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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20)화 (20/235)

20화 

* *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내가 뭐 어쨌다고?!”

리스체가스 대저택의 평화가 깨졌다. 트리샤 리스체가스의 날 선 목소리에 그녀에게 보고를 올린 가신이 고개를 숙였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가주님이 시험을 가지고 차별을 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답니다.”

“차별이라니?!”

그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란 말인가!

설명을 덧붙인 것은 그녀의 아들, 아레스 리스체가스였다.

“마음에 드는 플레이어들에게 따로 선물을 내주고 있다는 식으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그치들에게 무슨 선물을 주고 있다고 그런단 말이냐!”

머리가 지끈거렸다. 트리샤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는 제 곁을 지키고 있는 리스체가스의 기사단장에게 명령했다.

“테오드란을 불러오거라.”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뭐라?”

귀환 명령을 내린 것이 바로 어제 아침.

트리샤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렸다. 기사단장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당한 것 같습니다. 어제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 참인지라, 가주님께 말씀드리려고 했었습니다.”

트리샤가 헛웃음을 흘렸다.

유리한과의 만찬이 엉망으로 끝난 후, 트리샤는 충성스러운 기사를 붙어 그녀의 뒤를 밟게 했다.

그것이 바로 일주일 전의 일.

당한다고 하면 진작 당했어야 하는 시간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트리샤가 짧게 혀를 차고는 입을 열었다.

“소문을 퍼뜨린 녀석을 잡아오거라.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이 그냥 생겨났을 리가 없으니.”

“네, 가주님.”

트리샤의 주변에 모여있던 이들이 하나같이 허리를 숙였다.

그때였다.

“가주님! 큰일입니다!!”

벌컥,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엉망인 몰골의 기사 하나가 뛰쳐 들어왔다.

“오우거의 마을로 향하던 마차가 강탈당했습니다!”

“그럼, 공물은!”

트리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빼액 소리를 질렀다. 기사는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는 벌벌 떨었다.

“그, 그것이…….”

뒷말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트리샤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당장 오우거들에게 바칠 공물을 새로 준비하도록 하거라!”

공물이라 함은, 지하 감옥에 갇혀있는 플레이어들을 말했다. 모두 9층의 시험에서 탈락한 플레이어들이었다.

리스체가스의 시험은 ‘가주와의 만찬을 끝까지 가질 것’이었다.

트리샤 리스체가스는 플레이어와 만찬을 가질 때마다 온갖 약을 음식에 뿌렸었다. 수면제이기도 했고, 환각제이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중독된 플레이어들은 빠짐없이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유리한에게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명성이 온 탑을 울릴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만찬장에서 제게 그런 망신을 줬다. 트리샤는 소문을 퍼뜨린 것도, 마차를 강탈한 것도 유리한이라 지레짐작하며 기사에게 물었다.

“범인은 보았느냐?”

“지난주, 가주님께서 만찬에 초대한 그 플레이어였습니다!”

유리한!

그녀가 맞았다.

트리샤 리스체가스가 이를 으득 갈며 분에 찬 목소리를 내질렀다.

“당장 그 망할 년을 내 앞으로 끌고 오거라! 지금 당장!!”

“네, 가주님!”

“아레스! 너는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거라! 분명 유리한, 그년의 짓이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어머니. 금방 소식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트리샤의 집무실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트리샤는 씩씩거리며 서있다가 이내 울분을 쏟아내며 온갖 것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 * *

은하의 언덕으로 향하는 길.

그 가운데서 유리한은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쯤 가주님께 이야기가 들어갔으려나?”

일부러 얼굴을 드러내 놓고 리스체가스의 마차를 빼앗았다.

마차에 타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모두 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그보다 다음 주는 공물을 바치는 날이지?’

‘응, 이번에 열 명 바친다더라. 그것도 우리보고 마음대로 하라고 할 것 같은데.’

기사들이 이야기했던 공물의 숫자와 맞아떨어졌다.

“으… 으우…….”

“엄마아, 엄마아.”

“아우, 우, 으으.”

공물로 보내지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신체 일부를 잃고서, 허공을 향해 괴상한 신음만 흘리고 있는 그들은 이미 정신을 놓은 지 오래인 것 같았다.

“요한이 치료할 수 있을까.”

유리한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수풀 한구석에서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먹이가 여기 있다.

- 찾았다, 인간.

- 여기다, 여기. 여기로 와라.

오우거들이었다.

9층에 진입한 이후,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몬스터들이 유리한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리한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 하루가 멀다 하고 보던 몬스터들인데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 웃는다, 인간이 웃는다.

무리의 선두에 선 오우거 한 마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유리한은 키득거리며 창을 꺼내 쥐었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 반가워서 이러는 거니까.”

- 우리가 반갑다?

“응.”

유리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리스체가스에서는 다시 공물을 태운 마차를 보낼 거다.

‘그때까지 스탯 좀 올리고 있을까? 나보다 레벨이…….’

