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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4)화 (14/235)

14화 

* * *

유리한이 향한 곳은 리스체가스 가문의 대저택이었다.

저택이라기보다는 성에 가까운 웅장한 규모였다.

“안녕하십니까, 유리한 님.”

요한 리스체가스와는 물빛의 머리칼만 닮은 남자가 그녀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트리샤 리스체가스 가주님의 아들인 아레스 리스체가스라고 합니다. 가주님의 명령으로 직접 모시러 왔습니다.”

어떻게 인사를 하는 것이 좋을까? 어렵지 않게 유리한은 답을 내놓았다.

그녀는 리스체가스의 기사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쪽 손을 가슴께에 올린 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레스 리스체가스 님. 리스체가스 가주님은 지금 어디 계시나요?”

아레스는 소리 없이 감탄했다.

지금껏, 어떤 플레이어도 리스체가스의 예에 맞춰 인사를 해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유리한이 살짝 시선을 들어 올렸다.

“아레스 리스체가스 님?”

“아. 편하게 아레스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가주님께서는 지금 만찬장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유리한은 싱긋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만찬장은 저택의 현관에서 10분을 더 걸어 들어간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게.”

9층의 주인, 트리샤 리스체가스가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며 유리한을 반겼다.

유리한은 그녀에게도 아레스 리스체가스에게 보였던 인사를 올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유리한이라고 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그리 말하나? 내 그대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네. 진작 초대를 했었어야 하는데 미안하군.”

유리한이 고개를 바로 하고선 싱긋 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가주님.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이해해 줘서 고맙군. 소문으로 듣기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성정이라던데 아무래도 헛소문이었던 모양이야.”

하하. 어떤 새끼가 그런 깜찍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던가요?

유리한은 치미는 말을 삼킨 후, 오랜만에 할머니 댁을 찾은 손주처럼 예의 바르게 웃었다. 트리샤는 그런 유리한에게 덕담을 건네기 시작했다. 1분, 2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목소리는 아레스의 말에 의해 끊겼다.

“어머니.”

“아, 내 귀한 사람을 너무 오래 세워두고 있었군. 어서 자리에 앉게나. 가문의 요리사가 자네를 위해 실력을 발휘했는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군.”

충분히 입에 맞을 거다.

유리한은 기다란 테이블에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맛본 음식은 하나같이 미미(美味), 그 자체였다.

유리한은 제 앞에 놓인 음식은 과하지는 않게, 하지만 빠르게 비우기 시작했다.

트리샤가 먹음직스럽게 먹는 유리한의 모습이 보기 좋다는 듯이 흐뭇하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편하게 물어보도록 하게. 내 이곳을 지배하는 자로 전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뭐든 전해주도록 하겠네.”

“그럼, 사양 않고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리한이 냅킨을 들어 입가를 닦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가주님께서는 오광이란 자들을 아시나요? 탑에서 제일가는 녀석들이라고 하던데,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오광이라…….”

트리샤가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가 이내 말했다.

“물론, 알고 있지. 그들은 어딜 가나 유명 인사들이니.”

신념을 중시하는 청의 기사단.

강함을 중시하는 혈맹.

지식을 중시하는 만물.

이성을 중시하는 천하태평.

권위를 중시하는 뮤즈.

트리샤 리스체가스는 탑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다섯 개의 길드를 간략하게 설명해 준 후 유리한에게 말했다.

“그들의 힘은 막강하지. 위층의 몇 곳은 그들이 장악 중이라고도 했던 것 같네.”

즉, 층의 지배자로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말.

“하지만 이곳, 리스체가스와 같은 아래층에는 별 관심이 없는 자들이라네.”

“그렇군요.”

유리한이 꾸밈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궁금한 것은 또 없나?”

물으면 답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요한 리스체가스.”

같은 리스체가스의 일원이나 초대받지 못한 사람.

“그에 대해서도 묻고 싶은데, 답해주실 수 있을까요?”

훈훈했던 분위기가 단번에 식었다. 유리한의 질문에 트리샤는 얼굴을 찌푸렸다.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 버러지에 대해서는 왜 물으시는 겁니까, 플레이어님?”

유리한의 질문에 답해준 사람은 아레스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 하나에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버러지라고요?”

유리한의 입에서 날 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레스는 황급히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말이 험하게 나왔군요. 사과드립니다, 플레이어님.”

사과는 내가 아니라 요한 리스체가스에게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이 자리에 없지마는 말이다.

하지만 암만 만찬을 함께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버러지’라니.

유리한이 언짢다는 듯이 한쪽 눈가를 찡그렸다.

요한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유리한과 마찬가지로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고 있던 트리샤가 그녀에게 물었다.

“유리한, 자네가 그 이름은 어디서 들었는가?”

“그러는 가주님께서는 저를 어떻게 아시고 만찬에 초대를 해주셨나요?”

대답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트리샤가 눈가를 찡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말했듯, 그대의 명성을 익히 들어서 말이네. 알고 싶지 않아도 그대에 대한 것을 알게 되더군.”

명성.

