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6)화 (16/235)

16화 

- 우끼! 우끼끼!

기다란 팔로 암벽을 잡고 있는 짐승 한 마리가 잔뜩 성난 얼굴로 유리한을 보고 있었다.

- 우끼끼!

“아, 네가 무덤지기라는 녀석이야?”

원숭이 닮았네. 리스체가스의 원숭이는 나무가 아니라 암벽을 타고 다니는구나.

- 우끼끼! 끼끼!

“한 마리가 아니었네…….”

유리한은 한숨을 삼켰다.

한 마리면 좋게좋게 말로 타일러 보겠는데, 여럿이면 곤란하다.

더군다나 무덤지기들은 한 손에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돌 조각을 하나씩 쥐고 있었다.

- 우끼끼! 끼끼이!!

- 끼이! 끼끼!

무덤지기들이 당장에라도 유리한에게 이를 던지려는 듯, 위협적인 자세를 취한다.

유리한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우끼? 우끼! 우끼끼!

은하의 동산을 터전으로 삼고 있던 ‘강철팔 원숭이’들이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그들 중 몇은 아래로 추락했으나, 유리한은 관심을 끄고서 암벽을 올라갔다. 오감 지배자(A)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스킬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 분, 아니.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오……! 도착!”

유리한은 드디어 암벽을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상했다. 빛이라고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요한이랑 봤을 때는, 분명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어둠만이 내려앉은 공간에서 유리한이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곧, 어둠에 익숙해진 유리한의 눈이 펼쳐진 광경을 천천히 담기 시작했다.

“와우…….”

거인들의 왕국에 온 소인이 된 기분이다.

유리한은 처음, 암벽을 마주했을 때처럼 고개를 젖혔다.

제 머리 하나보다 더 자란 클로버들이 싱싱하게 잎을 내보이고 있었다.

유리한은 뒷목을 주무르고는 밝게 웃었다.

“좋았어! 세잎클로버 후딱 따서 돌아가는 거야!”

라는 유리한의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깥에서는 행운의 상징이라는 네잎클로버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불행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망할! 이것도 네 잎이야!”

바깥에서는 그렇게 보기 힘들었던 네잎클로버인데. 여기서는 널린 게 네잎클로버였다. 유리한이 머리를 움켜쥐고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세잎클로버 어디 있냐! 이제 그만 좀 나와라, 제발!!”

자정이 지난 지 오래.

리스체가스를 밝히는 보랏빛의 달이 기울어 갔다.

* * *

요한 리스체가스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제 어머니의 조각상 앞에 서있는 중이었다.

유리한이 마리아상을 닮은 조각상이라고 평했던 것은, 사실 요한 리스체가스의 어머니를 표현한 조각상이었다.

트리샤 리스체가스가 아꼈던 딸,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하기도 했던 그녀는 죽은 지 오래.

플레이어와의 사랑 속에서 가진 요한 리스체가스를 출산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한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조각상 앞에서 오가는 플레이어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플레이어님. 제 도움이 필요하실까요?”

물론, 돌아오는 인사는 없었다.

자신을 치료해 달라, 이러한 퀘스트를 수행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으냐. 강압적인 요구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순종했다.

그렇게 요한이 오가는 플레이어들에게 습관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있을 때였다.

“나 왔어요, 요한!”

“…플레이어님?”

아침까지 돌아온다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은 저도 모르게 반가움에 가득 찬 얼굴로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요한의 두 눈이 떨렸다.

도대체 저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요한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하나만 따오라는 건지, 아니면 여러 개를 따오라는 건지 알 수 있어야지. 원!”

유리한은 저보다 훨씬 큰 클로버들을 우산처럼 쥐고 있었다. 요한이 당황하여 입을 뻐금거릴 때, 유리한이 그에게 따온 것들을 내밀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건 일단 다 따왔어요! 자요, 여기!”

얼떨결에 이를 받아 든 요한이 살짝 휘청거렸다.

“조심해요. 그거 은근 무겁더라고요.”

유리한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뻐근한 어깨를 두드렸다.

[축하드립니다!]

[요한 리스체가스의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끝냈습니다!]

[플레이어, 유리한의 정신력이 ‘3’ 올랐습니다.]

[플레이어, 유리한의 근력이 ‘1’ 올랐습니다.]

열심히 퀘스트를 수행한 보람이 없다.

몇 시간이고 눈이 빠져라 세잎클로버를 찾았는데, 얻은 정신력이 고작 ‘3’이라니!

겨우 찾은 세잎클로버를 힘겹게 들고 왔더니, 얻은 근력이 고작 ‘1’뿐이라니!

아이고, 억울해서 못살겠다!

유리한이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렸다가 들린 목소리에 이내 표정을 풀었다.

“플레이어님,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요한.”

유리한의 대답에 요한은 그녀에게 받은 세잎클로버 다발을 들고 몸을 돌렸다. 유리한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잘 어울리네.”

비 내리면 화보 하나 찍힐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얼마 안 있어 요한이 돌아왔다.

