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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53)화 (53/235)

53화 

* * *

그렇게 유리한이 떼어낸 조각은 물의 정령석 조각이었다. 지금은 그녀의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진 상태다.

크리브가 가르쳐 준 마호가니 마을의 무기고로 온 유리한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육중한 문을 열기 무섭게 그녀의 시야를 끝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무기들이 채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한의 성에는 차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리한이 쓰는 무기는 하나같이 유니크 등급을 넘어서는 것들뿐이었으니 말이다.

드워프들을 제압하는 데 쓰다가 부러져 버린 봉이야, 유리한이 플레이어가 된 후부터 함께해 오던 무기였던지라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유리한이 부러져 버린 제 봉을 닮은 막대기 하나를 쥐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립감이 조금 별로인데.”

아무래도 무기고 내에서 원하는 무기를 털 수, 아니,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흐음, 어쩌면 좋담? 크리브에게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할까? 손재주가 좀 있는 것 같았는데.

그리고 하프들의 마을에도 대장간이 있는 걸 유리한은 똑똑히 본 참이었다.

“엘브리스크에게 보여주려다 실패한 정령석 조각을 재료로 써서… 어떻게 만들어 보면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유리한이 물의 정령석 조각을 꺼내 들었을 때다.

[물의 정령석 조각]

등급: 유니크

- 플레이어 전용 아이템(1人 사용 가능)

- 물의 정령왕, 엘라임의 기운이 스며든 정령석의 조각입니다.

- 섭취 시, 정화 및 해독 능력 일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

난데없이 나타난 아이템 설명 창에 유리한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녀는 제 손에 쥔 물의 정령석 조각을 한 번 쳐다보고는 조심스레 혀를 가져다 대었다.

살짝 단맛이 나는 것이, 먹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끽해야 탈이나 나겠지.

유리한은 크게 마음을 먹고 물의 정령석 조각을 입 안에 집어삼켰다. 그렇게 꿀꺽, 목구멍 안으로 넘겼을 때.

[물의 정령왕, 엘라임의 기운이 스며듭니다.]

[독성 정화 능력을 획득했습니다.]

[독성 해독 능력을 획득했습니다.]

오?

유리한의 두 눈이 빠질 듯이 커다랗게 떠졌다. 이렇게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유리한은 황급히 제 상태 창을 살폈다.

[STATUS]

플레이어 : 유리한(Yu Rihan)

레벨: 31Lv

칭호: 유리한 세계를 여는 자(S), 어둠을 지배하는 자(S), 드래곤 슬레이어(A)

스킬: 유리한 세계(S), 오감 지배자(A), 뛰어난 암기왕(A), 냉철한 심판자(A), 망자의 아우성(B), 진실 감별(B), 뜻밖의 기연(C), 독성 정화(F), 독성 해독(F)

[스탯]

근력: 92 체력: 83 정신력: 72

속도: 68 명성: 0 마력: 1,071

스탯 능력치는 35층에 진입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지만, 스킬에 새로운 이름이 추가됐다.

- 독성 정화(F)

- 독성 해독(F)

유리한 인생에 F급 스킬이라니!

하지만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스킬명에 유리한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독성 정화 능력과 함께 해독 능력까지 얼떨결에 얻게 됐다.

비록, F급이기는 하지만…….

물의 정령석을 통째로 먹는다면 등급이 올라가지 않을까? 그런 합리적인 의문이 유리한의 머릿속을 빠르게 채웠다.

‘보자, 정령석이 물의 정령석을 포함해 총 네 개였지?’

물의 정령석을 제외한 다른 정령석들도 이와 같이 정령왕의 기운을 품고 있다면?

분명, 높은 확률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게 틀림없었다.

“…가져야겠다.”

하프들에게는 파괴한다느니 뭐니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네 개의 정령석을 모두 자신이 가져야 할 것 같았다.

‘디에스한테 레플리카라는 바꿔치기 스킬이 있었지? 스킬 좀 사용해 달라고 하면 해주려나?’

당연히 해줄 텐데, 유리한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였다. 어찌 됐든 정령석에 숨겨져 있던 힘을 발견했다.

마호가니 마을의 무기고를 터는 것보다 값진 일을 행한 유리한이 만족스레 웃을 때였다.

그녀의 눈에 자물쇠가 겹겹이 채워져 있는 자그만 문이 보였다.

“뭐지……?”

무기고 안에 있는 또 다른 문.

수상쩍어 보이는 비밀 공간에 유리한은 과감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자고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해결하는 게 인지상정인 유리한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여러 겹으로 채워져 있던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었을 때.

“와우.”

펼쳐진 건, 한눈에 봐도 꽤 고급으로 보이는 무기와 방어구의 향연이었다.

등급으로 따지자면 최소 유니크.

“세상에, 보물들이 다 여기 모여있었네!!”

유리한이 발견한 비밀 장소는 마호가니 마을의 위대한 지도자, 엘브리스크가 손수 제작한 무기만 모아놓은 전용 무기고였다.

“하… 하하…….”

유리한이 두 팔을 크게 벌렸다.

“하하하!!”

적당히, 필요한 것만 털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유리한의 두 눈이 탐욕스럽게 번뜩였다.

* * *

한편, 감옥에 갇힌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묵언 수행 중이었다.

둘 사이의 정적이 얼마나 무거웠냐면, 제삼자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정신력의 스탯 능력치가 올라갔을 정도의 숨 막힘이었다.

