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2)화 (12/235)

12화 

유리한이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메시지의 내용이 바뀌었다.

[Test Open!]

[9층에 사로잡혀 있는 태양교의 사제, ‘요한 리스체가스’의 속박을 푸세요!]

[시험을 응시하려면, 조건 달성이 필요합니다.]

“저기요? 저는 시험 치르겠다고 한 적 없는데? 시스템 새끼야, 제 말 들리세요?”

들려도 무시하는 게 일상인 시스템이었다.

‘소망의 탑’이라고 하여, 새로운 장소를 플레이어에게 제공했지만 그 본질이 변할 리가 없었다.

시스템은 일방적으로 유리한에게 특별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보여주었다.

[응시 조건: 9층에 사로잡힌 태양교의 사제, 요한 리스체가스의 호감도 100% 달성]

“호감도?”

유리한이 미간을 좁히고는 ‘요한 리스체가스’라는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음……?”

남자의 머리 위에 어느새 숫자 하나 떠올라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유리한은 두 눈을 비볐다.

뭐죠? 지금 제 눈에 보이는 요한 리스체가스 씨께 표시되어 있는 호감도가 -10%인데요?

잘못 본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유리한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했다.

그때, 요한 리스체가스가 유리한의 시선을 알아차리고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플레이어님?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신 걸까요?”

유리한은 방긋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다. 특별 시험이고 자시고, 하루라도 빨리 탑을 올라가야만 했다.

동생의 죽음에 관련이 깊은 오광(五光)은 모두 저 위에 있을 테니.

하지만.

[특별 시험의 첫 번째 보상을 미리 공개해 드립니다.]

[보상은 ‘요한 리스체가스’가 9층에 사로잡히기 전에 그가 지냈던 곳.]

[탑의 34층입니다.]

유리한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도움은 필요 없고 당신의 전화번호는 필요해요.”

“네?”

“아니면 주소.”

노 빠꾸 킵 고잉.

유리한은 크게 마음을 먹고 요한 리스체가스의 마음을 한번 훔쳐보기로 결심했다.

* * *

결과적으로, 유리한은 실패했다.

이야, 뚝뚝 떨어진다. 한파가 찾아온 12월의 겨울 날씨처럼 호감도가 아주 영하를 찍는구나. 유리한의 눈에 보이는 요한 리스체가스의 호감도는 현재 -25.

여기서 더 내려가면 망한다.

본능이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유리한은 빠르게 한 발 물러났다.

이름하야, 열 보 전진을 위한 일보 퇴각.

“쏘리.”

“네?”

요한이 얼굴을 찌푸렸다.

“다음에 다시 올게! 안녕!”

유리한은 불쾌감을 얼굴 밖으로 표하고 있는 요한의 앞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요한은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그 인간은 도대체 뭐였지?

하지만 수상쩍은 플레이어는 사라진 지 오래.

요한은 부장 몰래 조기 퇴근해 버린 직장인 같았던 여자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러기 무섭게 웬 플레이어 하나가 그에게 팔을 내밀었다.

“야, 사제 나부랭이. 다친 곳 좀 치료해 줘.”

나뭇가지에라도 긁힌 듯, 팔뚝에 난 작은 생채기가 보였다. 상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민망한 수준.

하지만 요한 리스체가스는 선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 플레이어님.”

* * *

유리한은 요한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후, 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플레이어를 위한 안내소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

지금은 쪽팔림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은 유리한은 도웅에게서 얻었던 탑의 정보를 더듬었다.

‘탑 내부의 돈은 ‘코인’이라는 것으로 대체됩니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에서도 얻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네, 부자시군요.’

‘그리고 소망의 탑은 층마다 환경이 다릅니다. 각 층마다 인종, 문화 또한 다르며 하나의 층이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의사소통을 하는 데 지장은 없을 겁니다. 탑의 안배로 모든 언어는 자동으로 번역돼서 들리고 보이거든요. 상대방에게도요.’

‘층을 오르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이 시험은 각 층의 ‘지배자’에게서 받을 수 있으며, 개별적으로 치를 수도 있고 팀을 이뤄 치를 수도 있습니다.’

‘강제적으로 팀을 이뤄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층의 시험은 매번 달라지거든요.’

‘50층 이후부터는 시험의 양상과 환경이 꽤 달라진다고 들었습니다. 자, 자세히는 모릅니다! 50층 이후의 정보는 시스템이 강제적으로 제한을 가한다고 들었거든요.’

여기서 도웅이 말한 하나의 층이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바로 9층이었다.

도시 국가, 리스체가스.

중세 유럽풍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유리한은 여관 중앙에 걸려있는 ‘리스체가스’를 상징하는 월계수 문양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남자의 이름이 요한 리스체가스였지?’

부모가 나고 자란 도시를 워낙에 사랑해서 도시의 이름을 아들에게 붙인 건 아닐 거다. 유리한은 종업원을 불러 9층에 대한 정보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도시의 이름이 왜 ‘리스체가스’예요?”

“이곳을 다스리고 있는 가문이 바로 리스체가스 가문이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레 도시를 칭하는 이름도 리스체가스가 됐지요!”

오호라.

“그럼, 이곳 9층의 지배자도 리스체가스 가문이겠네요?”

“네, 트리샤 리스체가스 가주님이세요. 아주 인자하시고 훌륭하신 분이에요!”

