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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63)화 (63/235)

63화 

43층의 지배자, 엘던스 테레시.

오광 중 한 곳, 청의 기사단의 제1사단 소속인 그는 9층의 상황을 정리 중이었다.

“공문 내려온 거 읽었지? 그대로 따르면 돼.”

“시험 같은 건…….”

“여는 건 네 마음대로. 하지만 시험의 내용은 공문에 적힌 대로 따르면 돼. 같은 기사단 소속 애들은 편의 봐주고.”

“그래도 되나요?”

“되지, 그럼.”

엘던스가 새로 9층의 지배자가 된 후배를 보며 웃었다.

“억울하면 우리 기사단으로 들어오라고 해.”

엘던스는 격려하듯 후배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9층의 상황도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됐으니, 조만간 43층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자리를 너무 오랫동안 비워놨어. 가자마자 시험부터 열어야겠군. 일단은 조금 쉬고.’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43층을 지키고 있는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 엘던스.

“뭐야, 43층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내가 꼭 받아야 하는 연락이야?”

엘던스 테레시는 상부의 명령을 받아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동료들한테 말했었다.

시험과 관련하여 자신을 찾는 녀석들에 관해서는 연락하지 말라고. 자신이 들어야 하는, 꼭 필요한 연락만 해달라고.

그 덕분에 엘던스 테레시는 한 달이 넘게 43층을 비우고 있었음에도 나름 평화로웠다.

- 네가 꼭 받아야 하는 연락이야.

“뭔데.”

엘던스가 귀찮음이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돌아온 답은 충격적이었다.

- 유리한이 43층에 도착했어.

“뭐?”

엘던스 테레시는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유리한이 43층에 있다고?

탑을 오른 지, 이제 겨우 석 달째에 접어들지 않았나? 아니, 두 달째인가?

어쨌든.

“그게 정말이야?”

- 응, 그녀와 함께 다니는 동료들이 너를 만나러 왔더라고. 시험 일정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면서.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 돌려보냈지. 너는 지금 자리를 비웠다고.

“아오, 젠장. 돌아가서 좀 쉴까 했더니!”

엘던스가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유리한이 43층에 올라왔다니!

하루빨리 돌아가 시험을 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동료와의 연락을 끊은 후, 상부에서 날아든 연락에 엘던스는 마음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 엘던스 테레시.

“부단장님?”

- 유리한이 네 층에 도착했다지?

소식 한번 빠르군.

엘던스가 속으로 짧게 혀를 차고는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 최대한 늦게 너의 층으로 귀환하도록 해라.

“네?”

- 도착한 후에도 최대한 시험을 질질 끌어라. 유리한이 우리와 이야기를 할 마음이 들 때까지.

“아니…….”

그건 정중하게 부탁드려도 되는 일이지 않나요?

엘던스는 튀어나오려던 말을 속으로 삼킨 후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후, 뚝 끊겨버린 연락에 엘던스는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유리한이 튜토리얼에서 보여준 무력이 아직까지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엘던스 테레시였다.

상부의 명령을 따랐다가는, 분명 그녀를 자극하게 될 거다.

‘성격 장난 아닌 것 같았는데.’

엘던스가 복잡한 심경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들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 * *

엘던스가 하늘을 보며 한탄하고 있을 때, 유리한은 43층에서 청의 기사단의 기사들과 한창 실랑이 중이었다.

“지배자님께 따로 연락을 넣는 것도 불가능하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부탁드리는 건데도?”

아래위로 훑어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노골적인 눈길에 불쾌할 법도 하건만, 유리한은 싱글벙글 웃는 낯이었다.

“불가능합니다.”

곧이어 나온 대답에 웃음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말이다.

“유리, 잠깐만 비켜봐라.”

“아니야, 디에스.”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의 팔을 잡고는 말했다.

“불가능하다는데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어련히 연락이 오지 않겠어? 그쵸?”

묻는 말에 기사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유리한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걸음을 돌렸다.

“돌아가자. 요한도 가요.”

고요한은 한 기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유리한을 노골적으로 훑어본 그 기사였다.

“요한~!”

하지만 유리한의 재촉에 고요한은 시선을 거두고서 그녀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유리한 역시 방긋 웃으며 그와 함께 길을 나섰다. 물론, 디에스 라고 역시 함께였다.

- 인간, 잡아먹지 않을 거냐?

니르로르도 마찬가지.

유리한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누구를? 저 기사들을?”

- 그래.

“내가 너 같은 줄 알아? 재수 없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빨리빨리 따라오기나 해.”

니르로르가 입술을 씰룩였다. 유리한은 토라진 용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참을 인 세 번이야.”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의 시선이 느껴졌다. 유리한은 그들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문전 박대를 당하는 건 딱 세 번까지만 허용이라고.”

그 숫자를 넘어서면, 유리한은 43층을 뒤집어엎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9층에 내려가신 지배자님께서 울며 겨자 먹기로 올라올 테니.

비록, 그 과정에서 청의 기사단과는 완전히 척을 지겠지만 애초에 좋은 감정이 없는 곳이었다.

유리한이 기지개를 쭈욱 켰다.

“그만 숙소로 돌아가자.”

아니다, 잠깐만.

유리한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는 대로가에 난 가게를 가리켰다.

