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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43)화 (43/235)

43화 

그 말에 여자에게 도로 질문을 던졌던 남자가 옳다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항(抗)마법이라고는 걸려있지 않은 신전을 무너뜨리는 거야 우리에게는 식은 죽 먹기지.”

남자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가 태양교의 대신전이라지? 무너뜨린다고 하면 디에스 라고를 모른다고 해도 안다면서 길 것 같은데…….”

목소리의 끝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선명해졌다.

“이왕 말 나온 거 무너뜨리자고. 안 그래도 태양교 녀석들 마음에 안 들었어. 할 줄 아는 거라곤 대낮에만 사용할 수 있는 힐(Heal)밖에 없으면서 플레이어들을 업신여기는 게 말이야.”

“잠깐.”

무리의 선두에 있던 남자가 손을 들었다.

뚜벅뚜벅, 바닥을 울리는 구둣발 소리와 함께 성기사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렇게 모습을 보인 사람은.

“디에스 라고? 나 참,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런데 옆에는 누구야?”

* * *

유리한이었다.

디에스 라고와 함께 대신전의 회랑에 도착한 유리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이런. 게일 맞죠? 거기서 뭐 하고 있어요?”

유리한은 지금 이 순간, 고요한을 요바네스 한나의 곁에 두고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 살려주세요, 유리한 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제 친구가 인질로 잡혀있는 모습을 봤다간, 고요한은 분명 공황에 빠졌을 거다. 제 탓이라며 자책했을지도 모를 일. 유리한이 얼굴을 찌푸렸다.

만물의 마법사들은 인질로 잡고 있던 게일 요한스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놀란 눈을 보였다.

“유리한……?”

그러고 보니 얼굴이 익숙하다.

튜토리얼 때 그녀가 보여준 마법을 기억하고 있는 몇 명의 마법사가 입을 헤벌렸다. 유리한은 웃는 낯으로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어린 친구들. 그쪽에 반백 살 넘어가는 사람 없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만물의 마법사들이 미간을 좁혔다. 유리한은 돌아오지 않는 답에 “다행이다! 없구나?” 하고 밝게 말한 후 입꼬리를 올렸다.

“그쪽의 사제님을 우리한테 보내주지 않을래? 아는 사람이거든.”

무리의 선두에 서있던 남자가 게일 요한스를 잡고 있는 마법사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풀어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대신전을 무너뜨리자고 즐거워하며 말했던 남자는 게일을 놓아주지 않았다.

“헤이티!”

대신, 손가락을 한 번 맞부딪치는 것과 동시에 게일 요한스의 목에 기다란 자상을 내었다.

“쿨럭…! 크흐, 흡……!”

게일의 몸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제 목을 치료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뜨지 않은 밤.

게일이 끊임없이 피를 토해내며 울먹였다.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낸 남자는 유리한을 보며 히죽댔다.

“아이고, 이런. 죄송해라.”

“헤이티, 너……!”

“하지만 유은 형님. 궁금하지 않아? 구시대의 영웅님이 가진 힘이 말이야.”

남자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대체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하면 만물의 높으신 분들께서 그렇게 기를 쓰며 모시고 오라 할까? 또…….”

남자는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으르렁거렸다.

“저분 때문에 우리는 꽤나 곤란해졌는데, 그간 잘 자고 잘 먹으신 것 같아 배알이 꼴리기도 해서.”

9층의 지배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도 높으신 분들의 눈 밖에 난 원인 중 하나이건만 그건 머릿속에 지워버린 듯했다.

유리한은 입매를 비틀고선 시시덕거리고 있는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의 신발이 게일 요한스의 핏물로 적셔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디에스 라고가 유리한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유리.”

“걱정 마, 적당히 할 거야. 그러는 너도 알지?”

유리한의 손에 단검이 들렸다.

휘익, 단검을 공중에 가볍게 내던졌다가 고쳐 잡는 유리한을 보며 디에스가 말했다.

“그래, 나 역시 죽이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유리.”

화르륵, 일어난 불꽃과 함께 디에스의 손에 검이 쥐어졌다.

“저 녀석들을 불구로 만드는 것까지는 이해해 줬으면 하는데.”

“당연히 이해해 드리지.”

나 역시 그럴 생각이라.

유리한의 발아래에서 피어난 검은 연기가 곧장 그녀를 삼켰다.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리한의 모습에 만물의 마법사들이 당황해하는 찰나.

“으아아악!”

게일 요한스의 목에 크게 상처를 낸 마법사의 손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마법사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들이라고들 하지.”

끝이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유리한은 움직일 생각을 못 하고 있는 마법사들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입으로 시동어를 내뱉어서 마법을 시전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손가락을 맞부딪쳐서 마법을 시전하는 녀석이 있지.”

지팡이라거나 그런 스틱을 활용하는 녀석도 있고.

“뭐… 멀린은 어느 하나에 구애받지 않고 마법을 펼쳤지만.”

오랜만에 입에서 내뱉은 전우의 이름이 그리워졌다.

여하튼 간에.

“귀찮다는 거야. 너희가 어떤 방식으로 마법을 시전할지를 모르니. 그런데 말이야.”

유리한은 쥐고 있던 단검을 손에서 놓고는 창을 꺼내 들었다.

“알고 나면 그만큼 쉽거든. 너희를 제압하는 게.”