소망의 탑 내부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즉,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탑’이라 불리는 공간이란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말.

유리한은 도웅에게서 얻었던 탑의 또 다른 정보를 떠올리며 종업원에게 다시금 물었다.

“혹시, 다음 층으로 가는 시험이 뭔지 아세요?”

별 기대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야,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탑 내에서 사는 주민.

그에게서 ‘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물어본 건 혹시나 해서.

“리스체가스 가주님의 부름을 받고, 함께 만찬을 가지는 게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시험이라고 들었어요!”

그렇기에 의외로 쉽게 얻은 답에 유리한은 당황했다.

가주의 부름을 받아? 함께 만찬을 가져?

‘너무 쉽잖아.’

그제야 유리한은 9층 내에서 마주친 플레이어의 숫자가 왜 그렇게 적은지 깨달았다.

다음 층으로 가는 시험이 너무 쉬워서였다.

가주의 부름을 받는 조건이 뭔지 모르겠지만, 함께 식사 한 번이면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다니.

유리한은 우리 가주님께서 배려심 넘치셔서 시험을 쉽게 내고 있다며, 9층의 지배자를 찬양 중인 종업원에게 또 다른 것을 물었다.

“오광에 대해서도 아시나요?”

“오광이요? 으음, 잘 모르겠어요. 그건 플레이어분들께 묻는 것이 더 빠를걸요?”

오광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종업원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은 유리한은 그에게 팁을 주고는 방을 잡아 여관 2층으로 올라갔다.

“아, 요한 리스체가스에 대해서 물어봤어야 했는데! 안내소의 위치에 대해서도 물어볼걸!”

뒤늦게 아쉬움이 몰려왔지만 괜찮았다. 옷만 갈아입고 금방 나갈 거니까. 나가는 길에 그 종업원을 붙잡고 한 번 더 물어보면 되지!

유리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다.

* * *

위, 아래. 파란 트레이닝복을 세트로 맞춰 입은 여자가 벤치에 편하게 기대어 앉아있었다.

여자의 정체는, 유리한.

현재 요한 리스체가스를 구경 중인 시대의 영웅 되시겠다. 유리한이 아무 생각 없이 그를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적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지.’

엄밀히 말하자면, 요한은 유리한의 적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않네? 다리 안 아프나?’

요한 리스체가스는 지구의 마리아상을 닮은 어느 조각상 앞에 서있기만 했다. 간간이 자신을 찾아오는 플레이어를 치료해 주면서 말이다.

‘사제라더니.’

무료 봉사라도 하고 있는 걸까?

‘그럴 리가 없지.’

해가 높이 떴던 점심 무렵부터 요한을 지켜봤는데,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하암.”

유리한은 길게 하품을 하고서 벤치에 취객인 양 늘어졌다. 그러면서도 요한을 지켜보는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여관을 나서기 전, 그녀는 제게 9층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준 종업원을 붙잡아 플레이어를 위한 안내소와 요한 리스체가스에 대해 물어봤었다.

얻은 정보는 안내소가 있는 위치 하나뿐.

‘죄송해요, 플레이어분께서 누구를 묻는 건지 모르겠네요.’

요한 리스체가스에 대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유리한에게 곧잘 정보를 알려주던 종업원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피했기 때문이다.

‘요한 리스체가스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지만, 분명 아는 눈치였지.’

애초에 요한 리스체가스에 대해 정말 모른다고 해도 ‘리스체가스’의 이름이 나온 이상, 종업원은 자신에게 되물었어야 했다.

자신이 아는 리스체가스의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꽤나 있는 것 같았으니까.’

어쨌든 간에, 지금 유리한은 VIP석에 앉아서, 아니 누워서 요한 리스체가스를 구경 중이었다.

그게 몇 분이 되고, 몇 시간이 되니 요한 리스체가스가 결국 유리한에게 다가오고 말았다.

“저기, 플레이어님?”

“네, 요한.”

이름을 불린 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이름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유리한이 친숙하게 그를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능숙하게 표정을 갈무리하고서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실까요?”

첫 만남에서 들은 것과 똑같은 말. 하지만 어조가 달랐다. 묘하게 날이 서있는 것 같은 목소리에 유리한이 코웃음을 치고는 방긋 웃었다.

“아니요, 없어요. 그러니까 하던 일 계속하세요. 보기 좋네.”

“…….”

요한의 한쪽 눈가가 살짝 찡그려졌다. 누군가 유리한이 받은 특별 시험을 알아차렸다면 그녀에게 물었을 것이다.

당신 지금 요한 리스체가스의 호감을 살 생각이 있기는 하냐고.

있었다.

때문에 유리한은 떨어지기 시작하는 호감도에 황급히 몸을 일으키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요한. 하나 물어봐도 돼요?”

“마음껏 물어보세요, 플레이어님.”

하지만 이내 요한은 후회했다.

“요한은 밥 안 먹어요? 화장실은요? 그렇게 한자리에 계속 서있으면 다리 안 아파요?”

괜히 물어보라고 한 것 같다.

요한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집어삼킨 후 상냥하게 답해주었다.

“먹는 것을 그리 즐기는 성격이 아닌지라 먹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요의 정도는 쉽게 참을 수 있고요. 또한 저는 태양교의 사제. 몸에 쌓인 피로는 금방 해소할 수 있으니 걱정 마시기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