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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40)화 (40/235)

40화 

유리한이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에 경악했다. 고요한은 그녀를 보며 선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어야죠.”

고요한은 제가 가지고 있던 명성의 값을 모두 유리한에게 주었다. 얼떨결에 칠백에 이르는 값을 받게 된 유리한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데…….”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리고 사실, 그 숫자는 제가 요한 리스체가스로 플레이어들을 도왔던 것에 대한 보상이나 다름없거든요. 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야만 ‘고요한’으로 완전히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 마음을 유리한이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유리한은 말했다.

“고마워요, 요한. 그래도 이건 너무 많네요. 부족한 420만큼의 명성만 받을게요.”

“하지만…….”

“괜찮아요. 요한의 것을 모두 받기에는 미안해서 이러는 거니까요.”

“그런 말씀 말아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심장도 바칠 수 있으니.

하지만 고요한은 치밀어 오르는 말을 삼켰다. 유리한이 기겁해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디에스는 그런 그를 탐탁지 않게 쳐다봤다. 고요한에게 분명하게 닿는 시선이었지만, 유리한의 충실한 종은 그를 없는 듯이 취급하며 미소를 그렸다.

그러는 사이 유리한은 자신의 이름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좋아, 이렇게 네트워크는 해결이 됐고. 이제는 만물이지?”

디에스 라고의 봉인이 깨진 것을 안 그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일까?

‘고민할 것도 없지. 바로 디에스를 처리하려 들 거야.’

싸움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

그렇기에 유리한은 개구진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요바네스 대주교 좀 만나고 올게. 35층의 시험 일정을 최대한 빨리 잡아달라고 해야겠어.”

“그거라면 저 녀석을 보내지 그래, 유리. 태양교의 사제였다며?”

“안 돼.”

유리한이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이 요한에 대해 떠들고 있는 걸 봤잖아? 분명 얼굴도 알려졌을 거야.”

“그러는 유리, 너도 얼굴이…….”

디에스의 목소리 끝이 흐려졌다. 유리한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유리? 유리!”

“짜잔, 여기 있지.”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디에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바로 코앞, 숨이 선명히 닿는 거리에 유리한이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디에스는 잠깐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가 가까스로 정신 줄을 붙잡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유리, 네가 은신도 할 줄 알았던가?”

“아니. 새로 얻은 힘이야.”

유리한이 제 주변에 일렁이고 있는 검은 기운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였다.

“그러니까 디에스, 너는 걱정하지 말고 요한이랑 사이좋게 있어.”

유리한이 싱긋 웃고는 또 다른 남자를 향해 말했다.

“다녀올게요, 요한.”

“네, 유리한 씨.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고요한의 인사와 함께 유리한은 모습을 감췄다. 동시에 거실에는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구라도 숨이 막힐, 아주 무거운 정적이었다.

* * *

34층에 해가 떠올랐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아래서 플레이어들은 하루 동안 있었던 시험에 떠드느라 바빴다.

그들 중 몇은 태양교를 방문하기도 했다.

34층의 시험을 통과한 유일한 플레이어, 고요한이 바로 태양교가 찾던 사제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양교의 사제들은 플레이어들에게 어떠한 이야기도 해줄 수 없었다.

시험을 주관한 리프탄 라올은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췄고,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 할 제1위의 주교는 집무실에 처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던 탓이다.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

그런 와중에 또 다른 플레이어가 태양교를 방문했다.

정확히는.

“여기 있었네요, 대주교님?”

“흐아… 웁!”

“쉿, 조용히 해요. 저는 태양교의 성기사분들과 괜한 싸움 하기 싫거든요.”

요바네스 한나의 집무실.

집무실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벌벌 떨고 있었던 요바네스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유… 유리한 님…….”

“갑자기 왜 ‘님’ 자를 붙이시고 그러세요? 편하게 불러요!”

요바네스는 어색하게 웃었다.

“무, 무슨 일로 오셨는지…….”

“당연히 35층의 시험에 관해 여쭤보려고 왔죠.”

유리한이 소파에 편하게 몸을 기대어 앉고는 웃었다.

“그 전에 잘하셨어요.”

“네?”

“리프탄 라올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거요. 으음, 알리지 못한 건가? 어쨌든요.”

굳이 따지자면 요바네스 한나는 리프탄 라올의 죽음을 알리지 못한 쪽이었다. 그야, 두려움에 벌벌 떠느라 그의 죽음을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솔직히 말하면 요바네스는 자신이 어떻게 제 집무실로 왔는지도 잊은 상태였다. 그만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요바네스 한나의 혼을 쏙 빼먹고 있는 유리한은 태연하기만 했다.

“여하튼 간에 친구도 찾았고, 이제 35층으로 가려고 하거든요.”

“그… 그냥 올려 보낼 수는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눈앞의 여자를 지금 당장에라도 35층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알아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대주교님을 찾아왔죠. 하지만 시험은 금방 치를 수 있나 보네요?”

