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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56)화 (56/235)

56화 

“다른 곳에도 사람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플레이어님?”

나뭇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나뭇가지 위, 유리한을 비롯한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 그리고 몇 명의 하프들이 엘프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괜찮아요, 엘리.”

엘리의 걱정에 유리한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엘프들은 분명 이 길을 따라올 거예요.”

하프들의 마을에 사로잡혀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걸려있던 마법은 진작 해제했다.

엘프들이 추적 마법을 펼칠 수 없는 지금, 그들은 라엘리브의 기억에 의존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봐요, 엘리.”

“……!”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다수의 기척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안장 위에 앉은 자신들의 차림새가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움직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염병, 느긋하네.’

유리한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지만 말이다. 그녀는 짧게 혀를 찬 뒤에 엘리에게 속닥거렸다.

“라엘리브가 옆을 지키고 있는 분이 장로님이겠죠?”

얼굴의 절반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라엘리브는, 옅게 금빛이 도는 머리칼을 하나로 가지런하게 묶은 남자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정면을 응시 중인 남자는 조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유리한의 물음에 엘리가 얼굴을 굳혔다.

“…네, 맞아요.”

제 아버지세요.

엘리는 순간 치밀어 오를 뻔한 말을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대신 그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가장 선두에 계신 분이 바로 엘프들의 장로인 엘라이브 님이세요. 라엘리브는 플레이어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부장로고요.”

“흐음.”

‘엘라이브’라…….

유리한이 엘리를 보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엘리 님과 이름이 비슷하네요?”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것을, 눈앞의 여자는 중요한 정보라도 되는 양 묻고 있다.

그렇기에 엘리는 멋쩍게 웃으며 유리한이 보내는 호기심을 해소해 주기로 했다.

“엘프들은 제 자식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거든요. 드워프들도 비슷해요.”

“오오, 그렇구나.”

유리한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엘프들의 무리에 그녀는 심각하게 얼굴을 굳혔다.

엘프들이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목으로 온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드워프들이 아직 도착하기 전이라는 거지. 그리고…….’

엘프들의 장로, 엘라이브.

그에게서 느껴지는 꺼림칙한 기운에 유리한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움츠렸다.

단순히 그에게서 가늠할 수 없는 무위(武威)를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건 마치.

‘니르로르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의 그 느낌인데.’

어둠을 몰고 왔던 드래곤.

불길하기 그지없던 그 존재를 마주쳤을 때 받았던 거북함을, 지금 이 순간에 느끼는 건 왜일까?

그러나 유리한이 드는 의문에 신경을 쏟을 새도 없이 엘라이브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리, 시간을 좀 끌어야 할 것 같은데.”

“맞아요, 유리한 씨. 이대로 있으면 저분들께서 하프 분들의 마을로 곧장 갈 것 같네요.”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의 말대로였다. 계속 기척을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들의 앞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엘라이브가 라엘리브와 비슷한 수준의 능력자였다면 모를까, 이대로 모습을 드러내면 분명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거다.

엘라이브야 자신과 디에스 라고가 막는다고 해도 나머지가 문제였다.

고요한이나 다른 하프들이 그들의 무력을 막을 수 있을까?

유리한은 단번에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그때 나선 사람이 있었다.

“제가 시간을 끌어볼게요.”

“엘리?”

엘리가 웃음을 지었다.

“양아들이라고 해도 엘라이브 님의 가족이었으니까요. 충분히 시간을 끌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엘리는 그렇게 엘라이브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워워, 말을 멈춰 세운 엘라이브가 놀란 눈을 보였다.

“…엘리아프?”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지.”

엘리의 인사에 엘라이브의 입매가 호선을 그리는 찰나, 그의 옆을 지키고 있던 라엘리브가 버럭 소리 질렀다.

“너……! 네가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분명 죽었을 텐데……!”

“죽기 직전까지 갔었죠. 형님 덕분에요.”

“저게 뚫린 입이라고……!”

“그만.”

엘라이브가 희고 고운 손을 들어 라엘리브의 입을 저지했다. 라엘리브는 분한 듯, 씩씩거렸으나 더는 목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엘라이브는 말에서 내려 엘리에게 느긋하게 다가갔다.

“그래, 엘리아프. 이제 와서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엘리가 느릿하게 말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는데, 반가운 척이라도 해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뭐?”

엘라이브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 아하하하!”

그러다 뚝, 한순간에 멈춘 웃음소리에 엘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엘라이브의 눈빛에서 불길함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래, 엘리아프.”

엘라이브가 여상하게 웃는 낯으로 엘리에게 다가갔다.

“무척이나 기쁘단다. 내 심장을 이렇게 되찾을 수 있게 되어.”

“……!”

엘리가 가슴팍에 얹어진 손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엘라이브의 팔을 쳐냈다.

엘라이브는 제 팔을 쳐낸 엘리를 보며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뭘 그렇게 놀라느냐? 네가 원한대로 반가운 척을 해주고 있지 않느냐, 엘리아프.”

“아버지…….”

“그래, 나는 네 아비란다.”

엘라이브의 두 눈에 일순 분노가 깃들었다.

“네가 양분으로 삼았던 아비!”

노기 짙은 목소리에 흠칫, 몸이 떨렸다. 엘리아프는 금붕어처럼 입을 뻐금거리며 엘라이브를 바라보았다.

그가 왜 저렇게 분노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제게 내뱉는 저 말들은.

‘아버지가, 정말로 내 친아버지였다고?’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야, 자신이 엘프들의 마을에 속해있을 때 엘라이브가 보여줬던 행동들은…….

엘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두 눈에 증오를 가득 담아 엘라이브를 노려보았다.

엘라이브는 순식간에 엘리의 앞에 다가와 두 팔 벌려 그를 껴안았다.

