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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27)화 (27/235)

27화 

의외의 질문이란 듯이, 요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든 탑의 주민이 탑을 오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오른다’는 표현은 그들에게 있어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랍니다.”

이제 ‘플레이어’라고 자신과는 다른 존재 취급하는 건가. 유리한은 소리 없이 웃음을 흘렸다. 요한은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갔다.

“탑의 주민에게 있어서는 ‘떠난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네요. 여행을 떠난다거나, 여정을 떠난다거나. 뭐 이렇게요.”

여행을 떠나든, 여정을 떠나든. 언제고 그들은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

유리한은 요한의 예시에서 이를 알아차렸다.

“아, 이야기가 살짝 다른 길로 샜네요. 탑의 주민은 어떻게 탑을 오르냐고 했지요?”

“네.”

“탑의 주민만이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유일하게 태양의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죠. 이 길을 밝히는 건 오직 횃불뿐.”

요한 역시 걸었던 길이었다.

“원하는 층에 언제 도착할지 몰라요. 그곳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뒤죽박죽이거든요. 도착하고 나니 하루가 지나있을 때도 있고, 일주일이 지나있을 때도 있죠.”

어떤 때에는, 과거에 도착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 길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태양교의 사제들이랍니다.”

요한의 설명이 끝났다.

“궁금한 것은 이제 해결되셨나요, 유리한 씨?”

“네, 충분히요.”

아이러니했다.

태양을 숭배하는 자들이 가장 많이 걷는 길이 바로 태양이 닿지 않는 길이라니. 한편으로는 걸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에이, 사서 고생이지.’

물론, 호기심으로만 그쳤다.

“그럼, 유리한 씨. 이번에는 제가 질문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아, 네. 편하게 하세요.”

“의뢰소에 방문하는 이유는 퀘스트 때문인가요?”

“정답.”

유리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스탯 능력치를 좀 올릴까 해서요. 특별 시험으로 많이 오르기는 했는데, 성에 안 차서요.”

“스탯 능력치라면, 이런 거죠?”

유리한의 눈앞에 푸른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STATUS]

플레이어 : 고요한(Go Yohan)

레벨: 34Lv

칭호: 별의 가호를 받는 자(A)

스킬: 간절한 기도(S), 급속 치유(A), 거룩한 밤(A), 포커페이스(B)

[스탯]

근력: 79 체력: 68 정신력: 57

속도: 57 명성: 700 마력: 92

뭐지, 이거?

유리한은 멍하니 두 눈을 멍하니 끔뻑이다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이런 거 남한테 함부로 보여주지 마세요! 설정 있죠? 그거 비공개로 돌리고요!!”

요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유리한의 말을 따랐다. 유리한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는 요한을 보며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요한, 당신이 제게 보여준 건 일종의 무기예요. 무기! 그것도 비밀 무기라고요!”

“아아…….”

요한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저는 상관없는데요. 유리한 씨에게는 제 모든 걸 보여드릴 수 있어요.”

“어휴, 요한. 제가 장기도 떼달라고 하면 줄 모양새네요.”

“장기 필요하세요? 뭐가 필요하세요? 신장? 간? 안구? 말만 해주세요, 유리한 씨. 뭐든 빼내서 드릴게요.”

“으아아악!”

이 사람, 미친 사람!

유리한이 기겁하며 요한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요한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입을 열었다.

“장난이에요, 유리한 씨.”

“요한, 당신은 장난 같은 거 안 치는 게 좋겠어요. 진담인 줄 알았다고요…….”

유리한은 온몸에 돋아난 소름을 문지르고는 말했다.

“그보다 이름이 ‘요한 리스체가스’가 아니라 ‘고요한’이네요?”

“아버지의 이름을 따온 거예요.”

“아하. 앞으로는 고요한으로 불러드려야겠네요? 뭐라고 부르든 어차피 요한이겠지만요.”

유리한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유리한 씨의 마음이 가는 대로 불러주세요. 그보다 유리한 씨, 의뢰소에 가려는 게 퀘스트 때문이라고 했죠?”

“네.”

“그렇다면 의뢰소에 가지 말고, 탑의 주민에게 직접 받는 게 어떠세요?”

“저야 그러고 싶지만요.”

이곳은 34층.

9층과는 상황이 달랐다.

‘누가 내 명성 좀 알아보고 퀘스트 좀 넣어줬으면 좋겠네.’

유리한이 그렇게 입술을 씰룩일 때였다. 고요한이 웃으며 유리한에게 말했다.

“유리한 씨, 한 가지 잊으신 게 있는 것 같아요.”

“제가요?”

“네, 먼저 제가 태양교의 사제였다는 것.”

유리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곳은 태양교의 대신전이 있는 34층이란 것.”

모두 유리한이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사실이었다. 기억력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유리한이 이를 지적하며 툴툴거리려는 순간.

“아.”

유리한이 멍청한 목소리를 내었다. 고요한의 말대로 그는 태양교의 사제였으며, 이곳은 태양교의 대신전이 있는 34층이다.

그러니까.

“요한? 요한 리스체가스!”

고요한과 안면이 있는 탑의 주민이 한 명쯤은 있다는 말씀. 고요한이 유리한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칭찬해 달라는 얼굴. 유리한은 피식 웃고 말았다.

“요한! 도대체 언제 올라온 거야? 왔으면 왔다고 연락 좀 주지! 대주교님께는 인사드렸어?”

