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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57)화 (57/235)

57화 

드워프들은 빠르게 엘프들의 마을로 이동 중이었다.

드워프들이 마호가니 마을을 중심으로 여럿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데에 반해, 엘프들은 한곳에 운집하여 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때문에 드워프들은 쉽게 공격할 대상을 정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현재 휴전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그들의 이동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원래라면 가는 길목마다 엘프들이 설치해 놓은 함정으로 고생 중이었을 테니 말이다.

“잠깐.”

선두에서 움직이고 있던 엘브리스크가 손을 들어 수십으로 이루어진 군을 멈춰 세웠다.

캉, 카앙―!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쇠붙이가 맞부딪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몸의 털을 쭈뼛하게 세우는 살벌한 무력의 기세가 바람에 실려왔다.

엘브리스크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자세를 낮추었다.

“조용히 이동한다.”

근처에서 플레이어들끼리 싸움이라도 붙은 모양이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는 없는 노릇. 엘브리스크는 신속하게 자리를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엘리……?”

나지막하게 들린 목소리에 엘브리스크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잘못 들은 건가 했다. 들린 목소리는 분명 마을에 두고 온 제 조카의 목소리였으니.

엘브리스크가 긴가민가하여 눈살을 찌푸리던 때였다.

“엘리!”

“크리브?!”

엘브리스크의 곁에서 크리브가 투명 망토를 벗어 던지며 달려나갔다.

정확히, 날 선 쇠붙이가 맞부딪쳐 오고 있는 그쪽으로.

“안 돼! 크리브!”

엘브리스크가 뒤늦게 그를 붙잡고자 팔을 뻗었으나, 날랜 조카는 이미 멀리 달려나간 뒤였다.

* * *

다가오는 기척에 고요한은 검을 들었다. 그러다 나타난 사람에 그는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리브 씨……?”

크리브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양팔에는 긁힌 상처가 가득했고,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그런 그의 시선은 오직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엘리에게로였다.

“엘리……! 엘리아프……!”

크리브가 엘리의 어깨를 흔들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눈 좀 떠봐, 이거 거짓말이지? 장난치지 말고 눈 좀 떠보라고!

크리브의 울부짖음이 쇠붙이가 맞부딪치는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고요한은 쥐고 있던 검을 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요한! 피해요!”

“……!”

날아드는 검격이 보였다. 고요한, 그 혼자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검격이 향하는 방향에는 크리브가 있었다. 죽어버린 친구를 끌어안고서 엉엉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하프 드워프가.

고민할 새는 없었다.

“요한!”

고요한은 크리브의 몸을 감싸며 검격을 그대로 맞아버렸다.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과 함께 울컥, 피가 토해졌다.

“너……! 너어……!”

크리브가 눈물이 방울방울 맺힌 두 눈을 크게 떴다. 그의 품에는 엘리아프가 소중하게 끌어안겨 있었다.

이미 죽어버린 자를 애지중지 보물 다루듯 구는 크리브의 모습에 고요한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자신이라도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상하는 것조차 싫지만, 유리한이 죽는다면…….

함께 백골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를 끌어안고 있을 거다. 고요한이 그런 생각을 하며 자조적으로 웃을 때였다.

“바보냐? 그걸 그대로 맞아?”

“…디에스 씨.”

유리한을 도와 엘라이브를 상대하고 있던 디에스 라고가 짧게 혀를 찼다.

“디에스! 요한은 어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 유리. 싸움에 집중이나 해.”

디에스는 고요한을 부축하여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봐, 하프 드워프. 너도 얼른 일어나라.”

“하지만 엘리……! 엘리가……!”

“정신 차려라. 그 녀석은 이미 죽었다.”

“그럴 리가 없어!”

크리브가 엘리아프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는 순간까지 엘리아프는 미동이 없었다. 내쉬는 숨조차 없었다.

크리브는 파르르 입술을 떨며 울먹였다.

“…그럴 리가 없다고.”

디에스 라고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공황에 빠진 남자를 친절하게 달래줄 만큼 상냥한 성격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서 전투가 한창인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곤란한데.’

