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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19)화 (19/235)

19화 

요한이 어색하게 웃는 사이, 유리한은 한 번 더 그에게 인사를 건네주고는 모습을 감췄다.

꿈이라도 꾼 게 아닐까?

요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품 안에는 유리한이 건넨 여자가 있었다.

리스체가스 가문의 사람일 것이 분명한 여자가.

요한은 여자를 침대에 눕히고는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 하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열어둔 창문이 불어온 바람에 덜컹거린다. 요한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진짜 이상한 사람.”

그의 입가에는 옅게 미소가 번져있었다.

* * *

리스체가스의 기사는 입이 무거웠다.

남들은 한 대면 말해줄 것을, 열 대를 때린 후에야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유리한이 리스체가스 대저택의 비밀 통로를 알게 됐다는 것.

“으, 냄새.”

오래된 하수구에 들어선 유리한은 코를 부여잡았다.

스텔라 거리에서 새 옷을 산 보람도 없이, 옷에 냄새가 배어 쓰레기통에 버리게 생겼다.

“왜 하필 하수구인 거야?”

유리한은 툴툴거리면서 입구를 찾았다. 다행히도 리스체가스 대저택으로 향하는 입구가 금방 나타났다. 유리한은 낡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는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양 벽에 걸린 횃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흐음, 지하인가?”

창문이 나있는 곳이 없었다.

유리한은 느껴지는 인기척이 없자, 그제야 문밖으로 완전히 걸음을 내디뎠다.

동시에 그녀는 코를 부여잡았다.

하수구에서 맡았던 것보다 더한 냄새가 복도에 가득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야?’

의문도 잠시, 유리한은 복도에 퍼져있는 역한 냄새가 제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임을 깨달았다.

썩은 시체에서 나는 냄새였다.

하나가 아닌, 여럿.

유리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얼굴에서 손을 내린 뒤, 냄새가 짙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 순간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에 얼굴을 찌푸렸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는 둘.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야단났네.’

마땅히 몸을 숨길 장소가 없었다. 나있는 길이라고는 하나. 양 벽에는 횃불이 걸려있다.

유리한은 조심스레 단검을 꺼내 쥐었다. 들키기 전에 제압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그녀가 몸을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칭호, 어둠을 지배하는 자(S)가 효과를 발휘합니다.]

횃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고 하나, 그 빛은 희미했다. 횃불의 밝음이 닿지 않은 곳이 있다는 말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피어난 그림자가 유리한의 몸을 삼켰다.

“이게 무슨…….”

유리한이 당황해하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온몸이 농도 짙은 먹물에 잠긴 듯이 물들어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복도를 울리고 있던 목소리가 지척으로 다가왔다.

유리한은 숨을 죽였다.

“단장님께서 이번 제물은 마음대로 하라던데.”

“그래? 그럼, 한 달 전에 갇힌 녀석을 죽이자.”

“누구?”

“가주님을 대놓고 욕보인 녀석 있잖아. 가주님께서 조금만 젊었으면 자신이 끼고 살았을 거라고 지랄하던 새끼.”

“아아, 기억났어.”

두 명의 기사가 유리한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녀의 옆을 지나쳐 갔다.

‘제물……?’

유리한은 조용히 두 사람을 따랐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그러나 리스체가스의 기사들은 유리한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멈춘 곳은 역한 냄새가 풍겨오는 지하의 가장 깊은 곳.

“저기 있네.”

바로 감옥이었다.

유리한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수십의 사람들이 사람의 몰골이 아닌 상태로 감옥 안에 갇혀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플레이어(Player).

트리샤 리스체가스와 만찬을 가진 후, 10층으로 올라갔을 거라고 여겼던 플레이어들이었다. 두 명의 기사가 금발 머리의 남자를 질질 끌고 나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철컹, 철컹―

남자의 두 손과 두 발에 채워진 쇠고랑이 그가 움직일 때마다 불유쾌한 소리를 내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남자는 대해졌다. 그들은 감옥의 바로 옆에 마련된 넓은 공터에서 멈춰 섰다.

한눈에 봐도 비옥해 보이는 흙바닥이 보였다.

리스체가스의 기사들은 그 위에 남자를 무릎 꿇린 후, 식사의 메뉴를 정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네가 죽일래? 아니면 내가 죽일까?”

“내가 죽이지, 뭐.”

기사가 검을 들어 단숨에 남자의 목을 베었다. 거리낌이라고는 없는 몸짓이었다.

데구르르, 툭.

두 눈을 치켜들고 있는 얼굴이 유리한의 발치에 굴러와 멈췄다. 머리를 잃은 몸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고이는 일은 없었다. 핏물은 짙은 갈색의 흙에 스며들어 모두 사라졌으니까.

기사들이 튄 핏물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내었다.

“아, 짜증 나. 더러운 게 튀었잖아?”