“하지만, 엘리. 기쁘다는 내 말은 진심이란다.”

“……!”

어릴 적, 그토록 바라던 아버지의 품이었으나 지금은 한없이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쿨럭……!”

가슴 부근을 파고든 손 때문일지도 모른다. 엘리가 경악 어린 눈으로 엘라이브를 바라보았다.

엘라이브는 괜찮다는 듯이, 그린 듯한 미소를 그리며 엘리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였다.

그러고는.

“엘리!!”

그대로 제 아들의 심장을 뽑아버렸다. 바닥에 흩뿌려진 피에 유리한이 벼락같이 그의 이름을 외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아프, 내 아들아.”

엘라이브가 뽑아 든 심장을 꿀꺽, 그대로 삼켜버리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네가 내 앞을 막아선 이유는, 저치들 때문이었나 보구나.”

엘리아프의 몸이 힘없이 기울어졌다.

* * *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다.

암만, 제 친자식이 아니라고 해도 저럴 수가 있나?

아니, 없다.

제정신이 제대로 박혀있지 않은 이상 저럴 수가 없었다.

유리한이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에 얼굴을 일그러뜨릴 때였다. 엘라이브가 그녀를 보며 나긋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궁금하다는 눈빛이구나, 작은 플레이어야.”

작은 플레이어? 설마 나를 말하는 건가?

유리한이 기가 막힌다는 듯한 얼굴로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엘라이브는 맞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거 아느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들은, 탑의 주민 쪽인 우리를 양분 삼아 태어난다는 것을.”

고요한이 흠칫, 몸을 떨었다. 제 어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리라. 유리한 역시 그 떨림을 느꼈으나 그를 다독일 새가 없었다.

“우습지 않느냐. 하룻밤의 실수로 생긴 아이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한다니.”

지금은 제 아들의 심장을 뽑아 먹어버린 저 미친 엘프를 경계할 때였다.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양아들이라고 들었는데.”

“남들의 눈을 속이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지. 다행히도 모두 속아 넘어가 주었단다.”

그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던 엘프들은, 엘라이브가 보인 만행에 기겁하여 그에게서 물러난 상태였다.

엘라이브는 제 동족들이 저를 혐오 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하루하루 내가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게 얼마나 끔찍했는지 아느냐?”

호선을 그리던 입매를 일그러뜨리며 엘라이브는 분한 듯 성난 목소리를 내뱉었다.

“죽이고 싶었다. 이 빌어먹을 것을 죽이고 싶었지.”

툭, 쓰러진 엘리아프의 몸을 걷어차는 발길질에 유리한이 이를 으득 깨물었다.

엘라이브는 그런 유리한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고작 이런 것 때문에 대죄를 지을 수는 없었단다.”

그건, 신성한 자신들의 신이 금기시 여기는 일.

“하지만 다행히도 내게는 우수한 마법사가 있었단다. 그자가 나에게 살아남을 방법을 가르쳐 줬지.”

마법사는 자신의 심장을 아들이라고도 부르기 아까운 저 짐 덩이에게 심으면 된다고 했다.

엘리아프의 심장을 자신의 심장으로 대체한 거다. 또한 마법사는 말했었다.

‘아드님께서 어느 정도 자라난 후, 언제고 심장을 뽑아 드시면 됩니다.’

그때까지 자신은 불사에 가까운 몸일 거라고 했다. 비록, 그 몸이 평범한 인간과도 다를 바 없이 약화한 채일 테지만.

그것이 엘라이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사라고는 해도 비루한 몸뚱이 때문에 드워프들과 같잖은 힘겨루기를 계속해 왔으니.

때문에 엘라이브는 엘리아프가 가진 제 심장을 호시탐탐 노렸었다. 그러다 그가 드워프들과의 전투에서 죽었다고 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

물론, 거짓말이었다.

엘라이브는 엘리아프에게 심어진 제 심장이 살아 숨 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알았다. 엘리아프가 살아있는 것을. 다만 그는 바랐을 뿐이다.

살고자 한다면 제 눈에 띄지 않기를. 그러는 순간, 자신의 심장을 뽑아 먹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결국 엘리아프는 제 앞에 나타나고 말았다.

엘라이브는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심장의 고동에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그를 보며 유리한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 마법사란 작자가 흑마법을 가르쳐 줬나 보네.”

“그래, 유리.”

어느새 유리한의 곁을 지키고 선 디에스 라고가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멀린이 사장시켜 놓은 걸 누가 부활시킨 모양이야. 하지만 이상한데…….”

“디에스?”

목소리의 끝을 흐리는 디에스의 모습에 유리한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가 보이는 의문에 디에스 라고가 답해주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35층에 가장 먼저 진입했던 플레이어는 나였다, 유리. 나 혼자만 올라왔던 건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엘라이브에게 흑마법을 가르쳐 준 ‘마법사’란 존재가 의심스럽다는 거였다.

“탑의 주민일 수도 있잖아.”

흑마법을 사용하는 탑의 주민이라니, 분명 바깥에서 보았던 것과 다를 테니 끔찍하기는 매한가지일 테지만 말이다.

“그러면 좋겠다만…….”

“아니라고 해도 천천히 생각해 보자, 디에스.”

유리한이 검을 꺼내 들었다. 디에스 라고 역시 마찬가지. 엘라이브는 재미있다는 듯이 히죽거렸다.

“나와 맞서 싸울 생각인 게냐, 작은 플레이어야.”

“기분 나쁘게 계속 작다고 하네? 내가 그렇게 작은 키가 아닌데.”

아아.

“그쪽이 멀대같이 키만 큰 게 자랑이라 그런가?”

엘라이브의 눈썹이 불쾌감으로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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