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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59)화 (59/235)

59화 

유리한은 정지된 사고를 억지로 굴리기 시작했다.

이 조그마한 게 니르로르라고? 정말? 마음 같아서는 침대에서 꼭 끌어안고 애착 인형으로 삼고 싶은 얘가?

유리한이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거짓말.”

-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냐, 인간.

네 존재요, 이 망할 용용아.

유리한이 한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지만, 눈앞의 드래곤은 틀림없이 니르로르였다.

계속 저를 향해 ‘인간’이라 부르고 있는 저 오만방자한 말투부터가 그랬다.

“후우… 미치겠네…….”

유리한이 얼굴을 한 번 문지르고는 눈앞의 작은 용에게 닦달하듯이 물었다.

“네가, 정말 니르로르라고? 내가 아는 그 니르로르?”

니르로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럼, 나 말고 네가 아는 다른 ‘니르로르’가 있나?

이내 순진무구한 아이와도 같았던 귀염장한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 그렇다면 당장 그치를 물어뜯어 주겠다. 세상에서 그 이름은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으니.

니르로르다.

오른쪽으로 보고, 왼쪽으로 보고. 위아래 모두 둘러봐도 눈앞의 성질 더러운 용은 니르로르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유리한이 머리칼을 끌어 쥐었다.

‘세상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웬수나 다름없는, 아니. 웬수 그 자체인 파충류 새끼를 자신의 앞에 들이밀다니!

‘죽이자.’

유리한의 두 눈이 번뜩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니르로르의 힘은 분명 약해져 있었다.

‘약해진 지금 죽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힘을 되찾았을 때 다시 한번 더 세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죽였는데. 그렇게 둘 수야 없지.’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이 우습다는 듯, 시스템 창이 메시지를 내보였다.

[한번 맺어진 종속 관계는 자의적으로 깨뜨릴 수 없습니다.]

이런……!

유리한이 치미는 욕지거리를 겨우 삼키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 이성을 되찾은 것은 잠시뿐, 유리한은 니르로르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며 소리 질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죽은 네가 여기에 왜 있는 건데!”

- 그러는 인간, 너는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분명 나와 함께 죽었을 텐데.

유리한이 입을 다물었다. 눈앞의 용은 디에스 라고와 다르다.

저 망할 파충류에게 자신에 대한 것을 가르쳐 줄 수 없다는 말씀.

답이 없는 유리한의 모습에 니르로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 대답해 주기 싫으면 됐다. 참고로 나는 깨어나니 이곳이었다.

유리한이 니르로르를 향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살아난 건지 모른다는 말이지?”

- 그런 셈이지. 뭐, 원래 진작 깨어났어야 했는데, 네가 가지고 있는 빌어먹을 것들이 내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나를 억눌러 왔다.

유리한의 생각이 맞았다.

네 개의 정령석은 니르로르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자신들의 기운으로 억눌러 왔던 것이다.

하지만 유리한이 주목한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정령석의 기운이 느껴져?”

인벤토리에 꼭꼭 숨겨져 있는 정령석의 기운을 느꼈다니.

니르로르가 코웃음을 쳤다.

- 이봐, 인간. 나는 드래곤이다.

“그게 뭐.”

- 정령왕의 같잖은 기운 따위 손쉽게 느낄 수 있다는 거다.

말을 끝마친 니르로르가 불쾌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 아무래도 그 자식들이 빌어먹게도 내가 태어날 것을 알고 수작을 부린 것 같군.

유리한이 미간을 좁혔다.

“돼먹지 못한 파충류가 정령왕의 존재를 용케도 알고 있네?”

자신도 탑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됐는데 말이다.

돼먹지 못한 파충류.

자신을 가리키는 게 분명한 말에 니르로르가 불쾌하다는 듯이 입술을 꿈틀거렸다.

- 당연하지 않겠나? 나는.

니르로르의 목소리가 끊겼다. 분명 그는 입을 뻐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나오는 목소리라곤 없었다.

니르로르가 이상을 알아차리고는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 이 빌어먹을……!

귀여운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험악한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유리한의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시스템에 의해 제약이 걸린 모양이다.

혼란과 격변의 시대, 지성을 가지고 있던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유리한은 어렵지 않게 니르로르의 이상을 알아차리고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됐고. 너랑 맺은 종속 관계. 그거 푸는 방법 알지? 당장 말해.”

- 내가 말해줄 것 같으냐.

니르로르의 붉은 눈이 매섭게 빛났다.

- 나와 맺은 관계가 풀리면, 너는 곧장 나를 죽이려고 들 텐데.

“잘 아네.”

유리한의 손에 창이 들렸다. 부웅, 휘둘린 창이 니르로르의 목 끝으로 향했다.

유리한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당장 말해주면 아프지 않게 죽여줄게. 아니면 그때보다 배는 아프게 죽게 될 거야.”

유리한이 보내는 살벌한 경고에 니르로르가 앙증맞은 날개를 파닥거렸다.

한참 동안 말없이 날갯짓하던 니르로르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내며 유리한에게 물었다.