“가서 씻으면 되지. 그런데 빨리 씻어야 할걸? 아니면 원한의 저주가 옮겨질 거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보다 다음 주는 공물을 바치는 날이지?”

“응, 이번에 열 명 바친다더라. 그것도 우리보고 마음대로 하라고 할 것 같은데.”

“원래 다섯 명 아니었어?”

“오우거 녀석들이 다섯을 더 달라고 했대. 새끼들이 많이 태어났다고.”

“배부른 자식들 같으니라고.”

제 할 일을 끝낸 기사들이 태연한 얼굴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유리한은 본연의 색을 되찾았다.

칭호의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유리한은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우뚝하니 서있기만 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꿈이라고 여기고 싶었다.

소망의 탑, 9층.

리스체가스.

도시는 평화로웠다. 사람들의 생활에 부족함이라고는 없었고, 몬스터의 위협 또한 없는 듯했다. 그 평화를 왜 의심하지 못했을까?

“…암만 요한의 호감도를 쌓느라 정신없었다지만, 이러면 안 되지. 주변을 너무 못 봤잖아?”

유리한은 미간을 좁히고는 리스체가스의 기사들이 흘린 정보를 주웠다.

제물과 공물, 그리고 원한의 저주. 차례로 단어를 나열한 유리한의 입꼬리가 비딱하게 올라갔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 산사람들을 제물로 바치며 평화를 이야기하던 미치광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이끌던 사람은 마법사.

마법사는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흩뿌려 주변을 안전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원한’이라는 감정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제물로 바쳐진 이들은 하나같이 마법사를 저주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독이 되자 마법사는 제 저주를 대신 받을 인간을 구하고자 했다.

그렇게 납치한 사람이 어렸던 유지한. 바로 유리한의 동생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요한 리스체가스일 거다.

유리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꽉 쥔 주먹은 어느새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특별 시험이 왜 그 모양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네.”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치러야겠다. 이곳, 9층에서 ‘리스체가스’의 이름이 다시는 울려 퍼지는 일이 없도록.

‘어떻게 할까?’

이대로 올라가 저택의 사람들을 몰살할까. 아님, 돌아가 제대로 기회를 엿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유리한은 피 묻은 단검을 집어넣고는 걸음을 옮겼다. 제물로 바쳐진 플레이어의 두 눈을 감겨주고서.

* * *

금방 돌아온다던 여자가 소식이 없다. 요한은 잠들지 못한 채, 창밖을 계속 흘긋거렸다. 그 순간 반가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요한은 곧장 창문을 열었다.

“유리한 씨!”

“미안해요, 요한. 많이 기다렸어요? 일이 조금 생겨서 늦었지 뭐예요.”

그렇게 말하는 유리한의 뺨에는 붉은 핏물이 묻어있었다. 요한이 그녀를 안으로 끌어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더 늦으셨어도 상관없어요. 그보다 상처를 먼저…….”

“상처요?”

유리한이 요한의 시선이 닿는 곳을 손으로 문질렀다. 손바닥에 붉은 것이 묻어 나왔다.

아, 그때 튀었었나 보다.

유리한이 옷에 슥슥 닦고는 활짝 웃었다.

“저는 다친 곳 없어요. 남의 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요한.”

유리한의 손이 요한이 입고 있는 셔츠를 붙잡았다.

후두둑, 요한이 어떻게 할 새도 없이 그가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가 떨어져 나갔다.

“당신은 치료가 필요한 것 같네요. 아, 그런데 이거 치료가 되기는 하는 건가요?”

“…….”

요한은 지금 이 순간, 이대로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요한, 당신의 몸이 왜 이러는지 혹시 알고 계시나요?”

대답하는 목소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유리한에게는 충분한 답이었다.

“알고 계셨구나?”

되묻는 목소리에 요한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황급히 유리한의 손을 쳐내고는 셔츠를 여몄다.

남자의 손은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에요. 알려봤자 좋을 게 없는 일이니까. 그리고 유리한 씨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

부끄러운 비밀을 들킨 아이처럼, 요한은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공황에 빠진 모습. 유리한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손을 꼭 끌어 잡았다.

“요한, 그만. 저는 당신을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질책하려는 것도 아니고요.”

흠칫, 어깨를 움츠린 요한이 불안감이 가득한 눈으로 유리한을 바라보았다.

유리한은 안심하라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한 리스체가스, 당신은 제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었죠?”

어르듯, 달래는 목소리에 요한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늘 건, 아니, 어제 건 맛보기 교육이었어요. 유리한의 인생 교육 기초편.”

요한의 손을 잡고 있던 작은 손이 이내 그의 뺨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이제 심화편을 들어갈 거야.”

나지막하게 닿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거렸다.

두근두근.

심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울리는 박동 소리가 유리한에게 닿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다행히도 제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여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처음과 똑같이 다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제게 물었다.

“잘 따라올 수 있죠, 요한?”

요한 리스체가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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