

곧이어 상태 창과 스킬, 인벤토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유리한은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뿐이었으니.

“흐음.”

그녀는 테스트에 관한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네.”

고블린이 잡기 쉬운 몬스터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생존이라…….”

유리한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숲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이런 곳에서 하루를 버티라니, 안 될 말이지. 노숙하는 건, 혼란과 격변의 시대에서 충분히 겪었었다고.

유리한은 인벤토리에 넣어뒀던 수 개의 열기 저항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포션은 마셨고, 장신구는 곳곳에 착용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장신구들이 주렁주렁 달린 것이 우스운 꼴이 됐지만, 유리한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부터 자신이 벌일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부스럭거리며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명백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음.

유리한은 제 뒤를 노리는 기척을 무시하며 과거의 한 순간을 떠올렸다.

‘리한!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도 몰라! 나는 그냥 파이어볼을 외친 죄밖에 없다고!’

‘정말 그것밖에 없어?! 파이어볼이 어떻게 헬파이어가 돼?!’

‘나도 모른다니까!’

멀린 아서.

위대한 대마법사로 칭송받았던 그는 유리한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고자 했었다. 하지만 경악할 만한 연산 실력과 마력 제어 능력에 그는 한탄하며 유리한에게 말했었다.

‘너는 그냥 마법 때려치워라.’

‘그래도 눈대중으로 대충 따라 할 수는 있는데.’

‘그게 문제라는 거야, 리한!’

어떻게 마법을 ‘대충’ 따라 할 수가 있느냐고 엄청 혼났었지. 유리한이 피식 웃으며 붉은 보석이 박힌 귀걸이를 한 번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수풀에서 누군가 뛰어올라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죽어라!”

몬스터가 아닌 사람.

낯선 곳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건, 날짐승이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는 선인의 말씀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제 목을 노리며 들어오는 것에 유리한이 비딱하게 웃었다.

“파이어볼(Fireball).”

화르륵―!

피어난 불꽃이 작은 구(球)를 형성하는가 싶더니, 이내 사내를 집어삼켰다.

“윽… 아! 아아아!!”

유리한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내를 감흥 없이 쳐다봤다. 사내를 태운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몸집을 키워가며 유리한의 주위를 활활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 불꽃이 거대한 화마가 되어 숲을 집어삼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곳곳에서 고통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의 울음소리도 들렸고, 사람의 비명도 들렸다.

[플레이어, ‘유리한’ 님께서 새끼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플레이어, ‘유리한’ 님께서 ‘김명한’ 님을 처치했습니다.]

[플레이어, ‘유리한’ 님께서 ‘미츠코 나리타’ 님을 처치했습니다.]

……

[플레이어, ‘유리한’ 님께서 대왕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메시지가 불편하다.

유리한은 눈앞에 나타나는 알림을 끄고는 마지막으로 저를 보고 있는 옵저버를 불태웠다.

* * *

“삼촌! 고모가 갑자기 사라졌어요! 우리 고모 어디 갔어요?!”

유시우가 백상철의 팔을 붙잡아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의 말에 반응하지 못했다.

백상철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소망의 탑에서 진행 중인 튜토리얼을 보고 있던 행복 머니의 다른 식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유리한이 보여준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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