- 그럴 능력은 있고?

“뭐?”

자그마한 용이 유리한 가까이로 날아왔다. 목 앞에 창이 들이밀어져 있음에도 그랬다.

- 그럴 능력은 있느냐고 물었다.

창끝이 비늘을 스치며 상처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니르로르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리한의 앞에 멈추어서는 말했다.

- 그때와 다르게 짐과 똑같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서 말이다. 내 착각인가 싶지마는…….

드래곤의 붉은 눈에 당황해하는 유리한의 얼굴이 담겼다. 니르로르가 비웃음을 입가에 걸치며 목소리를 내었다.

-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불쾌한 시선에 유리한이 이를 갈았다.

“헛소리.”

- 흐음.

니르로르는 여자의 갈무리되지 못한 성난 기운을 느끼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때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눈앞의 여자는 자신의 기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겉은 그대로였다. 문제는 마음.

자신을 향한 분노를 내뿜고 있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마는, 왜 저렇게 초조하게 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니르로르는 잠시 드높은 하늘을 쳐다봤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맑은 색이 눈에 담겼다. 하지만 니르로르는 알 수 있었다.

계속 올라가다 보면 결국 끝에 닿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그야, 이곳은…….

니르로르가 생각을 멈추고는 유리한을 바라보았다.

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오만방자하기 그지없던 인간을.

그때와 달리 여유 만만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날을 세우고 있는 지금의 모습도 꽤 보기 흥미로웠다.

때문에 니르로르는 입꼬리를 올리고선 말했다. 방법을 가르쳐 주면 어떻게 나올까 하여.

- 종속된 관계를 풀고 싶으면 짐을 죽이면 된다. 아니면 인간, 네가 죽거나.

종속 관계를 풀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을 것처럼 굴었으면서 뭐 하자는 짓이야?

니르로르의 저의에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 유리한이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 그래? 그렇다면 네가 죽으면 되겠네.”

유리한이 조소를 흘리며 몸을 돌렸다. 니르로르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을 불러오기 위해서였다.

- 하지만 감당할 수 있겠느냐?

유리한이 걸음을 멈추고는 격이 떨어져 버린 드래곤을 돌아보았다. 니르로르가 웃는 낯으로 여상하게 목소리를 내었다.

- 짐의 죽음으로 느끼게 될 허탈감과 박탈감, 공허감. 그 모든 감정을 말이다.

유리한이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네까짓 게 죽는다고 그런 걸 느낄 리가 없잖아.”

- 글쎄, 과연.

이곳의 주인은 장난기가 심했다.

유리한이 저렇게 호언장담하는 것도 자신이 죽으면 끝이리라.

왜인지 모르게 그녀가 다시 맞이할 끝을 생각하니 꽤 유쾌해졌다. 그렇기에 니르로르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 그래, 감당할 수 있겠으면 어디 한번 죽여보거라. 어차피 짐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궁금한 것이 있다, 인간.

니르로르가 유리한의 코앞에 다가와서는 얼굴을 찌푸렸다.

- 너한테서 왜 짐의 힘이 느껴지는 거지?

“뭐……?”

- 처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보였던 그 힘. 그건 분명 짐의 힘이었느니라.

유리한이 입을 뻐금거렸다.

저 망할 용용이 새끼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지만 유리한은 황급히 어둠을 지배하는 자(S)의 칭호 효과를 니르로르의 앞에 내보였다.

니르로르가 흥미롭다는 듯이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 그래, 그거. 하지만 다루는 게 무척이나 미숙하구나. 고작, 자신의 몸을 숨기는 것으로밖에 활용하지 못하다니.

유리한이 당황한 얼굴을 보였다.

“너… 알아……?”

- 무엇을?

“이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냐고!”

- 당연히 알지.

니르로르가 이상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인간.

네가 가지고 있는 힘은 짐이 가지고 있던 힘이라고.

나지막하게 덧붙여진 목소리에 유리한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드래곤 슬레이어(S)의 칭호를 얻은 건 니르로르를 죽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둠을 지배하는 자(S)에 대해서는 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망할.’

유리한이 두 손을 주먹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디에스 라고를 불러 그에게 니르로르를 죽여줄 것을 부탁하고 싶었다.

디에스라면 망설이지 않고 눈앞의 용을 베어버릴 테니.

하지만 니르로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떠오른 이름은 서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저 스스로의 미래를 포기한 조카였다.

[칭호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아 대상의 미래를 감춘 어둠을 걷어내지 못했습니다.]

니르로르의 말에 따르면, 어둠을 지배하는 자(S)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

단순히 모습을 감추는 것만으로 칭호의 힘을 모두 사용했다고 볼 수 없을 거다.

즉, 조카를 깨우기 위한 조건을 맞추지 못할 거라는 말.

유리한이 제 앞에서 열심히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는 작은 용을 쳐다봤다.

유리한과 시선이 마주친 니르로르가 불쾌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 뭘 보냐, 인간.

싸가지를 상실한 목소리에 유리한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악! 나는 진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신이 있다면 멱살 잡고 흔들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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