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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31)화 (31/235)

31화 

[광기에 잠식된 킹 고블린(10Lv)]

“오, 네가 이 문의 왕인가 보구나?”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걸음을 박찼다.

[칭호, 고블린 숲의 학살자(A)가 효과를 발휘합니다.]

[플레이어, 유리한의 주위에 모여든 고블린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기 시작합니다.]

겁을 먹고 모습을 숨기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상황.

유리한은 가볍게 창을 휘두르며 허겁지겁 도망치는 고블린들을 베어 넘겼다.

그렇게 다다른 킹 고블린의 앞.

- 크르아아아!

왕은 왕인가 보다.

킹 고블린은 두려움 따윈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제 앞에 선 유리한을 향해 거대한 쇠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제 위로 지는 그림자에 유리한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력이 무한이었다면, 튜토리얼 때처럼 불태워 버리는 건데.”

유리한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는 창을 높이 들었다.

카가각―!

쇠붙이가 서로 맞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힘겨루기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유리한은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암만 난이도가 조절됐다고 해도 그렇지, 레벨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힘이 나랑 호각이라고?’

말이 안 되는 소리.

유리한은 미간을 좁히고는 저를 막아내고 있는 킹 고블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몬스터의 정보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광기에 잠식된 킹 고블린(10Lv)]

특성: 광기

-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광폭화가 이뤄집니다.

특성: 데칼코마니

- 상대의 힘을 그대로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아이고, 절로 탄식이 나온다.

유리한은 신경질적인 웃음을 지었다. ‘광기’라는 특성 하나만으로도 상대하기 까다로워지는데, ‘데칼코마니’라니.

“그래, 그러니 10Lv의 몬스터인데도 나랑 힘이 호각이지.”

나 참, 난이도 조절 좀 적당히 하지! 데칼코마니 특성을 가진 몬스터는 혼란과 격변의 시대에서 40Lv이 넘는 몬스터만 가지고 있던 거란 말이야!!

유리한은 속으로 연신 구시렁거리고는 온 힘을 다해 킹 고블린의 쇠몽둥이를 쳐냈다.

- 크르으!

밀려난 힘에 킹 고블린의 몸이 휘청거렸다. 유리한은 이를 놓치지 않고 단숨에 바닥을 박찼다.

기회는 한 번뿐, 어쭙잖게 킹 고블린의 목숨을 끊으려 하면 안 된다.

단번에 저 목을 베어야 한다.

유리한이 두 눈을 번뜩이며 킹 고블린의 목을 향해 창을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 키르아아!

중심을 잡은 킹 고블린이 두 눈으로 유리한을 좇으며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쯧, 유리한이 눈가를 찡그렸다. 이대로 저 품을 파고들었다가는 팔이든 다리든 신체의 일부가 날아가게 될 거다.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어떻게 할까?’

여기서 다친 건, 이 공간을 벗어난 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고작, 킹 고블린 하나에 이렇게 절절매다니.’

시대의 영웅이라는 별명이 울겠다. 유리한은 창을 고쳐 쥐었다.

세상사, 인생 한 방.

유리한은 킹 고블린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품을 파고들기로 했다.

그때였다.

[칭호, 어둠을 지배하는 자(S)가 효과를 발휘합니다.]

검은 기운이 유리한의 몸을 순식간에 감쌌다. 저를 향해 쇄도했던 킹 고블린의 쇠몽둥이가 그대로 자신의 몸을 통과한다.

‘이게, 무슨…….’

유리한의 두 눈이 살짝 떨렸다.

그러나 당황하는 것도 잠시, 유리한은 어둠에 몸을 맡기고는 허공을 디뎌 한 바퀴 돌았다.

노리는 건, 킹 고블린의 목.

유리한은 미련 없이 쥐고 있던 창을 크게 휘둘렀다.

촤아악―!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유리한을 향해 휘둘렀던 쇠몽둥이는 할 일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 크르, 으으……!

킹 고블린이 커다란 손으로 제 목을 부여잡았다. 어떻게든 출혈을 잡고자 하는 움직임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쿠웅, 이내 킹 고블린의 육중한 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 말았다.

[성장의 문을 여는 첫 번째 문의 주인, 광기에 잠식된 킹 고블린(10Lv)이 처치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유리한의 첫 번째 성장을 축하드립니다!]

곧이어 스탯 능력치가 올랐다는 여러 개의 메시지가 유리한의 시야를 가렸다. 퀘스트 대여섯 개는 수행해야 얻을 능력치를 몬스터 한 번 상대하고 얻게 됐다.

기뻐할 만도 하건만, 유리한은 조금 전의 상황을 더듬어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킹 고블린의 공격으로 목숨이 위험해졌을 때, 돌연 ‘어둠을 지배하는 자(S)’의 효과가 발휘되었다.

“그러고 보니 리스체가스에서도 그랬지.”

그때는 목숨이라기보다는, 신변이 위험해졌을 때.

어찌 됐든 간에 ‘어둠을 지배하는 자(S)’가 두 번씩이나 저를 구해준 건 변함없는 사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마음대로 힘을 발휘하면 곤란한데.”

칭호란 것이, 제멋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대개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의지에 따르기 마련이다.

유리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러다 정말 필요할 때에 묵묵부답이면.’