세잎클로버 다발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유리한에게 녹색빛의 액체가 담긴 포션 하나를 주었다.

“피로 회복제랍니다.”

“오, 땡큐. 감사해요.”

안 그래도 온몸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웠기 때문에 유리한은 곧장 요한이 준 것을 입에 털어 넣었다.

“……!”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맛이 속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유리한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도 이보다는 맛있을 거다.

“플레이어님?”

유리한이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올라오려는 토기를 애써 잠재웠다. 후웁, 맑은 공기를 크게 들이마신 유리한이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고마워요, 요한. 세상에 다시는 없을 맛이네요.”

“그런가요? 여기 하나 더 있답니다, 플레이어님.”

“아니요! 사양할게요!!”

누구 죽일 일 있나요, 요한?!

유리한은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삼키고는 요한의 손을 잡았다.

“이제 데이트나 하러 가죠.”

“데이트요?”

요한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유리한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유리한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면서요?”

“그게 왜 데이트가…….”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구경하면 그게 데이트지! 그러니까 어서 갑시다, 가!”

유리한은 막무가내로 요한을 잡아 이끌었다.

[이벤트 발생!]

[요한 리스체가스의 퀘스트에 대한 보상 이벤트입니다.]

[내일이 올 때까지, 요한 리스체가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보상: 호감도 +10]

유리한의 머릿속에는 호감도 ‘100’을 달성할 생각밖에 없었다.

* * *

유리한이 요한 리스체가스의 손을 잡고 즐겁게 걸음을 옮길 때, 둘의 뒤를 쫓는 이가 있었다.

“네, 크리스 님. 지금 이동하고 있습니다. 쫓아갈까요?”

리스체가스 가문의 기사였다.

남자가 통신석에서 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도 유리한과 요한이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 답이 돌아왔다.

- 그러도록.

남자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문제라면, 유리한이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거다.

‘암만 봐도 리스체가스의 사람 같은데.’

만찬장에서 단단히 미움을 산 모양이다.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저… 플레이어님? 이제 손은 놓아주셨으면 합니다.”

“아, 쏘리. 놀 생각에 너무 들떴었네요.”

유리한이 요한의 손을 놓아주었다. 요한은 그녀에게 잡혔던 손을 주먹 쥐었다가 펴기를 몇 번 반복하고는 물었다.

“플레이어님께서는 리스체가스에서 무엇이 유명한지 알고 계십니까?”

“그거야 당연히 모르죠!”

온 지 이제 하루.

아니, 이틀째다.

올라오자마자 특별 시험을 받아버렸고 9층의 지배자를 만났다. 이것만으로도 참 많은 일을 겪었다고 할 수 있는데, 눈앞의 남자에게서 퀘스트를 얻어 수행하게 됐다.

리스체가스의 관광 명소를 알아볼 여유 따윈 없었다는 말씀.

“그래도 맛집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을 자신이 있어요!”

“맛집이요?”

“네! 요한에게 미미(美味)가 무엇인지 가르쳐 드릴게요.”

“그럴 필요 없답니다, 플레이어님. 말했듯이 저는 먹는 것을 그리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고 해도 저만 믿고 따라와요!”

자고로 ‘맛집’이란, SNS상에서 유명한 곳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아가는 곳이었다.

‘이 동네에도 택시가 다니면 기사님 아무나 붙잡고 식당을 물어보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점심에 맞춰 밥을 먹으러 가는 리스체가스 시민들을 뒤따라가는 수밖에. 마침, 공사를 끝낸 인부들이 어느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유리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외진 골목길, 그곳에 식당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댁한테 내줄 자리는 없소.”

하지만 입구 컷을 당해버렸다.

유리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자리가 저렇게나 많은데요?”

식당의 이름은 ‘별무리’로, 찌개류의 음식을 주로 파는 곳이었다. 별무리의 사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유리한의 옷을 가리켰다.

“아…….”

차림새가 아주 엉망이었다. 하긴, 밤이 새도록 암벽을 타고 클로버 밭을 파헤쳤으니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유리한이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다급하게 외쳤다.

“저 돈 많아요! 안 되면 선불로 먼저 지급할게요!!”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입장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별무리의 사장이 미심쩍다는 듯이 유리한을 쳐다봤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유리한과 함께 온 요한에게로 옮겨갔다.

“……!”

사장이 놀란 얼굴로 숨을 들이마셨다.

요한 리스체가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조각상 앞을 떠나지 않는 리스체가스 가문의 사생아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막내딸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밤늦게 오른 열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치료해 준 사람.

그렇기에 별무리의 사장은 헛기침을 터트린 후 말했다.

“크흠, 흠. 선불은 됐고. 저기 아무 자리나 가서 앉든가 말든가.”

소비자 고발 센터에 신고해도 좋을 법한 불친절한 태도였다. 하지만 유리한은 좋아라 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앉아요, 요한!”

유리한은 창가 자리에 앉고는 요한에게 몸을 기울였다.

“요한,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플레이어님.”

요한이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리스체가스의 사람들은 싸가지가 없는 편인가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