후웅, 허공을 베며 궤적을 그린 것이 이내 마법사들의 목을 노리기 시작했다.

* * *

만물의 젊은 인재, 유은.

그는 지금 적지 않게 당황하는 중이었다.

“내 손……! 내 손이……!!”

인질로 잡고 있던 사제를 해친 헤이티 로웬스는 잘린 손에 온몸을 떠는 중이었다. 그의 옆에 있던 다른 마법사는 또 어떤가?

“끄흐, 흡. 아으.”

시동어(始動語)를 내뱉으려던 입이 쭈욱 찢어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유은이 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그의 근처에서 또 다른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끄흡……!”

명치 근처, 마나 하트가 자리한 곳을 정확하게 꿰뚫은 검이 보였다. 디에스 라고는 그대로 검을 빼내고선 핏물을 털어냈다.

유은의 두 눈이 잘게 떨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 꿈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그는 두 눈에 보이는 광경에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일곱의 마법사 중 벌써 셋이 당했다. 그들 모두 ‘랭커’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실력을 지녔으나, 소망의 탑 50층의 문턱을 밟아본 적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유리한도 디에스 라고도 레벨, 스탯 능력치로 따지면 우리보다 낮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고 있는 거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할 수 있다.’

유은의 시선이 유리한에게로 향했다. 경계심 잔뜩 어린 마법사의 두 눈에 유리한이 웃음을 지었다.

마법이라니.

유은의 머릿속을 유리한이 들여다봤다면 분명 코웃음을 쳤을 거다.

그녀가 만물의 마법사들을 압도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첫째.

“유은……! 유은, 어디 있어!!”

“나탈리? 나는 바로 네 옆에 있다만.”

“대답 좀 해! 유은!!”

“나탈리……!”

오감 지배자(A)를 통해 그들의 감각을 하나씩 뺏어오고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

“멀린이 보면 비탄에 잠기겠어. 이렇게 수준 낮은 실력들이라니.”

혼란과 격변의 시대, 대마법사라 불리었던 멀린 아서의 수준 높은 마법을 여럿 접했던 탓이다.

유리한의 입에서 나온 존경해 마지않는 대마법사의 이름에 유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구시대의 영웅이었음을 잠깐 잊고 있었다.

유은이 푸른 두 눈을 번뜩이며 유리한을 노려보았다. 그녀를 탐색하고자 보낸 시선이었으나, 곧 그는 깨달았다.

이길 수 없다.

본능이 그렇게 말했고, 눈앞의 현실이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한이 없었더라도 이길 수 없었겠지.’

디에스 라고.

그는 감흥 없는 눈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마법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나 하트가 파괴된 마법사는 빠르게 실력을 올리고 있던 어린 루키였다. 그런 그를 한순간에 짓밟아 버리다니. 압도적인 무위에 유은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고는 말했다.

“사태가 이렇게 돼서 안타깝지만, 만물은 유리한 님. 당신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당신과는 싸우기 싫다는 소리. 물론, 디에스 라고와도 싸우기 싫은 건 마찬가지였지마는.

유은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덧붙였다.

“헤이티의 언행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고갯짓에 유리한은 묘하게 미소를 지었다.

멋모르는 하룻강아지들만 모인 줄 알았더니, 알아서 길 줄 아는 범의 새끼가 한 명 있기는 했다.

‘혼자인 게 문제지.’

유리한이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놓았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그녀는 손을 들었다.

타앙―!

울린 총성이 유은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끼야아악!”

유리한에 의해 시각과 청각을 뺏겼던 여자, 나탈리 스왈이 어깨를 부여잡고는 날카롭게 비명을 내질렀다.

“나… 나탈리……!”

유은이 황망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무너지는 여자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이를 드러내며 유리한을 쳐다봤다.

대화 중에 무슨 짓이냐는 얼굴.

유리한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미안, 저 언니가 대신전을 무너뜨리려 하더라고.”

그래서 막을 수밖에 없었다며 유리한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압사당하기는 싫단 말이야. 그보다 뭐라고 했지? 만물이 나랑 함께하기를 원한다고?”

유리한이 언제 쥐었는지 모를 권총을 다시 한번 장전하며 그리 물었다.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길 모양새에 유은이 긴장 어린 얼굴로 느릿하게 끄덕였다.

“그럼, 우리 친구. 그쪽의 높으신 분들께 이야기 좀 전해줄래?”

한 걸음, 성큼 다리를 움직인 유리한이 유은의 코앞에 다다랐다. 갑작스럽게 좁혀진 거리에 유은이 마법을 시전할 생각도 못 하고 두 눈만 잘게 떠는 찰나.

“그 무거운 엉덩이 끌고 직접 오라고 해.”

나지막하게 목소리가 닿았다.

경고성 짙은 말에 유은이 숨을 들이켜 마셨다.

일순,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숨 쉬는 법을 잊어 그렇게 느끼게 된 것이리라.

유은은 유리한이 물러난 뒤에야 막혔던 숨을 터트릴 수 있었다.

그가 제 목 부근을 잡고 힘겹게 호흡을 고르는 사이, 유리한은 바닥에 쓰러져 있던 게일 요한스를 챙겨 들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이 보였다.

유리한은 짧게 혀를 차고는 모여있던 성기사들의 품에 그를 안겨주었다. 그러고는 만물의 마법사들을 향해 물었다.

“계속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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