요바네스 한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마… 만찬을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편하게 식사를 하시고 올라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만찬이라.

유리한은 9층에서 가졌던 식사 자리를 떠올리고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좋아요! 그리고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요바네스가 편하게 말하라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 만찬에 참여한 모두를 35층에 올려 보내주실래요? 모두라고 해봤자 저 말고 한 명밖에 안 돼요.”

요바네스는 유리한이 말한 ‘한 명’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디에스 라고일 것이다.

달빛 아래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던 금색 눈. 요바네스 한나가 두려움에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에게 죽임을 당한 리프탄 라올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바네스 한나에게 선택지란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장소와 시간은 곧바로 아이를 보내 알려드리겠습니다.”

“날짜는요?”

“괘… 괜찮으시다면 오늘 시험을 치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지간히 자신들을 올려 보내버리고 싶은가 보다.

유리한이 방긋 웃었다.

“내일로 해도 될까요? 다들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서.”

“펴,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요바네스 한나는 유리한과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그리 대답했다. 어쨌거나 유리한에게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요바네스를 향해 내일 보자는, 그런 산뜻한 인사를 남겨놓고 고요한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디에스, 요한.”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있던 두 남자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다녀왔나, 유리.”

“다녀오셨어요, 유리한 씨?”

유리한은 살짝 놀란 눈을 보였다가 이내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디에스와 고요한이 이번에도 동시에 말을 쏟아냈다.

“유리, 요바네스 한나와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지?”

“피곤하실 텐데 한숨 주무시는 게 어떠세요? 이야기는 천천히 들어도 되니까요.”

서로 상반되는 입장.

유리한은 먼저 고요한의 의견에 목소리를 내었다.

“아니에요, 요한. 그렇게 피곤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이야기는 잘 끝났어, 디에스.”

유리한이 눈웃음을 지었다.

“내일, 35층으로 올라가는 시험을 치를 거야.”

디에스와 고요한이 놀란 눈을 보였다. 하지만 둘은 유리한의 말을 끊지 않고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시험은 간단해. 요바네스 한나와 식사 한 번.”

고요한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리스체가스에서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유리한이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고요한을 달랬다.

“리스체가스 때와는 다를 거예요, 요한. 무엇보다 요한은 이미 시험을 통과한 상태잖아요? 불편할 것 같으면 먼저 올라가 있어도 돼요.”

고요한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유리한 씨.”

디에스 라고, 저 자식과 단둘이서 만찬을 가지겠다니요. 절대로 안 될 소리예요.

고요한은 치미는 말을 삼키고는 유리한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고요한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리가 없는 유리한은 그저 즐거웠다.

‘좋아, 이렇게 요한도 함께라는 거지?’

요바네스 한나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불편한 자리가 될 테지만 알 게 뭔가. 유리한은 내일을 기대하며 누가 봐도 수상쩍은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 * *

해가 저문 늦은 밤.

요바네스 한나는 여전히 제 집무실에 처박혀 있는 중이었다. 물론, 내일 있을 만찬의 준비는 착실하게 명령해 놓은 상태였다.

‘리프탄 대주교님의 사망 소식은 유리한이 떠난 뒤에 발표하는 게 좋겠지.’

리프탄 라올의 죽음을 평생 숨길 수는 없다.

“시신을 수습해 드려야 하는데.”

요바네스가 그렇게 멍하니 중얼거릴 때였다.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에 요바네스 한나는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일어났다.

“요바네스 주교님, 게일 요한스입니다. 긴밀히 알려드릴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드, 크흠! 들어오게!”

요바네스 한나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는 사이 굳건하게 닫혀있던 문이 불쾌한 소음을 내며 열렸다.

“늦은 시간에 이렇게 찾아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주교님. 대주교님께 알려드릴 내용이지만 자리를 비우고 계셔서요.”

요바네스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람은 게일 요한스.

고요한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태양교의 사제였다.

“무슨 일이기에?”

“제2위의 주교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게일이 그렇게 말하고는 요바네스 한나에게 둘둘 말린 양피지를 건넸다. 요바네스는 괜히 한쪽 눈가를 찡그리며 양피지를 펼쳐 들었다.

“오광 중 한 곳인 만물, 그들이 현재 이곳 34층의 대신전으로 향하고 있답니다.”

빠르게 양피지에 적혀있던 글자들을 읽어가던 요바네스 한나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디에스 라고의 봉인이 깨진 것을, 아무래도 만물이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들이 직접 행한 봉인이니.’

더군다나 리프탄 라올이 죽었다.

만물이 그의 죽음 역시 알아차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라면 리프탄 라올의 신원에 무언가 큰 문제가 생겼음을 짐작하고 있으리라.

플레이어들은 탑의 주민과 달리, 한 번 오른 층을 다시 방문하는 것이 손쉬웠다.

“제2위의 주교는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지?”

“31층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요바네스 한나가 침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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