굉장히 곤란해질 거다. 유리한이 심각하게 표정을 굳히고서 한숨을 토해낼 때였다.

끼이익,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렸던 문이 닫혔다.

[두 번째 성장의 문을 여시겠습니까?]

유리한은 잠깐 고민했다.

바깥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는 상황.

더욱이 두 번째 문에서 나타날 녀석들은 분명 첫 번째 문에서 상대한 녀석들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일 거다. 그러나 유리한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한시라도 빨리 ‘어둠을 지배하는 자(S)’에 대해 감을 잡아야 했다. 이번에는 제 의지대로 ‘어둠을 지배하는 자(S)’의 효과를 발휘해 보리라.

유리한은 그렇게 다짐하며 두 번째 문을 열어젖혔다.

* * *

해가 중천에 뜬 시간, 고요한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선 창밖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유리한에게는 34층의 시험을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지금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면, 직접 갈 심산으로 말이다. 다행히도 기다리던 손님은 오래지 않아 고요한을 찾아왔다.

쿵쿵쿵―!

다소 신경질적인 노크 소리가 고요를 깨뜨렸다.

고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냐는 질문 따윈 없었다.

“어서 오세요, 요바네스 주교님.”

찾아올 손님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요한의 태양교 퇴단을 허락해 줬던 제1위(位)의 주교, 요바네스 한나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크흠, 흠. 잠깐 들어가겠네.”

고요한이 허락하지 않았음에도 요바네스는 막무가내로 그의 집에 들어섰다. 고요한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요바네스는 연신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고요한의 눈치를 살폈다. 고요한은 끈기 있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요바네스한테서 어떤 답이 나올지 고요한은 알고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요바네스가 끄응 앓는 목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요한 리스체가스, 자네에게 태양교의 재입단을 정식으로 요구하는 바이네.”

역시나.

고요한이 눈웃음을 지었다.

“주교님께서는 제 퇴단을 기뻐하며 허락해 주지 않으셨던가요?”

그거야, 요바네스 한나가 고요한을 끔찍이도 싫어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플레이어와 탑의 주민 간에 태어난 혼혈이라니.

이도 저도 아닌 녀석을 요바네스는 제일 싫어했었다.

고요한의 말에 요바네스가 입가를 씰룩였다.

“대주교님의 명령이네, 요한 리스체가스.”

“그렇다고 해도 거절합니다. 제게 볼일이 있으신 분이 대주교님이라면, 그분한테 말씀을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직접 찾아오시라고요.”

“요한 리스체가스!”

“고요한으로 개명한 지 오래입니다, 요바네스 주교님.”

태연한 대꾸였다.

요바네스는 부글거리는 속에 씩씩거렸다.

힘으로라도 끌고 가고 싶었지만, 제게 그런 힘은 없었다. 요바네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얼굴을 붉혔다. 고요한은 그런 그를 향해 조소를 보냈다. 그렇게 요바네스 한나에게 축객령을 내리려는 순간.

“그럴 줄 알고 내 직접 자네를 찾아왔다네, 요한.”

“…대주교님?”

고요한이 표정을 굳혔다.

설마, 엉덩이 무거운 대주교가 자신을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태양교의 대주교, 리프탄 라올이 고요한을 향해 읊조렸다.

“태양교의 영광을 위해 자네의 힘이 필요하다네. 이곳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너무 누추한 장소이니 자리를 옮기지.”

리프탄 대주교의 뒤로 여럿의 성기사들이 보였다.

싫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끌려 나갈 상황.

고요한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리프탄 라올은 태양교의 전 사제였던 젊은 남자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끌고 오게.”

문 앞에서 리프탄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성기사들이 안으로 들어와 고요한의 양팔을 붙잡았다.

“이거 놓으시죠.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고요한의 작은 반항에 리프탄 대주교가 코웃음을 쳤다. 대주교 옆에 서있던 요바네스 역시 그와 같은 얼굴로 고요한을 비웃었다.

하지만.

“그 손 놓지?”

느닷없이 들린 목소리에 둘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언제 열렸는지 모를 창문에 웬 여자가 걸터앉아 있었다. 온 탑에 명성이 자자한 인물.

“내 말 안 들려? 그 손들 놓으라니까?”

유리한이었다.

유리한의 등장과 함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분명히 말했어. 요한을 잡고 있는 그 손들, 놓으라고.”

경고성 짙은 목소리와 함께 유리한의 손에 단검이 들렸다.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고요한을 잡고 있는 손들을 베어버리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리프탄 라올이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놓아주거라. 두 번 다시 검을 잡기 싫은 것이 아니라면.”

태양교의 성기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고요한을 놓아주었다.

그 즉시, 유리한이 창가에서 내려와 고요한의 앞에 섰다. 팔짱을 끼고서 살짝 들어 올린 고개가 오만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리프탄 라올은 고개를 살짝 꾸벅이며 유리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태양교의 대주교, 리프탄 라올이라고 하오.”

“아, 지금 자기소개 타임?”

유리한이 싱긋 웃었다.

조금 전까지 고요한을 억지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면서 뻔뻔하기도 하지. 그렇다면 그 뻔뻔한 낯짝을 구겨주는 게 인지상정.

유리한은 사람 좋게 리프탄 라올에게 인사했다.

“유리한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대주교님?”

그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고개만 살짝 까닥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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