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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47)화 (47/235)

47화 

유리한이 난생처음 마주한 생명체들에게 호기심을 보일 때, 디에스 라고가 그녀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참고로, 유리. 엘프는 정령석이 자신들의 창조주가 내린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디에스, 이전에 탑을 오를 때는 엘프들의 편이었나 보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엘프들의 사정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유리한의 나지막한 물음에 디에스 라고가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한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그럼 곤란한 거 아니야? 드워프들 중에서 네 얼굴을…….”

“알아보는 녀석은 없을 거다.”

디에스 라고가 걱정 말라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몰살시켰거든.”

“…….”

유리한은 입을 벙긋거렸고 고요한은 작게 중얼거렸다.

“잔인하셔라.”

그러거나 말거나, 디에스 라고는 태연한 얼굴을 보일 뿐이었다.

유리한은 오랜 친구의 잔혹한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입을 열었다.

“어쨌든 드워프들이 디에스, 너를 알아볼 일은 없다는 거네? 다행이야.”

유리한은 눈웃음을 지었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아군이라지? 엘프들의 특성이나 공격 방식 등등 잘 알고 있을 테니, 그걸 토대로 작전을 세워보자고.”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는 누가 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드워프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저들끼리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저 인간은 그냥 귀쟁이 녀석들한테 가라고 하면 안 돼?”

유리한에게 충분히 들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말이다.

어쨌거나 유리한과 그녀의 일행들은 드워프들과 함께 그들의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만난 드워프들의 대장은.

“귀쟁이 녀석들과는 현재 휴전 중이다만.”

유리한에게 경악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 *

드워프들이 모여 사는 마호가니 마을. 그곳의 우두머리, 엘브리스크가 태연하게 말했다.

“한 달 전에 서로 협정을 맺었지. 당분간 전쟁은 하지 말자고.”

“네에?!”

유리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 역시 마찬가지.

엘브리스크는 양 갈래로 묶인 콧수염을 비비 꼬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귀쟁이 녀석들을 처리해 달라 하고 싶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지. 마침, 손이 부족할 때에 이렇게 찾아와 줬으니 자네들이 맡아주게!”

거절할 새도 없이 유리한의 눈앞에 시험을 알리는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플레이어 여러분들에게 36층을 오르는 자격을 묻는 ‘테스트’가 곧 시작됩니다!]

[Test Open!]

[이 땅에 숨겨져 있는 정령석을 찾아 드워프들의 대장, 엘브리스크에게 건네주십시오!]

[정령석의 파편 조각을 모아서 건네줘도 상관없습니다!]

한눈에 봐도 귀찮아 보인다.

“그… 정령석이 숨겨져 있는 대략적인 위치라거나 그런 건 모르실까요?”

“그건 내 아들에게 들으시게.”

엘브리스크의 옆에 서있던 젊은 드워프가 고개를 꾸벅였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대장간의 열이 식으면 큰일이거든! 그럼, 그대들의 고난을 마호가니 방패가 단단히 막아주기를!”

호쾌한 인사를 남긴 엘브리스크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폭풍과도 같았던 만남.

유리한이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일 때, 엘브리스크의 아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플레이어 여러분! 마호가니 마을의 위대한 지도자, 엘브리스크의 첫째 아들인 브리스라고 합니다.”

그는 마을 내에 마련되어 있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숙소로 안내해 주겠다며 저를 따라오라고 했다.

어쨌거나 시험은 시작됐고, 드워프들을 위해 정령석을 찾아줄 수밖에 없게 됐다.

유리한은 한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브리스는 유리한과 그녀의 일행들이 잘 따라오고 있나, 곁눈질로 계속 확인하면서 나불거렸다.

“알려진 정령석은 총 네 개로, 물과 불 그리고 바람과 대지의 힘을 품고 있다고들 하죠. 그리고 그것들은 품은 힘에 맞게 빛나고 있다고 해요!”

“빛나고 있다고요?”

“네! 한 달 전이었나? 저희 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네 방향에서 서로 각기 다른 빛이 번쩍였답니다!”

그리고 그 빛은 마을 중앙에 한 점으로 모였다가 이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고, 브리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버지께서는 그 빛이 정령석이 남긴 흔적이라고 생각하세요!”

“아하.”

그래서 파편 조각을 모아 건네줘도 상관없다느니, 그런 말이 덧붙여졌구나. 그 과정에서 정령석이 완전한 모습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유리한은 시험의 내용을 떠올리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하나 건너 하나에 대장간이 있었다.

‘하긴, 어떤 창작물에서든 드워프는 손재주 좋게 나왔었지.’

유리한이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브리스에게 말했다.

“마을에 있는 인간은 우리가 끝인가요, 브리스?”

“네! 다른 인간들은 귀쟁이 녀석들의 마을에 있을 거예요!!”

그러고는 씩씩거렸다.

“바보 같은 인간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휘적거리는 녀석들이 뭐가 좋다고 가는지 모르겠다니까요?”

