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커가 되기 위한 손쉬운 방법 (67)화 (67/235)

67화 

“아주머니, 아이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했죠?”

“로즈요. 로즈마리.”

세차게 내리던 비는 그친 지 오래, 유리한은 지금 아이를 찾아달라며 저를 붙잡았던 여인과 동행 중이었다.

유리한에게 아이의 이름을 가르쳐 준 여인이 울먹였다.

“올해 스무 살이 됐어요. 어릴 때부터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착한 아이예요. 그런데…….”

날이 지나도록 딸아이가 돌아오지를 않는다며, 여인이 울음을 터트렸다.

구슬픈 울음을 가만히 듣고 있던 니르로르가 얼굴을 찌푸렸다.

- 인간아, 스무 살이면 인간들 기준으로 성인이라는 소리가 아니냐.

“그렇지.”

- 성인이라는 소리는 제 앞가림은 할 줄 안다는 말로 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 그리고 저분께서 말하셨잖아? 지금까지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착한 딸이라고.”

- 성인이 되면서 부모의 속을 썩이고 싶어졌을 수도 있지.

“나 참, 니르로르.”

유리한이 그 입 좀 다물라는 듯이 니르로르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 새끼 드래곤이 불퉁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 네 기운이 느껴졌던 곳과 점점 멀어지고 있단 말이다. 짐이 기껏 찾아줬건만,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인간아.

“나도 알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옛말에 그런 말이 있거든.”

유리한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베푼 만큼 돌아온다.”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만.

니르로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리한은 새끼 드래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네가 저분의 따님을 찾는 걸 도와주면, 산더미만큼의 솜사탕이 네게 돌아올 거라는 말이지.”

- 뭐랏……?

니르로르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초롱초롱해졌다. 품에 가득 안긴 솜사탕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유리한이 눈에 뻔히 보이는 니르로르의 생각에 작게 웃음을 흘리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 냄새 맡아서 저분의 아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좀 쫓아봐. 비가 내렸다고 해도 찾을 수 있지?”

유리한이 건넨 건 여인의 아이인 로즈마리가 평소 입고 다닌다는 옷이었다.

니르로르가 유리한에게서 냉큼 옷을 채갔다.

- 짐은 드래곤이다, 인간.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용이지.

“그래서?”

니르로르가 의기양양하게 웃음을 지었다.

- 비가 내렸다고 해서 인간 하나를 찾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소리지.

작은 드래곤이 로즈마리의 옷가지에 코를 대고는 킁킁거렸다. 아주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니르로르가 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이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때문에 유리한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여인을 달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용이 따님을 금방 찾아줄 거예요.”

여인이 의욕 넘치는 드래곤을 보고는 유리한을 향해 고개를 꾸벅거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인이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설마, 제 아이도 사라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의를 계속 시켰는데.”

제 아이도?

유리한이 미간을 살포시 좁혔다.

“따님과 같이 실종된 사람들이 많이 있나 봐요?”

“네.”

여인이 울음을 완전히 그치고는 말했다.

항상 비가 내린 후,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밤만 되면 동네의 아이들이 한 명씩 사라졌다고.

“하지만 모두 어린아이들이었어요. 스무 살이 넘은 어른은 건드리지 않았는데…….”

여인의 얼굴이 일순 희게 질렸다. 그녀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이 몸을 벌벌 떨며 말을 더듬었다.

“설마, 제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저는.”

“아니에요, 부인. 괜찮을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심호흡하세요, 어서요.”

유리한이 여인을 달래며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실종됐다던 아이들은 모두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아이들의 실종 사건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누구도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

43층의 지배자도, 그 지배자 아래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도.

빈민가의 아이들이 실종된다는 것에 아무도 신경을 쏟지 않았다는 거다.

유리한이 이를 으득 갈 때였다.

- 인간아, 쫓아오거라.

로즈마리의 옷가지에서 그녀의 냄새를 맡고 있던 니르로르가 날개를 펼치고서 날아가 버렸다.

“야! 니르로르!!”

유리한이 다급하게 여인을 데리고 니르로르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도 니르로르는 얼마 가지 않아 자리에 멈추었다. 그가 멈춘 곳은 내린 비로 축축하게 젖은 흙바닥이었다.

유리한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했던, 바로 그 장소.

“애를 찾으라니까 여기는 또 왜 온 거야?”

유리한의 짜증스러운 물음에 니르로르가 말했다.

- 이 아래에서 냄새가 난다.

“뭐……?”

유리한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가를 살짝 찡그리는 찰나, 니르로르가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 잠깐, 인간아. 네가 찾아달라는 인간의 냄새가 다른 곳에서도 맡아진다.

그렇게 말한 후, 날개를 활짝 펼쳐 조금 전처럼 날아가 버리는 니르로르였다.

“니르로르, 잠깐만! 같이 가!!”

저 망할 용! 진짜 목줄을 채워버릴까 보다!

그렇게 유리한이 다시금 여인과 함께 니르로르의 뒤를 쫓아 도착한 곳은 낡은 건물이었다.

“여기는…….”

“시, 신전인데.”

여인이 입술을 파르르 떨다가 건물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에델라이어 주교님! 주교님!!”

