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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7)화 (17/235)

17화 

“쿨럭……!”

요한은 황급히 냅킨을 들어 입가를 닦았다.

“그, 글쎄요. 리스체가스의 사람들과 교류한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요한이 답지 않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 대답에 유리한은 입술을 씰룩였다.

“주문.”

가게의 사장이 뚱한 얼굴로 메뉴판을 내밀었다.

종업원이 있는데도 직접 온 이유가 궁금했지만, 유리한은 별다른 것을 묻지 않고 말했다.

“이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는 걸로 두 개요!”

별무리의 사장이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음식은 금방 준비됐다.

문제라면.

“으음, 사장님?”

“뭐요.”

“이 가게에서 잘 나가는 음식이 정말 많네요?”

다섯 종류로 두 개씩. 총 열 개의 음식이 나왔다는 것.

이건 성장기 청소년이 와도 소화해 내지 못할 양이었다. 유리한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바란다는 눈빛으로 사장을 쳐다봤다.

별무리의 사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내가 솜씨가 좀 좋거든.”

그래서 모든 음식이 잘 나간다면서 사장은 툴툴거렸다.

“어서 먹기나 하쇼.”

그러면서 그는 서비스라며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는 술을 올려주었다.

“술 드셔요?”

“아니요. 태양교에서는 음주를 금하고 있거든요.”

“으흠.”

안타까워라. 알코올을 맛볼 수 없는 몸이라니.

유리한은 능숙하게 병을 따고는 잔을 채웠다.

“먹고 어디 갈까요?”

“네?”

유리한이 채운 잔을 입 안으로 비우고는 물었다.

“가고 싶은 곳 없어요? 매일 조각상 앞에 가만히 서있기만 했을 거 아니에요?”

“글쎄요…….”

요한이 눈웃음을 지었다.

“생의 절반을 리스체가스에서 지내기는 했지만, 도시를 제대로 돌아다닌 적은 없거든요.”

“그럼, 오늘 돌아다니면 되겠네요. 저기요, 사장님!”

유리한이 바삐 움직이는 별무리의 사장을 불러 세웠다.

“뭐야? 또 왜 부르는 거요?”

“저희 이번에 처음 부르는 거거든요? 리스체가스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어디예요?”

“관광하려고?”

“네, 사제님께서 오늘 휴가라서요. 모시고 관광 좀 하려고요.”

별무리의 사장이 요한을 흘긋거리고는 말을 쏟아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은하의 동산이지. 하지만 거긴 자정쯤 가는 게 좋소. 날이 바뀌고 30분간 별의 꽃이 피는데 그게 그렇게 장관이거든.”

“아… 그래요……?”

유리한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그 암벽을 또 올라야 한다고?’

거절이다.

하지만 유리한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요한의 얼굴을 보고선 방긋 웃었다.

‘가야겠네.’

젠장!

유리한이 제 앞에 놓인 음식 중 파스타를 말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그때까지 시간을 보낼 다른 명소가 있을까요?”

별무리의 사장은 거 참 귀찮게 군다면서도 답해주었다.

“스텔라 거리에서 옷이나 사 입든가. 그 꼴로 돌아다니면 경비병한테 붙잡힐 거요.”

그만큼 유리한의 꼴은 엉망이었다. 사장의 퉁명스러운 친절에 유리한이 웃었다.

“네, 사장님.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제 쓸데없는 거 그만 묻고 어서 먹기나 하쇼. 음식 다 식겠구만.”

유리한이 돌돌 만 파스타를 입에 넣었다.

“와우! 요한, 어서 먹어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리스체가스의 공사장 인부들이 힘들게 발걸음 할 보람이 있는 맛집이었다.

* * *

점심을 먹은 후, 유리한과 요한은 스텔라 거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갈아입을 옷을 사 입고 나니 어느새 해가 진 밤이었다.

“요한도 좀 사지. 맨날 그 옷만 입고 다닐 거 아니에요?”

“저는 태양교의 사제니까요.”

유리한이 뚱하게 물었다.

“태양교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이에요? 이름 그대로 태양을 숭배하는 곳인가?”

“네, 맞아요.”

요한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탑의 세상은 모두 각기 달라요. 하지만 그럼에도 변함이 없는 것이 바로 태양. 달이 뜨지 않는 곳은 있지만, 태양이 뜨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탑의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태양을 숭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태양교의 사제는 빛이 있는 한, ‘힐(Heal)’이라고 불리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그걸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있군요?”

“네, 더군다나 저는 빛이 없어도 힐을 사용할 수 있어서요.”

“오, 자기 자랑~!”

“한 적 없답니다, 플레이어님.”

유리한이 키득거리며 요한에게 샌드위치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먹고 은하의 언덕으로 가요. 어제 보니까 가는 길에 저녁 먹을 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요한은 조심스럽게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는 한 입 베어 물었다. 점심때도 느꼈지만, 제 입에 달콤한 뭔가가 들어오는 것이 어색했다.

언제나 퍼석한 빵만 먹었었으니.

“후우, 암벽을 또 타야 한다니. 요한, 암벽 탄 적 있어요?”

“암벽을 탄다고요?”

열심히 샌드위치를 우물거리고 있던 요한이 놀란 듯한 얼굴을 보였다.