유리한의 앞에 나타난 오우거들의 레벨은 10~15Lv.

유리한이 짙게 웃음을 지었다.

“짭짤하겠네.”

자고로 사냥은 고레벨 구역에서 하는 게 최고지.

* * *

요한 리스체가스는 평소와 똑같이 제 어머니의 조각상 앞에 서있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에게 건네는 인사가 달랐다.

“안녕하세요, 플레이어님? 혹시 9층의 시험에 관해 들으셨나요?”

새롭게 9층에 진입한 플레이어들은 요한이 꺼낸 ‘시험’에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요한은 그들에게 말했다.

9층의 시험은, 지배자와 함께 만찬을 가지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 안에 비밀이 있다고.

“가주님께서는 마음에 든 플레이어에게 선물을 내린다고 합니다.”

“선물?”

“레전더리 아이템이나 유니크 아이템 아닐까?”

리스체가스에 막 올라온 플레이어들이 수군거렸다.

“이봐요, 가주님의 마음에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명성을 쌓으면 되나?”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선물의 여부는 오직 가주님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명성을 아무리 쌓아도요.”

요한의 설명을 들은 플레이어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 능력치가 높은 사람은 불만을, 능력치가 낮은 사람은 시기를.

명확한 기준도 없이, 오직 제 마음에 따라 선물을 퍼준다는 지배자를 플레이어들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요한은 플레이어들이 보이는 반응에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한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요한, 저는 지금 다른 시험을 치르고 있어요. ‘특별 시험’이라고 하는데, 9층에서 주어지는 시험과는 달라요.’

‘시험의 내용은 9층을 지배하고 있는 리스체가스 가문을 몰락시키는 것. 그리고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

‘나를 도와주겠어요, 요한? 참고로 권유가 아니라 강요예요. 제 인생 교육이 좀 매운맛이라.’

유리한은 리스체가스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을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제게 말해줬을 리가 없다.

하지만 요한은 알았다.

유리한이 특별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도 그는 유리한을 도왔을 것이라고.

그야, 리스체가스의 평화를 위해 플레이어들의 피를 흩뿌리게 하는 것은 자신이 찾은 방법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혼자 남겨졌던 날, 어떻게든 남은 가족의 눈에 들고 싶어서 찾은 것.

그것이 훗날에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요한 리스체가스!”

상념에 잠겨있던 눈이 분노에 찬 부르짖음에 깨어났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요한은 헛기침을 터트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문의 근원지가 너였구나! 이 버러지 같은 자식이……!”

외삼촌인 아레스 리스체가스가 사납게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요한은 몸을 추스르고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걸 말이라고!”

아레스가 곁을 지키는 기사에게서 검을 빼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휘둘러지는 일은 없었다.

“어휴, 아레스 님. 리스체가스의 귀한 분께서 그렇게 공개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셔도 돼요?”

가볍기 그지없는 목소리.

오우거에게로 향했던 마차를 강탈했다는 유리한이 그의 앞에서 웃고 있었다.

“체면이란 게 있을 텐데 이러시면 안 되죠.”

아레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나 유리한의 말대로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아레스는 쥐고 있던 검을 내리고는 유리한을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리한은 여상하게 웃는 낯으로 재잘거렸다.

“그래도 잘 만났네요. 이것 좀 가주님께 대신 전해주시겠어요? 만찬에서의 일을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아레스의 두 손에 묵직한 뭔가가 올려졌다.

“흐아악……!”

오우거의 머리였다.

리스체가스의 후계자가 기겁하며 제 손에 쥐어진 것을 냅다 던졌다. 데구르르, 발치에 굴러온 것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오우거다!”

“리스체가스는 몬스터 한 마리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며?”

9층의 주민들과 플레이어들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유리한은 바닥에 떨어진 오우거의 머리를 주워 들었다.

“아이, 참. 너무하시네. 가주님 집무실에 걸어두면 참 좋을 것 같아서 기껏 챙겨와 줬더니.”

악마다. 눈앞의 여자는 악마인 게 분명했다.

아레스 리스체가스는 희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유리한은 눈웃음을 짓고서 아레스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공물을 실은 다음 마차는 어디로 보냈나요, 아레스?”

“……!”

아레스 리체가스의 두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숨기지 못한 동요였다. 유리한이 ‘공물’의 존재를 알고 있다.

마차가 습격당했을 때, 우연으로 일어난 일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쩌면 공물보다 더한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레스는 유리한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피며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플레이어님.”

말을 더듬은 것부터 이미 아웃.

유리한은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시겠죠.”

아레스는 유리한을 떠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었다.

그녀가 가문의 비밀을 어디까지 아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안 된다.

아레스가 헛기침을 터트리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서로 오해가 있었던 듯하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잠깐만요, 아레스.”

유리한이 요한을 가리키며 방긋 웃었다.

“사제님께 사과는 안 드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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