고요한에게 알은체를 한 사람은 태양교의 사제였다. 고요한은 제게 다가온 남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아니요, 자리를 비우셔서 인사는 못 드렸어요. 하지만 다른 분을 만나 뵙고는 퇴단하겠다고 말씀드린 참이랍니다.”

“아아, 그렇구나. 응? 잠깐, 뭐라고? 퇴단해? 어디를?”

남자의 두 눈에 이윽고 경악이 서렸다.

“요한!”

“하하, 잠깐 저기로 가서 이야기 좀 나눌까요? 유리한 씨, 금방 돌아올게요.”

유리한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방긋 웃어주었다. 이내 요한은 제 친구를 데리고 의뢰소 뒤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퀘스트 받아왔어요, 유리한 씨. 게일이 맡고 있는 영역에 고블린 무리가 나타난 모양이더라고요.”

남자의 이름은 ‘게일’이었던 모양이다. 유리한은 고요한이 받아온 퀘스트를 살폈다.

[의뢰자: 게일 요한스]

[여명의 숲에 나타난 고블린 무리를 토벌해 주세요.]

‘고블린이라…….’

1층에서 등장했던 몬스터들 아닌가? 물론, 만나보기도 전에 불태워서 없애버렸지만.

“흐음.”

보상으로는 근력을 비롯한 모든 스탯 능력치를 하나씩 얻을 수 있다는 것.

성에 차지 않지만, 스탯 능력치는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계속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유리한은 나름대로 만족해하며 말했다.

“요한과 함께라서 다행이에요.”

“저야말로 유리한 씨의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에요.”

고요한은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좋아요, 그럼 여명의 숲으로 가볼까요? 요한, 어디인지 아시죠?”

“네.”

인생의 절반을 34층에서 보낸 고요한이다. 그는 어려움 없이 유리한을 여명의 숲으로 안내했다.

“요한, 고블린들 사냥한 적 있으세요?”

“아니요, 하지만 사냥에 따라나선 적은 있어요. 도중에 다친 분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요.”

“아하. 어쨌든 몬스터 사냥 경험은 없다는 거네요?”

“부끄럽게도요.”

여명의 숲, 깊은 곳.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에서 유리한은 단검 하나를 꺼냈다.

“여기요. 혹시 모르니까 가지고 계세요.”

“네? 아니에요, 유리한 씨. 저는 괜찮아요.”

“제가 안 괜찮아요.”

유리한은 몬스터의 흔적을 쫓으며 입을 열었다.

“고블린이란 녀석들은 말이에요, 개별적으로 보면 별것 아닌 녀석들이거든요?”

하지만 ‘무리’를 이루고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무리를 형성했다는 말은 즉, 그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가 생겼다는 것.

우두머리의 지휘 아래에 모인 녀석들은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더욱이 고블린은 학습을 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개체들.

어떻게 보면 리스체가스의 오우거들보다 처치하기 곤란한 녀석들이었다.

“무엇보다 무리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니, 원. 그리고 아무래도…….”

코를 찌르는 역한 피 냄새에 유리한이 눈가를 찡그렸다.

“평범한 고블린들이 아닌 것 같아서요.”

수풀 사이로 고블린 무리의 보금자리가 드러났다. 문제라면, 곳곳이 피로 칠갑되어 있다는 점. 그 입구를 지키고 있는 고블린들의 피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한이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블러드 고블린.”

유리한이 키득거렸다.

“요한, 혹시 퀘스트를 주신 친구분과 사이가 좋지 않다거나 그런 거 아니죠?”

그렇지 않고서야, 단둘에게 블러드 고블린 무리를 토벌해 달라는 퀘스트를 내릴 리가 없다.

블러드 고블린은 흡혈을 통해 성장하는 개체. 별다른 학습이 필요가 없는, 고블린 중에서도 특수한 개체였다.

요한이 연신 얼굴을 문질러 내리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유리한 씨. 하지만 게일도 몰랐을 거예요.”

“그렇겠죠.”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은 상대였으나, 유리한은 게일 요한스의 성정을 대충 짐작하였다.

블러드 고블린들이 무리를 형성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거다.

즉, 게일이 맡고 있는 ‘여명의 숲’에 블러드 고블린에 의한 피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 그럼에도 그는 몬스터들의 토벌을 자신들에게 의뢰하였다.

그런 그가 제 친구를 사지로 몰아넣는 퀘스트를 줬을 리가 없다.

‘요한이 친구는 잘 뒀네.’

유리한이 그런 생각을 하며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유리한 씨? 마법사분을 고용하거나 화(火) 속성의 플레이어분을 모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됐어요, 이렇게 왔는데 토벌하고 가죠.”

유리한이 평범한 플레이어였다면, 그녀는 고요한의 말을 따랐을 거다.

하지만 유리한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플레이어였다.

무한의 마력을 가지고 있을 적, 고블린의 숲을 불태운 적도 있는 그녀다.

평범한 고블린이 아닌, 블러드 고블린이라고 해도 그녀의 적수가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차피 무리의 숫자도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으니…….”

아, 취소.

몸을 일으켰던 유리한이 떨떠름한 얼굴을 보였다.

- 키륵, 키르륵!

- 키르으윽!

입구에 서있던 블러드 고블린은 두 마리뿐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수배로, 아니 수십 배로 그 숫자가 늘어났다.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유리한이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요한은 실없이 웃음을 흘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유리한 씨,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인원을 정비해서 다시 토벌하러 오는 게 어떨까요?”

“아니요.”

고작 블러드 고블린 수십 마리. 거머리처럼 피 좀 빨리면 뭐 어때? 터트려 죽이면 된다.

유리한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단숨에 끝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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