브리스는 아무래도 자신이 안내해 주고 있는 플레이어들 또한 ‘인간’임을 잊은 모양이었다.

그는 마을 내에 마련되어 있는 플레이어들을 위한 숙소에 도착한 뒤에야 실수를 깨닫고서 말했다.

“아, 죄송해요! 여러분을 욕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여러분의 안목은 굉장히 훌륭하답니다!!”

“칭찬 고마워요, 브리스.”

“천만에요! 혹시 다른 궁금한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이 종을 흔들어 주세요!!”

브리스가 품 안에서 종 하나를 꺼내 유리한에게 건네주었다.

“제 작품인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공명이 되어서요!”

딸랑―

브리스가 종을 한 번 울리자, 유리한의 손에 있던 종도 맑은 소리를 냈다.

“오…….”

유리한이 입술을 오므렸다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브리스에게 물었다.

“브리스. 혹시, 나중에 대장간을 구경하거나 그럴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안내해 드릴게요! 마호가니 마을의 모두는 인간을 위해 담금질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니까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지금은 어렵겠네요. 엘브리스크 님을 위해 정령석을 찾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어쩜……!”

브리스가 크게 감명받은 듯,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정령석을 찾아주신다면, 이 탑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작품이라면 무기나 장신구를 말하는 걸 거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과 비교도 안 될 훌륭한 작품이겠지.

유리한이 짙게 웃음을 지었다.

“미리 감사 인사를 드릴게요.”

브리스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숙소를 나갔다. 유리한이 브리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 둘 다.”

숙소에 다다를 때까지, 아니. 숙소에 다다른 후에도 입 한 번 벙긋하지 않고 있던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 눈짓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서로를 향해 이야기를 떠넘기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에 유리한이 눈가를 찡그렸다.

“요한이라면 몰라도, 디에스. 너는 내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유리한의 인내심이 굉장히 짧다는 건 고요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디에스 라고는 난처하다는 듯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목소리를 내었다.

“유리, 먼저 미리 말을 해줬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설마 35층의 시험이 이렇게 바뀌어 있을 줄은 몰랐다.”

유리한이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디에스는 한숨을 크게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정령석은 찾을 수 없을 거다.”

“응?”

“그건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보석이거든.”

유리한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시험의 내용은 정령석을 찾아오는 것. 그런데 35층을 오른 적 있는 디에스 라고가 존재하지 않는 보석이란다.

“뭐어?!!”

유리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건물을 올렸다.

* * *

유리한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35층의 시험이 꽤 성가셔 보이는 건 사실. 그러나 정령석이든, 그 파편 조각이든 찾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런데 없다니! 존재하지 않는 보석이라니!’

시험을 도대체 어떻게 치르란 건지 머리가 절로 아파져 왔다.

유리한이 절로 이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정령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디에스?”

사실의 진위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었다. 디에스 라고는 확실한 정보가 아닌 이상,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플레이어였다.

그런 그가 꺼낸 이야기다. 시간 아깝게 사실의 진위 여부를 논할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요한도 35층에 정령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내게 말하려던 것 같았어.’

그러니 디에스 라고의 말은 분명 진실일 게 뻔했다.

때문에 유리한은 그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대신,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유리한의 질문에 디에스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유리, 50층 이후의 세계는 열 개의 층이 하나씩 묶여있는 아주 넓은 곳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정령석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더니 난데없이 50층에 관한 정보가 튀어나왔다.

유리한이 미간을 좁혔다. 디에스는 이 상황이 탐탁지 않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이렇게 빨리 50층의 정보를 풀게 될 줄은 몰랐는데.”

“디에스, 다른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말해줘. 아홉 개의 층이 한데 묶인 세계라니? 그럼 시험은 어떻게 치러지는데?”

디에스가 고개를 저었다.

“50층 이후, 시험은 치러지지 않는다. 유리.”

“그럼?”

“공략이 이뤄지지.”

“공략……?”

디에스가 내뱉은 단어를 한 번 읊조렸던 유리한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공략이라니!

그녀의 머릿속으로 혼란과 격변의 시대, 오대양과 일곱 대륙에 나타났던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유리한은 그녀가 어떤 과거를 회상했는지 알겠다는 듯이, 옅게 미소를 짓고선 입을 열었다.

“하나의 세계를 열 개의 층이 공유한다고 말하는 쪽이 이해하기가 쉽겠군. 내가 처음, 50층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유리.”

디에스 라고는 말했다.

50층에 들어서기 무섭게, 59층까지의 모든 세계가 한꺼번에 개방됐다고.

모든 세계란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59층까지의 세계는, 결국 하나의 세계였으니.

“60층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서는 문지기를 처치해야 했다. 시험 따윈 없었지. 하지만…….”

그 문지기가 어떤 존재였을지, 유리한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

세계를 위협했던 보스 몬스터들을 웃도는 존재였을 거다. 결코,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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