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66)화 (66/235)

66화 

혼란과 격변의 시대, 디에스 라고는 오만했다.

어느 순간부터 ‘영웅’이라며 추앙받기 시작한 그였다. 그 무엇도 자신을 해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워싱턴 D.C.에 나타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랬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대로 두는 게 더 위험해.”

디에스 라고는 자신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몇몇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전멸.

들이닥치는 몬스터들에 함께 온 플레이어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디에스 라고는 죽을힘을 다해 버텼으나 그도 알았다. 자신의 끝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구원의 손길이 내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콰과광―!

폭음과 함께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던 무수한 몬스터들이 갈가리 찢겨나갔다.

곧이어 몬스터들의 사체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 가운데에 서있었다.

홀로, 고고하게.

“네가 디에스 라고? 미국의 영웅이라는 루키님 맞아?”

“너는…….”

“리한.”

퍼버벙―!

여자의 뒤로 금빛이 감도는 마법진이 몬스터들을 삼키고 있었다. 여자는 그것을 배경 삼아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리한이라고 해.”

디에스 라고는 홀린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넋을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유리한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디에스 라고의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디에스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지만 유리한은 개의치 않았다.

“리한, 찾았으면 돌아가자. 다른 생존자는 보이지 않아.”

“오케이.”

맞잡았던 손이 놓아졌다.

디에스 라고는 멍한 얼굴로 유리한을 쫓았다.

“멀린, 이대로 나가면 저것들도 뒤따라오겠지?”

“아마도.”

유리한의 곁에는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서있었다. 디에스 라고는 어렵지 않게 그의 정체가 마법사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법사란 족속들은 하나같이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녔으니까.

마법사의 말에 유리한이 성가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처리해야겠네.”

“어떻게?”

“마법으로.”

“오, 리한.”

남자가 앓는 목소리를 내었다. 유리한이 키득거리며 남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렇게 앓는 소리 내지 말라고? 너는 쟤 옆에서 보호막이나 제대로 펼치고 있어줘.”

남자는 유리한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안녕, 디에스. 나는 멀린이라고 해. 멀린 아서.”

“멀린 아서?”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고 불리는 대마법사의 이름이 아니었던가?

그런 남자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멀린 아서는 디에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겠다는 듯이 방긋 웃음을 지었다.

“미국 정부 쪽에서 너를 구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거든. 그래서 바로 달려왔지. 미국은 이런 때에도 정부의 기능이 돌아가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니까.”

디에스가 두 손을 주먹 쥐었다.

쓸데없는 호기를 부려 동료들을 잃게 만든 것도 모자라, 나라의 걱정을 사고 말다니.

치욕스럽다는 얼굴은 잠시뿐이었다. 디에스 라고가 몬스터들 앞에서 여유롭게 서있는 유리한을 가리켰다.

“그럼, 저 여자는?”

“내 친구. 혼자서는 버거울 것 같아서 데리고 왔어.”

“저 여자도 마법사인가?”

“아니.”

하지만 멀린 아서의 대답이 우습게도 유리한은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볼(Fireball).”

유리한의 손가락 끝에서 피어난 불꽃이 이내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 키에에엑!

- 키야악!

- 크륵……! 케엑……!

하늘을 뒤덮고 있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고 말았다. 불꽃은 계속해서 크기를 키워갔다.

디에스 라고가 멍하니 말했다.

“…저게 파이어볼이라고?”

“놀랍지?”

멀린 아서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리한은 적당히란 걸 모르거든.”

“멀린, 모함하지 마.”

불꽃을 쏟아낸 유리한이 디에스 라고와 멀린 아서의 곁에 붙으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니까!”

* * *

그것이 유리한과의 첫 만남이었다. 멀린 아서의 마법진을 타고 나간 바깥에서 디에스는 유리한의 정체를 끊임없이 의심했었다.

‘그때는 틀림없이 유리가 마법사라고 생각했으니까.’

멀린 아서가 그녀의 정체를 숨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추억이 되고 만 일이다.

“후우…….”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흔들거렸다. 언제 바깥으로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먹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에서 빗방울을 하나씩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디에스 라고는 두 눈을 끔뻑거리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바깥으로 나온 디에스의 손에는 우산이 들려있었다.

* * *

빈민가에 도착하기 무섭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니르로르는 도착하자마자 흙바닥에 코를 처박고 킁킁거리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개 같네.”

- 뭐라고 했느냐, 인간아?

“듣지 못했으면 됐어.”

유리한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새끼 드래곤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러고 있는 거야?”

- 네 기운이 아래에서 강하게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 전체에서 네 기운이 느껴지고 있지마는.

“그런데?”

- 가장 강하게 느껴지고 있는 건 바로 이 아래라서 말이다.