“무기점에 좀 들를까?”

“필요하신 무기라도 있으신가요, 유리한 씨?”

“감정받고 싶은 무기가 있어서요. 그리고 요한에게 선물도 하고 싶어서요.”

“선물이요……?”

고요한이 놀란 눈을 보였다. 선물이라면 지금도 받는 중이었다.

유리한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그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으니.

“유리, 나는.”

“너는 돈 많잖아.”

하지만 유리한은 디에스 라고에게도 선물을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고요한과 티격태격할 게 분명했으니.

- 인간아.

“넌 없어.”

안 그래도 토라졌던 용이 두 뺨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귀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으나 유리한의 눈에는 끔찍하게만 보였다.

그녀는 질색하는 얼굴로 니르로르를 보고는 두 남자만을 데리고 등을 돌렸다.

니르로르는 유리한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탑의 주민으로 보이는 꼬마가 솜사탕을 입에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꼬마만이 아니었다.

거리를 지나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손에 하나같이 솜사탕이 들려있었다.

- 작은 인간아, 그거 어디에서 났느냐?

“쩌기! 쩌기에서 아저씨랑 아줌마가 공짜로 나눠주고 이써!”

- 고맙다, 작은 인간아.

공짜로 나눠주고 있다니! 무료라는 소리 아닌가!

니르로르는 유리한을 쫓아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열심히 날갯짓했다. 향하는 곳은 작은 인간이 가르쳐 준 솜사탕 가게였다.

한편, 유리한은 무기점 안에 들어가 인벤토리 안에 잠들어 있던 무기들을 꺼내고 있었다.

“여기, 이 무기들 좀 감정해 주세요. 그리고 저 두 사람이 쓸 만한 방어구 좀 보여주시겠어요? 인비저블 기능이 부가된 걸로.”

제법 돈이 있어 보이는 손님이었다. 가게의 사장은 굽신거리며 종업원들을 불러 가게에서 내로라하는 방어구들을 보여주었다.

“요한, 디에스. 서로 눈싸움 그만하고 와서 좀 골라봐요.”

“유리, 나는 저 녀석이랑 눈싸움 같은 거 한 적 없다.”

“맞아요, 유리한 씨.”

이제는 미운 정이 들 법도 하건만, 여전히 티격태격하는 디에스 라고와 고요한이었다.

“저… 플레이어님……?”

“오, 무기 감정 벌써 끝났나요?”

원래는 36층에 오르자마자 무기점을 찾아 무기들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워낙 빠르게 탑을 오르기 시작해 그럴 시간이 나지 않았다.

무기점의 사장이 희게 질린 얼굴로 유리한에게 물었다.

“이, 이것들을 도대체 어디에서 구하신 겁니까?! 제게 팔아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나이스!

유리한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녀가 꺼낸 무기들은 모두 엘브리스크의 무기고에 잠들어 있던 것들이었다.

“어느 정도의 값어치가 나가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가게의 사장이 다급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는 결과를 유리한에게 보여주었다.

“와우.”

이제껏 본 적 없는 ‘0’의 향연들에 유리한이 입술을 오므렸다.

가게의 사장은 연신 자신에게 이 무기들을 팔아달라 사정했으나, 유리한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대신, 가게에서 내로라하는 아이템을 휩쓸어 줄 작정이었다.

“니르로르, 기분이야. 너도 하나 골라봐.”

필요 없다면서 콧방귀를 뀌어야 할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니르로르? 용용아?”

유리한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대한 날파리의 모습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얘 어디 갔어?

* * *

- 인간아?

니르로르는 솜사탕을 얻고 나서야 뒤늦게 유리한의 부재를 깨달았다.

연신 고개를 돌려봐도 유리한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니르로르가 눈가를 찡그렸다.

- 감히 짐을 잃어버리다니. 정말 짐에 대한 공경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군.

자신이 유리한을 잃어버렸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오만한 드래곤이었다.

니르로르는 태연한 얼굴로 무료로 얻은 솜사탕을 할짝거렸다.

니르로르가 유리한을 잃어버렸음에도 평온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유리한과 종속으로 맺어진 관계.

마음만 먹으면 유리한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한의 기운이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졌다. 니르로르는 유리한의 기운을 따라 열심히 날갯짓했다.

앙증맞은 두 발로 솜사탕 막대기를 꼭 쥐고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니르로르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가겠다던 무기점이 이런 곳에 있었다고?

대로를 언제 벗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니르로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허름한 판자촌이었다.

도저히 무기점이 있을 곳으로 보이지 않았다.

- 잘못 찾아온 것 같군.

하지만 곳곳에서 유리한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망할 인간은 무기점 간다더니 이런 곳에서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니르로르가 미간을 좁혔다. 그런 그의 앞으로 빈민가의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와, 엄청 큰 파리다.”

“어디? 우와아! 정말이네?!”

“와아! 진짜 크다!”

파리라니!

니르로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곳은 굴러다니는 돌도 놀잇감이 되는 빈민가였다.

아이들은 새로 발견한 장난감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니르로르를 잡으려 들었다.

“파리야! 우리랑 놀자!”

“맞아, 우리랑 놀자!”

- 이, 인간아, 어디 있냐!

니르로르가 빈민가 아이들의 손을 피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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