간단하게 늦은 저녁을 해치운 후, 은하의 언덕이 위치한 암벽에 도착하고 나서야 유리한은 요한이 왜 그렇게 놀란 얼굴을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곤돌라……?”

유리한이 멍하니 두 눈을 끔벅였다. 요한은 곤돌라 장치를 확인한 후 그녀에게 말했다.

“이곳은 리스체가스의 명소니까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오래전에 설치됐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게 있으면 있다고 좀 알려주지! 저는 암벽을 맨손으로 올랐단 말이에요!”

요한이 눈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플레이어님. 미처 말씀드리지 드리지 못했네요.”

“거짓말. 일부러였죠?”

“그럴 리가요.”

태연하게 대꾸하는 것이 여간 수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유리한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요한과 함께 곤돌라를 탔다.

“그런데요, 요한. 제 이름을 묻지 않으시네요? 아니면 알고 있는데 부르지 않는 걸까나?”

요한이 애매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진작 유리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리스체가스의 기사들이 그녀를 그리 말했으니까. 하지만 부르지 않았다. 아니, 부를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플레이어님, 저는…….”

“제 이름 마음껏 부르세요, 요한.”

유리한이 요한의 말을 끊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허락 같은 거 받을 필요 없으니까요. 아니면 제 이름 알려드릴까요?”

애초에 만인이 부르던 이름이다.

요한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뱉기도 전에 곤돌라가 멈춰 섰다. 유리한은 간밤에 찾아왔던 클로버밭에 다시 발을 내밀었다.

“와아……!”

네 잎과 세 잎.

잎이 모이는 중앙에서 하얀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들이 남긴 잔재. 유리한은 마치, 반딧불이가 비상하고 있는 듯한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겼다.

[요한 리스체가스의 퀘스트에 대한 보상 이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이 망할 시스템이 감상에 젖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유리한이 속으로 혀를 차고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요한 리스체가스는 눈앞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긴 듯, 멍하니 입술을 벌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호감도 표시가 반짝이고 있었다.

[♥50%]

“……?”

뭐야, 언제 50%를 찍었지?

요한 리스체가스의 외모를 감상하고 있던 유리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기에 보상으로 주어진 10%의 호감도로 인해 요한 리스체가스가 유리한에게 보이는 호감도는 금방 60%를 달성하고 말았다.

‘앗싸!’

영문은 모르겠지만, 뭐가 어찌 됐든 간에 잘된 일이다.

유리한이 소리 없이 환호하며 남은 40%를 어떻게 채워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유리한 님.”

요한이 그녀를 불렀다. 그 부름에 유리한은 방긋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저 ‘님’ 자 소리 붙여서 들을 만큼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요한.”

“그럼… 유리한 씨.”

요한이 옅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셨다고 해요. 서로 반해서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의 가정사를 듣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예고도 없이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유리한이 당황하는 사이, 요한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플레이어셨어요. 탑 밖의 사람이셨죠.”

유리한 씨, 당신처럼요.

덧붙이는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요한은 빛이 수그러들고 있는 은하의 언덕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어머니를 사랑했다는 아버지는 결국 그분을 저버리고 탑을 올라가셨어요. 어머니는 좋게 포장했지만, 어쨌든 아버지가 어머니를 두고 탑을 올라간 건 사실이죠.”

말하는 목소리가 씁쓸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떠난 후, 어머니는 저를 낳으셨어요. 그게 불행이었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요한의 낯빛은 어두웠다. 유리한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요한의 어머님한테는 축복이었을 텐데요?”

서로 사랑해서 낳은 아이다. 불행으로 여길 리가 없었다. 하지만 요한은 고개를 저으며 애끓게 웃었다.

“저는 어머니를 좀먹고 태어났답니다. 플레이어와 탑의 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다들 그렇게 태어나거든요.”

탑의 주민인 부모의 한쪽을 양분으로 삼으면서.

요한은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유리한은 미간을 살포시 좁히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부모의 한쪽을 잡아먹고 태어난다는 탑의 혼혈아에 대한 감정은 아니었다.

‘리스체가스의 인간들이 왜 요한을 버러지라고 부르나 했더니, 그런 속사정이 있었나.’

그렇다고 해도 용납할 수 없었다. 유리한은 표정을 굳히고는 말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당신을 싫어하셨나요, 요한?”

요한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거짓으로라도 제 어머니가 자신을 싫어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 갔던 어머니는 저를 끌어안고는 ‘리스체가스’가 아닌, 아버지의 이름을 담고 있는 다른 이름을 불러주곤 했다.

유리한은 흔들리고 있는 요한의 두 눈을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잖아요, 요한.”

유리한이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내뱉을 때마다 요한의 호감도는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나 유리한은 이를 보지 못했다. 그저, 남자의 어린 시절을 그리며 그를 달래주었다.

“요한 리스체가스. 부모의 한쪽을 잡아먹으며 태어났다는 이유로 세상에 미움받아야 할 아이는 없어요.”

요한이 서글프게 웃으며 목소리를 내뱉었다.

“저는 아이가 아닌데요…….”

“안타깝게도 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렇게 보이네요.”

출생 연도로 따지면, 50이 넘는 나이였으니.

이를 알 리가 없는 요한이 웃음을 터트렸다. 유리한 역시 작게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요한, 저는요. 살아남기 위해 부모님을 죽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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