정신없이 흙바닥에 코를 처박고 있던 니르로르가 돌연 고개를 들었다.

- 찾았다, 인간.

니르로르는 앙증맞은 발바닥을 젖은 흙바닥에 꾹 눌렀다.

유리한이 니르로르의 발자국이 남은 흙바닥을 보며 비딱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수상쩍은 일은 왜 항상 지하에서 일어나는 걸까?”

- 떳떳하지 못하다는 걸 아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느냐, 인간아.

맞는 말이었다.

유리한이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밑으로 내려갈 방법을 찾아봐야겠네. 귀찮게 됐어.”

- 그냥 네 힘으로 입구를 만들면 되지 않나?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한밤중에 사람들 다 깨울 일 있어? 절대 안 돼.”

물론, 아무리 찾아도 입구를 발견하지 못하면 파괴할 거다. 놀라 깨어난 사람들한테는…….

‘지하수 좀 파고 있었다고 하지.’

믿을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 변명이겠지만 유리한은 상관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진작 자리를 피한 상태일 테니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는 것이 먼저다.

유리한이 니르로르와 함께 빈민가를 살필 때였다.

“플레이어님이시죠?!”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청객에 유리한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제 어깨를 붙잡은 여인의 손을 그대로 넘길 뻔했기 때문이다.

유리한을 붙잡은 여인은 눈물로 가득한 얼굴로 그녀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도, 도와주세요! 제 딸이, 하나뿐인 우리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를 않아요!”

- 가출했나 보지.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 저를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 아이인데!”

- 끔찍하게 여겨서 가출했나 보다, 인간아.

유리한이 그 입 좀 제발 닥치라는 듯이 니르로르를 노려봤다.

딸아이를 찾아달라며 자신을 붙잡은 여자는 병색이 짙은 모습이었다.

유리한이 곤란한 듯,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 *

그 시간, 고요한 역시 유리한과 같은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에델라이어 주교가 머무는 곳을 찾는 거야 간단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태양교의 신전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됐으니까.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면, 43층에 있는 태양교의 신전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에델라이어 주교가 있을 터였다.

그렇게 해서 찾아왔건만.

“에델라이어 주교님?”

어디에서도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외출이라도 하신 건가?’

바깥은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고요한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유리한 씨, 괜찮으시려나? 인벤토리 안에 선물받으셨다는 우산을 항상 챙기고 다니시니 비를 맞고 계시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됐다.

고요한이 한숨을 푹 내쉴 때였다. 타다닥, 어둠 속에서 다급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분명한 소리였다.

에델라이어 주교님이신가?

고요한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어둠 속에서 나타난 여자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고요한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고요한은 크게 당황했다.

“잠깐, 진정 좀 하시고……!”

“커흑!”

후두둑, 여자의 입에서 핏물이 떨어졌다. 입뿐만 아니라 두 눈과, 코. 그리고 양쪽 귀. 얼굴의 구멍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요한의 두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황급히 힐(Heal)을 시전했지만 여자의 상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이봐요!”

고요한이 점차 숨이 꺼져가는 여자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 순간 또 다른 인기척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고요한은 황급히 여자를 끌어안고서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것을 휘두를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한? 요한이에요?”

“에델라이어 주교님!”

들려온 인기척의 주인이 고요한이 그토록 찾던 에델라이어 주교였기 때문이다.

에델라이어 주교가 화사하게 웃으며 고요한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드래곤은 찾으셨나요?”

“드래곤은 찾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고요한이 품에 끌어안고 있던 여자를 에델라이어 주교에게 보여주려던 참이었다.

에델라이어 주교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여자를 보며 작게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지금 실험 중이었지?”

“실험…이라니요……?”

묻는 목소리에 에델라이어 주교는 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헤실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요한은 혼혈이셨죠? 그래서 그렇게 플레이어가 된 거고요. 탑에서 태어났는데도.”

무언가 이상했다.

강렬하게 드는 불길함에 고요한이 에델라이어 주교에게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숨이 꺼져가는 여자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로 말이다.

고요한이 내보이는 경계에 에델라이어 주교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중력이 고요한의 온몸을 짓눌렸다.

“윽……!”

곳곳에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고요한이 이를 악물며 에델라이어 주교를 노려봤다.

“당신, 누구야.”

탑의 주민이라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에델라이어 주교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에델라이어 주교가 방긋 웃음을 지었다.

“에델라이어죠. 요한.”

에델라이어 주교가, 아니. 그녀의 얼굴로 히죽거리고 있던 사토 하루나가 고요한에게 다가와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저요, 아직 하프의 몸에는 단 한 번도 실험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요, 요한. 저 좀 도와주실래요?”

즐거워하며 묻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고요한은 막히는 숨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