유리한에게는 고요한의 상처가 심각하지 않다는 양 말했지만, 고요한의 상처는 한눈에 봐도 심각한 것이었다.

고요한이 스스로 힐을 시전하려는 모양새였지만, 언제 전투에 휘말릴지 모르는 상황.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디에스 라고가 크리브를 보며 눈빛을 낮게 내리깔았다.

‘버리고 가야 하나.’

유리한에게 질책을 좀 받겠지만, 그녀에게는 하프 드워프보다 고요한의 안위가 더 중요할 터.

‘그래, 버리고 고요한이나 안전한 곳으로 옮기자.’

생각을 끝마친 디에스가 크리브를 내버려 두고 움직이려고 했다.

“크리브 씨.”

고요한이 크리브를 챙기려 들지 않았더라면, 그는 곧장 움직였을 거다.

“여기서 이러고 있다간 전투에 휘말리고 말 거예요. 자리를 피하는 게 어떨까요?”

“하지만…….”

크리브가 잠든 것처럼 두 눈을 꼭 감아버린 엘리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엘리아프를 두고선 떠나지 못한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고요한이 디에스 라고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엘리아프의 시신도 함께 옮겨달라는 의미였다.

이를 알아들은 디에스 라고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번거롭게 하는군.”

그러면서도 엘리아프의 시신을 챙겨 드는 디에스 라고였다. 하지만 그 순간을 노리는 공격이 있었으니, 바로 엘라이브였다.

“디에스 씨, 뒤!”

“젠장, 알고 있어!”

하지만 몸을 움직이기에는 짐 덩이가 너무 많았다. 하필, 엘리아프의 시신을 막 챙겨 든 참이라 남는 손이 없었다.

휘말릴지도 모르나, 빛이라도 응집하여 터트려야 하나 할 때였다.

카가가각―!

디에스를 노리려 들던 검이 유리한의 검에 막혀 들었다.

“이봐, 아저씨. 나랑 계속 놀아야지, 어디 가려고?”

카앙! 엘라이브의 검을 쳐낸 유리한이 땅에 발을 디디며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큭……!”

유리한의 힘에 밀려난 엘라이브가 분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와는 달리 유리한은 여유가 만만한 얼굴이었다.

이마를 타르고 흐르는 식은땀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유리한은 뒤쪽을 흘긋거리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디에스, 어서 챙겨서 가.”

디에스 라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빠르게 자리를 비켰다. 고요한은 짐이 된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푹 숙였다.

디에스 라고가 그런 그를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그들이 자리를 비킨 후, 유리한은 엘라이브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엘라이브는 검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성난 목소리를 내뱉었다.

“작은 플레이어야, 너는 정말 인간이 맞느냐?”

“왜? 내가 너무 강해서 쫄려?”

엘라이브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나는 심장을 되찾았다! 본래의 힘을 되찾은 나를, 감히 인간 따위가 압도할 수 없을 터!”

“그래서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잖아. 원래 지금쯤 아저씨 목이 몸이랑 분리돼서 땅바닥을 구르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

엘라이브의 두 눈에 분노가 실렸다. 공기 또한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유리한이 어깨를 억누르는 무게감에 한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아, 너무 나댔다.’

화를 돋울 생각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엘라이브를 화나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떻게 한담?’

어떻게 하기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유리한이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동시에 옅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잔재주를!”

엘라이브가 그녀를 향해 검을 집어 던졌으나, 유리한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칭호, 어둠을 지배하는 자(S).

옅게 피어오른 검은 연기에 몸을 숨긴 유리한은 빠르게 움직였다.

오감 지배자(S)를 활용하여 먼저 엘라이브의 시각을 빼앗아 그의 목을 노렸다.

“쥐새끼같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엘라이브가 고개를 틀었다. 유리한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검을 틑었다.

목을 노리던 검이 방향을 바꿔 엘라이브의 어깻죽지를 찔렀다.

“크흑!”

푸욱, 살갗을 파고든 검을 유리한은 그대로 휘둘러 빼내었다.

허공에 흩뿌려진 붉은 핏물이 뺨에 튀었으나 유리한은 몸을 뒤로 빼지 않고 다시 엘라이브를 향해 공격을 가하고자 했다.