유리한이 붙잡을 새도 없었다. 유리한은 짧게 혀를 차고는 여인을 쫓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와 보니 확실히 알겠네.”

- 무엇을?

“여기가 태양교의 신전인 것을.”

34층에 세워져 있던 태양교의 신전과 똑같은 양식으로 세워져 있는 건물이었다.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건 에델라이어 주교겠지. 다른 태양교의 사제들은 없나?’

유리한이 신전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느껴지는 인기척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신전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에델라이어 주교, 그녀 한 사람뿐인 것 같았다.

문제라면 그녀의 인기척도 이곳 신전 안에서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물론, 로즈마리도.

“니르로르, 정말 이곳에서 로즈마리의 냄새가 나는 게 맞아?”

- 로즈마리?

“네가 찾고 있는 인간의 이름.”

니르로르가 허공에다 코를 킁킁거리고는 말했다.

- 맞다. 그 인간은 분명 이곳에 있다. 짐을 따라오도록.

또 날아간다, 또!

유리한이 얼굴을 찌푸리며 날개 달린 파충류의 뒤를 쫓았다. 니르로르가 유리한을 데리고 간 곳은 계단이었다.

계단 아래, 굳게 잠겨있는 철문이 보였다. 유리한이 철문을 가리키며 니르로르에게 물었다.

“저 안에 로즈마리가 있다는 거야?”

- 그래. 그리고 인간아, 네가 말한 대로 베푼 만큼 돌아온 것 같구나.

니르로르의 붉은 눈이 유리한에게로 향했다. 그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키득거렸다.

- 그곳과 이어진 통로인 것 같다.

그곳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유리한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의 기운이 한껏 느껴진다던 땅 아래를 말하는 거겠지.

- 내려갈 거냐, 인간아?

“그래야지.”

- 저 인간은?

유리한의 시선이 로즈마리의 이름을 외쳐대며 그녀를 찾고 있는 여인에게로 향했다.

“혹시 모르니 재워둬야겠어. 에델라이어 주교가 발견하면 알아서 잘 모셔두겠지.”

신전 내부에 깔려있던 그림자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여인을 감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여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니르로르가 입술을 오므리며 감탄했다.

- 호오, 짐의 힘을 저런 식으로 활용하다니.

“좋은 선생님께서 훌륭한 가르침을 주셔서 말이야.”

반어법이었다.

하지만 니르로르는 이번에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새끼 용은 뿌듯하게 웃음을 지었고, 유리한은 질색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고는 어렵지 않게 굳게 닫혀있던 철문을 열어젖혔다.

“윽……!”

문을 열자마자 지독한 피 냄새가 훅 끼쳐 들었다.

유리한이 황급히 코를 막았다. 니르로르 역시 앙증맞은 앞발을 들어 코를 막은 상태였다.

“정말, 여기에서 내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고?”

- 그래.

유리한이 비딱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어둠 속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신전 아래에 고여있는 지독한 피 냄새라니. 34층의 요바네스 한나가 알면 놀라 까무러치겠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다른 곳에서 유리한의 얼굴에 걸려있던 조소는 사라지고 말았다.

“니르로르, 다시 한번 말해봐.”

유리한은 눈앞에 펼쳐진 시체들의 산에 허망한 얼굴을 보였다.

“정말, 이곳에서 내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고?”

- 그래.

니르로르의 대답에 유리한이 두 손을 주먹 쥐었다.

하나같이 성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시체들이었다.

그중에서 유리한은 여인이 그토록 찾던 로즈마리를 발견했다. 로즈마리뿐만이 아니었다.

34층, 태양교의 신전에서 마주쳤던 만물의 마법사들도 보였다.

‘저 녀석들이 왜…….’

여기에 저런 모습으로 있는지, 유리한은 알 수가 없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니르로르는 감흥 없는 얼굴로 시체들의 산으로 날아가 말했다.

- 이 녀석들이 흘린 피에서 네 마력이 느껴지고 있다, 인간아.

유리한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소리 질러 니르로르의 말을 고쳐주고 싶었다.

네가 느끼고 있는 마력은, 내 것이 아니라 내 동생의 것이라고.

‘탑에서 가지고 간다 했지?’

‘응, 더 뽑아낼 게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더 뽑아낼 것이 있다며 동생의 시체를 탑으로 데리고 갔더니 이딴 식으로 이용하고 있었어.

내 하나뿐인 동생을.

지한이를.

순간적으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유리한은 다급히 입가를 틀어막고는 숨을 골랐다.

“도대체 왜……?”

- 인간아?

유리한이 악에 차 소리 질렀다.

“왜!!”

세상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하나뿐인 가족의 안부를 당부하면서 말이다.

그것 하나 지켜주는 게 그토록 어려웠단 말인가?

“죽여버릴 거야.”

내 동생을 그렇게 만든 새끼들을, 이딴 식으로 이용하고 있는 새끼들 모두를 죽여버릴 거라고.

유리한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깨문 이에 피가 맺히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저주 섞인 말들을 몇 번이고 목구멍 안쪽으로 눌러 담으며 이성을 붙잡고자 했다.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아아아악!!”

유리한이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요한……?”

환청을 들은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고요한의 비명이 한 번 더 지하를 울렸다.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에 유리한이 급박하게 몸을 움직였다.

“요한!”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1