“…저 인간들, 사실 말 못한다거나 그러는 거 아니야? 갇힌 뒤로 한마디를 안 하네.”

“혹시 모르지. 여기 올라온 인간 녀석들은 대부분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 속으로 말하고 있을 수도 있어.”

아니었다.

설사,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절대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거다.

성인 남성이 겨우 드러누울 수 있을 정도의 비좁은 공간에 저 자식과 단둘이라니!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로를 경멸 중이었다. 당장에라도 쇠창살을 부수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못했다.

도대체 어떤 광물로 만들어진 감옥인지, 플레이어로서 가지고 있는 힘이 번번이 막히는 중이었다.

‘유리가 이 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분명 흥미로워했겠지. 짜증은 냈겠지만.’

디에스 라고가 그렇게 유리한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불쾌한 시선이 뺨을 찌르기 시작했다. 결국 디에스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함께 갇힌 고요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게 할 말이라도 있나.”

“아니요, 딱히.”

고요한이 선하게 웃음을 지었다.

“유리한 씨 생각하고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여서요.”

그러니까 그게 불쾌하여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하, 디에스 라고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흘릴 때였다.

“이봐! 큰일이야!! 마을이……!”

“마을이 왜!”

“설마 귀쟁이 녀석들이 쳐들어왔나?!”

“아니면 코볼트 녀석들일지도 모르지! 어서 가기나 하자고!!”

“저 인간들은? 안 지켜도 돼?”

“어차피 밖으로 나오지도 못할 텐데 뭘 그렇게 걱정해?!”

우다다, 감옥 앞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고요한이 걱정스레 입을 열었다.

“…유리한 씨께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니겠죠?”

“아니니까 걱정 마.”

답한 사람은 디에스 라고가 아니었다. 감옥 앞에서 크리브가 입고 있던 투명 망토를 벗어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너……!”

디에스 라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덜컹, 쇠창살이 우악스러운 힘에 흔들거렸다.

플레이어로서의 힘이 통하지 않으니, 순수 악력으로 감옥을 부술 작정인 듯했다.

디에스 라고의 무지막지한 기세에 크리브가 지레 겁을 먹곤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옆에 있던 고요한은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유리한 씨는 어디 가시고 당신 혼자 나타난 거죠?”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으나, 고요한의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크리브는 마음 같아서는 왜 그 인간의 행방을 나한테서 찾냐고 새침하게 묻고 싶었다.

유리한이 제 뒤를 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눈앞의 두 인간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저 남자들은 감옥을 부수고는 제 목을 따려고 들 것 같았다.

그렇기에 크리브는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그 인간은 도둑질하러 갔어.”

“뭐……?”

“네……?”

너무 정직하게 말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 * *

어쨌거나 크리브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리한은 엘브리스크의 전용 무기고를 먼지 한 톨 나오지 않도록 탈탈 털어버렸으니까.

그녀는 지금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프들의 마을로 향하는 중이었다. 두둑해진 인벤토리와 함께 말이다.

“인벤토리 정리는 36층 올라가서 해야지.”

지금 했다가는 무슨 사달이 일어날지 모른다.

36층을 오르기 전에 엘브리스크에게 발각될지도 모르나 그때는 모르쇠를 시전하면 된다.

인벤토리를 확인할 수 있는 건, 본인뿐. 때문에 엘브리스크는 저를 의심하기만 할 뿐, 물증은 결코 발견할 수 없으리라.

‘36층에 올라가기 전에 얻은 무기를 절대로 밖에 꺼내지 않을 거니까!’

유리한이 그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하프들의 마을로 향할 때였다.

쐐액―!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것에 유리한은 급히 몸을 틀었다. 끝이 날카롭게 벼려진 화살이 그녀가 서있던 자리에 곧장 꽂혔다.

“이런.”

나지막하게 울린 목소리에 유리한이 고개를 들었다.

“친절하게 고통 없이 숨을 끊어주려고 했더니.”

저게 무슨 개소리람?

유리한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에게 화살을 날린 상대의 양쪽 귀는 끝이 뾰족했다.

두 눈에 보이는 상대의 신체적 특징에 유리한이 미간을 좁혔다.

엘프.

드워프와 오랜 시간 전쟁을 벌여온 35층의 다른 이종족이었다.

‘기척을 왜 못 느꼈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수십의 무리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형형색색의 마법진이 허공에 그려졌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보아하니, 마법을 이용하여 기척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유리한은 짧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하프들의 마을에서 제압했던 플레이어들에게 추적 마법이 걸려있었던 모양이다.

수십의 무리가 가는 방향이 저와 똑같았다. 하나같이 무기를 채비하고 있는 건 덤이었다.

유리한이 골치 아프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무리의 선두에 선 엘프가 말했다.

“우리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동족의 손에 죽는 게 낫겠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리의 뒤쪽에 있던 여럿이 키득거렸다.

“부장로님께서는 참 친절하시기도 하지.”

“그러니까 우리를 데리고 나선 거겠지. 장로님이 내주신 시험을 편안하게 통과하라고 말이야.”

유리한을 앞에 두고서 시시덕거리는 그들 모두 인간이었다. 유리한과 같은 플레이어들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유리한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건 또 신선한 경험이네. 나를 알아보는 플레이어가 단 한 명도 없다니.

유리한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검을 꺼내 쥐었다. 뭐가 어찌 됐든 간에 저들을 여기서 멈춰 세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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