하지만 엘라이브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나는 엘라이브다! 창조주께서 내린 정령석을 모두 모아 이 땅을 신성한 존재들로 채울 고귀한 엘프들의 왕이란 말이다!”

기다랗게 난 손톱이 유리한을 노렸다. 고귀한 엘프의 모습 따윈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악귀(惡鬼).

유리한의 눈에는 힘을 좇다 눈이 멀어버린 귀신으로만 보였다.

엘라이브의 손톱이 아슬아슬하게 유리한의 턱 아래를 긁고 지나갔다. 깊게 난 상처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리한은 손등을 들어 피를 훔치며 이를 으득 갈았다.

시각에 이어 청각, 후각과 촉각까지. 조금 전의 전투에서 모두 빼앗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게 공격을 가하고 있다.

‘본능에 몸을 맡기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정신을 놓은 건지.’

귀신보다 무섭다는 게 사람이다. 그들 중에서도 미친 사람은 답이 없다.

“내가 우리와는 다른, 하찮은 미물인 네게 당할 성싶으냐!”

“응.”

촤악―!

검이 베어낸 궤적에 따라 핏물이 흩뿌려졌다. 유리한은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당할 것 같아.”

“쿨럭……!”

정확히, 심장을 찔러 베어냈다. 엘라이브의 몸이 힘없이 고꾸라졌다. 더불어 유리한 역시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유리.”

디에스 라고가 다급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유리한은 화끈하게 통증이 이는 왼쪽 어깨를 손으로 감싸 쥐며 울상을 지었다.

“미친, 더럽게 아파.”

엘라이브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 날카롭게 벼린 손톱에 왼쪽 어깨를 내어주고 말았다.

‘어째, 이쪽만 계속 다치는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부디 착각이기를 바라며 유리한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디에스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다가 수풀 안쪽을 향해 소리 질렀다.

“고요한! 네 상처 다 치료했으면 지금 당장……!”

“잠깐, 디에스.”

유리한이 디에스를 붙잡아 그의 고개를 아래로 숙이게 하였다.

“바꿔치기 스킬 있지? ‘레플리카’라고.”

“있다만……?”

유리한이 디에스에게 인벤토리 내에 보관 중이던 네 개의 정령석을 보여주었다.

“유리.”

디에스 라고가 앓듯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뭘 원하는지 알겠다만 상처부터 치료해야 한다.”

“디에스, 상처는 언제든 치료할 수 있어. 하지만 기회는 언제든 오는 게 아니야. 알잖아?”

뒤늦게 크리브를 뒤쫓아 온 엘브리스크가 눈앞의 광경에 헛숨을 들이마시는 게 보였다.

엘라이브의 광기에 뒷걸음질 쳤던 엘프들 역시 마찬가지.

모두의 앞에서 정령석을 부숴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

디에스 라고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크리브! 그 녀석은 엘리아프가 아니냐……!”

엘브리스크의 노기 짙은 목소리에 크리브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엘브리스크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하나뿐인 조카 녀석이 잘못될까 걱정이 되어 급히 왔더니…….

‘크리브의 친구 녀석이 죽어있지를 않나! 그 녀석의 아비 되는 녀석도 저렇게 죽어있다니!’

엘프들에게 선제공격을 가하고자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도 잊을 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건 스물대여섯 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는 엘프들도 매한가지였나 보다. 하나같이 입을 벌린 채 다물 줄 모르고 있었다.

맑은 목소리가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집중 좀 해줄래요, 다들?”

작게 손뼉 치는 소리에 엘브리스크가 화들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의를 집중시킨 여자의 주변으로 둥둥 떠있는 네 개의 보석이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정령석이었다.

물과 불, 바람과 대지의 빛을 보듬고 있는 저 보석들은 정령석인 게 분명했다.

‘드디어 찾았다!’

정령석 앞에 엘라이브의 죽음은 잊힌 지 오래. 마호가니 마을의 위대한 지도자인 엘브리스크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제가 지금부터 이것들을 파괴하려고 하는데, 질문 있으면 빠르게 해주세요.”

뭐라고?!

엘브리스크는 놀라 기절하고픈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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