유리한은 ‘1,055’의 능력치를 지니고 있는 스탯을 떠올렸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에서는 단순히 이름을 알리는 용도였는데, 탑에서는 그게 아닌가 보다.

‘아니다, 맞나? 뭐가 어쨌든 명성 수치가 높은 게, 탑을 오르는 데 유용하게 작용하기는 하겠어.’

별 쓸모도 없는 게 주야장천 오른다고 욕했었는데.

유리한이 피식 웃으며 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트리샤 리스체가스는 언짢음을 넘어 불쾌감 가득한 얼굴로 유리한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내 질문에 답해주지 않겠나?”

“질문이 뭐였죠?”

태연스레 묻는 목소리에 트리샤가 주먹을 꽉 쥐었다가 부드럽게 풀며 말했다.

“요한,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내 물었었네.”

“아아, 그랬죠. 제가 나이가 나이인지라 깜빡했네요.”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유리한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는 방긋 웃었다.

“제가 좀 똑똑하거든요.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요. 딱히 남한테서 들은 건 없고요.”

능청스레 답한 유리한은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트리샤는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제 어머니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아차린 아레스가 유리한에게 조용히 경고를 하려고 했지만, 트리샤 리스체가스는 아들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머니.’

‘됐다, 상대는 플레이어. 안하무인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지.’

리스체가스 모자(母子)가 시선을 주고받으며 나누고 있는 대화는 유리한의 관심 밖이었다.

그녀는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집어넣고는 우물거렸다. 그런 후, 다시 화제를 요한으로 돌렸다.

“가주님께서는 요한이 조각상이 있는 앞에서 하루 종일 서있는 거 알아요?”

“알고 있다네.”

“그 앞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도 알고 계시나요?”

“태양교의 사제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며, 그 녀석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르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않나?”

“이유라니요?”

“사람들의 심기를 거슬렸거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거나. 뭐 그런 일 말이네.”

“아하…….”

지랄하네.

유리한은 예쁘장하게 웃으며 트리샤 리스체가스를 노려봤다. 리스체가스 가주는 요한이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아는 게 분명했다.

힐 셔틀, 잘못되면 무조건 네 탓. 그렇게 되지 않아도 네가 잘한 건 없다.

오늘 본 남자만 하더라도 그려지는 그림이었다.

유리한은 미소를 그린 후, 테이블 아래를 잡았다.

‘넘길 수 있을까?’

지금보다 약했을 때도 사람 하나를 넘겼던 몸.

당연히 넘길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걸 넘기면 누가 치워? 저 자식들은 절대 안 치울 텐데.’

유리한은 리스체가스 가주와 그녀의 아들 뒤로 서있는 고용인들을 흘긋거렸다.

넘기면 저 사람들만 고생하겠지.

그렇기에 유리한은 쯧 혀를 차고는 테이블 대신 그 위. 음식 아래의 테이블보를 잡았다.

“자 자, 그 버러지. 아니, 그 녀석의 이야기는 그만하고 음식부터 먹읍시다. 저희 요리사가 기껏 실력을 발휘했는데, 다 식겠습니다.”

아레스가 분위기를 풀고자 너스레를 떨었지만.

“요리사분께는 죄송하다고 전해주시겠어요, 아레스 님?”

“네?”

유리한은 방긋 웃으며 테이블보를 빠르게 잡아당겼다. 보 위에 놓여있던 음식들이 공중에 떴고, 몇 개의 그릇이 그대로 추락했다.

트리샤 리스체가스와 아레스 리스체가스의 몸뚱이 사이로.

적막이 내려앉은 가운데, 유리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머, 어떡해! 가주님과 아레스 님의 옷이 아주 엉망이 됐네요!”

자신이 둘을 그렇게 만들었으면서, 유리한은 호들갑을 떨며 촐싹거렸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트리샤가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서는 유리한을 향해 노성을 내뱉었다.

“이……! 이게 무슨, 무례한……!!”

삿대질은 덤이었다.

유리한은 자신을 향하는 검지를 보며 씨익 웃었다.

“만찬은 종료예요, 리스체가스 가주님. 그리고 아레스 님. 또한, 당신들.”

유리한이 저를 향해 검을 치켜든 여럿의 기사들을 보며 비웃듯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나라면 검을 집어넣겠어. 저기 계시는 분처럼.”

유리한이 가리킨 사람은 트리샤를 살피고 있는 리스체가스의 기사단장이었다. 기사단장은 제 기사들을 향해 유리한의 말대로 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기사들이 괜히 플레이어에게 달려들었다가 된통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기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검을 집어넣었다.

유리한은 예의 바르게 의자를 집어넣고는 트리샤와 아레스에게 인사했다.

“또 뵈었으면 하네요.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좋은 하루는 무슨. 이미 트리샤와 아레스에게는 최악의 하루가 되고 말았다.

* * *

“어휴, 쓰레기들이랑 시간 낭비만 했네.”

사실, 유리한은 리스체가스 가주의 초대에 응하지 않아도 됐었다.

그녀는 특별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고, 그렇기에 9층에서 치러야 할 시험은 유리한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초대에 응한 건 알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고, 오광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지배자라면 여관의 종업원에게서 얻은 정보보다 더 고급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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